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먼저 공룡 박물관에 가기 전에 해야 할 게 있다.
이런 곳은 개인적으로 어느 정도 정보를 파악하고 가야 재밌다.
모르고 간다면 그냥 큰 괴물을 보고 온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너무 알게 되면 또 재미가 반감된다.
무슨 말이냐.
딱 좋아하는 공룡 하나를 보고 가야 한다는 거지.
예를 들면 잘 알려진 티라노사우루스라던가.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시하에게 공룡을 알려주기로 했다.
“시하야. 오늘은 공룡을 알려줄게.”
“공용?”
“공용이 아니라 공룡.”
“공렁.”
“흠흠. 아무튼, 자 봐!”
나는 시하가 흥미를 느낄 수 있게 그림을 보여 주었다.
사실 공부라고 생각하면 흥미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고민을 많이 했다.
어떻게 하면 재밌게 알 수 있을까.
그래서 준비한 게 10개의 공룡 카드였다.
어떤 걸 마음에 들어 할지 모르겠지만,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나도 공룡에 대해서 잘 모르기도 하고.’
10개의 카드를 톡톡 쳤다.
“자. 시하야. 제일 마음에 드는 거 하나 골라봐.”
“아아.”
시하가 신기한지 10개의 카드를 눈으로 훑었다.
마치 쇼핑을 하듯이 이리도 보고 저리도 보았다.
그리고 하나의 카드를 들었다.
“형아. 이거.”
“이게 제일 마음에 들어?”
“아냐.”
“아니야?”
“아아. 이거. 시하 아라.”
“오! 알아?”
“아아. 티라미슈루수.”
“티라노사우루스겠지.”
순식간에 엄청 무서운 육식 공룡이 달콤한 디저트가 되었다.
엉뚱한 대답에 웃음이 나온다.
“아아! 티라미슈루수.”
“그래. 티라미수다. 티라미수. 이 애는 공룡 중에서 가장 강한 애야.”
“아?”
“엄청 세거든.”
티라노사우루스가 실제로 세던가?
더 센 놈이 있었다고 들은 것 같기도 한데…….
아닌가?
아무튼, 유명한 놈이 가장 센 놈이다.
“그럼 티라노사우루스가 가장 마음에 드는 애는 아니지?”
“아아.”
시하가 열심히 카드를 보더니 하나를 들었다.
파키케팔로사우루스.
박치기를 하기 위해 머리가 벗겨진 공룡이다.
“이게 제일 마음에 들어?”
“아아.”
“이건 파키케팔로사우루스야.”
“파케. 팔로, 싸어?”
팔로 싸우는 게 아니라 박치기로 싸운단다.
“박치기 공룡이야.”
“아아! 박치기!”
시하가 그림 카드에 머리를 쿵쿵 박았다.
역시 직관적인 이름이 좋겠다.
그냥 이름은 대충 알려주고 형상만 기억시켜야겠다.
어차피 계속 흥미를 느낀다면 알아서 외우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 애가 왜 좋아?”
박치기 공룡을 왜 좋아하는지 정말 궁금했다.
시하가 좋아하는 이유를 몸으로 표현했다.
손으로 둥근 원을 그렸다.
그리고 제자리에서 엎드렸다.
“시하. 박치기. 타.”
“응? 아! 설마 여기 머리 위에 타기 좋아서 고른 거야?”
“아아.”
전혀 생각지도 못한 관점인데?
저 머리 위에 엎드려 탈 생각을 하다니.
“시하 차.”
시하가 손가락 두 개를 펼쳤다.
아무래도 박치기 공룡은 시하의 두 번째 차가 되었나 보다.
점점 타는 스케일이 커지는데?
일단 칭찬부터 하고 보자.
“역시 시하는 천재야!”
“아아.”
***
-어린이집.
아이들이 매일 어린이집에 가고 논다고 해서 화제가 늘 같을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생각보다 다양하고 풍부하게 이야기가 된다.
뭐 그래 봤자 집에 있었던 일과 본 것들에 관한 이야기지만.
오늘은 특히 공룡 이야기로 뜨거워졌다.
승준이 말했다.
“나 공룡 다 알아. 공룡이 축구도 잘해!”
승준이 공룡이 축구를 차는 만화를 봤다.
그때부터 공룡에 조금씩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더니 10개도 넘는 공룡의 이름을 외우기 시작했다.
“하나도 하나도. 티라노사우루스 아러! 집에 장난감도 이써!”
하나도 승준과 함께 놀다 보니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물론 가지고 노는 방식은 달랐다.
“티라노는 힘센 아빠야. 벽에 망치 쾅쾅해. 액자도 걸어.”
한마디로 소꿉놀이로 이용하는 티라노 장난감이었다.
시하는 그 이야기를 듣더니 품에서 카드를 꺼냈다.
“아아. 박치기!”
박치기 공룡이 마음에 들어서 자랑을 했다.
