131화
공룡박물관에서의 일은 다사다난했지만,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또 갈지는 모르겠지만.
시하가 원한다면 가야지.
나는 그렇게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다.
연락이 오기 전까지는.
“네? 뭐라고요?”
「1등 축하드린다고요.」
“어…. 왜 1등이죠?”
「네?」
“아, 아니에요. 그냥 평범하게 만든 것 같은데 1등이라고 하셔서 놀랐습니다.”
「하하하. 평범하다뇨. 그만큼 특이한 공룡도 없을 겁니다. 빙하기를 거친 종의 이야기가 좋더라고요.」
빙하?
도대체 뭘 썼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선생님이 뭔가 엄청난 걸 썼나 보다.
내가 열심히 꾸며주려고 했는데 기회를 뺏긴 것 같아서 안타깝다.
「1등부터 3등까지 공룡들을 전시하려고 합니다. 상품을 보낼 수 있도록 주소를 적어 알려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상품이 뭐였지?
분명 공룡 전집과 신작 dinosaur 영화 4D 영화표 4매였던 걸로 기억한다.
아무래도 시하의 공룡 지식이 조금 더 늘어날 것 같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박물관에 와서 기념사진도 찍을 수 있겠습니까?」
“기념사진이요?”
「네. 이번 이벤트가 너무 잘됐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기념할 만한 사진을 남기는 것도 좋을 듯해서요. 상장도 준비했습니다.」
“와. 그거 좋네요.”
「하하. 사이트에 게시도 할 건데 원하지 않으면 올리지 않겠습니다.」
“올려도 괜찮아요.”
사람들이 어차피 공룡박물관 사이트를 얼마나 자주 찾겠나.
관심 있는 사람만 들어가 볼 것이다.
1등부터 3등까지 다 같이 찍는다면 별 불만은 없었다.
「하하.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오실 수 있습니까? 간단히 축하도 할 겸.」
“네. 그럴게요. 그런데 2, 3등도 오나요?”
「음. 일단 3등인 아이는 온다고 하던데 2등인 아이는 못 올지 모르겠네요.」
“아, 그래요?”
「하하. 1등만 온다면 괜찮습니다.」
1등만 알아주는 더러운 세상!
뭐 이런 헛생각을 하며 나는 통화를 종료했다.
어서 빨리 이 기쁜 소식을 시하에게 알려줘야겠다.
방에서 빈 각티슈 상자 두 개에 발을 꽂고 있는 시하를 불렀다.
“시하야!”
“아? 형아!”
터벅터벅.
시하가 두 발이 각티슈가 되어 있었다.
그 뒤로 소복이 쌓여 있는 휴지가 보였다.
‘언제 치우지?’
이제 각티슈에서 벗어난 줄 알았는데 아직도 유용한 장난감인가 보다.
갖고 놀게 그렇게 많은데도!
“형아?”
“어? 으응. 시하야. 네가 만든 페페사우루스가 1등을 했대! 대단하지?”
“아?”
“그러니까 시하가 만든 공룡이 제일 멋지다고 연락 왔어!”
“머시써?”
“응!”
시하가 손을 번쩍 들었다.
아무래도 기분이 좋은 모양.
나는 시하를 들어 올렸다.
대롱대롱 발에 달린 각티슈가 흔들렸다.
“그래서 내일 공룡박물관에 또 갈 거야.”
“아아!”
“좋지?”
“또! 또!”
아무래도 공룡박물관에 가는 게 너무 좋나 보다.
봤던 걸 또 보는 건데도 그렇게 좋은 걸까?
뭔가 신기한 기분이다.
하긴 나도 좋아하는 만화나 영화를 또 돌려보긴 했었다.
보고 또 봐도 재밌어서.
웅웅.
폰이 울렸다.
화면을 보니 승준 엄마였다.
나는 시하를 내려놓고 전화를 받았다.
“네. 여보세요.”
「시혀기 형아!」
“오! 승준아. 웬일이야. 시하 바꿔줄까?”
「응!」
“시하야. 승준이가 바꿔 달래.”
“아아.”
시하가 발에 있는 각티슈를 휙휙 날렸다.
날아가며 바닥에 덩그러니 놓였다.
시하가 전화를 받는 동안 각티슈 통을 들고 정리를 시작했다.
“아아. 승준.”
「시하야! 박물관에서 상 어떻게 됐어? 난 연락 없었어!」
“시하. 1둥!”
「응?! 시하 1등이야?」
“아아.”
「우와! 대단하다! 아악! 하나야. 저리 가.」
「나도! 시하랑 통하할래! 시하야. 대단해!」
「저리 좀 가라고! 오빠 바쁜 거 안 보여?」
「오빠는 맨날 바뿌대! 거짓말이자나! 엄마! 오빠가 괴롭혀!」
「오승준! 동생이랑 잘 놀아주라고 했지!」
「아! 진짜 아닌데! 왜 맨날 나만 뭐라고 해! 시하랑 놀고 있었다고!」
뱃속에서부터 억울함이 올라오는 목소리였다.
