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0화 (120/500)

120화

다음 날.

여전히 햇볕은 내리쬐고 매미가 맴맴 하며 울다가 그친다.

매미가 오랜 시간을 걸쳐 성충이 되는데 수명은 약 한 달 정도.

드디어 삶의 날개를 펴고 열심히 삶을 노래한다.

나는 어쩐지 그게 아름답게 사는 삶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이 얼마 남지 않음에 슬퍼하는 울음소리로 들린다.

왜냐고?

사실 내가 오늘 조금 울고 싶은 기분이니까.

‘애들이 오면 좋기야 하지만.’

몰랐을 때 해 본 경험은 용기가 생긴다던가.

하지만 경험하고 나면 얼마나 그게 힘든 일인지 알게 된다.

나는 세 아이를 감당할 체력이 없다.

그래서 오늘 필요한 것이 체력보존 놀이였다.

‘마음을 다잡자.’

분명 말하지만 나는 어린아이가 싫지 않다.

그랬으면 시하도 싫어했겠지.

하지만 세 명과 놀아주는 건 다른 이야기였다.

20대의 체력에도 끄덕하지 않는 아이의 체력.

심지어!

낮잠도 자며 체력을 회복한다.

게임에서 스태미나 포션을 먹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어른인 나는 낮잠을 잘 수 없다.

짬짬이 일해야 하니까.

요즘 낮잠을 자도 피곤하기만 하다.

“형아.”

“응. 시하야.”

시하가 내 다리에 찰싹 붙었다.

오늘 승준과 하나가 온다고 일찍 일어났다.

물론 안 와도 일찍 일어나지만.

“형아. 형아.”

“응. 응. 곧 있으면 승준과 하나도 온다고 하네.”

“아아.”

“근데 이제 시원하지?”

30분 전부터 에어컨을 켜서 그런지 이제 거실은 엄청 시원했다.

방문과 화장실 문도 닫아야 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아이들이 여기저기 다 뛰어다니며 놀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전체적으로 시원해야 했다.

“형아. 형아.”

“왜? 형아가 그렇게 좋아?”

“조아!”

“혹시 친구들이 와서 좋은 건 아니고?”

나는 아직도 마음에 남은 의심 한 조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시하가 손짓을 하다가 손을 오므린다.

나는 시하의 바람대로 귀를 갖다 댔다.

“후우.”

“푸핫! 아, 귀에 바람 넣으면…….”

“형아!”

“알았어. 아직 말 안 끝났다는 거지?”

내가 다시 귀를 대자 시하가 말하기 시작했다.

“후우.”

“흐흡.”

귀에 바람은 왜 자꾸 넣는지 모르겠다.

“승준. 하나. 조아.”

“응.”

“형아 더 조아.”

“뭐? 형아가 더 좋다고?”

“아아.”

시하가 부끄러운 듯 폭 안겼다.

그렇군.

내게 무릎을 굽히게 한 건 내 품에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요 영악한 동생아.

아무튼, 시하는 귀엽다.

모든 의심이 먼지가 되어 하늘로 날아갔다.

저 밖에서 우는 매미처럼 나도 오늘 생을 불태우리라고 다짐했다.

띵동!

“승준이하고 하나가 왔나 봐. 시하가 맞이해 줄래?”

“아아.”

시하가 신발장으로 도도도 달려가 슬리퍼를 신었다.

그러더니 문 앞에 찰싹 붙었다.

나는 그 모습이 또 귀여워 웃음을 보였다.

문을 열자 승준과 하나가 활기차게 인사를 했다.

“시하야! 안녕! 시혀기 형아! 안녕!”

“시하야! 안녕! 시혀기 오빠! 안녕!”

“아아! 승준! 하나! 안넝!”

뒤에 있던 승준 엄마도 인사를 했다.

“호호. 안녕하세요. 시혁 씨. 오늘도 애들 잘 부탁드려요.”

“하하. 애들이 친해서 정말 좋네요.”

“그러게요.”

“너무 좋아하시는 거 아니에요?”

“이렇게 빨리 그이랑 데이트하는 날이 올 줄 몰랐거든요. 대학생 때로 돌아간 느낌이네요.”

