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나는 금액과 함께 문자를 받았다.
요즘 앱이 잘되어 있어서 송금하면 문자로 받을 수 있었다.
-벨 : 아직 영상 수익은 따로 정산 안 되었고 후원금만 보냅니다. 그날 받은 영상 후원금은 시혁 씨에게 다 보내요~ 아기랑 맛난 거 사 드세요!
그날 후원금이 천 원씩 쌓이기는 했다.
벨 선수에 관한 질문도 많이 받았고.
그런데 이렇게 많은 후원이 들어왔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 많은 사람이 후원을 쌓게 되면 이렇게 많은 금액이 모이는구나…….
“200만 원이라니…….”
스트리밍 TV의 수수료를 생각했을 때 저것보다 더 많이 들어왔을 것이다.
그래도 대단한 액수였다.
설마 몇 시간 방송하고 이렇게 돈을 벌게 될 줄이야.
지금부터 스트리머로 직업을 바꿔보는 건 어떨까?
게임을 했을 때 감각이라면 플레를 넘어 마스터까지 가능할 것 같은데.
그런 꿈을 살짝 꿨다가 머리를 저었다.
‘꾸준한 게 최고지.’
스트리머에 도전하기에는 건너야 할 장벽이 많다.
컨텐츠를 만들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무기를 버리는 것도 아까웠다.
어디까지나 시하를 위해야 한다.
시간을 많이 뺏길 것 같은 직업은 사절이다.
한순간에 돈에 눈이 멀어 이런 생각을 하다니 아직 나는 멀었다.
‘그리고 그날이 좀 특이하긴 했고.’
후원 유도가 장난이 아니긴 했으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아침부터 받은 문자에 정신이 번쩍 든다.
“시하야. 일어나야지.”
“우웅.”
시하가 잠투정을 부렸다.
어제 조금 늦게 잠든 게 독이 되었나 보다.
“그럼 조금만 더 잘래?”
“웅…….”
“알겠어. 자.”
어린이집이야 늦게 가면 되는 거니까.
학교도 아닌데 자유롭게 잠을 재우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어린이집에 별로 못 있겠는데?’
오늘은 시하와 애들이 모델을 하는 날이었다.
옷이 그렇게 금방 만들어지냐고 물었는데 알리사가 씨익 웃으며 이미 준비는 끝났다고 했다.
부탁이 아니라 통보를 하러 온 거였다.
뭐 어차피 약속한 게 있어서 들어주겠지만.
‘그래도 얼마나 팔릴지 모르는데 초도 물량을 꽤 뽑았네…….’
재고가 남으면 골치 아파질 것 같긴 했지만 알리사는 자신만만했다.
그 자신감의 원천이 어디 있는지 정말 궁금하다.
20대에 나오는 패기 있는 자신감인지.
아니면 뭔가 노림수가 있는 자신감인지.
‘노림수가 있다고 해도 얕을 것 같은데…….’
모르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 꽤 걱정됐다.
‘잘하겠지. 뭐.’
그런 생각을 하며 씻고 아침 준비를 하고 있는데 시하가 눈을 비비며 나에게 다가왔다.
“형아.”
“응. 시하야. 좋은 아침.”
“아냐.”
시하가 내 다리에 찰싹 붙어서 눈을 감았다.
아직 좋은 아침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우뚝 서 있었다.
시하는 내 다리에 얼굴을 살살 비벼오고 있었고.
“음. 시하야. 형아도 준비해야 하는데? 옷도 갈아입어야 하고. 시하도 옷 갈아입어야지.”
“아냐.”
“그러면 방에서 좀 더 잘래?”
“아냐. 여기.”
굳이 여기서 자는 이유가 뭘까?
너무 귀여워서 떼놓지를 못하겠다.
일단 가스레인지에 불을 끄고 시하를 들어 올렸다.
“아?”
“그럼 일어나게 해 줄게.”
“아?”
아침 기상은 신나는 노래와 함께 시작하는 거다.
