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5화 (115/500)

115화

-파랑몰 사무실.

나는 이번 일을 의논하기 위해 파랑몰 사무실을 방문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일어난 일이 있을 텐데도 다들 반갑게 맞이해 주는 분위기였다.

이 정도 기운이면 다시 재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좋은 해결을 위해 함께 힘내 보자고요.”

“이렇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에이. 아니에요. 저도 고용된 건데요. 그쵸? 알리사?”

알리사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이후로 완전히 기운을 되찾은 거 같았다.

“그럼 회의 시작하죠. 다들 좋은 해결 방법 있을 거 아니에요.”

각자가 생각해둔 게 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로고를 만든 남자가 손을 들었다.

“일단 심한 악플에 관해서 법적인 절차를 밟기로 했어. 영업 방해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생각이야.”

“변호사 비용이 꽤 들지 않아요?”

“그래서 손해배상 받은 비용은 전부 변호사님 드리기로 했어. 여기서 우리가 받을 건 없고. 일단 고소장 접수를 알아봤는데 거기에 관한 공지를 남길 생각이야.”

그렇게 하면 일단 악플을 다는 사람이 싹 없어지기는 할 것이다.

좋은 방법인 것 같았다.

알리사가 말했다.

“난 잘 모르겠어. 변호사도 괜찮은 변호사를 구해야 하지 않을까?”

맞는 말이었다.

기왕이면 힘 있는 변호사가 좋을 것 같았다.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부분은 괜찮아. 우리 사업이 애초에 학교 지원을 받은 부분도 있어서. 청년 스타트업으로 통과되었거든.”

그런 거였어?

그렇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무래도 강인대학교 법학과 출신으로 변호사가 고용될 것이고, 거기에 맞게 빵빵한 선배님들의 학연이 돌아가게 될 것이다.

‘와…. 악플들 큰일 나겠네…….’

만약 판사 배정 역시 강인대학교 출신이라면?

한마디로 잘못 건드렸다.

감히 학교가 지원하는 스타트업을 건드리다니.

차라리 그냥 하다가 잘 안 되어서 실패하는 게 훨씬 낫지.

이건 뭐 글 잘못 썼다가 눈물을 쏟게 될 것 같았다.

옆의 여자가 손을 들었다.

“문제는 악플이 아니에요. 이미 저희 쇼핑몰은 이미지가 망가져서 계속 장사할 수 있을까요?”

그 대답은 알리사 입에서 나왔다.

“할 수 있어. 반드시 해야지. 이건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해.”

“기회요?”

알리사가 눈을 반짝였다.

로고를 만든 남자도 흥미롭게 쳐다보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오히려 크게 터뜨리는 거지. 그거 알아? 내가 거짓말을 좀 잘해 봐서 아는데 이게 하면 할수록 걷잡을 수 없이 커지더라.”

나는 알리사의 말에서 오랜만에 그날의 일을 떠올렸다.

알리사가 연기했던 날.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주지 않을 정도로 거짓말을 잘한다고 했던 게 생각이 났다.

그날의 알리사는 누구보다 빛나고 있었다.

지금과 과거의 이미지가 겹쳐졌다.

‘완전히 돌아왔네. 진짜.’

어제는 그저 약해져 있었을 뿐이다.

누구에게나 그런 날이 있다.

툭 건드리면 울어버릴 것만 같은 날이.

알리사는 그게 어제였을 뿐이다.

“그래서요?”

“내가 한국에 좀 살아봤는데 딱 눈에 띄는 게 있더라.”

“뭐가요?”

“동정심이 많다는 거. 시혁이 오기 전에도 말했지만 지금 누군가에게 공격받는 거잖아?”

“네.”

“일 좀 키워서 기사를 내자. 악의적인 힘으로 힘들었지만 이겨내는 스토리로.”

“오!”

