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나는 재휘에게 다가갔다.
“왜 그래?”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응?”
재휘가 눈을 내리깔았다.
내 눈에는 뭔가 조금 무서워하는 거로 보여서 걱정이 되었다.
뭐가 그렇게 무서운 걸까?
“시혁. 어서 담 위에서 찍어요.”
“그래요.”
호숫가 주위에 세워진 담 위로 시하를 올렸다.
털썩 걸터앉더니 다리를 흔들었다.
“형아.”
“응. 어때? 여기서 바라보는 호수도 괜찮지?”
“아아.”
사실 여기에 부분적인 담을 설치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
설계했을 때 미술적인 무언가 있을 것 같은데, 어떤 의미일까?
‘실용적인 목적은 아니지.’
그랬다면 호수를 빙 둘러 담을 만들었을 것이다.
“시혀기 오빠. 하나도!”
“그래. 하나도 올라가자.”
나는 그대로 하나를 들어서 시하 옆에 앉혔다.
승준은 자기가 올라갈 수 있다면서 점프를 하며 담 위로 손을 뻗었다.
그걸 잡는 건 좋은데 올라가지 못해서 낑낑거렸다.
“승준아. 내가 도와줄게. 자, 힘내 보자.”
“응.”
내가 살며시 승준의 옆을 잡아주자 그대로 암벽 등반하듯이 타고 올라갔다.
살짝 들어준 정도라서 혼자 힘으로 올랐다고 해도 될 것이다.
“올라왔다!”
“아아. 승준!”
“아! 시하 옆에 갔어야 했는데…….”
하나 옆으로 간 승준이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다시 혼자 오르기 힘든지 얌전히 셋이서 걸터앉았다.
그다음 종수가 앉았고, 마지막으로 재휘만 남았다.
종수가 말했다.
“재휘야. 빨리 와.”
“그, 그게.”
재휘가 제자리에서 우물쭈물했다.
눈을 돌리며 서서히 뒷걸음질을 치다가 선생님의 다리에 부딪혔다.
나는 그제야 재휘가 무서워하는 것이 뭔지 알았다.
살며시 다가가 목소리를 낮췄다.
“혹시 높은 게 무서워?”
재휘가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나를 보았다.
“어떻게 알았어요?”
“그냥 보면 알지. 그럼 다 같이 저기서 찍지 말까?”
“아… 아니요.”
“그래? 그럼 어떻게 할래?”
그때 시하가 나를 불렀다.
“형아!”
“응? 잠시만.”
“형아!”
“왜?”
“시하. 아래로!”
“응? 내려 달라고?”
“아아.”
“사진 찍을 건데? 왜 그래?”
“아냐.”
나는 어쩔 수 없이 시하를 내려주었다.
시하가 재휘에게 다가가더니 손을 잡았다.
“재히! 가치!”
“응?”
“손. 안 무서.”
나는 시하의 옆에서 통역을 해 주었다.
“재휘야. 시하가 손잡고 같이 오르면 안 무섭다는데?”
“아…….”
“재히. 가치.”
시하가 재휘의 손을 이끌고 담으로 갔다.
나와 알리사의 눈이 마주치며 같은 의견을 나누었다.
말하지 않아도 뜻은 통했다.
나는 시하를, 알리사는 재휘를.
동시에 들어 그대로 담 위로 올렸다.
올라가는 동안에 둘의 손은 놓지 않았다.
승준과 종수의 사이에 놓았기 때문에 승준이 많이 기뻐했다.
종수가 곧바로 재휘와 어깨동무를 했다.
“여기 봐. 경치 좋아!”
재휘가 뒤에 있는 호수를 바라보았다.
“예쁘지?”
“응.”
나는 호수보다 아이들의 모습이 더 예뻐 보였다.
무서워서 못 움직일 때 누군가가 저렇게 손을 잡기도 하고, 곁에 있다고 어깨동무도 하는…….
그런 아름다운 관계.
찰칵.
알리사도 그런 마음을 느꼈는지 사진을 곧바로 찍었다.
‘그래도 아직 무서운가 보네.’
시하의 손을 꼭 잡은 것을 보니 알 수 있었다.
‘무섭기만 한 건 아닌가 봐.’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었다.
하얗게 된 얼굴이 혈색이 돌며 살며시 웃음 짓고 있었다.
아무리 무서워도 또 다른 무언가가 지탱해줄 수 있다면 그건 무서운 걸까?
아니면 무섭지 않은 걸까?
어쩌면 무서움을 덮는 건 온정일지도 모르겠다.
“예쁘다.”
“그러네요.”
“알리사. 이제 제대로 찍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조금만 더 보고 싶은걸요.”
“근데 이미 늦었어요. 시작해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나는 손을 들어 시하를 가리켰다.
“저 보세요. 잡은 손에 손가락 두 개 뗀 거.”
