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8화 (118/500)

118화

선생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시하야. 왜?”

“쉬!”

“쉬야?”

“아냐.”

시하가 검지를 입에 댔다.

“쉿!”

“응?”

“비밀.”

“아! 시하야. 선생님과 비밀이라고?”

“아아.”

그런데 비밀이라는 말을 들었는지 승준이 말했다.

“시하야. 나도 알고 싶어!”

“아냐.”

“나도 비밀 말해줘. 말 안 할게. 나만 알고 있을게.”

시하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황당해했다.

아니. 시하야. 그건 고민하면 안 되지.

그때 하나가 나섰다.

“하나도. 하나도! 시혀기 오빠 비밀!”

저기 하나야? 어떻게 생각하면 시혀기 오빠 비밀이라는 발상이 나오는 거니?

“아?”

시하가 다시 한번 고민하기 시작했다.

시혁의 비밀이 있는 걸까?

선생님은 자신도 모르게 궁금해졌다.

“크흠.”

기침을 하며 정신을 차렸다.

앞에서 지켜보고 있던 원장이 반 접힌 씨앗호떡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럼 이 머그잔은…….”

그때 재휘가 오들오들 떨면서 손을 들었다.

“선생님. 사실 재휘가 했어요.”

“응?”

아이들이 재휘를 바라보았다.

선생님이 재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솔직히 말해줘서 고마워. 그런데 재휘야.”

“네…….”

“사실 이건 부러져 있던 거였어! 사실 범인은 선생님이었지!”

사실 잘못한 건 재휘가 아니었다.

아이들 손에 닿는 곳에 놓아둔 선생님이 잘못이지.

그래서 잘못을 선생님 쪽으로 돌렸다.

마치 하나의 범인 찾는 게임인 것처럼.

아이들이 신이 나서 선생님을 가리켰다.

“찾았다. 범인!”

“선생님이었네!”

“근데 손잡이 붙어 있었잖아?”

선생님이 씩 웃었다.

“선생님이 붙여 놓았던 거였지! 그래서 건드리지 말라고 했어요. 다들 이번 범인 찾기 게임을 잘했어요.”

“와!”

재휘가 다행이라는 듯이 손으로 가슴을 쓸었다.

시하가 그런 재휘를 보며 손을 꼬옥 잡았다.

“재히.”

“으응.”

“개차나. 개차나.”

“으응. 고마워.”

솔직한 대답은 언제나 용서받는 건 아니다.

재휘가 숨긴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반성하며 용기 낸 아이에게 가혹한 환경을 부여하는 것도 좀 그렇지 않은가.

자기가 하지 않은 일인데도 마치 크게 피해를 보게 되는 일 또한 피해야 한다.

이렇게 배울 수 있는 건 어릴 때뿐이다.

이렇게 용서받을 수 있는 것도 어릴 때뿐이다.

어른이 되면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니까.

“그럼 범인을 찾았으니 맛있는 간식을 먹을까요?”

“네!”

아이들의 생각은 온통 간식 생각으로 뒤덮였다.

***

-사무실.

알리사는 이번 댓글의 범인을 잡기 위해 고심 중이었다.

제일 먼저 달렸던 댓글들.

분란을 조장했던 댓글들.

그들이 실제로 옷을 구매하고 후기도 남겼었다.

“적어도 적이 누군지는 알아야겠어요.”

옆에서 열심히 포장하던 혜나가 의문을 내뱉었다.

“어떻게?”

“돈을 받고 거짓말을 했다면 역으로 돈을 받고 진실을 말하겠죠.”

“흠? 돈을 쥐여 줄 거야?”

“아니요? 당연히 속여야죠. 아니면 다르게 돈 쥐여 주거나.”

“쉽지 않을 것 같은데?”

“계약서를 나눈 것도 아니고 그렇진 않을 거예요. 그런 부류들은 내가 잘 알 거든요.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장사를 하겠죠.”

“하긴. 그런데 알면 어떻게 하게?”