“그러면 효과도 상당할 거 아니야. 맞지?”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이미지야 언제든지 변화 가능하니까. 아까 고소한다고 한 거로 확 떠올랐어. 잘만 엮으면 기회가 될 수 있겠구나 싶어서.”

그 말에 다들 의욕을 내보였다.

아무래도 내가 왔을 때 다들 기운 넘치는 모습들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나 보다.

아무래도 분노했겠지.

어떤 놈들이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만한 일을 벌였다.

그것도 고소 안 당할 정도로 교묘하게 말하면서 선동한 후기들.

그놈들을 처벌하기는 힘들겠지만…….

아무튼, 이런 적으로 인해 오히려 저 사람들이 똘똘 뭉친 것 같았다.

‘그래. 이거지.’

다들 열정 넘치는 20대의 힘을 얕보았다.

어쩌면 내가 없었어도 잘 해결해 나갔을지도 몰랐다.

알리사가 말했다.

“그래서 중요한 건 한번 일어나는 거야.”

“어떤 거로요?”

“내가 생각해 봤는데 미국에 한번 다녀와야 할 것 같아. 거기에 거래처를 하나 뚫으려고.”

“한국이 아니라요?”

“아니. 미국으로 정했어. 물론 한국도 다른 쪽으로 생각해볼 거야. 하지만 미국이라는 곳을 선택한 건 결정적인 이유가 있어. 그치?”

알리사가 나를 보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를 바로 잡았다.

“꼭 미국이어야 할 이유는 화제성 때문이에요. 이겨내서 한국에 거래처를 뚫었다. 이건 기사로 쓰기에는 너무 약할 거라는 게 제 생각이죠. 그리고 누가 공격했는지 모르니 일단 다른 곳에 눈 돌리는 목적도 있어요.”

“무슨 방법이라도 있어?”

“직접 찾아가서 여기저기 찔러 볼 생각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싶지만, 어느 정도 준비는 해 둬야죠.”

“어떻게?”

나도 거기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해 봤다.

하지만 결국 필요한 것은 정보였다.

사람에 관한 정보.

아니면 친해질 수 있는 계기.

무작정 찾아간다고 다 능사는 아니니까.

어쩌면 그 열정에 만나는 줄 수 있었다.

“여러분들이 만든 디자인에 승부수를 한번 띄워 보죠. 준비 기간은 딱 일주일만 주세요. 어차피 지금은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그 부분에 관해서는 알리사와 제가 맡을게요.”

“정말 일주일이면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거야?”

“뭐, 최대한 해 봐야죠. 어차피 정면돌파를 하는 거니까.”

내가 두루뭉술하게 말하는 게 의문이 들었는지 남자가 불안한 눈치였다.

좀 더 보충 설명을 해 줘야겠다.

“일단 시카고 외교관 쪽으로 연락을 넣어볼 생각이에요. 답이 없으면 직접 찾아가는 쪽도 생각해 보고.”

어떻게든 부딪치고 파면 나오지 않을까 싶다.

그때였다.

폰이 웅웅 울리더니 홍진수에게 연락이 왔다.

“죄송합니다.”

나는 사과를 하고 통화를 끊었다.

그런데 문자로 급한 일이라서 빨리 받아 달라는 말에 어쩔 수 없이 양해를 구하고 밖으로 나왔다.

“여보세요.”

「시혁 씨! 좋은 아침입니다.」

“지금 벌써 점심인데요?”

「하하. 그렇습니까? 아! 맞다. 좋은 일이 들어왔습니다.」

“설마 이게 급한 일이에요?”

「네. 이게 시혁 씨에게 급한 일은 아닐 수 있는데 저쪽에서 빨리 답을 바라고 있거든요. 한국에 오래 머물러 있는 것도 아니라서.」

“네? 누굴 말하는 건데요?”

「혹시 스티브 백이라고 아십니까? 미국에서 의류 쪽으로 성공한 사업가인데.」

“잘 몰라요. 가만. 의류 쪽이라고요?”

