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퇴근 시간만 다가오면 가슴이 설렌다.
출근 시간은 내가 직장에 안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게 하지만 퇴근 시간만은 다르다.
마치 아이에게 달콤한 과자를 주는 듯 기다려진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하루의 공부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시간.
마치 좁은 우리에 갇혔다가 해방이 되는 것 같은 시간.
비록 곧 학원을 가야 하지만 언제나 하교는 옳았다.
좀 더 여유로운 여가 시간이 생기니까 말이다.
어린이집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와! 집에 갈 시간이다!”
승준이 방방 뛰었다.
친구들과 헤어지는 건 아쉽지만 엄마와 아빠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일과는 늘 노는 거지만 그래도 어린이에게는 그게 일이다.
신나게 땀 흘리고 놀고 난 뒤 집으로 가는 것이다.
“하나는 집에 가서 놀 거야!”
물론 집에 가서도 논다.
24시간 일하는 블랙기업이 있다면.
아이들은 모든 하루가 24시간 노는 블랙직장이다.
어쩌면 대부분 어른이 바라는 그런 꿈의 직장일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이 말했다.
“흠흠. 얘들아. 다음 주 월요일에 과자 파티 있는 건 알죠?”
“아?”
시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들어본다는 얼굴이었다.
“까먹을 줄 알고 알림장에 미리 써놨어요. 월요일은 친구들에게 소개할 과자를 들고 오는 거예요. 알았죠?”
“네!”
시하는 왜 과자를 들고 와야 하는지 궁금했다.
“왜에~?”
선생님이 그런 시하를 보며 씨익 웃었다.
마치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자! 알림장에 이렇게 적혀 있어요. 엄마, 아빠가 좋아했던 과자를 들고 오기! 엄마, 아빠도 과자를 좋아했구나. 이 과자는 이런 맛이구나. 이런 걸 알려고 해요. 재밌겠죠?”
“아아.”
시하가 자신을 손을 보았다.
반짝이는 분홍색 빛무리가 튀어나오며 시하를 감쌌다.
“아아! 엄마. 까자.”
분홍색 빛무리가 물음표를 그렸다.
시하가 손으로 네모를 그리며 먹는 시늉을 했다.
“엄마. 조아하는 까자.”
선생님이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하는 형아가 좋아하는 과자를 들고 와도 돼.”
“아?”
시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형아가 무슨 과자를 좋아하는지 몰랐으니까.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엄마가 좋아하는 과자도.
아빠가 좋아하는 과자도.
다른 아이들 역시도 시하랑 마찬가지였다.
선생님의 의도는 잘 먹혔다.
이걸 한 번 생각해 보게 하기 위한 과자 파티였다.
엄마도 아빠도 사실 먹었던 과자가 있고, 좋아했었다고.
하나가 시하 곁에 다가가 손을 잡았다.
“시하야.”
“아아. 하나.”
“시혀기 오빠 조아하는 과자 꼭! 들고 와야 해.”
“아아.”
선생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나야. 목적이 너무 뚜렷한 거 아니니?
부모님 생각도 해 주렴.
때로는 좋아하는 사람이 어떤 과자를 좋아하는지 궁금해할지도 모른다.
***
“형아!”
집에 도착하자 시하가 가방을 꺼내서 알림장을 보여준다.
나는 웬일인가 싶어서 알림장을 보았다.
“이게 왜? 오늘 재미난 거 있었어?”
“아아. 까자.”
“과자? 갑자기 과자는 왜? 과자 먹고 싶어?”
나는 자신 있게 벌떡 일어나 어깨를 폈다.
시하가 좋아하는 과자를 사주기 위해서 열심히 돈 벌었다.
과자 봉지에 50%가 질소로 채워져 있다고 한들 시하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사줄 수 있다.
“말만 해. 형아가 어? 대형할인점 가서 저기서부터 저기까지 종류별로 싹 다 사줄 테니까.”
“아냐.”
“으응? 과자 먹고 싶은 거 아니야?”
“아아. 엄마, 아빠, 형아. 까자.”
“응? 엄마, 아빠, 형아에게 과자를 사준다고?”
“아냐.”
시하가 내 손에 있는 알림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쪼그만 손가락을 나도 모르게 살며시 잡았다.
“아냐.”
“응. 아닌 거 알고 있었어. 너무 귀여워서 잡아 본 거야.”