“알아야 나중에 역풍이 불지 않겠어요?”

“흐음. 그런데 우리 파랑몰이라고 다가가면 경계하지 않을까?”

“일단 속여야죠. 그건 걱정 마요. 나는 이 사람들보다 더 거짓말을 잘하니까.”

알리사가 자신 있게 웃음을 지었다.

시혁이 보여주는 것만큼 자신도 무언가 보여줘야 했다.

그걸 위해서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다.

“그 사람들 옷 받은 전화번호가 어딨더라?”

“아! 여기 있어.”

“고마워요.”

알리사가 톡으로 받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

신호음이 길게 가면서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걸걸하고 낮은 목소리.

알리사가 자동으로 녹음을 시작했다.

「여보세요?」

“네. 안녕하세요. 김병수 씨 맞나요?”

「네. 맞는데요. 누구세요?」

“여긴 HS 신발 가게입니다. 소개받고 연락드렸어요. 아주 좋~은 후기를 남겨준다고 하더라고요.”

「아…! 맞습니다.」

혹시 아니면 어쩌나 싶었는데 정말로 후기를 조작한 거였다.

알리사는 속으로 굉장히 열불이 났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옆에서 듣고 있던 혜나만 가슴을 탕탕 쳤을 뿐이다.

“이번에 한 건 했다고 들었거든요. 파랑몰에서.”

「하하. 맞습니다. 페이가 꽤 짭짤했죠.」

“이번에도 저희가 동종업계 신발이랑 페이는 10만 원으로 드릴 건데 괜찮으시죠?”

「물론이죠. 얼마든지요.」

“근데 이건 확인하려고 물어보는 건데요.”

「네.」

“제가 소개해준 업체랑 같이 일한 거 맞는지 알고 싶어서요.”

「네! 아루아루에서 부탁받았죠.」

“아! 맞네요. 파랑몰 후기 남기라고 한 거 맞죠?”

「네. 맞아요.」

드디어 범인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전부 아루아루가 주도해서 만든 것이었다.

그 이유는 모르지만.

“그럼 확실하네요. 알겠습니다. 아 혹시 어디 사세요?”

「저 경기도에 삽니다.」

“아하. 경기도 쪽에 사시는구나. 그럼 만나서 이야기해도 될까요? 교통비도 지원해 드릴게요.”

「만나서요?」

“네. 아무래도 후기 의뢰 개수가 좀 돼서요. 부산 쪽으로 오시면 넉넉하게 100 정도 챙겨드릴게요.”

「부산 어디로?」

“해운대역에서 만나죠. 이번 주 토요일이면 괜찮을 듯한데…. 1시쯤에 만나서 이야기해요.”

「알겠습니다. 그럼 그때 뵐게요.」

“네에~”

알리사는 통화를 종료하고 폰을 책상 위에 놓았다.

웃음기가 싹 빠진 얼굴을 본 혜나가 옆에서 오들오들 떨었다.

“알리사. 얼굴 너무 무서워. 그런데 진짜 만나러 갈 거야?”

“내가 왜요? 그냥 차비 쓰고 다시 허탕 치며 돌아올 건데.”

“응?”

“당한 거 갚아줘야죠. 이거 녹음한 거 변호사님에게 주면 같이 고소되죠?”

“아마? 사실 잘 모르겠는데?”

“뭐 물어보고 안 되면 어쩔 수 없죠.”

“와. 그런데 부산까지 똥개훈련 시키네.”

“똥개훈련이요?”

“응. 한국에서는 저런 걸 똥개훈련 시킨다고 해. 이야. 부산까지 훈련 제대로 하겠다.”

“나중에 후기 몇 개 떠보고 같이 똥개훈련 시켜야겠다.”

“이야. 무섭네. 돈 번 거 차비로 다 쓰겠다.”

알리사는 그 정도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문제는 그런 게 아니었다.

아루아루.

조금 알려진 의류 브랜드.

사실 그냥 아는 사람만 안다.

