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0화 (110/500)

110화

시하의 말을 보충한 건 하나였다.

“알리사 언니 마법이야!”

“응?”

“알리사 언니가 만든 거야!”

“아…….”

“머리 노랑색!”

“아! 그 사람이구나. 알았어.”

언제 한번 어린이집에 온 알리사를 재휘가 기억하고 있었다.

시하의 옷에 더더욱 흥미가 생기는지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좋아! 알려줬으니까 나도 좋은 거 알려줄게.”

“아?”

“내가 요즘 좋아하는 옷이 있는 곳이야. 아루아루라고 해.”

“아루아루?”

“응. 아루아루. 멋진 옷이 많아.”

“아아.”

시하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뭔지 잘 모르니 나중에 형아에게 말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관심이 없어져서 다른 놀이를 하려고 움직였다.

하지만 재휘는 그런 시하를 놓아주지 않았다.

“아니! 알리사 누나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고 가야지!”

“아아. 저기.”

시하는 알리사가 있는 옷 가게 방향을 가리켰다.

물론 가리킨 방향은 시하 기준이라서 틀린 방향이었다.

재휘가 그걸로 어떻게 아냐며 답답해했다.

“쭉. 여프로. 아프로. 아프로. 저기!”

시하가 열심히 설명하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때 우연히 알리사가 등장했다.

“응? 다들 뭐 해요? 오늘 봉사 활동하러 왔어요.”

모두의 이목이 알리사에게 집중됐다.

재휘가 말했다.

“진짜 저기 있네?”

이건 뭐 거의 마술 수준이었다.

알리사가 뭔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재휘가 용기 있게 앞으로 나섰다.

“저기 누나!”

“왜 그래?”

“나도 누나 옷 사고 싶어요.”

“내 옷? 정말?”

“네. 시하가 입은 옷이요.”

그 말에 알리사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분명 가게에서 판 옷이고, 손을 대긴 했지만, 엄연히 자신이 디자인한 옷이 아니었으니까.

저 말에 괜히 디자이너의 승부욕이 불타올랐다.

다음에는 반드시 자신이 한 디자인 옷으로 애들에게 부러움을 사게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그럼 누나가 쇼핑몰을 만들 거거든. 그때 인터넷에서 주문해 줄래?”

“네!”

그 말에 하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하나도. 하나도!”

“아아. 시하도!”

“나도 뭐. 입어줄 수 있는데!”

셋이서 재잘대는 모습을 보며 알리사가 흐뭇하게 웃었다.

말만이라도 고마웠고, 정말 사준다면 더 고마웠다.

“그런데 이름이 뭐예요?”

“아! 이름? [파랑몰]이라고 지었어.”

“파랑몰. 파랑몰. 기억했어요. 아루아루만큼 자주 찾을게요.”

“응? 아루아루? 그래. 아루아루란 말이지…….”

“네. 왜요?”

“으응? 아니야.”

곁에서 듣고 있던 시하가 열심히 외우기 위해 따라 말했다.

“파라모. 파라모. 파라오.”

그 말을 들은 승준이 푸하하 웃었다.

“나 파라오 알아! 왕이야! 왕!”

“왕?”

“응. 알리사 누나는 왕을 만든대.”

알리사의 머리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응? 그게 아닌데…….”

하지만 이미 알리사가 왕을 만든다는 거로 생각이 바뀐 아이들이었다.

전에 사극을 했을 때 옷을 만든 기억과 연관시킨 것이다.

***

알리사가 어린이집에 봉사하러 오는 건 이유야 여러 가지였다.

아이들이 좋아서 봉사하는 것도 있지만 조금 세속적인 이유도 있었다.

봉사 활동 시간은 겸사겸사고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아동복을 구상하기 위해서였다.

애들이 지금 입는 옷들.

어느 것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요소.

거기에 관해 아이디어가 생성되며 맞춰진다.

한가지 재미난 사실이 있다면 아이들도 어른 만큼 예쁜 옷을 좋아한다는 거다.

캐릭터 옷은 정말로 인기가 있으며, 때로는 어른스러운 옷들도 좋아한다.

‘시하는 펭귄을 제일 좋아하고.’

시하는 주관이 뚜렷하기 때문에 일반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형아에게 물들이고 있으니 형아의 옷이 시하의 패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을 안다.

‘부모님 영향도 있어.’

지금 재휘라는 아이를 봤을 때 잘 알 수 있었다.

실제 부모님도 패션에 대해 관심이 많을 것이다.

잘 입고, 잘 입히고 다닐 가능성이 농후했다.

‘하나는 아이돌처럼 입고 싶어 하고. 승준은 그냥 관심 없는 것 같고.’

하지만 이런 관심은 어머니 쪽이 훨씬 많다는 걸 알고 있다.

아이들을 보면 불편할 수 있는 옷을 싫어한다.

그리고 여름에는 통풍이 잘되고 땀이 잘 배출될 수 있는 옷을 선호하기도 하고.

그런 성향들과 체형, 취향을 이 어린이집에서 볼 수 있었다.

