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8화 (128/500)

128화

정말 누군지 모르겠다.

왜냐면 얼굴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앞에 있는 사람은 귀여운 공룡 인형탈을 쓰고 내게 말을 건 거였다.

“음. 누구세요?”

“…….”

침묵이 이어진다.

그걸 견디지 못하는지 승준이 공룡탈의 발을 밟았다.

“아하하! 공룡이다! 약점은 발이야!”

승준아. 축구에서 그렇게 일부러 그러면 반칙 아니야?

“시혀기 오빠. 공룡 기여어~”

“그러네. 시하야. 공룡 귀엽지?”

“아아. 기여어~”

나는 시하가 더 귀엽다.

그런데 저 공룡은 아직도 말을 안 한다.

내 이름을 정확히 안 것 같았는데…….

혹시 영상에서 나를 본 건 아닐까?

내가 뭐 유명한 연예인은 아니었지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혹시 저를 영상에서 봤어요?”

끄덕끄덕.

말 대신 고개만 끄덕인다.

“그럼 같이 사진 한번 찍어도 돼요? 애들이 좋아하는 것 같아서.”

“시혀기 형아! 나는 좋아!”

“하나는 꼬리 잡고 찍을래!”

“시하도! 머리. 타!”

시하야. 저 공룡 머리에 타면 저 아저씨 목뼈가 부러질 거야.

그렇게 생각하고 말리려는데 시하를 번쩍 들더니 머리 옆에 붙였다.

비록 머리 위에 있지 않았지만, 시하가 좋다고 얼굴을 두드렸다.

두두두두. 훽!

인형탈 얼굴이 돌아갔다.

“아. 죄송합니다.”

나는 바로 인형탈 머리를 바로 해 주었다.

“금방 찍을게요.”

승준이 공룡 발 위에 올랐고, 하나가 꼬리를 잡았다.

그렇게 사진을 두 번 찍은 후에 애들이 나에게로 다가왔다.

“잘 나왔어?”

“하나도 볼래!”

“아아. 시하도!”

그렇게 사진을 지켜보다가.

“이제 그만하고 출발하자. 친구들도 먼저 저 앞에 있네.”

우리는 출발하기로 했다.

승준이 공룡탈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공룡 잘 가!”

“공룡 잘 가!”

시하도 따라서 손을 흔들었다.

“문도 바이바이.”

“응? 시하야. 문도라니?”

“아아. 문도!”

“으응?”

나는 다시 공룡탈을 보았다.

시하의 말을 들었는지 손을 흔들다가 그대로 굳었다.

“설마 도환이 형이에요?”

굵은 목소리로 부정을 했다.

“아닙니다.”

“어라? 맞는 거 같은데? 형. 여기서 뭐 해요?”

“사람 잘못 봤습니다.”

“얼굴 벗으면 안 돼요?”

“저는 공룡이라서 얼굴을 못 벗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부리나케 도망간다.

뭐야. 저 형. 자기가 먼저 아는 척했는데.

그런데 여기서 뭐 하는 건지 모르겠다.

“시하야. 어떻게 알았어? 문도환이라는 거.”

“문도. 문도.”

“으응?”

“문도 냄시.”

“도환이 형 냄새도 알아?”

“아아.”

문도환에게 어떤 냄새가 나는 걸까?

그러고 보니 인형 탈인데 어떻게 냄새를 맡았지?

혹시 시하는 전생에 멍멍이었나?

“어떤 냄새가 나는데?”

“아?”

시하가 열심히 고민하다가 손뼉을 쳤다.

짝.

“반짝. 냄시!”

“그렇구나.”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다.

일단 출발하자. 애들이랑 너무 많이 떨어진 것 같다.

우리는 그렇게 한 입구를 선택해 출발했다.

***

구경을 하면서 한 가지 알게 된 사실.

공룡들이 굉장히 정교하게 꾸며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와이어로 매단 공룡 뼈도 있었고, 실제처럼 꾸며진 조형물도 많았다.

