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4화 (114/500)

114화

“그럼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내일 이야기 좀 나눌까요?”

“그래요. 시하도 집에 가야 하잖아요.”

“아?”

시하는 가기 싫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알리사는 그런 시하가 귀엽다는 듯이 볼을 꼬집었다.

“왜? 나 가지 말까?”

“아냐. 시하. 형아. 노라.”

“응?”

“노리터. 노라.”

“아…….”

시하가 아직 놀이터에 놀고 싶었나 보다.

착각했단 걸 안 알리사가 머쓱하게 코를 스윽 문질렀다.

그때 시하가 알리사의 어깨를 잡았다.

“리사도. 노라.”

“응? 나도?”

“아아.”

나는 그런 시하의 어깨를 잡았다.

그렇게 세 명이 나란히 어깨를 잡게 되어 모양이 이상해졌지만, 딱히 신경 쓰지는 않았다.

“시하야. 이제 집에 가야 해. 밥 먹어야지.”

“아냐. 노라.”

“그래? 형아는 간다?”

“아냐.”

나도 시하랑 놀이터에서 놀아주고 싶은데 곧 저녁 먹을 시간이다.

이리저리 시간이 지나서 밥을 준비하려면 시간도 걸리는 것도 사실이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알리사가 벌떡 일어났다.

“그러지 말고 잠깐 놀아요. 오늘은 제가 밥 살게요.”

“음. 그럼 놀다가 근처 식당에서 밥 먹죠. 거기 비빔밥이 참 맛있거든요. 반찬도 5개 주고.”

“좋아요.”

그렇게 우리는 본의 아니게 시하랑 놀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 알리사를 혼자 보내는 것보다 밥이라도 한 끼 먹이고 헤어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밥 먹으면서 좀 물어볼까?’

그렇게 시하와 놀아주다가 근처 식당으로 갔다.

“형아. 배고파.”

“여기 식당에 비빔밥 맛있으니 그거 먹자.”

“아아.”

사실 돌솥비빔밥을 먹고 싶었지만, 시하랑 먹을 때 식혀주면 또 시간이 너무 가기에 그냥 비빔밥을 시켰다.

반찬이 나오고 금방 밥이 나왔다.

나는 된장을 살짝 넣고 고추장으로 밥을 슥슥 비볐다.

달걀노른자가 부서지며 밥알이 윤기 있게 비벼졌다.

“알리사. 먹어요.”

“네.”

“시하야. 먹자. 아~”

“아~”

시하가 오물오물 잘도 먹었다.

나는 숟가락을 손에 쥐여주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앞을 보니 알리사가 열심히 비빔밥을 먹고 있었다.

‘잘 먹는단 말이야.’

울었던 건 언제냐는 듯이 밥을 먹는데 내가 쳐다보니 민망한 웃음을 보였다.

“슬픈 일이 있어도 배는 고픈지 밥은 들어가네요.”

“한국인은 밥심으로 버텨야죠.”

“풉.”

“천천히 먹어요. 아무도 안 뺏어가니까.”

“네.”

그렇게 식사를 하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첫 번째.

제일 이상한 점이 있다.

바로 댓글들이다. 처음에 안 좋은 후기들이 여러 판매 사이트에 올라왔다.

이건 평범하게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요즘 별점도 주니까.

‘하지만 너무 공교롭잖아?’

이제 막 시작한 곳에서 이렇게 지속해서 같은 말을 할까?

물론 다들 작성된 이야기는 다르지만, 요지는 이거였다.

옷이 별로라는 거.

어떤 이유가 있던지 결론은 저거다.

‘옷은 엄청 괜찮은데?’

솔직히 디자인하지 않은 나로서도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노골적인 후기들이 너무나 수상했다.

‘의심을 안 할 수가 없지.’

두 번째.

만약 누군가 일부러 이런 작당을 꾸민 거라면 누가 득을 볼까?

‘없지.’

이제 막 오픈한 쇼핑몰인데 이렇게 노골적으로 공격하는 업체가 있을까?

대형 쇼핑몰은 쳐다도 보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막힌단 말이야.’

아무도 득을 보지 않는데 누가 이런 걸까?

설마 인별 계정의 알리사를 보고 공격한 걸까?

‘아니야. 그건 뒤에 밝혀졌어.’

디자이너 이름에 알리사의 이름만 있을 뿐.

심지어 밝힌 건 알리사의 주변 인물 중 하나로 보인다.

‘물어보는 게 낫겠어. 짐작 가는 사람 있냐고.’

나는 한 그릇 뚝딱 비운 알리사를 보았다.

“알리사.”

“여기 떡만둣국도 맛있어요? 먹어보고 싶은데.”

“어? 여기 괜찮아요.”

“사장님! 여기 떡만둣국 하나 추가요.”

“시하도!”

알리사가 시하에게 자신의 것을 나눠주겠다면서 같이 먹자고 했다.

많이 먹는 알리사 때문에 물어보는 타이밍이 어긋났다.