나는 대충 폰에 노래를 틀었다.
[맞지 않는 총. 늘어나지 않는 킬.]
“이게 아니지.”
이걸 음악 파일에 넣어둔 걸 잊었다.
살며시 시하가 좋아하는 숫자송을 틀었다.
익숙한 멜로디가 들리자 시하가 내 품에서 살며시 눈을 떴다.
“아아! 형아.”
“그래.”
나는 시하의 말에 반응해 바닥에 내려놓았다.
아래위로 바운스를 타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 틈에 나는 다시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고 요리를 시작했다.
“노래 다 듣고 옷 갈아입자.”
“아아.”
나는 재빨리 달걀을 풀어 프라이팬에 둘렀다.
시하가 한참을 잘 듣다가 어느새 방으로 쏙 들어갔다.
뭔가 가져오려나 보다.
나는 그렇게 숫자송을 들으며 스크램블 에그를 만들었다.
어느 정도 요리가 되자 주변이 조용하다.
시하는 나오지 않았고.
‘설마 방에 잠들러 간 거야?’
나는 슬그머니 방을 들어가 보니 가슴이 덜컥 놀랐다.
시하가 옷장을 밑단부터 열어 계단을 만든 뒤에 거기에 올라가 있었다.
“시하야. 위험하잖아.”
“아? 형아!”
형아 속도 모르고 옷장에 쏙 들어가 있었다.
그 와중에서 손에 내 옷이 들려 있었다.
“형아. 이거.”
“설마 형아 옷 골라준 거야?”
“아아. 이버!”
“어…. 응. 고마워.”
그러고 보니 내가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고 하긴 했다.
아마 시하는 그런 나의 옷을 열심히 골라줬나 보다.
“시하야. 안 무서워? 여기 높은데?”
“아냐.”
“으음. 안 무섭구나? 형아는 무서우니까 이렇게 올라가지 말자. 알았지?”
“아아.”
“대신 형아가 보고 있을 때는 올라가도 돼.”
끄덕끄덕.
고개 하나는 정말 잘 끄덕이는 것 같다.
서랍은 별로 높아 보이지 않지만, 시하에게는 조금 높다.
일단 시하가 고소공포증은 없는 걸 알았다.
나는 시하에게 팔을 벌렸다.
“자. 형아에게 안겨.”
“아아.”
시하를 품에 안았다.
“그런데 시하야. 이 옷 뭔 줄 알아?”
“아?”
“잠옷이야. 다른 옷 좀 선택해 줄래?”
시하가 들고 있는 건 많이 빨아서 좀 헤진 티셔츠였다.
그래서 잠옷으로만 쓰고 밖에 입고 나가기 좀 그랬다.
시하야. 형아가 그걸 입고 나가기에는 아직 버리지 않은 것이 많단다.
***
-어린이집.
“시하야!”
“시하야!”
시하가 승준과 하나를 만났다.
여전히 사이가 좋은지 인사는 이름으로 부른다.
서로 할 말이 어찌나 많은지 자기 할 말만 하고 있다.
대화의 비중에서 시하는 주로 듣는 쪽이었다.
과묵하고 멋진 남자 이시하.
은근히 챙겨주며 귀여운 모습을 보이는 이시하.
다 가진 완벽한 남자였다.
아무튼, 오늘은 피팅 모델 촬영이 있는 날이다.
전문 포토그래퍼는 아니지만 알리사가 비싼 카메라를 들고 왔다.
“알리사. 그거 얼마예요?”
“아마 130만 원?”
“뭐예요. 왜 이렇게 비싼 걸 들고 다녀요?!”
“한국 올 때 엄마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하나 들고 왔어요.”
“네? 그래도 돼요?”
“어차피 집에 카메라도 많은데 하나 들고 간다고 했어요.”
“아…….”
알리사의 집안이 정말 궁금했다.
가끔 느끼는 건데 왠지 부자일 것 같은 느낌.
전에 옷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 느꼈다.
생각보다 부유한 집안이 아닐까?
