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5화 (125/500)

125화

“시하야. 빨리 손 갖다 대!”

“아아.”

절그럭. 절그럭. 절그럭.

메달이 우수수 시하 손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꽝 메달 20개면 사탕이 두 개다.

한마디로 200원치. 백 원을 넣고 200원치를 얻었으니 이득이었다.

“어?”

그런데 마지막 하나의 메달이 시하의 손에 떨어지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금색 메달이 나왔으니까.

정말 운이 좋군.

“와! 시하야. 금색 메달이야!”

“아아!”

“진짜 대단하다. 와!”

지켜보던 아줌마의 입이 벌어졌다.

설마 금색 메달이 나올 줄은 생각도 못 한 표정이었다.

역시 금색 메달을 얻기 쉽지 않게 하나만 넣으신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으면 저렇게 놀랄 이유가 없으니까.

아줌마가 영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대단하네.”

“그렇죠? 우리 시하가 운이 엄청 좋아요. 무려 19개와 금색 메달을 얻었으니까요.”

“뭐 좋아. 들어와. 어떤 카드팩을 고를지 선택하면 되니까.”

“네. 시하야. 가자.”

우리는 당당하게 문방구에 다시 들어왔다.

손에 있는 메달을 4개 남겨두고 금색 메달 역시도 내밀었다.

“남은 메달은 갖고 있는 거예요?”

“그렇지. 뭐.”

“그럼 안 받은 메달도 많겠네요?”

“그건 상관없어. 은색 메달은 엄청 많아서. 사실 저 게임기도 재미로 놓은 거지. 돈 벌려고 놓은 건 아니야.”

“아하…….”

하긴. 요즘 재밌는 게임도 많은데 굳이 저런 기계를 놓을 필요도 없다.

즐길 거리가 많아진 현대였다.

그래도 나처럼 가끔 추억으로 지나가다가 하는 어른이 있지 않을까?

“거기 용지 보고 메달을 그냥 기념으로 가져가는 사람도 많지. 딱 옛날 생각이 나는 메달이거든.”

“그럴 것 같아요.”

기념으로 가지는 것 또한 좋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줌마가 저기에 게임기를 놓은 것은 누군가의 추억을 위해서일지도?

아줌마가 카드팩 상자를 시하 앞에 내려놓았다.

“자, 여기 상자 중에 아무거나 골라 가.”

“아아!”

시하가 눈을 반짝이며 상자를 보았다.

그러고 보니 시하는 처음으로 카드팩을 보는 거다.

아마 갖고 노는 것도 잘 모르겠지.

“형아! 이거.”

“응? 어디 보자. 오! 펭귄몬스터 카드팩 갖고 싶어?”

“아아.”

시하가 펭귄몬스터 카드팩을 골랐다.

역시 이게 요즘 유행하나 보다.

카드팩까지 나온 것을 보면 말이다.

아줌마도 저 카드팩을 고를 줄 예상했는지 피식 웃었다.

“이건 나중에 까보고 먼저 과자부터 고르자. 알았지?”

“아아.”

나는 시하의 손을 잡고 먼저 사탕 쪽으로 갔다.

“시하는 아직 맥주 마시려면 멀었으니까 파란색 페인트 사탕 줄게.”

“아아. 형아도!”

“응. 형아도 같은 거로.”

나는 시하를 골려줄 생각에 씨익 웃었다.

이 사탕을 먹으면 혀가 파랗게 된다.

나는 곧바로 까서 입안에 넣었다.

“자. 그럼 형아가 좋아하는 과자를 골라볼까?”

“아아.”

나는 사탕을 쪽쪽 빨며 불량식품을 보았다.

[엄청 셔요]를 집어서 시하에게 건네주었다.

말 그대로 신맛이 나는 젤리였다.

물론 신맛이 가시면 뒤에 단맛도 따라온다.

벌써 입안에 침이 고였다.

“아줌마. 먼저 먹어 봐도 되죠?”

“그래!”

“자. 시하야. 이게 형아가 좋아하는 과자야.”

“아?”

시하가 궁금한지 턱을 들고 과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시하의 반응이 궁금해서 봉지를 뜯어내 입에 넣었다.

“음. 맛있어. 시하도. 아~”

“아~”

순진한 시하는 아무것도 모른 체 입에 [엄청 셔요]가 들어갔다.

신맛이 느껴지는지 눈을 찡긋거렸다.

