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통역사란 무엇일까?
다들 알다시피 사람과 사람이 대화를 통하게 하는 것이다.
그 대화가 일방적이지 않고 신뢰라는 이름으로 양방향으로 통하게 해야 한다.
때로는 문화가 달라 오해하지 않게 설명을 해 줘야 할 때도 있는 법.
아이가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같은 한국어라고 해도 믿을 수 없다면 대화는 통하지 않는다.
먼저 마음을 열고 믿어야 한다.
신의란 어떤 논리보다 더 이해하게 하는 마법이 있다.
그 마법을 나는 오늘 부리려고 한다.
100%가 아니더라도.
조금이라도 물꼬를 틀 수 있다면.
거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게 ‘시작’이기에.
“자. 잘 보세요. 재휘야. 저기 여성 보이지?”
“네.”
“키가 어때? 나보다 커? 작아?”
“작아요.”
“그럼 저 남자보다는 커? 작아?”
“저 여자가 더 커요.”
“그치? 그럼 아까 본 남성은 저 여자보다 클까?”
“음. 비슷한 거 같아요. 큰지, 작은지 모르겠어요.”
“오케이. 알겠어.”
이걸 물어보는 이유는 재휘의 말이 명확하다는 걸 증명하는 작업이었다.
물론 이건 시작이다.
재휘의 능력은 다른 곳에 있으니까.
나는 재휘의 눈을 가렸다.
“그럼 물어볼게. 아까 그 남자의 키를 물어봤지?”
“네.”
“그런데 그 남자가 무슨 옷을 입었는지 기억하니?”
“네! 기억해요. 남자 얼굴은 기억 안 나지만 옷은 기억해요.”
“재휘는 옷에 대해 관심이 많으니까 당연하겠지. 근데 신기하다. 키에 대해 관심이 쏠렸는데 옷을 기억하고 있다니.”
나는 앞의 남자 셋을 보았다.
그들도 내 의도를 쉽게 짐작했다.
생각이 한쪽으로 몰리면 다른 건 생각나지 않는 법이다.
아마 이 대답이 재휘의 말에 신빙성을 더해줄 것이다.
“그럼 어떤 옷을 입었는지 말해 볼래?”
“앰보 트임 반팔티에 슬렉스를 입었어요. 발목이 나오는? 그리고 상의는 검은색이고 아무것도 그려져 있는 게 없었어요.”
잘했다는 듯이 재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보셨죠? 이 정도면 믿음이 가나요?”
남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사람은 ‘앰보가 뭐지?’라고 중얼거리기도 했다.
“앰보는 원단 이름이에요.”
“아하. 와. 애가 그것까지 안다고요?”
“재휘가 패션에 관심이 많아서요. 뭐 여성 패션은 잘 모르겠지만.”
“그, 그렇군요. 나 때랑은 다르네…….”
사실 나도 이렇게 세세한 것까지 기억할 줄 몰라 새삼 놀랐다.
재휘가 패션에 관해서 관심이 상당히 많은 것 같았다.
“그럼 의심은 피한 거 같은데 잠시 실례 좀 해도 될까요? 아마 지갑에 5만 원권 2개랑 만 원권 3개가 들어 있을 겁니다. 사실 요즘 이렇게 들고 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겠지만.”
“그렇긴 하죠. 자 보세요. 전 아무것도 없어요.”
의심했던 남자가 주머니를 쏙 뺐다.
사실 다들 여름이라 가볍게 입어서 그런지 주머니 말고는 볼 게 없었다.
담배, 라이터.
딱 그 정도뿐이었다.
다른 한 사람은 자기 지갑을 열어서 보여주었다.
거기에 있는 건 만 원권 한 장뿐.
그런데 한 남자. 아니, 한 학생이 안절부절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주머니 좀 보여줄래?”
“아, 그게…….”
학생이 주머니를 꺼내려고 손이 다가가다가 냅다 도망쳤다.
그와 함께 나도 뛰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육상을 하는 듯이 달리는 모습이 굉장히 정갈했다.
문이 열리고 그 뒤를 계속 쫓았다.
“야! 거기서!”
“아이 씨!”
숨이 차오르며 재빨리 다리를 놀렸다.
거리가 점점 좁혀져 갔다.
아무리 그래도 저 애 하나 못 쫓아간다는 건 말이 안 되지.
내가 운동한 것도 있는데.
‘범인이 진짜 코앞에 있었네.’
나는 전속력으로 달려 그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잡혔다는 걸 느꼈는지 학생이 크게 반항을 했다.
휘두른 팔이 얼굴에 도달하자 나는 고개를 살짝 틀었다.
주먹이 얼굴을 스쳐 지나간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대로 몸을 들이민다.
팔과 머리가 삼각형을 그리며 그를 끌어안았다. 심장이 맥동하는 것이 느껴진다. 그대로 조였다.
꽈악.
근육에서부터 반항이 느껴진다. 좀 더 확실히 하기 위해 발을 걸고 그대로 넘어뜨렸다.
“윽!”
상대의 허리가 휘며 꼼짝 못 하게 만들었다.
숨이 막히는지 내 팔을 탁탁 친다.