나는 테이블을 또닥또닥 두드리면서 알리사를 집중시켰다.

“알리사. 혹시 말이에요. 누군가에게 원한을 산 일 있어요?”

“왜요?”

“제 생각에는 이게 누군가에 의해서 이루어진 일 같아서요.”

“으음…. 딱히?”

“그래요? 흐음. 뭐, 그건 차차 생각해 보는 거로 하고. 일단 해결 방법부터 찾아봐야겠네요.”

“좋은 생각 있으시다면서요.”

“있긴 하죠. 실현될지 모르겠지만. 그건 다 같이 있을 때 말해 보려고요. 알리사는 뭐 없어요?”

알리사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하하. 괜찮아요. 천천히는 좀 그렇고 최대한 빨리 생각해 보죠.”

생각해 보니 이제 진정한 사람에게 뭘 해야 할지 물어보는 것도 멍청한 일이었다.

나는 속으로 살며시 반성했다.

알리사가 말했다.

“너무 궁금해서 그런데 내일도 말해주고 오늘도 말해주면 안 돼요?”

“으음. 알겠어요. 사실 제가 생각하는 건 하나예요.”

“뭔데요?”

“만약 적이 있다면 시작하기 너무 어려울 테니 다른 곳으로 눈 돌리자는 거.”

“다른 곳?”

“옷은 한국에서만 파는 거 아니잖아요.”

그제야 알리사가 내가 뭘 말하고 싶은지 알고 눈을 크게 떴다.

“아…….”

“제가 사업은 잘 모르지만, 한 가지는 알아요. 모든 직업에는 영업이 꼭 필요하다는 거. 이번 통역사 일을 겪으면서 더 그 생각이 굳어졌고요.”

“그런데 할 수 있을까요?”

“어떤 기업이 처음부터 거래처 있고 그랬겠어요. 다 발로 뛰고 친해지다 보니 그랬겠죠. 알리사.”

“네.”

“아마 한국에서 성공시키고 싶겠지만, 이번에는 한번 돌아가 보는 것도 어때요?”

“돌아가 본다…….”

“알리사가 미국에서 살았던 경험을 버리는 건 너무 아까운 거 같아서요.”

“그렇네요. 전 한국에서 성공해야지만 생각해서 그런 방법은 생각도 못 했어요.”

“그렇죠?”

그렇게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새 떡만둣국이 나왔다.

빈 그릇에 국을 떠서 시하에게 주었다.

나는 호호 불며 식혀서 시하의 입에 넣어주었다.

이렇게 불길이 뜨거울 때 식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식는 동안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호호 불며 무언가 방안을 마련해야 했다.

여기 이 떡만둣국도 좋지만 가끔은 수프를 먹을 때도 있는 법이다.

우리는 서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생각하며 식사를 마쳤다.

***

-KI 미디어.

홍진수 과장은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걸 본 대리가 정신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과장님. 뭐 하십니까?”

“조용히 있어 봐. 지금 생각 중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하늘에서 자서전 만드는 사람이 떨어져요? 차라리 이번에 그 사람 어떻습니까. 자서전 만들어보자고 연락하면 수락할지도 모르는데요? 아니면 자기계발서나.”

“누구?”

“왜 있잖아요. 최근 G 잡지에서 인터뷰한 메이크업 아티스트.”

“응? 별로야.”

“왜요?”

“시혁 씨 관심 사항이 아니야.”

대리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홍진수 과장을 보았다.

아니. 시혁 씨 마음속에 들어갔다 와 봤어요? 네?!

“무슨 일을 그렇게 받습니까. 그냥 하는 거지.”

“아니야. 이왕이면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걸 주는 게 더 관심이 가잖아. 마인드맵 안 해봤어? 마인드맵.”

“꼭 시혁 씨 안 줘도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데…….”

“그 아이디어 좋네. 네가 영업해봐. 네가.”

“아니, 저는 바빠서…….”

“이렇게 노니 대표님이 직원을 안 늘리지.”

대리는 고개를 돌려 키보드를 열심히 치기 시작했다.

“일합니다. 일해요. 아니 먼저 물어놓고서.”

“내가 언제? 내가 물었다고?”

아니요. 생각해 보니 안 물었네요. 젠장!

괜히 나섰다가 홍진수 과장의 마수에 걸리게 생겼다.

하지만 이런 일은 언제나 있었던 일.

빠져나가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과장님. 그런데 이번에 송택수 선생님 무협 번역을 다 끝냈답니까?”

“어. 다 했대.”

“이야. 대단한데요? 그 많은 분량을 어떻게 끝냈대요? 이 속도면 한동안 일 안 만들어도 되는 거 아닌가?”

“그러니 이렇게 다른 작업을 해 보려고 하지.”

대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시혁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칭찬으로 넘어가면 금방 탈출할 수 있다.

KI 미디어에서도 시혁에 대한 이미지는 좋았고, 이야기도 풍부했다.