“아아!”

두 손으로 볼을 찰싹 잡았다.

저러면 신맛이 안 느껴지나?

“아?”

그 뒤로 단맛이 느껴지는지 눈을 말똥말똥하게 뜬다.

“형아. 더.”

“응? 더 먹을래?”

“아아.”

나는 시하 손에 [엄청 셔요]를 넘겨주고 다른 곳을 둘러보았다.

“아까는 농담이고 형아는 이걸 많이 먹었어. 이걸 들고 가자.”

나는 [왕꿈틀꿈틀젤리]를 두 개 꺼냈다.

지렁이같이 생긴 젤리가 어릴 때는 참 맛있었다.

늘 왕지렁이는 나중에 먹었었지.

“그럼 아빠 거는 마앗동산! 그리고 엄마 거는…….”

“형아. 이거! 엄마!”

“으응?”

시하가 손으로 가리키고 있는 곳을 보았다.

거기에는 뻥튀기가 있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뻥튀기를 들었다.

이걸로 살 거는 끝.

나는 계산대로 가서 물건을 늘여 놓았다.

아줌마가 봉지에 담는 동안 나는 입에 물고 있던 사탕을 뺐다.

“시하야.”

“아?”

“형아가 마술 보여 줄게. 혀가 변해라!”

나는 파랗게 변한 혀를 보여 주었다.

시하가 놀란 듯이 눈이 커졌다.

“아? 형아…. 혀 아파?”

“으응?”

“혀 이상해. 병언 가.”

툭.

시하가 내 다리에 찰싹 붙었다.

내 혀가 파랗게 되어서 아픈 줄 아는가 보다.

예상과는 다른 반응에 참 당황스럽다.

“시하야. 형아 혀가 아픈 게 아니야. 사실은 이 사탕이 혀를 파랗게 만든 거야.”

“아파 아냐?”

“응. 안 아파. 안 아파.”

놀리려다가 실패했다.

그런 나를 본 아줌마가 피식 웃었다.

“으이구. 놀리는 게 귀여워도 적당히 해야지.”

“크흠.”

“[엄청 셔요] 줄 때부터 알아봤다.”

“커흠.”

다음부터는 색깔 변화는 안 되겠다.

이건 아웃.

그렇게 결심하며 과자 산 걸 챙겼다.

***

-어린이집.

아이들의 과자 파티가 시작되었다.

선생님이 손뼉을 짝 치면서 말했다.

“자! 다들 맛있는 과자 들고 왔죠?”

“네~!”

“그럼 다들 꺼내 보아요.”

아이들이 자기가 갖고 온 걸 꺼냈다.

부모님이 좋아하는 과자 한 개.

시하는 형아 것까지 세 개였다.

옆에서 보고 있던 하나가 물었다.

“시혀기 오빠는 머 조아해?”

“아아. 이거.”

시하가 [왕꿈틀꿈틀젤리] 대신 [엄청 셔요]를 들었다.

왜냐면 어제 시하가 다 먹었기 때문이었다.

시혁이 그걸 보며 아차 싶었지만 이미 시하의 배에 다 들어갔다.

어쩔 수 없이 시하에게 [엄청 셔요]를 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러한 사정을 모르는 하나는 철석같이 시하의 말을 믿었다.

“이거 젤리네?”

“아아.”

“마시써?”

시하가 맛있는지 고민했다.

첫맛은 시고 뒷맛은 달았으니까.

“아냐. 마시써.”

“응? 맛없다는 고야? 아니면 마시따는 고야?”

“마시써.”

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위에 있던 친구들도 시하가 뭘 들고 왔는지 궁금해했다.

선생님이 궁금해하는 걸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이야말로 진행할 타이밍.

“자! 그럼 오늘 과자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지겠어요. 먼저 누가 해 볼래요?”

“저요!”

종수가 손을 들었다.

손에 들린 것은 외국 과자였다.

고급스러운 통에 담겨 있었다.

“아빠가 어릴 때 하나씩 몰래 먹은 과자래! 그때는 비싸서 아껴서 먹었다고 했어! 고급 과자야!”

역시 자기 과시가 뛰어난 과자를 선정해 왔다.

그때 승준이 자리에서 손을 들었다.

“다음은 내가!”

“그래. 승준이가 하렴.”