「네!」

“현업에서 뛰고 계시는 분이겠네요?”

「그렇죠. 아주 잘나가고 계십니다.」

나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찾았다.’

미국의 의류 현지 정보를 누구보다도 잘 줄 수 있는 사람.

현업으로 뛰는 사람만큼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앞으로 KI 미디어와 함께 자주 일해야겠다.

중국 계약 쪽으로 도움을 줬더니 이렇게 다시 도움으로 돌아온다.

좋은 상생 관계라는 게 이런 걸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요? 그 사람이 왜 절?”

「하하. 자서전을 맡기고 싶다고 하네요. 시혁 씨 필력이 좋잖아요.」

“절 콕 집어서요? 아니면 홍 과장님이 추천해 주신 건가요?”

「당연히 제가 추천했죠! 물론 스티브 백이 이미 시혁 씨를 알고 있긴 했지만. 놀라지 마십시오. 무려 제이슨 작가의 친구분이었답니다. 하하. 이런 일도 있네요.」

“와! 진짜요? 대박이네요.”

「그래서 어떻게 이 일을 맡아주실 겁니까?」

“좋아요. 안 그래도 급하게 할 일이 있었는데 잘됐네요.”

「그럼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연락처를 드릴 테니 미팅 잘해 보세요.」

나는 홍진수 과장이 너무 고마웠다.

“네. 계약서도 작성해야 하죠?”

「네. 아! 혹시 미팅할 때 저희 회사 응접실이나 회의실 사용하시죠. 어차피 계약서도 작성해야 하니.」

“그럼 고맙죠.”

「그럼 시간은 저희가 조율하겠습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죠. 모레만 아니면 됩니다.」

“모레는 왜요?”

「아…. 사실 스티브 백이 한국 온 이유가 건스 국내 시합을 보러 온 거라서요.」

“네?”

「하하! 저랑 똑같은 반응이시네요. 역시 저희는 마음이 잘 맞는…….」

“아, 이게 신호가 왜 이러지? 아무튼, 부탁드릴게요. 전 시간이 언제든 되니까요. 제가 지금 회의 중이라서. 그럼 이만.”

「네? 잠시만요. 시혁 씨! 이번에 어떤 새ㄲ… 아니, 출판사랑 회의합니까! 네?!」

뭔가 단단히 오해하고 계신다.

나는 그런 거 아니라고 말하고 통화를 종료했다.

기쁜 마음으로 사무실에 다시 들어가 말했다.

“저기요. 이틀. 딱 이틀 만에 정보 얻어오겠습니다. 좋은 정보가 들어와서요. 빠르게 치고 들어가 보죠.”

아무래도 이것 덕분에 많은 시간이 단축될 것 같았다.

스티브 백.

과연 어떤 사람일까?

누구냐에 따라서 전략이 바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좋은 사실이 있다면 그쪽에서 나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

‘그럼 어디 한번 해 보자고.’

이상하게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

스티브 백.

미팅하기 전에 자료를 찾아보니 꽤 대단한 사람이었다.

미국 의류 쇼핑몰에 취업하면서 여러 거래처와 인맥을 쌓았다.

그런 후에 돈을 모아 개인 창업을 이뤘고, 현재 미국에서 꽤 잘나가는 쇼핑몰 중의 하나였다.

이름 있는 최상위 브랜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저게 어디야.’

표면적인 정보만 있어서 다는 알 수 없었지만, 굉장히 성공한 사람이라는 건 알겠다.

일단 미국은 시장 크기부터 한국과 다르니까.

‘이 거래처들이나 공장을 소개받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솔직히 긍정적으로만 생각하기에 뭔가 부족했다.

그래. 스티브 백이 나에게 좋은 인상을 받고 있다 한들 사업가였다.

