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9화 (129/500)

129화

공룡은 종류마다 다 걸음걸이가 다르다.

어떤 공룡은 일자로 걷기도 하고, 모델처럼 살짝 다리를 꼰 것 같은 걸음도 있다.

이건 보폭, 근육, 관절의 움직임에 의해 바뀐다.

사람도 마찬가지.

일자 걸음부터 시작해서 팔자걸음, 안짱걸음이 있다.

직업적 특성을 가진 발레리나의 걸음걸이 역시 바른 자세로 성큼성큼 걷는 모습을 보인다.

이렇듯 사람마다 걸음걸이가 다르고 때로는 상황에 따라 바뀌기기도 한다.

바로 지금 이곳에서.

“야야. 저기 봐봐.”

한 학생이 턱짓으로 무언가를 포착했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지갑.

바글거리는 인파 속에서 사람들은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 그룹은 그걸 잘 알고 있었다.

“옹.”

다른 학생이 눈을 빛낸다.

서로 눈을 마주치며 주위를 둘러본다.

“가자.”

자연스럽게 걷는 걸음걸이가 어딘지 모르게 조심스럽다.

두 명이 웃고 떠들었고 한 명이 그 뒤를 살며시 따랐다.

셋이 테이블을 스쳐 지나간다.

거기에 있는 지갑은 사라졌고 아무도 보지 못했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남 일에 관심이 없었고 떠들기 바빴으니까.

떠들지 않는 사람들은 아이들이 무엇을 하는지 보느라 정신없었다.

“얼마 있는지 볼까?”

“오! 나중에 게임 현질해야지. 안 그래도 새로 사고 싶은 스킨 있었는데.”

“이야. 꽤 들고 다니시네.”

빳빳한 지폐가 들어 있었다.

5만 원권 두 장에 1만 원권 세 장.

총 13만 원이 있는 걸 확인하고 셋이서 시시덕거렸다.

깔끔히 지폐만 빼고 지갑은 던졌다.

지갑이 날아가 공룡알 사이에 쏙 들어갔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는 곳이었다.

“공룡 숙제하러 왔다가 개이득 봤네.”

“야. N빵 해.”

“오키. 오키. 알겠음. 야. 근데 나중에 나누자. 어차피 다들 현질할 거 아님?”

“그래. 그러자. 우리 저기 이벤트나 참가해 볼래?”

“야 들키는 거 아니야?”

“안 들켜. 안 들켜. 이런 일 한두 번 해? 저 때 차에 있는 거 가져가도 안 잡혔어.”

등잔 밑이 어둡다는 걸 잘 활용하는 학생들이었다.

어찌 보면 대범한 행동.

클레이 점토를 들고 한 자리를 차지했다.

“내가 손재주가 좀 좋지.”

“미친. 킥킥. 진짜 미쳤네?”

“내가 틀린 말 했어?”

“아니. 그건 아니지. 여기서 누가 수상하는지 내기할래?”

“오! 좋지!”

그때 한 학생이 의문을 내뱉었다.

“그런데 아무도 못 받으면 어떻게 할래?”

“그럼 다른 사람에게 누가 잘 만들었는지 물어보지, 뭐. 이기는 사람이 만 원 더 갖기.”

“오! 그래.”

그렇게 그들만의 내기가 시작됐다.

발자국이 깊었고, 그 진한 발자국은 흔적을 남긴다는 걸 모른 채.

***

“아아. 형아!”

얼마나 잘 만드는지 지켜보려고 시하 옆으로 다가갔다.

예상대로 손재주가 뛰어났다.

귀여운 공룡이 탄생하고 있는데 머리는 벗겨져 있다.

고놈의 박치기 공룡이 퍽이나 마음에 든 듯했다.

“이 공룡이 그렇게 좋아?”

“아아.”

“하여간.”

커다란 얼굴을 먼저 만들어 놓고 몸을 만들고 있었다.

얼굴을 올리기에는 좀 작지 않나 싶다.

“아아!”

공룡 얼굴을 올리자 그대로 목이 꺾이며 뒤로 나자빠졌다.