“내가 가져온 것은 아빠가 좋아하는 과자야. 바로 축구공 젤리! 아빠는 내가 좋아하는 거면 다 좋대! 그래서 축구공 젤리를 제일 좋아한대!”

종수가 “그게 뭐야.” 하며 말했고, 선생님도 뭐 좋은 게 좋은 거라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속은 좀 달랐다.

승준아. 그건 그냥 네가 좋아하는 과자야.

하지만 때로는 아이들 과자를 부모님도 함께 즐겼다.

다음은 재휘가 일어났다.

“나는 반나나킥을 들고 왔어! 엄마가 제일 좋아했대.”

“그랬니? 선생님도 참 좋아하는데.”

“엄마가 아기 때 내 손에 두 개 쥐여 주고 나머지 혼자 다 먹었어. 그래서 좀 무서워. 엄마가 과자 다 먹을까 봐.”

아이고 어머니.

애한테 두 개 쥐여 주고 혼자 다 드시면 어떡해요.

재휘의 어머니에 대해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다음은 하나가 일어났다.

“하나눈. 하나눈. 엄마가 좋아하는 껌이야!”

“응? 껌?”

“응. 왜냐면 여기 껌에 있는 만화를 좋아했대. 짜잔!”

하나가 껌을 뜯어 만화를 꺼냈다.

그러고는 종이를 빠르게 넘겼다.

장이 넘겨질수록 그려진 캐릭터가 움직였다.

열심히 달리는 운동선수가 보였다.

“와! 신기하네요. 그쵸?”

“네!”

하나가 주목받았다는 생각에 가슴을 쭈욱 폈다.

그걸 본 종수가 졌다는 표정을 지었다.

선생님이 쓴웃음을 지었다.

저기. 종수야. 이건 대결이 아니란다.

어쩌다 보니 오늘의 승자는 하나가 될 것 같았다.

“그럼 시하야. 오늘 세 개나 들고 왔네. 설명해 줄래?”

“아아.”

선생님은 조금 걱정이 들었다.

과연 시하가 잘 설명할 수 있을까?

“아빠!”

먼저 꺼낸 것은 [마앗동산]이라는 과자였다.

[마앗동산]이 아래로 떨어졌다.

설명 없이 심플하게 넘어간다.

아니. 설명은 해 줘야지.

“엄마!”

시하가 꺼낸 것은 뻥튀기.

이번에도 과연 설명할 것인지 시하의 입을 쳐다보았다.

“뻥! 뻥! 이케. 이케.”

뻥튀기를 만드는 걸 설명하고 있었다.

왜 엄마가 좋아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마시써.”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래. 맛있으면 된 거지.

“형아!”

“오! 드디어 형아구나!”

“아아. 이거 마시써.”

“응. 맛있지. 그래…….”

시하가 뭔가 생각하다가 보충 설명을 했다.

“알송. 달송.”

“응? 알쏭달쏭?”

“아아. 알송. 달송. 메달! 파박! 카드!”

“…….”

선생님이 입을 벌렸다.

알쏭달쏭한 맛이라는 건 신맛과 단맛이 있어서 설명을 잘한 것 같다.

하지만 메달은 뭐고 카드는 대체 무슨 맛 설명일까?

뭐 금메달 줄 정도의 맛이라는 걸까?

카드로 음식을 사고?

열심히 머리를 굴려 해석하고 있는데 시하가 펭귄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아아! 카드!”

두둥!

아이들 눈이 크게 떠졌다.

저건 펭귄몬스터 카드팩 상자였기 때문이었다.

뭐에 홀린 듯이 시하의 손을 바라보았다.

카드팩을 상자에서 꺼내고,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얼떨결에 카드팩을 받은 아이들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가치.”

시하가 카드팩을 뜯었다.

아이들이 과자 대신 신나게 카드팩을 깠다.

선생님은 ‘이게 아닌데’ 하는 표정을 지었다.

과자 파티가 순식간에 카드 파티로 변해 버렸다.

아이들의 관심사가 순식간에 옮겨졌다.

“아~ 펭귄몬 안 나왔어!”

“아! 꽝이다. 꽝!”

승준이 히죽 웃었다.

“아싸! 슛돌이몬!”

종수는 울상을 지었다.

“아…. 근력몬이네…. 시하야. 넌 뭐 나왔어.”

“아아. 페페!”

시하가 척 하고 주인공인 펭귄몬을 보여 주었다.