“시하야. 오늘 내가 디자인을 가져왔어. 이 중에서 뭐가 마음에 들어?”

“아?”

시하가 옷 디자인을 보았다.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옷을 골랐다.

베이지 7부 반바지에 티셔츠.

상의는 한쪽만 바지 안에 들어가 있어서 꽤 멋스러운 디자인이었다.

복잡하지 않고 세로로 새겨진 스트라이프 무늬로 더욱 시원함을 보였다.

흰색과 하늘색의 조화.

알리사는 이 두 색 들어가서 시하가 이 옷을 골랐을 거라고 추측했다.

펭귄을 연상시키니까.

“좋아. 그럼 이걸로 사진 한 컷 찍는 거다?”

“아?”

“괜찮아. 벌써 형아에게 허락 맡았어.”

그렇게 말했는데 뒤에서 소리가 났다.

“누구 마음대로?”

“어?”

알리사는 시혁이 뒤에 있자 당황했다.

“아하하. 그때 도와준다고 했잖아요.”

“그건 계약서를 썼을 때 이야기고요.”

“아, 정말 이러기예요?”

“네. 이러깁니다. 정당한 노동에 대가는 지급해야죠.”

“제가 어디 떼먹나요.”

“떼먹지는 않겠지만 같이하는 친구들은 모르잖아요. 이런 건 철저하게 해야죠.”

“알겠어요. 모델 구하기 이렇게 어렵네.”

“당연하죠. 시하 몸값은 엄청 비싸거든요.”

“그럼 시혁 씨도 참여해 줄 거죠? 저 많이 도왔는데 이 정도는 해 주셔야죠.”

“알겠어요. 저도 양심은 있어서.”

“정말 양심적이네요.”

그때 모델이라는 말이 귀에 꽂혔는지 애들이 관심을 보였다.

하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알리사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무언가 아주 많이 바라는 느낌.

“하나야. 왜?”

“언니! 저도 모델하고 시퍼요!”

“어어? 음. 하고 싶어?”

“응!”

“그래? 그럼 하나는 이 디자인 한번 봐볼래? 이건 언니 친구가 만든 거야.”

“우와! 예뿌다!”

하나가 정말 좋아하며 눈을 빛냈고, 승준은 관심 없는지 다른 곳에 눈을 돌렸다.

시하는 시혁의 옆에 딱 붙어서 옷이 똑같다고 막 좋아했다.

“시하야. 아침에도 그랬는데 지금도 좋아?”

“아아. 조아! 형아랑 가타!”

“아하하.”

그렇게 떠들고 있을 때 재휘가 알리사에게 다가가 우물쭈물 말을 걸었다.

“저도 모델 시켜주면 안 돼요?”

“으응?”

모델 하고 싶은 애들이 급증했다.

다른 애들도 자기들도 해 보고 싶다고 손을 들었다.

설마 이렇게 될 줄 몰랐던 알리사가 난처한 얼굴을 했다.

그때 선생님이 손뼉을 쳤다.

짝!

“자! 모두 진정하고 전부 모델 체험을 해 봐요. 아마 다들 전에 봤던 패션쇼를 인상 깊게 봤나 보네요.”

알리사가 선생님의 말에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다, 다, 다 모델로요?”

“그냥 일단 찍어보는 거죠. 애들 직업 체험같이 좋잖아요. 마음에 드는 사진 있으면 써도 될 거고요.”

알리사 입장으로서는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그럼 부모님께 허락은…….”

“오늘 한번 물어보면 되죠. 아마 좋아하실걸요? 요즘 인별이다 뭐다 많이 올리잖아요.”

“그렇죠.”

“시혁 씨도 인별 할걸요? 시하가 얼마나 귀여운데요. 그쵸?”

그 질문을 받은 시혁이 어색하게 대답했다.

“안 하는데요. 해야 하나요?”

***

내 대답을 들은 두 사람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흥분했다.

이게 그렇게 흥분할 일인가?

왜 시하의 귀여움을 혼자 독차지하냐면서 너무한 거 아니냐고 했다.

굳이 공유할 필요는 없잖아?

나는 그런 생각이었다.

널리 알리기보다는 시하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싶다.

홍익시하도 아니고 말이야.

“시하에게 악플 같은 거 달리면 전 못 견딜 겁니다.”

알리사가 말했다.

“뭐 악플이 달릴 수도 있겠지만 애한테까지 그렇게 안 할걸요? 그리고 시혁 씨 개인 SNS를 만드는 게 일할 때 도움이 될 거고요.”

“일할 때요?”

“네. 굳이 시하 사진이 아니라 이것저것 통역사로 일 많이 했잖아요.”

“그렇… 죠?”

“심지어 e스포츠로 얼굴 비춘 적도 있고.”

“네.”

“주변 사진도 많이 찍었는데 그걸 활용해야죠. 프리랜서로 일하면 이런 거로 의뢰가 들어오기도 할걸요? 홍보 효과도 있고.”

“이걸로요?”

아무리 그래도 설마 통역사가 인별한다고 해서 일이 들어올 리가 있나.