시하가 쿵! 하며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공렁. 머리…….”

“괜찮아. 괜찮아. 머리는 무사해.”

다행히 찌그러지지 않았다.

단단한 머리를 과시하고 있었다.

“시하야. 몸통을 다시 크게 만들어 보자. 다른 색깔 점토로 크게 만들고 그 위를 회색으로 덮는 거야. 어때?”

“아아.”

시하가 다시 열심히 공룡의 몸을 만들기 시작했다.

조그마한 손으로 조물조물 만드는 게 너무 귀여웠다.

열심히 하는 걸 방해하면 안 되지만 괜히 손을 만지고 싶었다.

“아?”

“하하.”

시하는 점토를 만지고, 나는 시하의 손 위에 손을 올리고.

뒤에서 보던 어떤 애가 “영화 찍고 있네.” 하는 소리가 들린다.

대체 저 아이는 어떤 영화를 봤던 걸까?

“형아!”

“응. 잘되고 있네.”

“시혀기 오빠!”

“응?”

옆에 있던 하나가 자신이 만든 공룡을 보여주었다.

평가하자면 개성이 강했다.

네 발로 서는 공룡인데 꼬리가 꽃으로 되어 있었다.

“어때? 예뿌지?”

“어…. 엄청 예쁜데? 꼬리에 노란색 꽃이 폈네?”

“응! 이건 해바라기야. 나중에 공룡이 배고플 때 머거. 초식공룡이야. 초식공룡.”

초식공룡이 자기 꼬리에 나는 해바라기를 먹는 공룡을 말했던가?

역시 아이의 상상력은 내가 재단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시하는 평범하게 공룡을 만들고 있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박치기하는 부분이 선으로 갈라져 있다는 거.

‘저거 일부러 저렇게 해놨나?’

갑자기 호기심이 들어서 물어보려고 했지만, 승준이 나섰다.

“시혀기 형아! 나도 엄청나!”

“응? 그래. 어디 보자. 어떤데?”

내가 고개를 돌려보자 이것 또한 개성 있는 공룡이었다.

두 발로 서는 공룡.

꼬리도 있고 다리도 있고 세 개의 손가락도 있다.

그래. 여기까지는 평범했다.

그런데 왜 얼굴은 축구공이 붙여져 있을까?

“엄청나네! 축구 잘할 것 같은 얼굴인걸?”

그렇겠지.

얼굴이 축구공이니 축구 잘할 것 같은 얼굴일 수밖에.

내 자연스러운 평가에 칭찬해 주고 싶은 심정이다.

“아하하하! 재밌다!”

승준이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전에 만들었던 축구공을 기억하고 있는지 얼굴이 참 디테일하다.

역시 아이는 습득과 응용력이 장난 아니다.

“그럼 내가 이 종이에 제출할 공룡을 써줄게. 먼저 승준이부터. 이 공룡 이름이 뭐야?”

“음~ 사커사우루스야.”

“아하. 사커사우루스. 설명은 축구를 잘한다고 쓰면 될까?”

“응!”

나는 설명란에 [축구를 잘하게 생긴 대로 축구를 잘한다]라고 적었다.

“하나는?”

“예뿌니 초식 공룡!”

“그럼 해바라기씨 먹는 공룡이라고 쓰면 되지?”

“응!”

설명란에 썼다.

거기에 조금 추가적인 말.

[자연도 지키고 스스로를 먹고 자라는 착한 공룡. 어쩌면 환경단체의 수장일지도?]

“이렇게 적었어. 어때?”

“조아! 시혀기 오빠가 구렇다면 구런 거야.”

“으응? 그건 아닌데…….”

나는 시하를 보았다.

이름이 예상되기는 하지만 한번 물어보자.

“시하야. 공룡 이름 있어? 박치기 공룡?”

“아냐!”

“아니야? 그럼 뭐야?”

“페페사우스!”

“엥? 페페사우루스?”

“아아!”

이러다가 모든 이름이 페페가 되겠다.

그런데 페페는 펭귄이잖아?