아이들의 부러움을 샀다.

종수가 또 ‘졌다’라는 표정을 지었다.

선생님이 이 상황을 어떻게 정리할까 고민하다가 손뼉을 쳤다.

“자! 다들 좋아하는 과자를 먹어 볼까요? 다들 한 번씩 나눠 먹어 봐요!”

겨우 진정된 아이들이 과자를 뜯어서 먹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에게도 나눠주며 서로의 과자를 공유했다.

하나가 눈을 반짝이며 시혁이 좋아하는 과자를 먹었다.

사실 다들 시하에게 빠져서 시혁의 과자를 먼저 먹었다.

아이들 전부가 [엄청 셔요]를 입에 넣자 눈을 찡긋거렸다.

옆에서 부르르 떠는 아이도 있을 정도.

선생님이 웃으며 폰으로 그 장면을 찍었다.

찰칵. 찰칵. 찰칵.

다들 부르르 떠는 모습이 웃겼다.

“아! 셔! 안 맛있는데?! 아, 아니네? 나중에 맛있어지네?”

다들 같은 반응이었다.

그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과자 파티가 마무리됐다.

***

-승준과 하나의 집.

승준과 하나가 엄마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쫑알쫑알 말했다.

“오늘 시하가 줬어! 카드!”

“그래? 승준이처럼 아주 멋진 카드네?”

“응!”

하나가 엄마의 손을 잡아당겼다.

“하나도 하나도. 이제 [엄청 셔요] 사서 시혀기 오빠에게 줄 거야. 시혀기 오빠 그거 조아한대!”

“어머? [엄청 셔요] 좋아한대?”

“응.”

“그럼 나중에 신 레몬차나 만들어서 줄까? 아마 좋아할걸?”

“레몬차?”

“응. 엄마가 만드는 법 가르쳐줄게.”

“아싸! 레몬차!”

“하나가 만들어주면 시혀기 오빠가 엄청 좋아할 거야.”

“응.”

승준 엄마는 속으로 성공했다는 미소를 지었다.

아이들이 놀이에 관심을 기울이게 하며 레몬차까지 만들 수 있게 되었으니까.

오랜만에 승준 아빠를 위해 레몬차를 만들 생각이었다.

승준이 말했다.

“엄마. 나는 사커공 만들래!”

“으응? 그건 만들기 어렵지 않을까?”

“아니야. 아빠는 만들 수 있을 거야. 아빠는 만드는 일 하잖아.”

“으응. 그렇지.”

공대 교수의 반도체 설계가 무언가 만드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애들에게 설명하기 어려워서 대충 만들기를 잘한다고 했다.

실제로 공구를 잘 쓰기도 하고.

“하지만 축구공은 그냥 만들 수는 없어.”

“아니야. 아빠는 할 수 있어!”

하나도 거들었다.

“마자. 아빠는 할 수 이써.”

승준 엄마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걸 어째?’

그렇게 시간이 흘러.

승준 아빠가 집에 왔다.

승준과 하나가 뛰어서 아빠 품에 안겼다.

“아빠!”

“아빠!”

“어이쿠! 오늘도 재밌게 놀았어?”

두 사람 다 “응!” 하고 대답하며 신나게 고개를 끄덕였다.

승준이 물었다.

“아빠. 축구공 만들 수 있지?”

“으응? 아, 아니. 축구공은 못 만드는데?”

“히잉.”

승준 아빠는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두 사람이 실망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팠다.

그때 승준이 말했다.

“시혀기 형아면 만들 수 있을지도 몰라! 히어로잖아!”

“마자.”

승준 아빠는 코웃음을 쳤다.

아무리 그래도 너희가 좋아하는 시혀기 형, 오빠도 만들 수 없을 것이다.

“그럼 전화해 볼래? 만들 수 있는지?”

“응!”

그렇게 시혁에게 통화가 가고…….

“시혀기 형아. 사커공 만들 수 있어?”

“시혀기 오빠. 축구공 만들 수 이써?”

「어. 있어.」

만들 수 있다고? 그럴 리가!

“시혀기 형아. 짱이다!”

“시혀기 오빠. 짱이다!”

승준 아빠가 전화 너머에 있는 시혁에게 말했다.

아이들을 생각해서 순화한 말로.

“이노옴! 거짓말하면 혼나요!”

과연 순화하지 않은 표현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승준 아빠만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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