그렇게 생각하지만, 지금은 자기 어필의 시대다.

어쩌면 정말로 들어올지도 모르겠다.

방송을 보고 나에게 연락할 수단을 여기에 취할 수 있는 거고.

‘생각해 보니 그렇네.’

이번 NM 회사에 소속된 통역사인 줄 아니까 어느 정도 알릴 수 있는 명함 같은 게 필요할지도 몰랐다.

DM(Direct Message)이 오면 굳이 번호를 알려주지 않아도 되니까.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일러레 같은 경우도 자기 홍보를 SNS로 해서 외주를 받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광고 효과는 가질 수 있을지도.

“그럼 한번 만들어볼까요?”

“잘 생각했어요!”

“왜 알리사가 좋아해요?”

“가끔 시하랑 함께 찍은 사진도 올리고 그래요. 악플도 인기 있는 계정에 가끔 달리는 거지. 인기 없으면 소용도 없어요.”

“그건 그렇죠.”

“시혁 씨 계정이면 그렇게 인기 있을 리는 없으니 걱정은 노노.”

“왜요? 제가 뭐 어때서?”

“딱딱하게 올릴 게 뻔한데 인기가 생기겠어요? 이것도 홍보하는 방법이 다 있거든요.”

아픈 곳을 쿡쿡 찌르네.

뭐 인기 같은 건 관심 없다.

그저 나는 시하를 위해 열심히 돈 벌어 집도 사고, 추억도 만들 수 있으면 만족이었다.

“으음. 그럼 한번 만들어보죠.”

나는 곧바로 계정을 만들었다.

손쉽게 만들어져서 허탈할 지경.

일단 나는 통역한 걸 어필하기 위해 찍어 놓았던 것을 올렸다.

‘아니, 번역한 것도 올리는 게 좋을지도.’

금색 시곗바늘, 송택수 선생님의 무협 소설, 섬유박람회&패션패어, 멜츠, KI미디어 중국 계약 자리, e스포츠 이벤트 매치.

그리고 오늘 찍었던 벨과의 사진.

‘음. 이 정도면 풍부하네.’

하다 보니 뭔가 계정이 심심한 것 같아서 시하와 함께 찍은 사진도 중간중간에 올렸다.

알리사가 내 계정을 팔로우했다.

나도 맞팔로 받아주었다.

“알리사도 하네요? 억! 팔로워 20만이나 돼요?!”

“흐응~”

알리사가 가슴을 쭈욱 폈다.

나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알리사를 보았다.

“설마 이거 보여주려고 한 거 아니죠?”

“그것도 있죠!”

“대단하네요.”

“그런데 시혁 씨. 사진이 좀 실망스러운데요? 어플 같은 거 안 써요?”

“안 쓰는데요?”

“폰도 좋은 것 좀 사요. 시하 사진이 이게 뭐예요.”

“뭐가요? 귀엽기만 한데요?”

내 눈에 엄청 귀여워 보인다.

보정은 가짜다.

내 사진은 보정 없는 진짜다!

알리사가 그걸 보며 불만스러운 얼굴을 했다.

“그럼 같이 시하 사진 찍어볼래요? 얼마나 다른지.”

“그럴 필요 없어요. 보정이 이쁘게 나오는 건 저도 알고 있으니까.”

“아니요. 보시면 생각이 달라질 거예요. 자 봐요.”

나는 마지못해 시하를 불렀다.

“시하야. 앞에 포즈 좀 취해 줄래?”

“아아!”

사진 찍는 게 좋은지 앞에서 브이를 하고 있다.

역시 여전히 브이는 포기할 수 없는 포즈인가 보다.

그런데…….

‘얘들아. 너희들은 왜 시하 옆에서 포즈를 잡고 있어?’

애들 전부 시하 곁에 옹기종기 모여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하나가 손가락 하트를 만들고 있었고, 승준은 관심 없는 듯이 옆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런 주제에 시하 옆자리는 냉큼 차지했다.

종수는 자신을 과장하기 위해 어디서 의자를 가져와 시하 뒤에 올라와 있었다.

알리사는 뭐가 그렇게 웃긴지 옆에서 깔깔대고 있었다.

너무 웃어서 폰이 이리저리 흔들리는데 잘 찍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는 그렇게 사진을 찍었다.

찰칵.

“자. 비교해봐요.”

“네. 볼게요.”

두 폰을 비교해 보았다.

나는 조용히 사진을 삭제하고 알리사에게 사진을 보내 달라고 했다.

아무래도 5년 정도 폰을 쓰려고 했는데 사진 잘 나오는 폰으로 바꿔야 할 것 같았다.

사진 앱도 깔고 말이다.

내 생각이 잘못됐다.

사진 앱이야말로 시하를 50% 정도 담을 수 있었다.

98%는 사진기라도 사야 얻을 수 있을지도?

2% 부족한 건 어쩔 수 없다.

세상에서 시하를 온전히 담을 수 있는 기계는 없을 테니까.

***

다음 날.

나는 벨 선수가 보내준 액수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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