“이거 시하 차.”
이미 상상의 나래에서는 박치기 공룡 머리 위를 타고 놀고 있었다.
쌍둥이도 시하의 상상에 동참했다.
“와! 진짜 여기에 타면 재밌겠다.”
“하나는 박치기 공룡에게 머리 빗겨줄 거야.”
“아?”
시하는 다시 자신의 카드의 공룡을 보았다.
털도 없는 공룡의 머리를 어떻게 빗을 수 있는지 몰랐다.
그냥 그러려니 고개를 끄덕일 뿐.
“아아. 머리!”
“시하야. 근데 박치기 공룡은 헤딩슛도 잘 해. 머리가 단단해서 빨리 골대에 넣거든!”
“헤딩?”
“응. 헤딩.”
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자. 박치기 공룡은 요리도 잘해. 단단한 머리로 마늘도 잘 찌거.”
“아?”
시하는 그런 사실이 있었냐는 듯이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물론 두 사람의 상상이었다.
시하의 상상이 더 풍부해졌다.
박치기 공룡이 다시 재적립되었다.
요리 잘하고 헤딩 잘하는 공룡으로.
선생님이 그 모습을 보며 소리 죽여 웃었다.
“쯧쯧.”
그때 종수가 등장했다.
검지를 좌우로 흔들면서.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는 거야. 박치기 공룡이 그럴 리가 없잖아.”
승준이 눈을 부릅떴다.
“뭐가? 만화에서 공 찼거든!”
“그건 만화지 실제가 아니잖아. 그거 알아? 박치기 공룡은 뇌가 호두만 하대.”
“그건 나도 알고 있거든!”
“이렇게 작으면 멍청한 거 아니야? 그럼 축구는 어떻게 해?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마늘도 잘 못 찍을걸?”
“이익.”
승준이 입을 삐죽였다.
나름 논리적인 말이었지만 인정하기 싫었다.
“만화는 만화지!”
“응. 만화지. 그래서 나는 공룡 영화만 봐. 너 봤어? 엄청 큰 공룡이 나와서 소름 돋게 한다고.”
“나도 봤거든!”
“시하 너도 봤어?”
시하는 ‘호두가 뭐지?’라고 생각하다가 갑자기 들어온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호두?”
“아니. 공룡 영화 말이야.”
“영하?”
“어. 영화.”
“모야?”
“으응?”
시하는 영화가 뭔지 몰랐기에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몰랐다.
종수가 팔을 크게 벌려 스크린을 설명했다.
“이만한 큰 화면에 보는 게 영화야.”
그건 영화관에 대한 설명이었지만 대충 어린들에게는 뜻이 통했다.
“아냐.”
“그래? 안 봤어? 그럼 내가 데려다줄 수 있는데.”
그때 하나와 승준이 시하의 두 팔을 붙잡았다.
“시하는 우리랑 갈 거거든.”
“마자! 하나랑 갈 거야!”
“아?”
종수가 코웃음을 쳤다.
“그건 시하 마음이지. 너희가 왜 정해. 그치, 재휘야.”
“으응? 나?”
“응. 너도 가고 싶지?”
“…어. 공룡 대단하지…….”
재휘가 아무렇지 않게 얘기했으나 사실 속으로 아주 무서워했다.
높은 곳과 같이 공룡이나 귀신을 싫어했다.
하지만 괜히 얕보이기 싫어서 대범한 척을 했다.
종수가 시하를 보며.
“어때? 갈래?”
시하가 살며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시하. 형아랑.”
“아. 형아랑 영화 보러 가기로 했어?”
“아냐.”
“응?”
“박물간. 형아랑. 박물간. 공렁.”
“형아랑 박물관 가기로 했다고?! 재… 재밌겠네…….”
그 말에 승준이 눈을 반짝였다.
“시하야. 나도 갈래! 나도!!”
“하나도 시혀기 오빠랑 가고 시퍼!”
“아?”
종수 뒤에 있던 재휘가 조그맣게 “난 가고 싶지 않아….”라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여론의 대세는 공룡 박물관이었다.
아이들도 자기들도 가고 싶다고 손을 들었다.
갑작스러운 여론에 선생님이 땀을 뻘뻘 흘렸다.
“자! 모두 진정하세요.”
하지만 여기에 후속 기사를 터뜨리는 사람이 있었다.
시하가 가슴을 쭈욱 펴며 자랑했다.
“형아랑. 공렁 만들기!”
“공룡 만들기 한다고? 와 재밌겠다!”
“하나도 공룡 만들고 시퍼!”
“하! 아마 이 중에서 내가 제일 잘 만들걸? 난 공룡 영화도 봤거든!”
“…나는 안 만들어도 되는데. 꼭 가야 해?”
뭔가 다 같이 공룡 박물관에 가는 분위기가 되었다.
그걸 본 원장이 말했다.