다양한 종류가 아이들의 눈을 사로잡았는데 반짝이는 눈으로 관람이 시작됐다.

먼저 승준이 개구쟁이같이 공룡의 입속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시혀기 형아! 찍어줘!”

뭉크의 절규처럼 손을 뺨에 붙인 체 절규하는 표정을 지었다.

자기가 입속으로 들이 밀어놓고서 공포스러운 표정이라니.

같이 있으면 심심하지 않았다.

“히익!”

어느새 만난 재휘가 공룡 머리만 있는 게 무서웠는지 선생님 뒤에 숨는다.

“배경이 안 좋아서 옷빨이 안 살아.”

누구보다 잘 어울릴 것 같은 배경인데?

탐험가처럼 패션을 하고 있어서 누구보다 여기에 어울리는 재휘.

오들오들 떠는 모습을 보니 겁이 많은 아이라는 게 느껴졌다.

공룡을 무서워하나 보네.

“시혀기 오빠!”

하나는 공룡이 입 벌리고 있든 말든 손에 꽃받침을 하며 포즈를 취했다.

배경이 어떻든 언제나 예쁜 모습을 남기고 싶나 보다.

담력 하나는 여주인공감이지 않을까.

“하나 예쁘게 나와써?”

“응. 완전 예쁘게 나왔어.”

“히힛.”

사진만 보면 공룡이 온 줄 모를 정도로 천진난만하다.

“형아!”

시하가 공룡의 머리 위를 가리켰다.

“시하야. 저긴 탈 수 없어. 그리고 이건 박치기 공룡도 아니잖아.”

“아? 아아.”

“다른 포즈를 해 볼래?”

“아아.”

시하가 브이를 했다.

공룡 이빨 사이에 자신의 팔을 쏙 끼웠다.

포기할 수 없는 브이의 포즈.

대단했다.

나는 빠르게 사진을 찍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공룡 화석이 있는 곳은 빠르게 지나갔다.

화석 같은 것은 아이들의 흥미가 떨어지는 물건이었다.

그렇게 세 곳을 돌자 밖으로 나가는 길이 나왔다.

여기서부터는 밖에도 공룡 모형이 전시되어있었다.

이벤트 장소까지 가려면 이 길을 지나야 했다.

“시혀기 형아 빨리!”

“시혀기 오빠 빨리!”

다들 잘도 앞으로 치고 나간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하다.

조금 덥긴 했지만, 이 정도 날씨면 나쁘지 않았다.

“형아. 박치기?”

“응. 박치기 공룡도 봤지?”

“아아. 박치기!”

시하가 머리를 앞으로 숙였다.

그리고 도도도 달려갔다.

나는 혹시나 넘어질까 봐 시하의 뒤를 따랐다.

오늘 시하는 참 활발하다.

비록 공룡의 보폭만큼 멀리 가지 못하고 짧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였지만.

나는 그래서 더 좋은 것 같았다.

공룡처럼 큰 보폭으로 달려서 내가 따라가지 못하면 시하가 넘어져도 잡아줄 수 없을 테니까.

언젠가 시하가 내가 잡아줄 수 없을 만큼 멀리 가게 된다면…….

‘섭섭하겠지. 대견하기도 하고.’

시하가 기우뚱하며 앞으로 쓰러지려고 했다.

그럴 줄 알고 나는 허리를 덥석 잡았다.

그렇게 들어 올리자 시하가 익룡처럼 날게 됐다.

“자! 시하는 박치기 공룡이 아니라 하늘을 나는 공룡이 되었어. 아까 봤지?”

“아아!”

시하가 두 팔을 뻗었다.

나는 그대로 시하를 옆구리에 끼고 앞으로 달렸다.

마음 같아서는 평생 이렇게 날게 해 주고 싶다.

걷고 있는 아이들을 지나쳐 간다.

달리고 있는 승준과 하나를 지나쳐 간다.

그래. 이렇게. 이렇게 나는 것처럼.

시하를 날아 올리면 좋겠다.

하지만 작은 새는 언젠가 부모의 품을 떠나 스스로 날게 될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추락해서 먹이를 구하지 못한 채 죽게 되겠지.