뭐 그렇게 엄청 잘나가는 건 아니고.

꽤 감각 있다? 이 정도 감상만 느껴지는 아동복 쇼핑몰이었다.

“그런데 아루아루에서 왜 그랬을까요?”

“뭐 견제 이런 건가?”

“아니요. 거기 대표랑은 알지도 못하는데요.”

“그러게. 이런 일 시켰으면 대표가 했을 텐데. 별일이네. 진짜.”

“그러니까요. 대체 왜 그랬는지 제 쪽에서 묻고 싶네요.”

“흠. 아니야. 알지도 못하는데 이렇게 공격할 리가 없어. 잘 한번 기억해 봐.”

“뭐, 사진 같은 거 없어요?”

“음…. 아는 사람을 통해서 한번 알아볼까? 사진 같은 건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부탁 좀 할게요.”

“오케이!”

혜나가 장난스럽게 동그란 원을 만들었다.

알리사는 그 모습에 살짝 웃었다.

그때 시혁에게 전화가 왔다.

새로운 계약 성공을 알리는 전화가.

***

나는 계약 사실을 알린 다음에 사무실에서 와서 모두를 모아놓고 설명을 했다.

알리사는 이미 아는 내용이었지만 무용담을 듣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대충 요지만 간략하게 말하고 다들 수긍했다.

앞으로 이 사업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시작으로 나쁘지 않을 듯하다.

“알리사. 미국으로 출장 좀 가야 할 것 같아요. 직접 가서 공장들도 둘러보고 거래처와 친분도 쌓아야 할 거 같아서…….”

“네. 그럴게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단 언어에서 막히지 않으니까요. 이 부분은 제가 할 수 없는 부분이죠.”

“네. 감사해요. 제가 개인적으로 한번 만나볼게요.”

“내일 건스 국내 대회를 하니 대충 끝나는 시간에 밥 한 끼 먹으면서 이야기 나누면 될 거예요.”

“그래야죠.”

아마 알리사라면 잘할 것이다.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모든 걸 내가 다 해줄 수 없는 부분이니까.

거래처와 친해지고, 공장의 방식을 보고.

이런 일들은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렇게 잘 아는 건 아니니까.’

전문 분야에 대한 지식이 높을수록 일 얘기할 때 농담도 통하고 재밌는 법이다.

그리고 알리사라면 미국 문화에 대해서도 잘 알 테니 서로 친해지는 데 문제없었다.

특히 더 좋은 점은 인종차별을 당하지 않을 거라는 점.

최대한 사람 만나는 데 리스크가 적은 인선으로는 딱 맞았다.

“그럼 오늘 저는 가보겠습니다. 대충 제가 할 일은 끝난 거 같아서.”

“아. 잠시만요.”

“네.”

“드디어 국내에 범인을 찾았어요.”

“아. 진짜요?”

“네. 아루아루라는 곳이 범인인 것 같은데 아마 그쪽 대표님이 일을 벌였을 것 같더라고요.”

“그쪽 대표님이 왜?”

알리사가 고민하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사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혜나 언니. 사진은 구했어?”

“응. 여기.”

알리사가 사진을 받자 얼굴을 굳혔다.

“이 사람…….”

뭘까? 아는 사람일까?

“왜요. 알리사? 아는 사람이에요?”

“잘 알지는 않는데…. 본 적은 있어요.”

“진짜요? 어디서요?”

알리사가 기억을 더듬는 듯 팔짱을 끼고 손가락으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때 정말 별거 없었는데…….”

“궁금하게 하지 말고 어서 말해요. 작은 단서라도 좋으니까.”

“아마 수현이랑 모터쇼에 갔을 때…….”

“아. 그때요?”

“네. 그때 파랑몰을 차릴 거라고 말했거든요. 대충 밑그림을 그려보고 있던 시기라.”

“그래서요?”

“근데 쇼핑몰 이야기가 나오자 그 사람이 불쑥 끼어드는 거예요.”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끼어들다니.