보이지는 않지만 이미 얼굴이 붉어졌을 것이다.
“후우.”
내가 팔을 풀자.
“콜록. 콜록.”
“반항하지 말고. 상대가 안 된다는 거 알고 있지? 좋게좋게 끝내자.”
“콜록. 콜록.”
오랜만에 외국인 삼촌이 가르쳐준 기술을 쓴 것 같다.
학생 때 어디 가서 맞지 말라고 가르쳐줬는데 아직도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엄청 확실하게 가르쳐 주시긴 했지만.’
이것 외에도 더한 것도 가르쳐 줬지만, 이 학생에게 쓰기에는 너무 위험했다.
“돈 네가 갖고 있지? 13만 원.”
“네에…….”
“몇 살?”
“12살이요.”
요즘 열둘이 크긴 하네.
대충 165는 되어 보였다.
“그래서? 지갑은 어딨는데?”
“몰라요…….”
나는 눈가를 좁혔다.
그는 내 눈을 피하며 고개를 저었다.
정말로 모르는 것 같았다.
“그냥 대충 던졌는데 그 근처에 있을 거 같은데…….”
“후우. 그래. 거기가 어딘지 가자.”
나는 그를 일으켜서 다시 건물로 돌아왔다.
중간에 건물을 따라 나오는 스미스 씨를 만나서 돈을 돌려주었다.
정확히 13만 원.
정말 현금만 빼고 지갑은 버린 것이었다.
“저 근처에서 찾아보면 있을 거예요.”
그렇게 우리는 지갑을 찾으려고 했다.
“형아!”
시하랑 선생님이 같이 오셨다.
“시하가 형아를 찾아서요.”
“아…….”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이렇게 외로움을 많이 타니 벗어날 수가 없다.
“시하야. 형아 찾았어?”
“아아. 형아.”
시하가 내 품에 쏙 안겼다.
“왜? 형아가 보고 싶어서?”
“아아. 시하. 공렁.”
“응? 공룡 다 만들었다고?”
“아아.”
아무래도 공룡 다 만든 걸 보고하러 온 건가 보다.
그러고 보니 설명은 어떻게 됐을까?
“다 제출한 거야?”
“아아.”
“설명은 누가 써줬는데?”
“샘.”
“아! 다희쌤이 써줬어?”
“아아.”
“그럼 형아랑 같이 지갑 좀 찾아줄래? 금방 끝날 거야.”
“시하. 아라.”
“응? 지갑이 어딨는지 안다고?”
“아아.”
시하가 내 품에 빠져나와 덩그러니 세워진 공룡알 쪽으로 움직였다.
그 안으로 쏙 들어가더니 알들이 사이에서 무언가를 번쩍 들었다.
“형아! 지갑!”
“어어? 어떻게 알았어?”
“반짝! 시하 아라. 저어~기. 다다다 해.”
“아…. 그렇구나.”
일단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지갑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시하는 천재네? 형아보다 더 똑똑해.”
“아아!”
나는 도둑을 잡고 있는 스미스에게 지갑을 건넸다.
스미스가 지갑을 확인하고 다행이라는 듯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입니다. 사진은 무사하네요.」
「잘됐네요. 그런데 저 학생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경찰 불러요?」
「음…. 이 나라 법은 잘 모르지만…. 일단 그래야겠네요. 이제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별말씀을.」
아마 12세라 형사 처벌은 내리지 않을 것이다.
반성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경찰서에서 부모님이 와서 훈계를 해줬으면 좋겠다.
솔직히 어떤 부모님이 올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스미스 씨가 소중한 사진을 찾은 건 다행일 것이다.
저렇게 부모님 사진을 소중히 한다는 건 아마 다시는 찍을 수 없는, 그날의 값진 추억이라는 거겠지.
억만금을 줘도 그 시절로 돌아가지 못하니까.
“잘됐다. 시하야. 그치?”
“아아.”
시하랑 나는 서로를 보며 싱긋 웃었다.
저 옆에 있는 재휘가 연주를 향해 손을 흔든다.
“다음에 또 만나자.”
“응. 재휘도 잘 있어.”
“으응.”
재휘가 우물쭈물하며 뭔가 말하고 싶어 했다.
여기서 조금 도와주도록 하자.
“재휘야. 번호 물어봐. 연락할 수 있게.”
“네?”
“스미스 씨 번호 알고 싶다고 하면 되잖아.”
“아!”
“그래야 연락도 하고 연주도 만나지.”
“네!”
재휘가 침을 꿀꺽 삼키며 연주를 보았다.
공룡은 무섭지만, 거절은 무섭지 않은가 보다.
“연주야. 혹시 너희 아빠 번호 알 수 있어? 내가 연락하고 싶은데.”
“응!”
연주가 해맑게 웃으며 스미스를 보았다.
「아빠. 재휘랑 연락하고 싶은데 번호 좀 알려주세요!」
스미스는 사진을 잃었을 때보다 더 안 좋은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 웃겼다.
그때 시하가 내 다리를 잡아당겼다.
“형아.”
“응?”
“시하도. 번호.”
“으응?”
