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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화 (126/500)

126화

시하가 집에서 한참 카드놀이에 푹 빠져 있을 때였다.

“아아! 떼떼! 가라!”

뭔가 카드를 진짜 펭귄몬스터라고 생각하는지 바닥에 찰싹 놓는다.

나는 왜 화투가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소리가 찰져서 그런가?

하여간 이렇게 시하의 상대역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 소용없다. 너의 몬스터로는 이길 수 없어! 왜냐하면, 너의 몬스터는 불을 쓰지만 나는 물을 쓰거든! 간다!”

찰싹!

카드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이게 뭐 하고 있는 건가 싶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시하랑 놀아주기 위해서는 어려질 수밖에 없으니.

“아아…….”

“하하! 이번에도 내가 이겼다!”

한 번도 져주지 않고 2연승을 달렸다.

이제 시하에게 남은 몬스터는 페페 하나뿐.

시하가 분한지 볼에 바람을 넣었다.

이제 하나밖에 없는 펭귄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아아! 페페! 모두! 다!”

해석하면 “이 페페에게 모든 것을 걸겠다!”라는 말이다.

시하가 페페를 내려놓았다.

두 손을 모으고 제발 이번에는 이겨 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형아로서 이 소원을 들어줄 수밖에 없지.

이 스토리는 모두 지금의 카타르시스를 위해서 만들었다.

“덤벼라!”

“아아.”

“으악! 졌다!”

드디어 시하의 첫 승리.

시하의 눈에서 희망이 가득 차기 시작했다.

다음 몬스터 카드를 꺼내며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엄청난 몬스터를 준비했지. 너의 페페는 이미 조금 힘을 빼서 내가 더 유리하다! 각오해라!”

그러면서 다음 카드를 내려놓았다.

시하가 내 장황한 설명에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알고 있는 것이다.

이미 체력이 조금 줄었다는 걸.

대충 그런 설정이었다.

마치 진짜 몬스터가 있다는 듯이.

“아아! 페페!”

“이얏.”

겨우 카드일 뿐인데도 둘이서 두 손을 뻗으며 있는 힘껏 힘을 주었다.

마치 기운을 전해 주는 것같이.

“크윽. 졌다. 역시 페페. 주인공답구나!”

“아아!”

“하지만 너도 알고 있을 거야. 두 몬스터를 상대하느라 많이 지쳐 있다는 걸. 이게 마지막 나의 최강 몬스터다!”

“아아!”

나는 아주 화려하게 풍차를 돌리며 몬스터 카드를 아래로 던졌다.

이게 뭐라고 시하의 눈이 신중해졌다.

“각오해라. 이 기술에 옆집 백동환도 당하고 쓰러졌었다!”

옆집에 사는 최강자를 비교해 주니 시하의 눈이 커졌다.

아마도 엄청난 위기감을 가지게 된 것 같았다.

펭귄 카드를 꼬옥 쥐고 정말 간절히 빌었다.

나는 카드를 들고 시하의 펭귄 카드에 갖다 댔다.

“받아라.”

“아아! 페페!”

주먹과 주먹이 부딪치는 힘 싸움.

실제로 힘을 써서 그런지 정말로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나는 살며시 팔을 굽혀서 밀리는 척을 했다.

“크윽! 하앗!”

다시 힘을 써서 시하의 주먹을 조금 밀어냈다.

시하가 다시 얍! 하며 힘을 썼다.

팽팽한 접전이 벌어지고 나는 쓰러졌다.

“아니!!!”

“아아!”

시하의 승리였다.

엄청난 경기를 펼치며, 고난을 이겨냈다.

그래서인지 시하의 볼은 아주 상기되어 있었다.

제자리에서 펭귄 카드를 끌어안은 채 팔짝팔짝 뛰었다.

나는 잠시 현자 타임이 와서 죽은 눈으로 자리에 쓰러졌다.

‘시하가 기쁘면 됐어…….’

아마 누군가 이 모습을 봤으면 부끄러워 죽고 싶어졌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여기에는 서수현도, 알리사도, 백동환도 없다.

문도환이 봤으면 깔깔 웃으며 100% 놀렸을 게 분명하다.

제길.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아아. 형아!”

“으응?”

시하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내 위로 올라온다.

오늘 이 정도로 만족을 시켜 줬으니 한동안 카드놀이는 안 할 것 같았다.

“승준. 하나.”

“아…. 그랬지…….”

어제 통화할 때 아주 당황스러웠다.

축구공 만들 수 있냐는 말.

그래서 그냥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실제 공은 아니고 그냥 모형 정도는 만들 수 있으니까.

‘내가 왜 그랬지?’

너무 생각 없이 대답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무를 수 없었다.

승준 아버님께서 거짓말하면 혼난다고 들었으니.

“크흠. 그럼 승준이하고 하나에게 가 볼까?”

“아아.”

오늘은 어린이집을 쉬고 시하랑 놀아주려고 했는데 결국 오후가 돼서야 잠깐 가게 생겼다.