“애들이랑 다 같이 단체로 한번 갔다 올까요?”
“네?!”
“찾아보니 클레이 점토로 공룡 만들기 행사를 하던데…. 애들이 딱 좋아할 거 같네요. 요즘 바쁜 부모님들도 계시니. 애들이랑 같이 놀면 좋을 거고. 상반기 때 지원받은 비용도 쓰긴 해야 하니까요.”
“그, 그렇긴 하죠.”
“시혁 씨가 참 좋은 걸 알려주네요. 그쵸?”
“그쵸. 아! 시하도 애들이랑 같이 가면 재밌어 할 거 같아요.”
“그렇네요. 전에 보니까 시혁 씨가 바글바글한 걸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요.”
오해였다.
적당히 바글바글한 걸 좋아한다.
딱 승준과 하나까지만.
물론 다 돌보지 않는다면 별 상관없긴 하다.
“음음. 그렇네요.”
“그러면 연락해 보죠. 시혁 씨가 허락하면 같이 가기로.”
“네~!”
유다희 선생님은 시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시하랑 애들은 박물관에 함께 갈 때 어떤 준비물을 들고 갈지 의논하고 있었다.
***
그렇게 공룡 박물관에 가는 날이 밝았다.
어쩌다 보니 어린이집 애들도 다 같이 참여하게 되었다.
정말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나는 시하를 보았다.
시하가 귀여워서 이렇게 됐나 보다.
“형아!”
“응.”
나를 부르는 소리가 참 해맑다.
바글거려서 즐겁기도 하지만 앞으로 일정이 험난해 보이는 건 착각일까?
그래도 박물관 참가비는 어린이집에서 지급하기로 했다.
그뿐 아니라 다른 기타 비용도 아낄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시하가 오늘 정신없이 놀 수 있을 것 같아 기뻤다.
그래야 주위 부모님들을 둘러보지 않으니까.
나는 여전히 이런 부분이 조심스러웠다.
“그럼 이제 출발할까?”
“아아.”
다 같이 어린이집에서 출발하게 되어 있었다.
나는 차를 끌고 갔다.
어린이집에 도착하니 시하 빼고 애들이 전부 도착해 있었다.
원래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
시하가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안녕!”
애들이 인사를 하고 나서 무슨 과자를 들고 왔는지 떠들기 시작했다.
마치 소풍 가는 것처럼 신나 있었다.
늘 신나 있기는 하지만.
승준이 말했다.
“시하야. 나는 공룡 과자 들고 왔어. 봐라!”
“아아! 시하도.”
“응? 시하도 공룡 과자 들고 왔어?”
“아냐.”
“그럼 뭐 들고 왔는데?”
시하가 펭귄 가방에서 부스럭부스럭 하나를 꺼냈다.
“이거!”
가방에서 나온 건 바로 석기시대 초콜릿이었다.
시대가 안 맞을 수 있지만 뭔가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와! 이걸로 공룡 때리면 이길 수 있겠다.”
“아아.”
“하나눈 빼빼로 들고 와써!”
하나같이 자신들이 좋아할 과자를 꺼내서 자랑했다.
“그럼 승준, 하나, 시하는 내 차에 타. 알겠지?”
다들 “응.”이라고 대답했고, 우리는 공룡 박물관으로 출발했다.
신나게 노래를 틀며 도착.
아이들이 신나게 입구까지 달렸다.
나도 열심히 따라가느라 힘들었다.
“얘들아. 이제 여기서 표를 사고 들어가는 거야. 알았지?”
“아아! 형아!”
“와! 시혀기 형아. 여기 입구부터 공룡이 있어!”
“시혀기 오빠. 빨리 와.”
아무래도 내 말은 통하지 않은가 보다.
입구만 봐도 흥분하는 아이들이었다.
어서 들어가고 싶은 눈빛이 가득했다.
“시혁 씨. 여기 표요. 들어가죠.”
“네. 감사합니다.”
나는 원장님께 표를 받고 시하랑 공룡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우와! 시원해!”
솔직히 나는 공룡보다는 시원한 게 더 중요했다.
공룡이야 그렇게 관심 대상이 아니었으니까.
승준이 말했다.
“그럼 어디로 갈까?”
“오빠. 이쪽으로 가야 해.”
“아냐. 이쪽.”
화살표가 있긴 하지만 세 방향이었다.
어느 쪽을 먼저 가든지 상관없다는 거겠지.
입구가 세 개니까.
“음.”
나는 슬쩍 둘러본 다음 선생님을 보았다.
“다 같이 가죠. 순서대로 보다가 혹시 떨어지면 이벤트 장소에 모이는 거로요.”
“그렇게 해요.”
그렇게 일단 우리는 다 같이 이동하기로 했다.
혹시나 떨어져도 만날 장소를 약속했으니 괜찮겠지.
그렇게 출발하는 순간.
“혹시 이시혁?”
“예?”
누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