“풋! 아, 시하 진짜. 설마 저거 브이 한 거예요?”
“네. 카메라 인식했다는 거죠. 얘들아. 이제 사진 찍자!”
“진짜 시하에게 방심을 못 하겠네요.”
“그래서 재밌는 거 아닐까요?”
“그러니까요.”
아이들이 우리를 쳐다보았다.
“형아! 가치!”
“응. 친구들이랑 먼저 찍고!”
“아아.”
우리는 그렇게 사진을 찍었다.
모두가 함께 있는 모델 사진을 말이다.
***
그렇게 한바탕 사진을 찍고 나니 어느새 1시가 되었다.
애들이 배가 고픈지 주린 배를 붙잡았다.
“배고파!”
“배고파!”
오늘 열심히 일했으니 밥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어린이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다들 어린이집으로!”
“네!”
빨리 밥을 먹고 싶은지 어린이집으로 발을 바쁘게 놀렸다.
아마 지금쯤이면 원장님이 요리를 다 했을 것이다.
오늘 메뉴는 무려 비빔밥에 계란국.
알리사와 나도 대접받을 수 있게 돼서 다행이었다.
사실 따로 먹어야 하나 싶었는데 숟가락 두 개만 추가하면 되니 문제없다고 하셨다.
“알리사. 사진 좀 보여줘요. 궁금하네요.”
“이거 볼래요? 정말 잘 나왔어요.”
“진짜네요. 같이 찍은 게 전 좋아 보이는데요?”
“그건 추억이 있는 거고, 이건 모델용 사진이니까요.”
“너무 주관적이었나요?”
“많이요. 여기 있는 사진은 어린이집 선생님께 파일로 보낼 거니 나중에 다 보세요.”
“거기까지 해 주면 고맙죠.”
“사이트 잘되면 제가 한 번 쏠게요. 감사 의미로.”
“그럼 기대할게요.”
그렇게 잡담을 끝내고 앞을 보자 어느새 아이들이 더욱 친해져 있었다.
물론 서로 잘 노는 두 그룹으로 나뉘어 있긴 했지만.
전보다는 조금 뭉친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길을 가는 모습만 봐도 그렇다.
시하가 한가운데 있고, 종수와 재휘 역시 시하 쪽에 있었다.
뭔가 연결고리가 시하가 된 것 같았다.
[형아]
시하가 뒤를 돌아보며 입 모양으로 나를 불렀다.
나 역시도 [시하야] 하며 불러주었다.
그게 재밌는지 [형아] 하며 입 모양으로 계속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였고.
그걸 본 알리사가 말했다.
“저 이거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
“뭐라고 하는데요?”
“소리 없는 아우성!”
“요즘 시 공부하세요?”
“한국인이라면 소리 없는 아우성 정도는 알아야죠.”
알리사. 너는 한국인 아니잖아.
“뭐, 아무튼 틀렸어요.”
“그럼 모스부호?”
“그럴 리가 없잖아요. 한국인이랑도 상관없고.”
“말이 그렇다는 거죠. 말이.”
“어? 그건 좀 한국인 같았어요.”
“그래요?”
그렇게 잡담을 나누다가 어느새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밥은 역시 비빔밥.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비빔밥이 아니었다.
옆에서 알리사가 감탄을 뱉었다.
“와! 제가 사 먹던 비빔밥이랑 다르네요.”
“비싼 비빔밥이네요. 소고기가 들어있는.”
나물과 고추장으로 비빈 건 줄 알았는데 안에 갈아 넣은 소고기가 듬뿍 들어 있었다.
식감과 맛이 훌륭했다.
계란국에 계란도 푸짐했고.
이게 바로 강인 재단에서 후원받는 어린이집 클라스인가 보다.
‘여기 어린이집 보내고 싶다고 소문이 났던데 과연…….’
넣고 싶어도 넣을 수 없는 어린이집!
부러워한다는 걸 소문으로만 들었는데 과연 대단했다.
요리 하나는 빵빵하게 나오는구나.
시하가 잘 먹고 다니고 있는 걸 알게 돼서 좋았다.
“시하야. 맛있어?”
“우우우.”
“말 걸어서 미안해. 천천히 꼭꼭 씹어 먹어.”
우물우물.
입에 한가득 음식이 들어가 있는 채 말하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나는 시하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준 뒤에 다시 밥을 먹었다.
맛있다!
***
다음 날.
시하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서수현에게 전화를 받았다.
“어. 왜?”
「오빠. 오빠. 큰일 났어요!」
“왜? 무슨 일 있어?”
「그게 아니라 그거요. 그거.」
“그게 뭔데?”
「저 슈 채널 구독자가 확 늘었다고요!」
“오! 그래?”
「근데 댓글이 이상해요. 막 채널에 정상적인 자작곡이 가득한데 그 기막힌 플레에 가고 싶어 노래는 왜 없냐고…….」
“풉.”