“오늘 차려입은 것을 보니 대학생이라고 해도 될 것 같은데요? 워낙 동안이셔서.”

승준 엄마가 괜히 아부하지 말라면서 내 팔을 찰싹 때렸다.

그래도 싫지는 않은 눈치였다.

“오늘 애들 잘 부탁해요.”

“네. 좋은 시간 보내세요.”

“…엄청 찐한 시간을 보내야죠.”

“네? 뭐라고 하셨죠?”

“아무것도요. 나중에 시하도 저희 집에 꼭 데리고 오세요. 전에 왔을 때 좋아하던데.”

“네. 그럴게요.”

그렇게 배웅을 하고 나서 나는 문을 닫았다.

승준과 하나는 엄마에게 인사하고 나서야 집 안으로 들어왔다.

승준이 말했다.

“뭐 하고 놀지?”

역시 첫 시작의 주제는 그거였다.

셋이 고민을 하다가 나를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나 보고 정하라는 것 같았다.

나는 훗 하고 웃었다.

어제 꿈결에서 고민 많이 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질 줄 알고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준비도 했다.

오늘은 그걸 선보일 차례였다.

“오늘 할 게임은 바로 숨바꼭질이야.”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는 놀이 중 하나.

그건 바로 숨바꼭질이었다.

이 놀이라면 언제든지 놀아 줄 수 있고 편하게 체력을 비축할 수 있다.

“먼저 내가 술래를 할게. 30초 셀 거니까 숨으면 돼. 알았지?”

“응.”

“응!”

“아아!”

시하도 잘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벽을 보고 눈을 가렸다.

“그럼 센다. 하나! 둘! 셋! 넷!”

“아악! 빨리 숨어!”

“빨리! 빨리!”

“아아!”

아이들이 우당탕 움직이며 숨는 기척이 들렸다.

집이 작아서 그런지 발소리만으로 어디로 들어가는지 알 것 같았다.

어느새 30초는 금방 셌다.

‘애들이 30초는 아나?’

나는 혹시 몰라서 확인했다.

“다 숨었나!”

내가 이렇게 말하자 저 옆방에서 시하의 대답이 들려온다.

“아아!”

나는 그 대답에 웃음을 터뜨렸다.

승준도 같이 숨은 건지 당황한 소리가 들린다.

“시하야. 물어보면 대답하면 안 돼.”

승준아. 네 목소리도 다 들려…….

“시혀기 오빠! 아직~!”

하나는 아직 숨을 곳을 찾지 못했는지 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피식 웃으며 한 번만 더 세겠다고 말했다.

“하나. 둘.”

도도도 달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어느새 조용한 집안이 되었다.

“서른! 다 숨었나!”

“아아!”

“시혀기 오빠! 다 숨어써!”

“바보들아! 들킨다고!”

그렇게 말 안 해도 이 좁은 집에서 금방 들킬 수밖에 없었다.

그럼 어디 찾아볼까?

나는 가볍게 발을 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일단 숨기 좋게 장롱문도 열고, 위험하지 않게 이불도 깔아놓았다.

아마 다치지는 않을 것이다.

“어딨지?”

이미 대충 위치는 어느 방에 있는지는 알지만 나는 시치미를 떼며 발소리를 내었다.

방으로 들어가 한 번 더 나의 존재감을 알렸다.

“어딨지?”

“흡!”

숨을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에게 숨바꼭질은 재밌는 놀이이자 스릴러였다.

어릴 때부터 배우는 첫 스릴러 경험이라는 거지.

“아. 어딨을까?”

이불 넣는 장롱문이 살짝 닫혀 있었다.

나는 슬쩍 그 장롱문을 벌컥 열었다.

“여기 있나?!”

가만 보니 두 아이가 누워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저렇게 하면 개어진 이불이 위에 있는 줄 아나 보다.

바보들. 형체가 다 드러나는데.

“어라? 여기 없네?”

나는 장롱문을 살짝 닫았다.

언제나 여닫을 수 있게.

이것도 일부러 애들이 열 수 있게 다 열어놓았다.

나는 살며시 방을 나섰다.

“휴~”

뒤에서 안심하는 소리 다 들린다. 승준아.

나는 살금살금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바로 부엌.