하지만 구태여 묻지는 않았다. 뭔가 묻기가 그렇기도 하고.
“그럼 오늘 알리사가 찍을 거예요?”
“그럼요. 아! 이거 반사판이요. 잘 들어야 해요? 이거 비싼 거니까.”
“카메라보다는 안 비쌀 거 같은데…….”
나는 알리사가 주는 반사판을 들었다.
알리사가 손뼉을 치며 애들에게 옷을 나눠주었다.
선생님들도 애들이 옷을 갈아입는 것을 도왔다.
어느새 새 옷을 입은 멋쟁이 애들이 나왔다.
“와! 시하야. 너무 멋있다!”
“머시써?”
“응. 7부 바지에 샌들이 너무 잘 어울리는데?”
“아아.”
상의 한쪽을 바지에 넣은 것뿐인데 멋있어 보였다.
어른스러운 패션에 얼굴은 볼살이 통통하니 너무 귀여워 보였다.
이런 언밸런스한 매력을 보았나.
“형아. 이거. 모야?”
시하가 내가 들고 있는 반사판을 가리켰다.
“아, 이거? 이건 반사판이라고 해. 시하의 얼굴이 더 멋있게 만드는 거야.”
“머시써?”
“응. 멋있어. 멋있어.”
알리사가 준비가 끝났는지 소리쳤다.
“자. 그럼 출발!”
그 말에 승준이 시하의 손을 잡았다.
“시하야. 가자!”
“아아.”
하나가 어느새 내 옆에 딱 붙어 손을 내밀었다.
“시혀기 오빠. 손!”
“응? 아, 그래.”
그걸 본 시하가 쿵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형아. 시하도…….”
“응? 아…….”
한 손에는 반사판을 들고 있어서 시하의 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하나의 손을 뿌리치자니 양심에 찔렸다.
처음부터 시하의 손을 잡아줬어야 했는데.
“그게 시하야…….”
“시혁 씨. 시하 손잡아주세요. 반사판은 제가 들게요.”
“아! 원장님. 감사합니다.”
다행히 원장 선생님이 반사판을 들어주었다.
나는 시하의 손을 잡았다.
그렇다 보니 네 명이서 신나게 손을 잡게 되었다.
인도로 걷는데 자리를 다 차지해서 길막을 하게 되었다.
방학이라 사람이 별로 없어서 다행이었다.
있었으면 계속 비켜줘야 했을 거다.
그렇다고 손을 놓을 수는 없을 테니까.
“그런데 알리사. 촬영 장소는 어디예요?”
“강인대에 좋은 곳이 있잖아요. 기숙사 근처에 호숫가.”
“아. 거기요?”
“네. 거기가 사진 찍기 참 좋더라고요.”
“사람들도 많죠.”
호숫가 근처에서 대학생들이 낭만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었다.
유학생들이 자주 보이며, 통기타를 들고 오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예전에는 술자리를 가진 대학생들도 있었는데 지금은 걸리면 혼이 난다.
술이 없는 낭만만 남은 호숫가다.
“얘들아. 거기 가면 호수가 아주 예뻐. 관리도 잘해서.”
“우리의 등록금으로 하는 관리.”
알리사가 그렇게 말하자 시하가 물어왔다.
“둥로굼?”
“아무것도 아니야. 알리사 멋없는 소리 말아요.”
“저도 이제 한국에 물들었나 봐요.”
“한국인 다 되셨네.”
그렇게 우리는 기숙사 근처에 있는 호숫가에 도착했다.
맑은 햇빛이 호숫가를 밝게 비추었다.
“그럼 여기서 포즈 한번 잡아 볼까요? 저 벤치에 앉는 것도 좋고.”
“시하야. 한번 해 볼래?”
“아아.”
시하가 벤치에 앉았다.
“형아도.”
“그래. 형아는 여기 있을게.”
“아냐. 형아.”
시하가 옆자리를 팡팡 내리쳤다.
일단 시하가 하고 싶은 대로 해줘야겠다.
