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3화 (113/500)

113화

모델 사진을 올리며 온라인 쇼핑몰 장사가 시작됐다.

알리사와 친구들이 모든 준비가 끝난 상태에서 오픈을 했다.

제일 중요한 건 광고.

특정 사이트 키워드 광고를 비롯해 SNS에 배너 광고를 넣는 등.

총 3개의 광고를 한 달 비용으로 넣었다.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어서인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잘 안 팔리네. 왤까? 가격이 너무 비싼가?”

알리사가 한숨을 쉬며 친구들을 보았다.

겨우 하루 지나서 고민하는 건 사치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하루 접속자가 2천 명이었는데 10개가 판매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봐야지.”

“어, 어렵네. 아니지. 한 3일은 봐야 하지 않을까?”

“그러게…….”

알리사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2천 명이면 굉장히 유의미한 수치라고 생각해. 하루, 이틀 기다릴 게 아니야.”

파랑몰 로고 디자인을 만든 남자가 동의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식당에 사람이 2천 명이나 왔는데 구매는 10명뿐이다? 그건 아니지.”

맞는 말이었다.

숫자 지표가 유의미한 수치가 되려면 적어도 천은 넘어봐야 하는 법.

하루지만 판매 실적을 봤을 때 사람들에게 끌리지 않는 무언가가 존재했을 게 분명했다.

“역시 가격 때문이야…. 단가를 너무 세게 잡았나?”

“그건 어쩔 수 없잖아. 우리가 직접 디자인하고 공장에 보내는 건데…. 이것도 많이 낮춘 거라고. 팔아봤자 얼마 남지도 않아.”

알리사와 친구들은 온라인 쇼핑몰을 남들보다 훨씬 어려운 조건으로 시작한 셈이다.

보통 도매가에 옷을 한 구미(한 상품에 대한 전 사이즈와 전 컬러) 이상을 사 와서 장사하게 된다.

하지만 알리사 일행은 자신들의 디자인으로 장사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난이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었다.

눈치를 보던 한 명이 발언했다.

“일단 지인 찬스를 쓸까요?”

“아니. 그건 안 돼. 그래서는 배우는 게 없잖아. 괜히 판매되는 숫자에 혼란만 생겨.”

다들 뾰족한 수가 없는지 고민을 시작했다.

알리사 역시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

열정과 준비로 시작한 거였지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자신이 만든 디자인이 별로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쓸데없는 자존심일지도 모른다.

‘내려놓아야 할까?’

살며시 자신의 디자인에 대한 자신감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대로면 다가올 현실은 냉혹했다.

“아니야. 아직 멀었어. 우리는 세일즈 포인트도 확실히 잡았잖아.”

“하지만…….”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지금 다들 아이를 가진 친척들에게 옷 선물 좀 보내 보자. 어떤 옷을 사려는지 좀 물어보고…….”

주식을 팔 타이밍을 잡기 어려운 것처럼 무엇이 잘못됐는지 늦게 판단할 때가 있다.

지금 알리사와 일행들은 어쩔 수 없이 빠르게 인정을 해야 했다.

단 하루의 결과지만 그걸로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고.

이대로면 안 된다고.

다들 작전을 짰는지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정받고 싶어.’

알리사는 속으로 불끈 주먹을 쥐었다.

‘할 수 있어.’

그렇게 생각하며 알리사 일행이 일을 진행해갔다.

하지만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걸 느낀 건 일주일째가 되어서였다.

그건 후기의 문제였다.

-상품 사봤는데 별로네요. 애들이 하루 입고 다음 날은 안 입더라고요. 하아. 괜히 산 듯.

-옷이 예뻐서 샀는데 애들이 안 입어주니 좀 그렇네요. 비싼 가격 들여 샀는데. 이래서 대형 쇼핑몰에서 사야 하는데.

-역시 이름값이 중요하네요. 자알~ 사고 갑니다. 다음에는 안 살 듯.

이런 후기 글들이 파랑몰 홈페이지뿐만 아니라 12번가, J마켓, 블로거 등에서 주르륵 올라오고 있었다.

심한 욕도 있었고 악의적인 글들도 있었다.

그렇게 하나둘 쌓이면서 점점 댓글들이 엄청 달리기 시작했다.

악의는 악의를 불러 모았고.

악의의 공감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며.

때로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등을 찔리는 일도 발생했다.

“알리사! 괜찮아? 네 인별 계정이…….”

“괜찮아요. 아예 안 보고 있거든요.”

“정말 괜찮아?”

“네. 연예인처럼 그렇게 많지도 않아요.”

“아니. 많고 적고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

“지금은 쇼핑몰을 좀…….”

“지금 쇼핑몰이 중요해? 안 되겠다. 오늘 언니랑 술 한잔해.”

“괜찮아요.”

“그게 괜찮은 얼굴이니?”

알리사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애써 침착하게 미소를 띠었다.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는 그게 더 가슴이 아픈 일이었다.

“이 정도는 이겨내야죠. 많이 배우네요.”