“시하도. 형아 번호.”
“형아 번호 알고 싶어?”
“아아.”
“그럼 형아가 번호 가르쳐줄게. 대신 시하도 형아에게 가르쳐줘.”
“아? 시하 번호?”
“아니. 시하의 페페사우루스 머리에 반으로 선이 그어져 있었잖아? 그게 뭐야?”
시하가 살며시 손을 오므렸다.
나는 허리를 숙여 귀를 갖다 댔다.
“페페.”
“???”
그게 무슨 말이지?
***
-공룡 이벤트 심사실.
심사는 총 10명이 채점을 하게 되어 있다.
소장, 관리직원 3명, 운영직원 3명.
젊은 감각을 위한 아르바이트생 3명.
이번 이벤트의 수상자 3인의 작품은 박물관에 전시되는 영광도 누린다.
다음 수상자가 나올 때까지 말이다.
소장이 수많은 작품을 쭉 둘러보았다.
“올해도 어린이들이 많이 참여해 줘서 다행이야.”
그 말에 한 관리직원이 손을 들었다.
“소장님. 이 이벤트는 올해 처음 개최되었는데요?”
“커흠. 아무튼! 올해 이런 이벤트 덕분에 관람객들이 많아졌잖아. 대성공이라는 그런 뜻에서 한 말이야.”
“그 뜻 아닌 거 같은데요? 솔직히 말하세요. 작년에 그림 그리기 이벤트 생각했죠?”
“아니라니까.”
“그때는 많지 않았으니…….”
“그 일을 왜 들먹여? 여기가 톡 방인 줄 알아? 왜 맨날 딜을 넣냐고.”
“소장님의 반응이 은근 재밌어서 멈출 수가 없어요. 감사합니다.”
“내가 왜 감사를 받아야 하지?”
소장이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자 다른 직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곳 직원들의 익숙한 일상이었다.
두 사람이 막역한 사이라서 할 수 있는 대화이기도 했다.
그런 걸 모르는 아르바이트생은 어리둥절했다.
“흠흠. 내가 다 친해서 이러는 거니 너무 경직되어 있지 마세요.”
그 말에 아르바이트생의 표정이 사르르 풀렸다.
서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이래저래 분위기에 적응한 것이다.
물론 그 셋 중에 문도환은 옛적에 적응을 끝내고 작품들에 눈을 굴리고 있었다.
여기 있는 작품들은 먼저 1차로 통과됐다.
딱 받을 때 보이지 않은가.
잘 만든 것과 못 만든 것.
창의적인 것과 그렇지 못한 것.
냉정한 말이지만 빠르게 심사를 하기 위해 거친 단계였다.
문도환은 시하가 만든 것이 뭔지 열심히 찾고 있었다.
“음. 거기 아르바이트생. 이름이 뭡니까?”
“네? 아! 문도환입니다.”
“그래요. 도환 씨. 빨리 심사를 하고 싶나 보군요. 눈이 아주 빨라.”
“하하. 다들 잘 만들어서 눈이 가네요.”
“그렇지? 하하! 다들 공룡을 너무 좋아한단 말이죠. 놀기도 좋고.”
“그렇죠…….”
“혼내려는 건 아니고 이렇게 관심 가져줘서 고맙다고 말하려고 했어요.”
“아. 감사합니다.”
소장은 문도환을 좋게 보고 있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문도환은 그저 시하의 작품을 찾고 있었으니까.
“자. 그럼 다 같이 채점을 하도록 하죠.”
다들 소장을 따라서 하나씩 채점을 하기 시작했다.
공룡을 잘 만든 것도 있었고 독특한 것도 많았다.
나름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도 있었고.
그렇게 평가를 하다가 하나의 작품에 관심이 쏠렸다.
“페페사우루스?”
소장의 말에 문도환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름만 들어도 시하의 작품인 게 티가 났으니까.
볼 것도 없이 10점 만점에 10점을 적었다.
왜 이 정도는 해도 되지 않나.
무척 주관적인 평가였지만 문도환은 뻔뻔했다.
그때였다.
소장이 갑자기 커다랗게 웃었다.
“으하하하. 설명이 참 재밌네.”
“그렇습니까?”
다른 직원들도 기웃기웃 관심을 보였다.
이름과 설명란의 필체가 달랐다.
이름은 정갈하게 적힌 [페페사우루스]였다면 설명란에 적힌 필체는 동글동글했다.
[설명 : 박치기 공룡만 만든 것은 아니다. 이것은 빙하기 시대를 거쳐서 생물의 변천이라는 뜻을 가진 대작품이다. 이 공룡의 조형 하나로 가히 역사를 담았다고 할 수 있는 작품! 궁금하다면 머리를 열어 보시라. 이 설명의 뜻을 알게 되리라.]
뭔가 굉장히 장황한 설명.
직원이 소장을 보며 어떻게 하겠냐고 물었다.
“음. 머리를 열어보지.”
고개를 끄덕이며 박치기 공룡의 머리를 손으로 잡았다.
누가 봐도 열어 달라고 하는 중간의 실선.
그걸 열자…….
“어? 펭귄?”
펭귄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