나는 시하 말대로 알림장을 펼쳤다.
월요일 과자 파티를 시행한다.
가족들이 어렸을 때 좋아했던 추억의 과자나 현재도 좋아하는 과자를 가지고 오라는 말.
그래서 시하가 엄마, 아빠가 좋아하는 과자를 찾나 보다.
‘아빠는 아는데 엄마는 잘 모르겠네.’
그런데 아빠, 엄마가 연상되는 과자를 가르쳐줘야 하나?
혹시 엄마, 아빠를 찾지 않을까?
시하가 엄마, 아빠를 찾으면 어쩌나 싶어서 끙끙거린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알려주는 게 맞지 않을까?
나중에 시하가 엄마, 아빠를 추억할 때 대체 어떤 걸 추억할 수 있겠나.
그 빈자리도 내가 조금씩 채워줘야 하지 않을까?
옛날이야기처럼.
아빠가 저랬고, 엄마가 저랬다.
그런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기억에 남게…….
사람의 기억은 영상으로 남아있는 게 몇 없고 ‘이야기’로서 존재한다.
영상은 내가 채워줄 수 없는 부분이니 나는 ‘이야기’로서 채워줘야 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럼 시하야. 내일 과자 사러 가 볼까?”
“아아!”
“형아한테 맡겨. 아빠가 좋아하는 건 형아가 제일 잘 알거든. 전혀 바뀌지 않았으니까.”
아버지는 언제나 ‘마앗동산’과 ‘약과’를 좋아했다.
어릴 때도 ‘마앗동산’을 좋아했다고 했으니 아마 맞겠지.
“엄마!”
“으응? 엄마는…. 비밀이야. 내일 과자 사러 갈 때 가르쳐줄게.”
“아아.”
시하가 알겠다면서 자리를 떠났다.
태블릿을 켜고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시하의 말에 가슴이 콱 하고 박혔다.
알림장의 과자 파티 취지도 가슴에 콱 하고 박혔고.
‘아는 게 뭐야?’
나는 새엄마에 대해서 아는 게 없었다.
서로 살면서 이야기하다 보면 정이 생기고 좀 더 알게 될 줄 알았다.
그 시간이 그리 짧을 줄 예상치 못했다.
바쁘다고. 스펙 준비한다는 핑계로 무관심했음을……. 나는 너무 늦었음을…….
‘뭔가 살갑게 대해 주시고 이야기도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어쩌면 나에게 맞춰 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내가 시하에게 늘 이야기를 들어 주고 맞춰 주는 것처럼.
나는 왜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
‘모르겠다.’
엄마라는 건 어떤 걸까?
심장이 꾸욱 눌리는 기분이다.
나는 아직도 그 기억에서 못 벗어나고 있나 보다.
고개를 살며시 저으며 다른 생각을 했다.
왠지 과자 파티가 조금 싫어지는 기분이었다.
***
다음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시하가 나를 깨웠다.
내 위에 올라와 수영하듯이 팔다리를 파닥거렸다.
“끄응.”
“형아!”
실눈을 뜨고 시하를 계속 보았다.
파닥파닥.
허공에 헤엄치는 손놀림이 유연했다.
꽤 괴롭기는 했지만 이런 시하를 계속 보고 싶어서 계속 실눈을 떴다.
그래서인지 시하는 내가 계속 자는 줄 아나 보다.
“코오~”
“형아! 형아!”
파닥파닥.
열심히 나를 깨우기 위해 배 위에서 둥실둥실 떠다닌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쉬며 배에 힘을 주었다.
배가 볼록 튀어나오며 시하를 들어 올렸다.
“아아! 형아!”
내가 봤을 때 ‘형아’의 뜻이 바뀌어 있었다.
앞의 형아는 일어나라는 뜻이었다면 뒤에 형아는 재밌다는 감탄이었다.
나중에 형아 번역기를 만들어야 할지도?
“후우.”
배가 쑥 꺼졌다.
“흐읍!”
배가 다시 튀어나왔다.
마치 파도가 치듯이 시하가 위아래로 진자운동을 계속했다.
꿀렁꿀렁. 꿀렁꿀렁.
“아아!”
아침을 맞이해 준.
첫 귀여움이었다.
정신 차리자.
아침이라서 별별 생각을 다 한다.