나는 피식 웃었다.
쌍둥이라고 해도 승준이 오빠인 건 맞다.
사실 오빠라는 것도 웃기긴 하지만.
아무튼, 시하와 나랑 다른 생활이라 신기하기만 하다.
남매는 보통 저런 걸까?
하긴 사돈 남 말 할 처지는 아니다.
다른 사람이 시하랑 내가 형제란 걸 알면 더 신기해하겠지.
“아아! 시하. 공렁 또 가.”
한창 다투고 있는 전화기 너머로 시하의 목소리가 닿자 조용해졌다.
승준과 하나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 공룡 보러 가? 나도 갈래! 나도!」
「하나도. 하나도. 시혀기 오빠도 같이 가지?」
“아아. 가자. 승준, 하나. 가자.”
나는 정리하다가 시하를 보았다.
저기. 시하야. 누구 마음대로 약속을 정하니?
시하 마음대로!
「승준아. 하나야. 안돼요!」
「아! 왜!」
「아 왜!」
다행히 승준 엄마가 제지해 줘서 살았다.
공룡박물관에서의 내 고생을 알아준 게 틀림없다.
“시하야. 내일은 형아랑만 가자. 알았지?”
시하가 눈을 크게 떴다.
고개를 열심히 끄덕거렸다.
“형아랑! 시하랑 형아랑!”
“응. 시하랑 형아랑.”
시하가 기분 좋은지 만세를 외쳤다.
“승준. 하나. 다움에.”
「아! 같이 가고 싶은데!」
「그럼 다음에 하나랑 시혀기 오빠만 가?」
그때 굵은 목소리가 스피커에서부터 울려 퍼졌다.
「그건 절대 안 돼!!!」
승준 아버지였다.
그렇게 재밌는 통화는 종료되었다.
***
다음 날.
사하와 나는 사진을 찍기 위해 갔는데 거기에서 익숙한 부녀를 볼 수 있었다.
바로 스미스 씨와 연주.
알고 보니 2등을 한 게 연주였다.
솔직히 놀랐다.
초등학생들도 많이 참여했는데 1등과 2등이 유아라는 것이.
“안녕. 연주야.”
“안녕하세요!”
연주가 살며시 배꼽 인사를 했다.
예의가 바른 연주가 시하를 보았다.
“안녕. 시하야.”
“아아. 연주.”
재휘가 연주를 어린이집 애들에게 소개해 줬는데 시하랑 그때 인사를 나눴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관심 없는지 각자의 보호자에게 얼굴을 돌린다.
스미스 씨와 눈을 마주쳤는데 어색하게 웃었다.
「2등이라니 정말 좋겠어요. 그런데 못 온다고 들은 거 같은데…….」
「애가 꼭 가고 싶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연차 내고 왔습니다. 하하.」
고생하시는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 그런데 연주 어머니는요?」
「일하고 있죠. 집안의 기둥입니다. 하하.」
「아하.」
저쪽 가정의 주 수입원은 어머니이신가 보다.
연차도 이렇게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것을 보니 아버지 쪽도 만만치 않은 사람이었다.
「재휘하고는 통화해 봤나요?」
그 말에 스미스가 어색하게 웃었다.
대답은 못 들었지만, 대답을 들은 기분이었다.
완전 서운함이 감도는 얼굴이었다.
“아! 오셨습니까! 이쪽으로 오시죠.”
때마침 직원이 와서 우리를 끌고 갔다.
시하의 작품 설명이 기대됐다.
“시하의 작품은 어디 있어요?”
“저기 전시를 해 뒀습니다. 소장님이 준비한 상장을 주는 장면도 사진으로 찍을 겁니다.”
“그렇구나. 시하야. 사진 찍는데. 사진.”
“아아.”
그렇게 세 개의 공룡을 전시한 장소에 도착했다.
시하의 공룡을 보고 나는 멈칫했다.
머리가 열려있는데 거기에 펭귄이 나왔으니까.
나는 그제야 시하가 말한 공룡의 이름이 왜 페페사우루스인지 알아차렸다.
설마 진짜 페페가 있을 줄이야…….
공룡마저 페페화시키는 이시하.
정말 대단한 남자였다.
그런데 더욱 어처구니없는 것은 설명이었다.
빙하기가 대체 왜 나왔는지 알 수 있었다.
“정말 대단합니다. 이런 기발한 상상은 아무나 할 수가 없어요. 아시다시피 저희 박물관에도 역사를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마지막에 빙하기가 와서 새로운 종의 탄생까지! 간략하면서도 함축적 이야기가 이 작품에 다 들어 있는 거죠!”
열변을 토하고 있는 직원을 보며 함께 있던 연주가 감탄을 내뱉었다.
스미스 씨도 대충 알아들었는지 놀랍다는 듯 시하를 보고 있었다.
저기요. 여러분? 그거 아니에요…….
시하는 그저 페페를 집어넣고 싶었을 뿐이에요…….