뭐, 어쩔 수 없지.

“그럼 준비물 좀 챙기자. 시하야.”

“아아.”

그렇게 우리는 준비물을 챙겼다.

***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하나와 승준이 시하를 반겼다.

오전에 안 봤다고 서로 얼싸안으며 방방 뛰었다.

오랜만에 봤다면서.

얘들아? 너희 안 본 지 아직 하루도 안 됐어…….

그런 애들을 보며 나는 가방을 열어 준비물을 꺼냈다.

“자! 다 같이 축구공을 만들어볼까?”

그 말에 승준이 제일 적극적으로 나섰다.

“나! 나! 나도! 시혀기 형아. 나도!”

“그래. 자, 이게 축구공을 만들 수 있는 재료야.”

나는 오각형과 육각형 종이들을 나눠주었다.

정확히는 하드보드지처럼 딴딴한 종이.

승준이 신기한지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그럼 다 같이 축구공을 만들어보자. 이렇게 생긴 게 오각형이야. 축구공의 검은색 부분 알지?”

“응! 알아!”

“그래. 이걸 육각형이랑 붙이면…. 이렇게!”

내가 종이테이프로 붙이자 축구공의 밑면이 둥그스름하게 만들어졌다.

승준도 나름 야무지게 잘 붙였다.

시하도 열심히 테이프로 붙이고 있다.

“그다음 다시 오각형을 붙이고…….”

그렇게 축구공 만들기가 한창 진행됐다.

다 만들었는지 애들이 좋아했다.

“다 했다! 축구공이다!”

“하하. 승준이 네가 가진 축구공이랑 많이 다르지?”

“응! 근데 이것도 귀여워!”

“그래? 근데 아직 안 끝났어. 거기에 색칠할 거야.”

“아!”

그렇게 애들과 색칠 놀이가 시작됐다.

승준이 열심히 오각형에 검은색을 그렸다.

역시 축구의 정석을 보여 주었다.

‘그럼 하나는…….’

하나는 시하처럼 내 옆에 딱 붙어서 알록달록한 색으로 축구공을 칠했다.

여러 가지 색을 쓸 줄 알았다.

‘그럼 시하는…….’

시하는 축구공에 눈, 코, 입을 그리고 있었다.

역시 이시하.

평범함을 거부하는 남자였다.

“시하야. 누구 얼굴이야?”

“아?”

“누구 얼굴 그리는 거야?”

“문도!”

“아, 도환이 형?”

“아아.”

시하가 심혈을 기울여서 문도, 아니 문도환 얼굴을 그렸다.

뻥뻥 차이는 문도환의 얼굴을 생각하니 조금 불쌍해 보였다.

“이걸로 축구할 거야?”

“아냐.”

“그럼?”

“문도.”

“도환이 형에게 준다고?”

“아아.”

끄덕끄덕.

다행히 문도 축구공을 찰 일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왜 문도에게 공을 줄 생각을 했지?

“형아 거는 없어?”

“아아.”

“그, 그래?”

이렇게 사랑이 식는 건가?

오늘 그렇게 놀아줬는데 다 필요 없었던 건가?

그럼 나는 오늘 무엇을 위해서…….

“형아. 동글동글.”

“으응?”

“이거 안 동글.”

“어…. 그렇지. 이 축구공이 안 동그랗기는 하지.”

뭐야? 그럼 안 동그래서 줄 수 없다는 거였어?

나는 다시 기운이 났다.

그러면 그렇지. 문도환에게 미안하지만, 시하가 나에게 공을 안 줄 리 없다.

이 말까지는 전해 주지 않아야겠다.

“이제 다 만들었으면 다들 집에 공을 가지고 가면 돼요.”

“역시 시혀기 형아야! 축구공도 만들 줄 알아!”

“역시 시혀기 오빠야. 아빠랑 달라.”

“아아!”

나는 아이들의 찬양을 받으며.

“이제 모두 축구공 만들 줄 아니까 아빠에게 가르쳐줘야 해. 알았지?”

다들 대단하다고 말했다.

뭐 뜻이 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럼 시하야. 이제 축구공 전해 주러 갈까?”

“아아.”

나는 시하의 손을 잡고 문도환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

오랜만에 본 문도환은 여유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형. 오랜만이에요.”

“응? 웬일이야. 네가 여길 다 오고.”

“못 올 데 온 건 아니잖아요.”

“아니. 내 말은 방학 때 여기 올 일이 없으니까.”

“일은 할 만해요?”

“학생들이 없으니 할 만하다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이제 슬슬 바빠져.”

“개학이 다가와서?”

“그렇지. 그런데 상담하러 온 거야?”

“아뇨. 시하가 형에게 줄 거 있다고 해서. 시하야.”

시하가 펭귄 가방을 들고 문도환에게 손을 들었다.

“아아. 문도!”

“그래. 시하야. 안녕.”

“안녕!”

“오늘 내게 줄 게 있다고?”