나는 살며시 눈을 떴다.
“시하야. 일어났어?”
“아아. 형아!”
“계속해 달라고?”
“아아.”
그렇게 한동안 파도를 만들고 나서야 일어날 수 있었다.
아침부터 복근 운동을 한 듯이 배가 당겼다.
왜지?
“시하야. 오늘 과자 사기로 했지?”
“아아.”
“그럼 가자.”
우리는 대충 아침 식사를 끝내고 집을 나섰다.
오늘 시하와 갈 곳은 바로 문방구!
그것도 초등학교 근처에 있는 문방구였다.
다들 한 번쯤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학교 준비물을 사러 가기도 하지만 불량식품이나 장난감을 사러 가기도 한다.
오늘은 대형마트가 아니라 내가 자주 갔던 문방구를 들를 생각이었다.
“시하야. 기대되지?”
“아아!”
“오늘 갈 곳은 방구방구 문방구야.”
“방구? 뽕?”
“큭큭. 응. 뽕 나오는 방구방구 문방구.”
시하가 방구 이야기가 나오자 좋아서 손뼉을 쳤다.
역시 똥방구 이야기는 어느 아이들이나 좋아하는 것 같다.
더러운데 왜 이렇게 좋아하는지.
나도 방구 이야기가 나오면 아직도 웃긴 것 같다.
“방구방구 문방구!”
내 말이 재밌는지 시하가 곧잘 따라 했다.
그런데 이건 진짜 농담이 아니라 실제 문방구 간판 이름이었다.
“도착했다!”
“아아!”
[방구방구 문방구]
내가 초등학생 때도 있었던 문방구.
세월을 피해야 했는지 간판이 새 걸로 바뀌어 있었다.
‘낡은 모습을 상상했는데…….’
의외로 깨끗했다.
앞에 있는 오락기 두 개도 추억이었다.
알쏭달쏭 오락기도 어릴 때를 생각나게 했다.
“형아?”
“응? 아! 들어가자.”
“아아.”
나는 시하의 손을 잡고 문방구에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안녕! 하세!”
열심히 티비를 보고 계신 아주머니가 고개를 돌렸다.
예전보다 주름이 늘어나 있었다.
하긴 그때보다 11년이 지났는데 당연하겠지.
내가 12살인 6학년 때가 마지막이었다.
빠른년생이라서 형이라고 부르라고 친구들이 그랬었지.
“어서 오세요. 어? 너 시혁이네!”
“엇? 저 기억하세요?”
“당연히 기억하지. 여학생들에게 인기 좋은 시혁이 아니니.”
“아닌데요. 그 애는 누구죠?”
“아닌데? 맞는데? 모범생 이시혁. 맨날 선생님에게 칭찬받고 상도 타 와서 인기 많았지.”
“그거 개근상인데요?”
“아니던데?”
뭘 그런 것까지 기억하시나. 부끄럽게.
“크흠. 아닙니다.”
“아니야. 내가 다 알어. 무슨 상인지는 기억 안 나지만. 너 좋아하는 여학생이 내 쫑알쫑알 말하던걸? 지은인가 예슬인가. 뭐 게네들.”
“그건 진짜 처음 듣는 이름이네요.”
“어머 그래? 하도 애들이 많이 다녀가서 이름은 기억 안 나네.”
“하하. 그렇죠?”
학교 앞 문방구는 인기가 많은 편이긴 하지.
준비물 미리 안 챙기고 바로 문방구에서 사서 등교하면 되니까.
그런 점에서 참 편리하긴 하다.
물론 성실한 나는 하교하면서 미리 문방구에서 샀었다.
“아무튼, 반갑네. 코흘리개가 이렇게 훤칠하게 클 줄이야.”
“코흘리개 아니었는데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어허. 시하도 옆에 있는데 코흘리개가 뭐야.
위엄이 안 살잖아. 위엄이.
“형아?”
“응.”
“어머. 형이었어? 난 또 벌써 애까지 있는 줄 알았네.”
“하하. 그럴 리가요.”
“왜? 속도위반으로 빨리 결혼했을 수도 있지.”
“크흠. 애도 있는데.”
“괜찮아. 이런 어린아이면 무슨 말인지 몰라. 안녕. 이름이 뭐니? 몇 살?”
시하가 자신 있게 손가락을 세 개 펴줬다.