싱크대 밑에 있는 서랍에 모든 냄비와 그릇들을 다 빼놓았다.

왜냐하면, 여기가 딱 숨기 좋으니까.

“이상하네? 여기서 소리가 났는데?”

“흡!”

“어라? 숨소리도 들린다!”

“흡!”

나는 살며시 다가가 문을 열었다.

하나가 싱크대 밑에서 숨어 있었다.

“찾았다!”

“아! 시혀기 오빠한테 들켜써!”

“어서 와.”

“시혀기 오빠. 손.”

“응.”

나는 하나의 손을 잡아주면서 에스코트했다.

마치 차에서 여성을 내려주는 형태였다.

여기가 이렇게 손잡아줘야 할 정도로 위험한 공간이었나?

잘 모르겠지만 하나에게 맞춰주자.

“시혀기 오빠. 나 먼저 차자써?”

“응. 하나 먼저 찾았네!”

“아싸!”

“으응?”

이게 찾는 게 좋은 게임이었나?

“그럼 이제 시하랑 승준을 찾아볼까? 어딨지?”

“하나 알아.”

응. 하나야. 그건 가르쳐주면 안 되는 거야.

하나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둘이 가치 숨어써.”

“응. 고마워. 그럼 이제 나 혼자 찾아볼게. 힌트는 이제 쉿이야.”

“응.”

나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여기에 다시 한번 더 찾아볼까!”

숨죽이는 소리가 다시 들여온다.

나는 일부러 소리를 내며 장롱을 퉁 치고 옆에 있는 서랍을 드르륵 열었다.

“여긴 없네? 다른 데 다시 찾아볼까?”

그렇게 다시 방문을 나서는 척하면서 두다다다 뛰어서 장롱을 열어 이불을 걷었다.

“못 찾을 줄 알았지!”

“으아아악!”

“형아!”

반응은 상반되었다.

승준이 정말 놀랐는지 소리를 쳤고, 시하는 말똥말똥하게 두 팔을 벌려 안아 달라고 했다.

시하야. 넌 안 놀라?

그렇게 스릴러처럼 연출했는데 시하는 전혀 놀랄지 않은 모습이었다.

역시 이시하.

담력이 좋은 남자였다.

나는 시하를 안아 올리며 장롱에서 빼 왔다.

승준도 마찬가지였다.

“자! 그럼 먼저 찾게 된 하나가 이제 술래!”

“아. 맞다! 하나! 너! 시혀기 형아에게 힌트 줬지!”

“안 져써!”

“내가 다 들었어!”

“안 져써!”

어이쿠. 이런.

아무래도 작게 말했는데 다 들었나 보다.

“자! 자! 이제 힌트 주기 없기. 이러면 됐지? 규칙이 추가됐어요.”

“아아. 형아!”

나는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시하가 주위에 없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시하가 있는 곳을 보고 피식 웃었다.

‘시하야. 아직 시작 안 했어…….’

어느새 시하는 자기가 다 숨었다고 나를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다 숨었다고 말 안 해도 돼…….’

아무래도 시하는 너무 솔직한 아이였나 보다.

아무튼, 너무 귀엽다.

“그럼 다시 시작할까?”

그렇게 다시 시작된 숨바꼭질.

나와 시하, 승준이 함께 커튼 뒤에 숨어서 단번에 걸렸다.

왜 함께 숨어야 하는지 이해는 못 하겠지만 애들은 그게 재밌나 보다.

걸려도 히히덕거리고, 찾아도 히히덕거리고.

만족할 만한 숨바꼭질이었다.

그리고 내가 간과한 게 하나 있다.

이 놀이는 나의 체력만 아껴주는 게 아니라 아이들의 체력도 아껴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아버렸다.

***

아이들과 낮잠을 자고 일어났다.

대충 시간을 보니 일어나서 경기장을 가야 했다.

오늘은 건스 국내 대회가 있는 날이다.

아이들도 데려가 보여주면 좋을 것 같았다.

그때 시하만 데려가서 승준과 하나가 많이 부러워했다.

‘사실 스티브 백에게 벨 선수를 소개해 주러 가는 거지만.’

저번에 약속한 대로 사인도 받고 사진도 찍게 해 줘야지.