굉장히 무례하게 보였다.

물론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는 사람일 수도 있고.

하지만 지금 공격받은 상황에서 들으니 부정적으로 느껴졌다.

“어떤 이야기를 했는데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막 자기 자랑을 했던 거 같아요. 나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다. 엄청나지? 뭐 그런 느낌?”

“자기 과시가 뛰어난 사람이네요.”

“성공했으니까. 그래서인지 자기 말이 옳다. 이렇게 하면 된다. 이런 고집을 보여줬는데 대충 받아줬거든요.”

옆에서 혜나가 발끈했다.

“그걸 받아주면 안 되지.”

“그냥 적당히 받아주다가 헤어지려고 했죠. 옆에 수현이도 있고 그래서…….”

“어휴.”

아무래도 적당히 대처하려고 했던 모양이었다.

나라도 칼같이 끊지는 않고 적당히 들어주다가 핑계 대며 빠져나올 것 같기도 하다.

나도 팔짱을 끼며 물었다.

“그게 끝이에요?”

“마지막에 명함 주며 연락처를 물어보길래 거절했죠. 이야기는 이게 다예요.”

“아…. 뭐지?”

뭔가 하나도 짐작되지 않았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이유를 알 수 없다.

알리사도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

답을 쓰기 모호한 문제를 받은 느낌이다.

그때 혜나가 책상을 쿵 하고 쳤다.

“아. 설마?!”

“언니. 뭐가 생각났어요?”

“설마 자기 번호 주는 거 거절했다고 이러는 거 아니지?”

“에이. 설마요…….”

“하하. 그치? 설마 그런 일이 있을 리가. 근데 들어보면 그거밖에 없는데?”

여기까지만 들어보면 그럴듯하게 들린다.

세상이 참 넓긴 하니까.

“아무튼, 그 대표라는 사람은 나중에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할 겁니다. 그렇게 될 테니까.”

“그렇죠?”

“네. 지금은 대응 안 하고 있지만, 증거가 있으니 기사로만 나가도 타격이 크죠. 이런 건 인터넷 세상 판매가 다인 곳인데. 거기에 비해 저희는 또 다른 메리트가 있어요.”

“아! 미국 사업만 잘되면 주기적으로 공급하는 옷들이 있는 거네요?”

“그렇죠. 농산물을 학교에 공급하는 것이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좋은 것처럼요.”

“아하…. 거기까지는 생각 못 했네요. 아! 미국 공장을 둘러보라는 게?”

“네. 저희 쪽에는 디자인이나 패턴을 넘기는 식으로 진행하면 좋을 것 같아서요. 여기서 만들어 보내면 관세가 많이 붙으니 현지에서 사려는 옷 가격이 비싸지죠.”

“그렇네요? 제가 가서 친해지고 하는 역할이 그래서 중요하구나…. 세금은 생각 못 했어요.”

“앞으로 한국과 미국의 FTA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현지 공장 이용하는 게 낫기도 하고. 사실 저도 잘 몰라요.”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싱긋 웃었다.

“이제부터 저도 열심히 공부해야겠네요.”

알리사가 주먹을 불끈 쥐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그걸 몰랐어? 라는 표정을 짓는 직원도 있었다.

아마 내가 미국에 가라는 말을 제대로 알아들은 거겠지.

이 파랑몰은 걱정할 것 없었다.

다들 처음이라 경험이 부족한 것뿐이지 똑똑한 친구들이었으니까.

잘해낼 거라고 믿는다.

“그럼 저 진짜 가요?”

“네! 오늘 고마웠어요.”

그렇게 가려고 할 때 알리사에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알리사가 나에게 손을 흔들며 전화를 받았다.

“네. 여보세요.”

나는 가방을 챙겼다.

이제 시하를 보러 가야겠다.

“네…. 네? 아루아루 대표님이요?”

우뚝.

이거 참. 멈출 수밖에 없는 전화잖아?

모두의 시선이 알리사에게 집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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