어디를 봐도 펭귄 이름으로 보인다.

뭐 시하가 원하는 대로 해 주자.

나는 [페페사우루스]라고 적고 설명란에 뭘 적을지 물어보려고 했다.

그때였다.

「어?! 내 지갑 어디 갔어?!」

저편에서 영어로 말하며 당황하는 외국인 남성이 보였다.

흰 피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빨개진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며 고래고래 고함을 쳤다.

「누구야! 대체 누가 가져갔어!」

관심이 쏠리지는 사람들이 그를 쳐다보았다.

그가 고개를 휙 돌리며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다.

「혹시 여기 제 지갑 보셨어요?」

갑작스러운 영어에 주변 사람 중 하나가 당황했다.

“I can’t speak English well.”

그제야 그가 영어로 말했다는 걸 깨닫고 다시 한국어로 말했다.

“지갑이 사라졌어요. 봤어요?”

“아니요. 못 봤어요. 저기 너는 봤어?”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대답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그도 그럴 게 주변에 무관심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아무리 한국인이 폰이나 노트북을 놓고 화장실을 간다고 해도 지갑은 놓고 가지 않는 법이다.

외국인의 부주의함이 안타까웠다.

“아빠!”

한 명의 여자아이가 그의 곁에 다가갔다.

아무래도 딸인 모양이었다.

“어어…….”

“왜구래?”

「아무것도 아니야. 아빠가 지갑을 잃어버렸어.」

「저런. 조심 좀 하지!」

「음. 그러게.」

아이가 유창하게 영어도 잘했다.

아무래도 다문화 가정인가 보다.

한국어도 잘하고, 영어도 잘하고.

그때 그쪽으로 다가가는 익숙한 아이가 보였다.

재휘였다.

“저기…….”

여자아이가 반갑다고 재휘에게 손을 흔들었다.

「아빠. 아까 사귄 친구야. 이름은 재휘.」

「그래?」

「응.」

“안녕. 무슨 일이니?”

재휘가 우물쭈물하다가 주위의 눈치를 봤다.

“제가 여기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 봤는데요. 아마 그 사람들이 가지고 간 건 아닐까 싶어요. 얼굴은 잘 기억 안 나지만.”

「아빠! 재휘가 봤대!」

그가 놀란 얼굴로 재휘를 보았다.

“정말이니?”

“아, 네…….”

나는 거기까지 듣고 시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거 마무리하고 있어. 형아는 저기 재휘에게 가볼게. 다희쌤. 애들 좀 부탁할게요.”

재휘에게 다가갔다.

아무도 안 가는 것보다 그나마 어른이 가는 게 좋을 테니까.

사실 딱히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재휘와 관련되었으니 어쩔 수 없다.

「안녕하세요.」

그가 고개를 들고 나를 보았다.

「누구시죠?」

「전 시하의 형입니다. 시하는 재휘의 친구죠. 보호자라고 보시면 되겠네요.」

「그러시군요.」

말이 통하는 어른을 봐서인지 안심한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은 한국어보다는 모국어가 편할 테니까.

「지갑을 잃어버리신 거 같은데 여기 직원에게 말해 보죠. 그게 빠를 것 같네요. 아무래도 돈은 못 찾을지도 모르겠네요.」

「아무래도 그렇죠?」

「네. 일단 재휘가 뭘 봤다고는 했는데 들어나 보죠.」

나는 재휘를 보았다.

재휘가 내 시선에 움찔거리더니 눈을 피했다.

“재휘야.”

“네.”

“지갑 훔쳐가는 거 봤어?”

“음. 그때는 훔치는 건지 몰랐어요. 그냥 지갑을 자연스럽게 가져가는 것만 보여서…….”

“그래? 얼굴은 기억 못 하고?”

“네…. 그런데 대충 시혀기 형보다 작은 사람이고 옷은 뭐 입었는지 기억나요.”

“오! 그래?”

재휘의 옷에 관한 기억력은 믿을 만했다.

일단 특징을 들어두자.