“아아. 이거.”

시하가 손에 있는 축구공을 문도환에게 주었다.

“와! 이게 뭐야?”

“아아. 문도.”

나는 옆에서 보충 설명을 해 줬다.

“형 얼굴을 그린 축구공이래요.”

“오~ 대박! 이런 것도 선물로 주고. 정말 고마운데? 시하야. 고마워.”

“아아.”

나는 농담을 던졌다.

“형. 앞으로 그걸로 축구하면 되겠네. 조기축구회에 들어가요.”

“어? 어…. 으음. 그렇지.”

문도환이 시하의 얼굴을 힐끗 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시하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기어코 약속을 받아냈는데 문도환의 얼굴이 미묘해졌다.

자기 얼굴이 그려져 있는 공을 차는 게 좀 그렇겠지.

저 표정을 보니 웃음이 나온다.

“너 일부로 놀리려고 말했지?”

“아닌데요? 진짜 아니야.”

“하여간. 아, 맞다. 이 축구공을 보니 생각나는 게 있네.”

“응?”

“이번에 공룡 박물관에서 이벤트를 하거든.”

“오~ 공룡 박물관이요?”

“그래. 혹시 시하도 관심 있나 싶어서.”

“아직 공룡에는 관심 없는 것 같은데…. 일단 얘기해 봐요.”

문도환이 폰을 꺼내서 하나의 링크를 보내 주었다.

“어? 점토 공룡 이벤트?”

“어. 이 축구공 보니까 딱 생각나더라.”

“이걸 형이 왜 갖고 있는 거예요?”

“그냥 시하 좋아하나 싶어서 보고 저장해 놨지.”

“이야.”

이 정도면 취업 상담이 아니라 이벤트 회사를 차려도 될 것 같았다.

“역시 형밖에 없네요. 이렇게 우리 시하 생각해 주고.”

“당연하지.”

“펭귄 이벤트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냥 비행기 타고 펭귄 보러 가라.”

“농담이에요. 아무튼, 고마워요. 시하가 좋아하면 가봐야겠네요.”

“이거 우승 상품도 굉장해. 봐봐.”

“응?”

나는 링크의 상품을 봤다.

1등 : 공룡 전집 + 신작 dinosaur 영화 4D 영화표(4매).

2등 : 공룡 카드 + 써리원라빈스 파인트.

3등 : 공룡 옷 입은 SIHA 일러스트.

‘3등 상품은 뭐야? 뭔지 모르겠지만 갖고 싶네.’

그런데 1등 상품이 확실히 탐나긴 한다.

무려 공룡 전집.

확인해 보니 공룡 책이란 책은 다 묶었다.

40권이나 되는 책.

이 정도면 대략 20~30만 원 정도 하지 않을까?

정확히는 잘 모르지만.

“이야. 갖고 싶네.”

“그치? 시하 실력이라면 1등도 노려볼 만하지 않아? 3위 안에는 무조건 들 것 같은데?”

“노려볼 만하죠.”

우리 시하는 천재라서 이런 이벤트에 나가면 상을 싹 휩쓸 것이다.

거기다가 공룡 박물관에 가 보는 것도 시하가 좋아할 것 같다.

“시하야. 어때? 너도 가고 싶어?”

“아?”

“공룡 박물관이래. 공룡.”

내가 공룡을 보여 주었다.

혹시나 무서워할까 싶었는데 전혀 그런 기색은 없었다.

“어때? 이런 이벤트도 한대. 전에 바닷가에서 시하가 흙으로 만든 것처럼 찰흙으로 공룡을 만드는 거야. 가고 싶어?”

“형아도 가치?”

“응. 당연히 형아도 같이 가지.”

“아아.”

끄덕끄덕.

시하가 가고 싶은지 내 폰을 잡고 공룡을 빤히 쳐다보았다.

역시 어린아이는 공룡과 떼어놓을 수 없는 사이인가!

이거 문도환에게 많이 감사해야겠다.

“형. 시하도 좋다네요. 데려가면 되겠다.”

“그래. 가서 잘 놀아주고 그래. 이런 이벤트 핑계로 여러 군데 돌아다니고 그러는 거지. 개학하기 전에 최대한 놀아줘. 물론 개학하고 나서도 놀아줄 테지만. 여유로움이 다르잖아?”

“그렇긴 하죠…….”

안 그래도 현장실습 때문에 방학에도 많이 놀아주지 못한 것 같다.

여러 가지 일도 겹쳤고.

지금이라도 더더욱 많이 놀아주자.

오늘처럼 종일 놀아주는 시간을 가져야지.

“그런데 형. 거기 가면 부모님 많이 오겠죠?”

“어. 그렇지.”

“그러면 시하가 또 그 사람들 보면 어떡해요. 정신없이 옆이 바글바글해 줘야…….”

“나가, 임마!”

“형. 생각해 봐요. 이 귀여운 시하를 울릴 거…….”

“나가라고!”

쳇. 안 통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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