“배우긴 뭘 배워!”

“그…. 그럼 술 말고 오늘 하루만 좀 쉬워도 될까요? 다들 이제 오픈해서 많이 바쁜 건 아는데…….”

“안 팔리는 데 바쁘긴 뭐가 바빠.”

“수습도 해야 하고…….”

“됐어. 이 정도는 조금 지나면 사그라질 거야. 기사로도 안 나오는 일인데. 인기 쇼핑몰이었다면 몰라.”

하지만 쓴 돈을 생각하면 뼈가 아플 정도였다.

재고도 상당히 남아 있었다.

알리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대로 퇴근했다.

알리사를 바라보던 언니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이럴 때는 어떻게 말해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그렇다고 옆에 있어 주기에는 본인이 거부하면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

-시하와 손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시하야. 오늘은 뭐 했어?”

“아아. 승준. 하나. 노라.”

“뭐하고?”

“바나나. 머거.”

“바나나 먹는 놀이를 했구나?”

“아아.”

바나나 먹는 놀이는 대체 어떤 놀이일까?

알 수 없었지만, 다음에 시하랑 한번 해봐야겠다.

“이번에 형아에게 일이 꽤 들어왔거든.”

“아아.”

“번역 일은 못 받겠어. 아마 홍진수 과장이 막 울지 않을까?”

“우러?”

“응. 왜 우리 출판사 일을 받지 않고…. 하면서 엉엉 울 거야.”

“아아.”

실제로 자서전 적는 일도 의뢰가 들어와서 홍진수에게 물어봤다.

자서전이란 건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는 영역이니까.

한 번쯤은 경험해 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시혁 씨! 거기서 대체 얼마를 제시했길래 가려고 하십니까! 저희 출판사도 자서전 일이 있습니다!]

[저기요. 과장님. 저희 없는데요?]

[쉿! 쉿! 어? 여보세요? 하하. 들었다고요? 없으면 만들면 되지 않습니까. 저희랑 계속 일하시죠. 그러고 보니 이번에 굉장히 좋은 일이 들어왔는데 단가가! 4천 원! 여보세요? 시혁 씨?]

[과장님 끊은 거 아니에요?]

[아닌데. 통화는 계속되고 있는데? 여보세요. 시혁 씨? 뭐야? 통신 불량인가?]

[비바람 세게 와서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런가? 이렇게 단가 부르면 너랑 계약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헐. 그거 언제 적 대사예요.]

[이거 아직도 명대사야…. 어? 연결됐다. 시혁 씨 통화 끊지…….]

그렇게 살며시 통화를 종료한 거로 기억한다.

장난이어서 다시 전화 걸어 일은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하여간 왜 이렇게 나한테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아직도 나를 영입하고 싶어 하는 건 아니겠지?

중국 계약 일을 하고 나서부터 뭔가 더 애틋한 시선이 느껴지기는 한다.

조금 부담스럽다.

뭐, 그만큼 내 능력이 탐이 난다는 거겠지.

그래도 홍진수 과장과 통화하면 뭔가 인정받는 느낌이라 기분은 좋아진다.

내가 인재로 썩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어서.

“시하야. 이번에 KI 미디어랑 일이 끝나거든. 다음에 또 계약하러 갈 때 같이 가자. 맛있는 것도 사 달라 하고.”

“아아! 홍!”

“응. 홍 아저씨지.”

“홍 아지.”

“아저씨.”

“아찌?”

“아하하. 그게 뭐야.”

우리는 그렇게 웃으며 같이 걸어 나갔다.

댓글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고 이렇게 일을 물어다 주는 순기능도 있었다.

그래도 시하에게는 좀 조심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형아.”

“응. 왜?”

“저기. 리사!”

“어?”

시하가 가리킨 곳을 보니 무릎을 끌어안은 금발이 보였다.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알리사 맞나? 근데 왜 놀이터 벤치에 저러고 있지?’

현재 온라인 쇼핑몰로 바쁜 줄 알고 있다.

시하가 나를 끌고 알리사 쪽으로 다가갔다.

“아아! 리사!”

시하의 소리에 알리사가 얼굴을 들었다.

퀭한 얼굴이 어딘가 아파 보였다.

그런 얼굴을 보자 시하가 몸을 굳혔다.

“리사? 개차나?”

“알리사. 괜찮아요? 여기서 왜 이렇게 있어요?”

알리사가 입술을 한 번 깨물더니 겨우 입을 열었다.

“시혁, 시하야…….”

꺼져갈 듯한 작은 목소리.

괜히 더 걱정되어 벤치에 시하와 나란히 앉았다.

시하가 벌떡 일어나 알리사의 어깨를 토닥였다.

“리사.”

“응. 고마워.”

“개차나. 개차나.”

시하야. 뭘 알고 괜찮다고 말하니?

사실 나도 걱정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이러고 있으니 어떻게 해줘야 할지도 모르겠고.

일단 물어나 보자.

“알리사. 대체 무슨 일이에요.”

“…저 너무 자만했어요.”

“네?”