혹시 진술이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검은 티셔츠인데…. 영어가 적혀 있었어요.”

“그렇구나. 그거 말고는 또 기억나는 거 없어?”

“반바지였던 거 같아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반바지 안 입은 사람을 더 찾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금 것만 해도 충분히 도움이 되었다.

나는 지금 재휘에게 들은 이야기를 그에게 전해 주었다.

「그럼 지갑이라도 찾아볼까요?」

「네?」

「보통 이런 경우는 현금만 빼고 지갑을 버리거든요. 대충 쓰레기통을 뒤지면 나올 거 같은데. 예를 들면 저기 기둥에 세워져 있는 큰 통이라던가.」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그를 끌고 통으로 향했다.

「이름이 뭐예요?」

「아. 제 이름은 샤이먼 스미스입니다. 딸은 오연주고요.」

「아하! 스미스 씨. 아무리 그래도 지갑을 놓고 가면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어요.」

「하하…. 뭐 어쩔 수 없죠. 그래도 지갑은 꼭 찾고 싶습니다. 거기에 소중한 사진도 들어 있어서…….」

「아…….」

「부모님 사진이거든요.」

「그렇군요. 걱겅하지 마세요. 분명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먼저 뛰어간 재휘와 연주가 쓰레기통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통이 큰지 그대로 넘어뜨렸다.

아이고.

아무래도 치워야 하는 건 우리 몫인 거 같다.

“아. 없네…….”

연주가 아쉽다는 듯이 다시 쓰레기를 넣었다.

재휘 역시 같이했고.

딱 보니 재휘가 저 연주라는 애한테 마음이 있는 듯했다.

저렇게 성심성의껏 도와주는 것을 보니.

“얘들아. 지지야. 지지. 내가 할게.”

그렇게 쓰레기통을 치우고 있는데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쓰읍. 어쩌면 근처에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대략 검은 티셔츠에 영어가 들어 있는 그 흔한 옷을 입은 사람.

눈에 보이는 사람만 해도 7명은 되었다.

“재휘야. 혹시 가져간 사람이 남자야. 여자야? 알겠어?”

“몰라요. 근데 남자 같아요.”

“왜?”

“다리에 털 많던데…….”

“아…….”

그건 기억하고 있구나…….

그렇다면 남은 사람은 3명.

이 사람들이 확실한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확인 정도는 양해를 구하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스미스 씨. 현금은 얼마나 있었는데요?」

「13만 원이요.」

「오만 원권 2장에 만 원권 3장이요?」

「맞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그럼 혹시 저 세 사람에게 물어보지 않을래요? 이런 일이 있었는데 혹시 확인 좀 한번 해도 되냐고.」

「음. 그래도 되겠습니까?」

「사정을 설명하면 해줄 거예요.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해요.」

나는 현장에 있는 세 사람에게 사정을 설명한 뒤에 한자리로 모았다.

“이분이 여기서 지갑을 잃으셨대요. 13만 원. 사실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지갑에 있는 사진이 중요하대요. 혹시 괜찮으시면 혹시 옷 수색 좀 해봐도 될까요?”

한 아저씨가 손을 들었다.

“아니. 뭘 근거로 우리를 부른 겁니까?”

“여기 있는 아이가 영어가 적힌 검은 티셔츠를 입은 남자가 들고 가는 걸 봤대요.”

“에이. 애가 말한 거 어떻게 믿습니까. 그건 확실하지 않잖아요.”

“진술의 신빙성이 떨어진다고요?”

“뭐 그렇죠.”

“그거라면 제가 증명할 수 있습니다.”

“네? 아니. 뭐 하시는 사람이신데…….”

나는 피식 웃었다.

“저요? 통역사요.”

“네?”

“오늘은 조금 특별한 통역사가 되겠네요.”

재휘가 동경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옆에 있던 연주라는 아이도 말이다.

이거야. 원.

아이들에게 히어로가 되어 버렸으니 저 시선도 이해가 간다.

그래서 오늘 조금은 특별한 통역사가 되어 보자.

나는 재휘를 보았다.

“재휘야.”

“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