“시하. 서이 살!”
“풉!”
아줌마가 앞에서 웃음이 터졌다.
나는 시하에게 정정해 줬다.
“시하야. 서이 살이 아니라 세 살이야.”
“아아. 서이 세 살.”
“세 살!”
“서이 살.”
시하야. 너 일부러 안 고치는 거지?
“애가 너무 귀엽네.”
“그렇죠?”
“그런데 여기 뭐 사러 왔어? 설마 하드보드지 같은 걸 사러 온 건 아닐 테고.”
“하하. 오늘은 추억의 과자나 사볼까 하고요.”
“아, 그래? 배치는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안 바뀌었어. 저기 가면 있으니까.”
“그래요? 감사합니다. 시하야. 가자. 형아가 오늘 새로운 과자를 보여줄게.”
“아아!”
나는 그렇게 과자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 전에.
“시하야. 게임 한판 해 볼래?”
“아?”
“이거 먼저 하고 메달 따서 당당하게 문방구에 다시 들어오는 거야.”
“아아!”
문방구 아줌마가 뒤에서 피식 웃는 소리가 들린다.
사실 오랜만에 해 보고 싶은 마음이기도 했다.
“자. 이게 알쏭달쏭 게임이야. 여기 두 개의 버튼이 있지? 한 개는 알쏭이고 한 개는 달쏭이야.”
둥근 원.
앞부분에는 ‘알쏭’이 적혀 있고 뒷부분에는 ‘달쏭’이 적혀 있다.
게임을 시작하면 세워진 둥근 원이 돌아간다.
게임하는 사람은 알쏭이 나올지 달쏭이 나올지 선택해야 한다.
“자! 형아가 먼저 보여줄게.”
내가 백 원을 넣자 알쏭과 달쏭이 빠르게 움직였다.
재빨리 알쏭을 클릭했다.
탁! 정답.
‘맞추면 메달이 나오지.’
뚜르르르.
소리가 나더니 불빛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원으로 움직이는 불빛은 메달이 몇 개가 나올지 랜덤으로 선택해 준다.
“이때는 빨리 연타해 줘야 해.”
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
두 손가락으로 버튼을 연타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런다고 더 좋은 게 걸리는 건 아니었다.
그냥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해줄 뿐.
어릴 때 친구들과 추억이다.
불빛이 ‘X5’에 멈췄다.
“오! 나온다.”
나는 메달이 나오는 곳에 손은 갖다 댔다.
절그럭. 절그럭.
메달이 다섯 개가 나왔다.
이 기계는 최대 20개가 나올 수 있었다.
“짜잔. 이렇게 메달을 얻게 되는 거야.”
“아아! 형아!”
시하가 메달을 신기한 표정으로 보았다.
“시하도!”
“시하도 하고 싶어?”
“아아.”
그때 보고 있던 아줌마가 말했다.
“깜빡했는데 그거 메달 하나당 100원 아니다?”
“네?”
“그 메달 꽝이야. 꽝 10개에 맥주 모양 사탕 하나. 아니면 사이다 모양 사탕.”
“헐?”
언제부터 그렇게 바뀌었지?
아. 하긴. 이런 배당 게임이 애들 정서에 그렇긴 하지.
그래도 게임이 너무했다.
“형아.”
“응? 해 볼래?”
“아아.”
나는 백 원을 넣었다.
“그러면 꽝 아닌 메달도 있어요?”
“있지. 금색 메달.”
“그거 받으면 뭐로 교환해 주는데요?”
“애들이 좋아하는 카드 팩으로 교환해 주고 있어.”
“오! 그거 천 원 넘지 않아요?”
“천 원 넘지. 그 정도면 100원 투자할 만하지 않아? 그리고 앞에 적혀 있는데?”
“아, 그러네요.”
게임기 위에 적혀 종이로 적혀 있었다.
이걸 못 봤네.
“그런데 금색 메달이 몇 개 없는 거 아니에요?”
“크흠.”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금색 메달이 몇 개 없는 게 틀림없다.
우리가 그렇게 말하고 있는 동안 시하가 알쏭달쏭 버튼을 열심히 눌렀다.
타타타타타타.
불빛이 움직이더니 ‘X20’에서 멈췄다.
아줌마가 그걸 보며 말했다.
“운이 좋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