그리고 홍진수 과장의 시선을 돌릴 수 있는 좋은 수단도 되었고.

“야. 그래서 언제 물었다고?”

물론 너무 과도한 남발은 소용이 없다.

“크흠. 죄송합니다! 안 물었습니다.”

“내가 그냥 넘어갈 줄 알았지?”

“네. 쉽지 않네요.”

“하하. 이것도 시혁 씨에 관한 이야기였으니까.”

“제가 그걸 간과했네요. 쳇. 어? 과장님. 뒤에 저 손님 어디서 많이 봤는데요?”

“응? 어디?”

KI 미디어에 들어온 한 남자가 선글라스를 벗었다.

홍진수 과장이 눈을 가늘게 뜨며 그 사람을 자세히 보았다.

정장을 입고 있는 단정한 옷차림은 여느 회사원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다른 점이 딱 하나 있었다.

바로 눈빛.

무언가 이루었다는 저 눈빛은 어딘가 KI 대표와 닮아 있었다.

“난 전혀 모르겠는데?”

“흐음. 이상하다? 어디서 봤지? 낯이 아주 익은데…….”

“연예인은 아닌 거 같은데?”

“제가 연예인 기사만 보는 사람 아니거든요.”

“그래도 자주 보는 건 맞잖아?”

“크흠.”

그때 상대하고 있던 여직원과의 대화가 들려왔다.

그제야 홍진수 과장도 앞의 사람이 누군지 알았다.

미국에서 쇼핑몰을 창업한 스티브 백.

미국에서 성공한 그가 KI 미디어를 방문한 것이다.

홍진수가 눈을 반짝이며 스티브에게 다가갔다.

“어떻게 오셨다고요?”

홍 과장이 ‘자신이 맡을 테니 가봐’라는 사인을 손짓으로 보냈다.

알아들은 여직원이 물러났다.

스티브 백이 홍진수를 쳐다보았다.

“한국에 일이 있어서 들렀는데 온 김에 자서전도 만들면 좋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아! 이러지 말고 응접실로 가서 이야기하시죠.”

“네.”

응접실로 간 홍진수와 스티브 백이 본격적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그런데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겁니까?”

“그냥 아는 친구 소개로 왔습니다. 여기 출판사가 괜찮다고 하던데요.”

“누가요?”

“제이슨.”

“제이슨?”

“여기 출판사에서 번역 작업을 했다던데요? 금색 시곗바늘이라고.”

“아!”

홍진수 과장은 제이슨이 누군지 기억해냈다.

시혁이 처음 맡은 의학 소설을 쓴 작가이자 현직 의사가 제이슨이었다.

‘인연이군.’

시혁과의 인연이 여기 이렇게 왔다.

마침 자서전을 내고 싶다고 찾아오기까지.

이건 시혁에게 맡길 수밖에 없지 않은가.

“잘 왔습니다. 마침 제이슨 책을 번역한 이시혁이라는 친구가 일을 찾고 있더라고요.”

“오! 그렇습니까?”

“네. 자서전 쓰는 걸 한번 해 보고 싶다고 하길래요.”

“이거 참. 재미난 일이네요.”

“그렇죠? 정말 타이밍이 기가 막힌 거 같습니다. 그런데 이시혁 번역가로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론이죠. 사실 그 사람에게 부탁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한국어로 출판되기 전 원고를 읽었거든요. 그때 제이슨 옆에 있어서 우연히요.”

“오! 어땠습니까?”

“제이슨 글도 읽어봤고 번역가님 글도 읽어봤는데…….”

홍진수가 침을 꿀꺽 삼켰다.

스티브 백이 이어 말했다.

“대단하더군요. 솔직히 놀랐습니다. 그렇게 느낌을 한국식으로 잘 살릴 줄은 몰랐거든요.”

“하하. 그럴 줄 알았습니다.”

“제가 칭찬 많이 했습니다. 아마 그것 때문에 제이슨이 번역가에게 메일도 보냈을걸요?”

“아……!”

홍진수는 싱글벙글했다.

역시 시혁은 KI 미디어와 떨어질 수 없나 보다.

앞으로 좋은 계약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는데 한국에 어떤 일로 방문한 겁니까? 곤란한 일이면 대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업 때문에 왔겠죠.”

성공한 사업가.

이번에 한국에 브랜드 런칭을 할지도 모르고, 백화점 입점을 위한 계약이 오가는지도 몰랐다.

홍진수는 그런 점을 고려해서 조심스럽게 물은 것이다.

그런 홍진수의 배려를 눈치챈 스티브 백이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음. 별로 비밀은 압니다.”

“그래요?”

“사실…….”

사실?

“…건스 국내 대회를 직관하러 온 거라…….”

그렇게 말하며 머쓱해 한 표정을 짓는 스티브 백을 보며 홍진수가 의문을 내뱉었다.

“네?”

“제가 벨 선수 팬이라서…. 크흠.”

홍진수가 다시 한번 의문을 뱉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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