나는 안다.
시하가 그런 의도가 없었다는 것을.
하지만 알다시피 미술인이 때로는 뻔뻔함을 갖추기도 하지 않나.
시를 썼는데 생각지 못한 해석이 튀어나오기도 하고.
‘그냥 넘어가야겠네.’
나 혼자 타협을 하고 있자 시하가 내 바지를 잡아당겼다.
“형아. 박치기.”
“응. 시하야. 박치기 공룡이야. 시하가 박치기 공룡하고 페페를 만들었지?”
“아아. 페페. 페페. 박치기. 페페. 나아.”
“응. 박치기 공룡이 페페를 낳았네. 그런데 시하야. 연주가 만든 공룡 볼래?”
“아?”
시하가 고개를 돌려 연주가 만든 공룡을 보았다.
나는 좀 더 잘 볼 수 있게 시하를 안아서 보여주었다.
‘잘 만들었네.’
공룡 두 마리를 만들었는데 서로의 꼬리가 연결되어 있었다.
마치 하나인 것처럼.
그냥 보면 하트로 보이기도 했다.
설명은 스미스가 적었는지 꽤 재밌었다.
[공룡도 사랑은 한다. 언제나 먹고 먹히는 싸움만 하는 건 아니다.]
간결하지만 굉장히 뒤통수 한 대 맞은 듯한 느낌.
왜 이걸 뽑았는지 이해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강렬한 공룡들이나 평안한 초식공룡들만 떠올리지 저런 식으로 알콩달콩한 공룡들은 못 본 것 같다.
아이라서 그런지 이런 것을 잘 표현한 것 같았다.
자유롭게 생각하는 표현이 아주 예뻐 보였다.
물론 독창성 면에서는 시하가 최고지만.
“시하야. 어때?”
“하투!”
“응. 하트야. 하트.”
“아아!”
시하가 신기하다는 듯이 공룡을 보았다.
어쩌면 이렇게 다른 아이의 작품을 보는 것도 시하에게 영향을 줄지도 모르겠다.
또래 중에 이런 식의 퀄리티 높은 작품을 선보이는 건 연주가 처음이 아닐까?
“와! 시하 꺼 대단하다.”
우리가 연주의 작품을 보듯이 연주도 시하의 작품을 보고 있다.
그러면서 시하를 살며시 흘겨본다.
“다음에는 내가 1등 할 거야!”
“아?”
연주가 시하에게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나 보다.
시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장담하건대 시하는 저 말에 아무 생각이 없을 것이다.
1등이든 2등이든 순위에 관심 없을 테니까.
“페페. 하투.”
오로지 관심은 페페의 업그레이드였다.
아마 오늘은 하트가 넘치는 페페가 그려지지 않을까 싶다.
“이런 기다리셨나요?”
소장이 등장했다.
허허, 웃으며 상장을 들고나온다.
뭔가 대단해 보이지만 학교에서 서류작업을 한 나는 안다.
저런 상장은 프린터기에 쭉 뽑으면 다 뽑힌다는 걸.
어릴 때는 몰랐는데 뽑는 방식을 보고 뭔가 실망스럽게 되었다.
그냥 A4에 인쇄하는 거나 다름없어 보였으니까.
아무튼, 상장이 중요한 게 아니라 1등을 했다는 게 중요하지 않나 싶다.
“그럼 상장 수여식이 있겠습니다.”
상장이 수여되고 다 같이 사진을 찍었다.
시하는 여전히 브이를 포기하지 않았다.
상장 들린 손에 억지로 검지와 중지를 살짝 들어 올려 브이 포즈를 취했으니까.
그렇게 일과가 끝났다.
스미스와도 악수도 하고 헤어질 준비를 했다.
「다음에 볼 수 있으면 보죠.」
「그거 좋죠. 아! 혹시 식사라도 하시겠습니까? 그렇게 도와줬는데 제대로 대접 한번 못했네요.」
「하하. 도와주기는 재휘도 많이 도와줬는데요.」
「그럼 날 잡아서 재휘랑 밥 한번 먹읍시다.」
「저야 감사하죠.」
「그럼 어디 보자. 이번 주… 아니. 음. 안 되겠네요. 잠시 외국에 좀 다녀올 거라서. 시간을 한번 맞춰보죠.」
「네.」
우리는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역시 연주가 두 언어를 하는 건 이렇게 해외에 자주 나가서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시하를 보았다.
“시하도 영어 잘하고 싶어?”
“아? 하이! 바이바이!”
“아하하. 잘하네.”
뭐 영어야 내가 하면 되지.
시하는 열심히 한국어 공부를 하자.
그때 시하가 말했다.
“시하. 영어. 해.”
“응. 시하 영어 잘하지.”
“아이 라이쿠 치킨! 아이! 라이쿠! 치킨!”
그건 또 어디서 배웠니?
내가 물어보자.
“아아. 백동!”
백동에게 들었구나…….
아무래도 시하는 개인적으로 영어 공부도 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