“그럼 시혁 씨도 일단 같이 찍어요. 이 옷 입고.”
“네? 이건 또 언제 준비했어요?”
건네준 종이봉투를 보니 시하랑 똑같은 옷이 있었다.
그것도 어른용으로.
이런 거 있었으면 어린이집에 있을 때 전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미리 준비해 왔죠. 제가 말하는 걸 까먹었네요.”
“일단 아무 건물 안에 들어가 입어야겠는데요…….”
어쩔 수 없었다.
빠르게 입고 오는 수밖에.
바지만 빨리 입으면 된다. 상체는 보여줘도 괜찮다.
보기 꽤 나쁜 몸은 아니니까.
“형아. 금방 갔다 올게. 잠시만.”
“아아.”
내가 건물에 들어가 주위를 살피며 빠르게 옷을 갈아입었다.
남자 기숙사라서 봐도 상관은 없겠지만.
“딱 맞네…….”
저번에 치수를 잰 것이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다.
내가 옷을 입고 오자 어느새 아이들의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하나가 예쁜 원피스 치마를 흔들었다.
승준은 꽤 관심 없는 척 시크한 표정을 지었다.
‘꽤 하는데?’
시하는 벤치에 앉아서 가만히 나를 기다리고만 있었다.
그 모습을 알리사가 찍는 줄도 모르나 보다.
왜냐면 손에 브이를 하고 있지 않았으니까.
아마 찍는 걸 알았다면 시하는 손에 브이를 했을 것이다.
‘저 옷에 브이는 좀 그렇지 않을까? 아!’
나는 알리사가 이 옷을 일부러 준비했다는 걸 알았다.
전에 시하가 내 포즈를 그대로 따라 하며 놀았기 때문에.
‘그러면 브이를 안 하기는 하겠네…….’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는 모습에 속았는데 알리사는 꽤 용의주도했다.
가만 보면 방심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어? 왔으면 빨리 준비해야죠. 뭐 하세요. 저어기 시하가 한참을 기다리는데.”
알리사에게 발견된 나는 그저 웃었다.
가끔 멀리 떨어져서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저 카메라가 벽이 되어 분리된 관계성을 만드는 것처럼.
나는 가끔 바라보는 걸 좋아하나 보다.
그런데도 그 속에 뛰어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하니 그게 참 아이러니하다.
“시하야. 그럼 함께 찍을까?”
“아아.”
나는 시하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벤치에 앉아서 손은 바닥에 두고 다리를 한번 꼬고 앉았다.
한 번은 시하를 무릎 위에 앉혀서 다정한 모습을 연출했다.
또 호수를 등지고 주머니 손을 넣었다.
“와! 좋아요. 하나같이 다 좋은데요?”
“다른 애들은 어때요?”
“재휘라는 애는 뭔가 좀 본 적이 있는지 잘하는 것 같고, 종수라는 애는 허세가 심해서 그냥 사진이 웃기네요.”
“그래요?”
보니까 종수가 웃기긴 하다.
재휘라는 애는 뭔가 어디서 본 건 많은 느낌이라 포인트를 잘 살렸다.
시하는… 그냥 귀여웠다.
그거면 된 거 아닐까?
아무래도 어른스러운 옷 모델은 못 할 것 같다.
가져온 옷 중에 귀여운 것도 있으니 그게 더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시하는 귀여워. 다 귀여워.”
알리사의 중얼거림을 들으니 피식 웃음이 난다.
“시하 사진 쓸 만하겠어요? 이 옷은 다른 애가 나을 것 같은데.”
“당연하죠. 사람들이 보는 취향이 다르니까. 스타일 다른 아이는 어떤지 지표가 될 수도 있고.”
“그래요?”
“네. 다음은 담 위에 올라가 찍을까요? 저 위에 쪼르르 앉으면 느낌 날 것 같은데.”
“그래요.”
그때 ‘악!’ 소리가 났다.
뒤를 돌아보니 재휘가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