“이번에 온라인 쇼핑몰을 오픈했는데 옷에 관한 안 좋은 말들이 많았어요. 학교에서는 늘 칭찬만 들어서 자신 있었는데. 아시잖아요. 저 인기상도 받았는데.”

“알죠. 당연히 알죠.”

“근데 지금은 다 부정당한 거 같아요. 현실에서 다 부서진 거 같아서…. 상업적으로 가치 없단 소리죠.”

“무슨 소리예요. 알리사 옷이 얼마나 예쁜데.”

알리사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도대체 그 짧은 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시하도 알리사의 울음에 놀라서 뻣뻣하게 굳었다.

“흐윽. 내가 진짜…. 진짜. 진짜. 열심히 했는데…. 흐윽. 나쁜 말만 하고…. 사고 나서 별로라고 하고…. 다 별로래요. 다. 흐윽.”

“누가 그래요? 시하야. 지금 입은 옷 마음에 안 들어?”

“아냐.”

“그럼 불편해?”

“아냐.”

시하가 옷 입으면서 불편해한 적이 없다.

어린이집 애들도 모델하면서 받은 옷들도 잘 입고 있었다.

뭔가 다들 똑같은 옷을 입게 돼서 웃기기도 했지만.

불편했으면 부모님들이 먼저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치만. 흐윽. 빨리. 질린다고.”

“으음.”

애들이라면 빨리 질리는 옷인가?

아직 그런 건 잘 모르겠다.

원래 새 옷을 입으면 그때는 좋았어도 나중에 입을 옷이 없기도 하다.

‘하지만 애들도 정말 그런가?’

시하야 딱히 이런 것에 투정을 부리지 않는다.

물론 펭귄 옷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캐릭터 옷이 인기 있지 않아요?”

“…역시…….”

알리사가 훌쩍였다.

나는 괜히 잘못 말한 거 같아서 미안해졌다.

“그 당당하던 알리사 어디 갔어요.”

“그냥. 흐윽. 말하다 보니 감정이…….”

“사이트 이름이 파랑몰이라고 했죠?”

“네.”

나는 폰을 꺼내서 파랑몰을 검색했다.

옷들이 연결된 사이트들도 살피고 대충 후기들도 살펴보았다.

‘심하네.’

처음에는 살살 긁더니 나중에는 대놓고 악평이었다.

간간이 좋은 평이 있긴 한데 그건 정말 몇 개 되지 않았다.

평을 보고 사지 않는 사람도 많고.

-이거 시착해 보고 파나요? 너무 불편하네요.

-무난한데 굳이 여기서 사야 하나? 다른 곳이 더 싸네.

-누가 디자인했는지 모르겠지만 디자이너 자격이 없네. 이런 걸 디자인하다니.

-다음에는 상업적인 옷을 파세요. 예술 하러 왔나?

-as도 안 되는 거 왜 삼요?

-아 놔! 쓰레기 옷 파네!

더 읽어 내리다가 디자이너인 알리사의 이름이 언급되는 걸 보고 그대로 폰을 꺼버렸다.

함부로 말하는 글들.

나는 이런 글들이 너무 싫다.

입에서 나오는 언어는 날카로운 검이 되어 마음을 벤다.

깨진 유리잔에 강력한 접착제로 붙인다 한들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악플 다는 사람들은 모른다.

“형아.”

“시하야.”

“리사. 도아. 형아. 리사. 우러.”

“응. 알겠어. 시하야.”

아마 시하는 알리사를 울지 않게 해 달라고 말하는 걸 거다.

형아라면 할 수 있다는 걸까?

그럼. 그런 기대에 부응해 줘야지.

나는 알리사를 보았다.

“알리사.”

“네.”

“전에 제가 말했죠? 계약서 쓰면 도와주기로 한 거.”

“…네…….”

“그럼 파랑몰에 직원으로 잠시 고용 좀 해 줄래요? 제가 이거 해결할게요.”

“네?”

“이대로 끝낼 거 아니잖아요. 저 막 위로하는 거 잘 못 해요. 이대로 주저앉아서 울 거예요?”

“방법 있어요?”

“어쩌면…. 아니, 반드시 있죠.”

알리사가 눈에서 눈물을 닦았다.

“저 여기서 포기한다고 안 했어요. 오늘만 운 거예요.”

“그럼요. 알아요. 요기 시하도 위로해 주잖아요. 완전 걱정스러운 표정 아니에요?”

알리사가 드디어 고개를 들어 시하를 보았다.

시하는 선 체로 알리사의 어깨를 잡고 있었다.

“푸흡. 걱정하는 표정 처음 보네요. 시하야. 고마워.”

미간에 힘준 표정인 시하.

걱정하는 모습이 많이 귀엽다.

다른 사람 눈에는 웃길지도 모르겠다.

“알리사. 한국에서는 울다 웃으면 엉덩이에 털 난다고 해요.”

“푸흡. 아, 진짜 위로 못 한다.”

위로는 시하가 하면 된다.

나는 다른 도움을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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