아마 엄청 좋아할 것이다.

벨 선수에게도 미리 말을 했는데 흔쾌히 승낙받았다.

대신 다음에 같이 피시방 가기로 거래했다.

스티브 백도 같이 갔으면 좋겠지만 지금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근데 선수들도 피시방을 가나?’

하긴 집에서 하는 거랑 훈련하는 방에서 하는 거랑 천지 차이일 것이다.

“얘들아. 준비 다 됐어?”

“아아.”

“응.”

“응!”

다들 기운을 회복했는지 아주 활기차다.

나도 그냥 일 안 하고 낮잠을 자기 잘했다.

원래라면 스티브 백의 자서전을 적기 위해 연표 정리를 해야 했지만…….

‘어쩔 수 없었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의 체력이 버텨주지 못했다.

요즘 이리저리 준비한다고 신경을 많이 쓴 탓이다.

“그럼 출발하자.”

“네!”

우리는 집을 나섰다.

빨간 차에 탑승해 경기장으로 이동했다.

“다들 신나는 노래도 듣자.”

노래도 틀고 애들의 꾀꼬리 같은 노랫소리를 반주 삼아 조심히 운전했다.

아이들은 소중하니까.

그렇게 어느새 경기장에 도착하고 알리사와 스티브 백을 만났다.

먼저 시하가 알리사를 불렀다.

“아아. 리사!”

“안녕. 시하야. 승준이랑 하나도 왔네?”

“하이!”

승준과 하나가 신나게 알리사에게 인사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고 있는 스티브 백이 다가왔다.

“애들이 많네요.”

“하하. 네. 애들도 게임을 좋아해서요. 그런데 알리사랑은 인사했어요?”

“하하. 네. 파이팅이 넘치는 사람이던데요. 설마 외국인이 대표인지 몰랐습니다.”

“아! 그건 예상 못 했겠네요.”

“네. 전 당연히 한국인인 줄 알았죠.”

“근데 알리사라고 말해 드렸는데 정말 예상 못 했어요?”

“그냥 제 이름에 맞춰 영어 이름으로 가르쳐 주나 싶었죠. 아무래도 미국에서 소개해 주고 같이 일하기도 할 거니까.”

“그렇게도 생각했을 수도 있겠네요.”

하긴 설마 대표가 알리사일 줄은 누가 알았겠나.

스티브 백이 말했다.

“이제 들어가죠. 전 자리가 정해져 있어서…. 나중에 경기 끝나고 저기 앞에서 만나죠.”

“그렇게 해요. 저희는 2층으로 올라갈 거라…….”

“크흐. 정말 기대되네요.”

“하하. 그렇게 좋으세요.”

“그럼요.”

스티브 백의 눈이 아이처럼 빛났다.

이런 사람도 있구나 싶어서 신기했다.

사업가의 면모를 더 많이 봐서 그런지도 몰랐다.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그래요.”

우리는 손을 흔들고 헤어졌다.

나는 알리사를 보았다.

“알리사. 우리도 이제 2층으로 올라가요. VIP 자리 맡아뒀어요. 애들이 떠들어도 상관없을 거예요.”

“어떻게 잡은 거예요?”

“아하. 벨 선수가 잡아주던데요? 원래 거기 관객 안 두는데 가끔 친한 사람들 보라고 내주기도 한다네요.”

“와!”

2층 부근에 푹 파인 곳에 의자 몇 개 있는 곳.

그곳으로 우리는 향했다.

걸어가면서 알리사와 일 이야기를 했다.

현재 파랑몰 사람들 분위기는 어떠하냐 정도.

대외비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툭.

누군가가 어깨를 부딪치며 스쳐 지나갔다.

“죄송합니다.”

“저도 죄송합니다.”

마스크를 낀 남자가 고개를 숙였다.

나는 이상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름에 마스크?’

물론 실내라서 에어컨이 켜져 있긴 하지만 마스크까지 쓸 정도인지는 모르겠다.

아마 감기라도 걸렸겠지.

나는 별생각 없이 시하의 손을 잡고 걸었다.

“얘들아 재밌겠지?”

“네!”

그래. 오늘 하루 체력을 활활 불태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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