언젠가 시하도 점점 스스로 자립심을 갖게 될 것이다.

“시혀기 형아! 나도! 나도!”

“시혀기 오빠! 하나도!”

섭섭한 거 취소.

자립심을 갖는 건 중요하다.

“승준아. 내 목에 업혀. 꽉 잡아야 한다?”

“응!”

승준이 운동을 잘해서 그런지 힘이 세다.

무게도 시하보다 묵직했다.

하나와 시하를 옆구리에 끼고 승준을 등에 태웠다.

“시혁 공룡. 출동합니다.”

“아아!”

“가자!”

“시혀기 오빠 달려!”

나는 적당한 속도로 쿵쿵 달렸다.

그걸 지켜본 아이들이 부탁한다.

“아빠 나도! 아빠 공룡!”

“아빠! 나도! 저렇게!”

“나도 나도!”

아버지들의 원망 섞인 시선이 쏟아지는 게 느껴진다.

저기요. 아버님들. 그래도 한 명이지 않습니까.

저는 셋입니다. 셋.

그렇게 생각했지만 내 마음은 전해지지 않았다.

따뜻한 햇볕이 뜨겁게 느껴지며 몸을 달궜다.

안 흘려도 될 땀이 흐르고 있다.

그래도 땀과 바꾼 아이들의 재미라면 꽤 보람찬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며 이벤트 회장으로 들어갔다.

***

이벤트는 실시간으로 진행 중이다.

클레이 점토를 들고 가서 아이들이 공룡을 만든다.

어른들은 이벤트 회장에 붙어 있는 카페에 앉아서 아이들의 작품을 감상한다.

장삿속이 다분해 보이지만 어쩔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전략이 훌륭하다고 할 수 있겠네.’

이벤트 공간과 가까운 곳에 카페 탁자와 의자를 놓은 건 확실히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이건 노렸다고밖에 할 수 없다.

백화점을 만들 때 손님이 빙글빙글 돌도록 건물을 설계하는 것처럼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식으로 공간을 나눈 것은 카페에서 쉬면서 음료를 사 먹을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어른들이 아이들의 작품을 지켜보면서 심심한 입을 달랠 수 있었다.

아이들도 더우니 음료를 사 먹겠지.

‘머리가 좋아.’

공룡 보러 와놓고, 장사를 어떻게 하는지 가만히 그 전략을 뜯어보고 있는 나였다.

공룡보다는 이런 게 재밌는 것 같다.

“형아!”

“시혀기 형아. 빨리 이벤트 가자.”

“하나도 빨리 가고 시퍼!”

그래. 가자. 가.

하여간 잠시도 딴생각을 하게 두지 않은 아이들이다.

클레이 점토를 하고 있을 때면 나도 쉴 수 있겠지.

박물관 측의 상술을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다.

“자! 여기 클레이 점토라고 색깔이 엄청 있지?”

“아아.”

“마음에 드는 색을 골라서 공룡을 만들어 제출하는 거야. 다 만들고 나면 여기 종이에 무슨 공룡인지 설명을 쓰면 끝!”

“와 재밌겠다!”

“그렇지? 다들 신나게 재미난 공룡을 만들어 보자.”

“응!”

드디어 선생님과 나에게 꿀 같은 휴식이 찾아왔다.

아이들이 클레이 점토를 받아와서 열심히 공룡을 만들었다.

선생님들과 나는 테이블 하나에 자리를 잡은 체 아메리카노를 쪽쪽 빨았다.

원장이 말했다.

“한시름 놓겠네요.”

“원장님 벌써 지치셨어요?”

“애들이 어찌나 기운 넘치는지…….”

원장이 많이 시달렸는지 눈이 피곤해 보인다.

유다희 선생님은 기운차게 망고 스무디를 마시고 있다.

심지어 치즈 케이크도 시켜서 열심히 먹었다.

마치 체력을 보충할 수 있는 게 지금뿐이라는 듯.

“맛있겠네요.”