내가 일방적인 도움을 바라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일방적인 도움이 맞지. 아무리 납품 형식이라고 하더라도 도움이 맞아.’

나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이 파랑몰에 계약직으로 왔다고 한들 도움을 제대로 줄 수 있어야 했다.

파랑몰의 시작이 인맥으로의 도움이라니.

그건 앞으로의 첫 단추에 지대한 의존증을 발휘할 수 있었다.

물론 이건 내가 과민 반응을 하는 걸 수도 있다.

‘내 욕심일지도 모르지.’

적어도 이 정도 성공한 사업가라면 대등하게 거래 관계를 이뤄 신뢰를 유지하고 싶었다.

그래. 통역사의 일은 최대한 양쪽의 조율과 필요하다면 분위기를 만든 것.

그 기질이 발동한 건지도 몰랐다.

‘옷. 의류…….’

고민이 계속되자 머리에 김이 뿜어지는 것 같다.

그때 번뜩이는 생각 하나가 머리를 강타했다.

그와 동시에 모든 자료가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미래 산업 모델]

지금으로 치면 3년 전 자료라고 할 수 있는 그것.

하지만 3년 후인 지금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미래 산업 모델이 아니라 현재 산업 모델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건 무기로 들이밀 만한데?’

하지만 신중해야 한다.

이번 만남은 나에게 그저 자서전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먼저 사람을 파악하는 것.

그건 결국, 만나면서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나에게 두 가지가 유리해.’

나는 가방을 챙기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이제 스티브 백을 만나러 갈 시간이다.

즉석에서 생각했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시작해 보자고.’

문을 열고 곧장 KI 미디어로 향했다.

차를 끌고 도착하자마자 안으로 곧장 들어갔다.

먼저 나를 반긴 것은 홍진수였다.

“시혁 씨!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보자. 내가 얼마나 기다렸더라? 한 한 달?”

“어제도 통화해 놓고 한 달이라뇨.”

“하하. 얼굴을 안 봤잖습니까. 얼굴을.”

“다음에는 영상통화라도 하죠.”

“정말요?”

나는 홍진수의 진심 어린 표정에 찔끔하며 뒤로 물러섰다.

“아니요. 제가 잘못 말했네요.”

“아쉽네요.”

홍진수가 정말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스티브 백은요?”

“아! 마침 조금 전에 도착했어요.”

“잘됐네요. 어서 만나죠.”

“절 본 것보다 더 좋아하시는데요? 이거 참. 섭섭합니다.”

“섭섭한 것도 참 많아요.”

“하하. 농담입니다.”

얼굴을 보니 농담이 아니신 거 같으신데?

나는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일단 살며시 모른 척하자.

홍진수가 문고리를 잡으며 말했다.

“안에 들어가면 계약서가 있을 겁니다. 시혁 씨가 사인만 하면 되죠. 그럼 편하게 이야기하시죠. 전 문밖에서 엿듣고만 있겠습니다.”

“???”

“농담입니다.”

“정말 농담이시죠?”

“하하. 네.”

“엿들을 거면 그냥 안에 들어와서 들으세요.”

“정말 그럴까요?”

홍지수도 냉큼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마 지금쯤 내 얼굴이 황당한 얼굴이 되었지 않았을까?

“정말 그러시려고요?”

“계약서만 가져갈게요. 계약서만. 그리고 시혁 씨 커피는 누가 타줘요?”

“제가 타도 되는데요?”

“하하. 그럴 수 없죠.”

너무 귀빈 대접 아닌가?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도 이렇게 하는지 궁금하다.

아니, 어쩌면 이게 KI 미디어 영업력의 힘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안으로 들어가자 스티브 백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하하. 만나서 반갑습니다. 시혁 씨. 스티브 백입니다.”

“네. 이시혁입니다.”

나는 악수를 했다.

꽉 잡은 손에 힘을 느끼며.

‘오늘 하루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나는 눈을 빛내며 스티브 백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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