나는 집에서 물을 마시다가 내뿜었다.
너무 웃겨서 옷에 조금 튀었다.
아무래도 구독자가 늘어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잘된 거 아니야?”
「복잡 미묘해요. 앞으로 그런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영상을 찍어야 하는가 싶어서.」
“창작이 그렇게 쉽게 되겠어? 그런 것도 가끔 해야 통하지. 너무 반복하면 지겨워한다?”
「역시 그렇죠? 아무래도 따로 영상 찍은 걸 업로드해야겠어요.」
의외로 준비성이 끝내주었다.
“녹음만 한 게 아니라 영상도 찍었어?”
「그럼요. 이렇게 오빠 스트리밍 영상이 편집돼서 올라올 줄 알았어요. 그러면 저도 구독자가 늘고.」
“나도 그 정도는 알았는데 상당한가 보네.”
「이제 업로드할 건데 대박일걸요? 다른 게임에도 쓰일 수 있으니까.」
“생각해 보니 그러네? 스트리머들이 게임하면서 네 거 쓰겠다고 연락 올지도 모르겠네.”
「와! 대박! 오빠. 구독자 상승하는 소리가 들려요.」
김칫국 한 사발 들이키는 소리라고 하고 싶지만, 이번에는 진짜 홍보 효과가 좋아서 뭐라고 하지 못하겠다.
잘 알지 못하는 나도 이번에는 감이 왔다.
특이한 노래, 시기, 홍보, 활용 가능성, 운.
이만하게 고루 갖춘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심지어 이벤트 매치가 끝나고 국내 대회 시즌이 한창 타오르고 있는 이 시기에.
“혹시 짤랑거리는 소리는 안 들려?”
「짤랑이요?」
“머니.”
「…오빠. 들리는 것 같아요.」
“그거 외면해. 너 그러다 황금개구리가 되는 거야.”
「이 오빠가 진짜! 자낳괴가 되는 거겠죠. 왜 황금개구리예요!」
“아니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넌 황금개구리야.”
[슈] 채널 프로필도 시하가 그린 개구리 SD 캐릭터다.
아마 거의 고정이 되지 않을까 싶다.
구독자가 늘었으면 더더욱.
“내가 황금개구리 되는 거 아니냐고 댓글 남길까?”
「남기기만 해 봐요!」
“그래. 그래. 빨리 영상 올리고. 축하해. 나도 한번 봐야겠다. 어떻게 편집됐는지.”
「네. 한번 보세요!」
그렇게 통화를 종료하고 편집된 영상을 보았다.
재미난 거 위주로 굉장히 잘 뽑은 것 같다.
“너튜브 구독자도 장난 아니네…….”
일단 영상은 벌써 40만이 넘게 봤다.
구독자는 100만 명 정도가 되고.
이렇게 보니 굉장히 인기 많은 선수라는 게 실감이 되었다.
‘유명인사는 일단 기본적으로 사람을 끌어모을 수 있는구나…. 살아남는 건 좀 다른 이야기겠지만.’
스트리머나 너튜버를 해도 시작 지점이 달랐다.
‘서수현이 좋아할 만하네.’
사람이 어느 정도 모이면 눈덩이처럼 커지니 앞으로 [슈] 채널이 얼마나 클지 모르겠다.
댓글을 쭉쭉 내려보니 눈에 띄는 게 보였다.
-통역사님 인별 찾았음! (링크)
거기에 답글이 아주 많이 달렸다.
나는 당황해서 입을 벌렸다.
‘설마…….’
슬쩍 인별 계정에 들어가니.
‘헉…….’
팔로워가 2천 명이 넘어가고 있었다.
정말 하루아침에 5명에서 급상승했다.
사진에 있는 댓글들도 엄청 달리고 하트도 많았다.
이런 적은 처음이라 멍해졌다.
‘DM도 엄청 많네?’
무서워서 굳이 읽어보지 않았다.
왜 연예인이 이상한 메시지도 많이 받고 스트레스도 받지 않는가.
‘아니지. 혹시 모르니까.’
혹시 일적인 얘기면 무시할 수만은 없었다.
걱정 반 설렘 반으로 DM들을 주르륵 읽었다.
-오빠 저랑 친하게 지내요!
-플레 만들어 드립니다. 버스 말고 전투기 타쉴?
-JJ출판사입니다. 이번에 번역을 맡을 수 있을까 싶어서…….
-아기 사진 파일 삽니다. 장당 5.0!
-이번 독일 통역이 필요한데 혹시 호텔 쪽으로 경험이 있는지…….
-야 일러 쫌 뽑아봐! 혼자만 알지 말고!
뭔가 이상한 소리도 섞여 있지만 일단 이상한 건 그냥 넘겼다.
뭐 욕도 있는 것 같지만 그것도 넘겼다.
제일 신기한 건 이거였다.
‘진짜 일이 들어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