“시혁 씨…….”

“네?”

유다희 선생님이 충격받은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뭐지? 내가 뭘 잘못했나?

“설마 한 입 달라는 건 아니죠? 으으. 그거 정말 싫어요.”

“네? 아하하. 설마요. 저 그렇게 한 입 달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역시 그렇…. 네? 뭐라고요?”

“농담입니다. 설마 제가 뺏어 먹겠어요? 많이 드세요.”

농담 한번 했다고 나라를 잃은 표정을 짓길래 나는 정정해 주었다.

그래도 의심이 가는지 유다희는 치즈 케이크를 살며시 자기 쪽으로 당겼다.

내 눈치를 보며 빨리 포크를 휘둘렀다.

그 모습을 원장이 한심하게 쳐다봤다.

원장이 말했다.

“은근 동심이 남아 있어. 아주 애야. 애.”

“왜 그러세요. 애들 눈높이를 맞추다 보면 이렇게 된다고요. 원장님도 잘 아시면서.”

“혹시 네가 엉뚱하다고 생각은 안 해 봤고?”

“엉뚱이라뇨. 창의력 넘친다고 해 주세요. 제가 나중에 엄청난 동화 작가가 되면 어쩌시려고.”

“어…. 글쎄? 모르겠는데? 난 왜 아직도 먼 나라 이야기 같지?”

“제 동화가 애들에게 인기 있다는 건 아시면서.”

유다희가 눈을 찡긋거리자 원장이 못 볼 꼴을 봤다는 표정으로 눈을 돌렸다.

나 역시도 살며시 눈을 돌렸다.

유다희 선생님의 말 때문이 아니라 시하가 잘하고 있는지 봐야 했으니까.

“어어? 다들 왜 눈을 피해요? 제 동화가 뭐 어떻다고요?”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솔직히 잘 짓는다고 생각합니다.”

“그쵸?”

“네. 뭔가 뒷맛이 씁쓸한 것만 빼고요.”

“뭐예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러게요. 무슨 말일까… 어?”

“왜요?”

“다희쌤. 혹시 시하 좀 봐주실 수 있어요? 제가 잠시 가볼 때가 있어서.”

“어디 가시는데요?”

“잠시 아는 사람한테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공룡탈이 있는 곳으로 갔다.

잡았다. 요놈.

아니. 잡았다. 문도!

“도환이 형.”

나는 문도환이 도망치지 못하게끔 팔을 붙잡았다.

“여기서 뭐 하십니까?”

“크흠. 사, 사람 잘못 보셨습…….”

“아 형. 왜 그래요. 다 들켰어요. 이럴 거면 이름은 왜 불렀대?”

“크흠. 쩝. 들켰어?”

“완전요.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에요? 이 탈은 뭐고? 아 설마 혹시 시하 보러 왔어요? 형 안 그런 척하면서 은근 우리 따라오더라.”

“아니거든!”

공룡 머리 때문에 얼굴이 보이지 않지만, 도환이 형의 발끈하는 게 상상이 된다.

“그럼 뭔데요?”

“사실 이거 이벤트 찾아본 게 아니라 도움 줄 수 있냐고 부탁을 받아서 알게 된 거야.”

“아. 설마 이 공룡탈?”

“어. 원래 내 아는 동생이 하는 건데 이놈이 일 있다고 해서 사람을 구하잖아.”

“아하. 그런데 겨우 그거로 이걸 해 줘요?”

그때 스태프가 스쳐 지나가며 말했다.

“도환 씨. 다 끝나면 이벤트 심사해 주는 거 잊지 마세요.”

나는 스태프를 슬쩍 보다가 문도환을 바라보았다.

“아하…. 이거, 이거. 맞네. 그랬네.”

“뭐가? 아니거든! 네가 생각하는 거 아니거든! 나중에 비싼 거 얻어먹기로 했거든!”

“알았어요. 알았어. 그런 거로 할게요.”

“진짜 아니라고! 나 10만 원짜리 뷔페 먹을 거야.”

그래. 아닌 거로 해 주자.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