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9화 (109/500)

109화

[Llew님이 10,000원을!]

[1대1 무한 대전에서 벨에게 원 킬 딸 수 있어요? 있으면 10만 원 후원함!]

무한 대전.

제한 시간 안에 상대방을 많이 처치하는 것을 말한다.

죽어도 금세 부활하며 다시 싸움을 붙는다.

제일 많이 처치한 사람이 1등이 되는 대전.

아무래도 사람들이 정말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한가 보다.

아니, 정말 실력이 낮아서 이런 제안을 하는 걸지도.

‘분위기를 띄울 줄 아는 사람일지도 모르지.’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적절하게 미션 같은 걸 제안하고 있다.

벨도 흥미가 있는지 옆에서 하자고 눈빛을 보냈다.

“절 어느 정도로 보시는지 모르겠지만 이 정도는 할 수 있어요. 하죠. 무한 대전.”

“네. 그럼 여러분이 원하시는 대로 전투력 측정기인 제가 한번 시험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게임이 시작되었다.

서로의 화면을 보지 않기로 약속하고 나란히 마우스와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이 영상은 시하가 볼지도 모르니 형의 체면을 위해 너무 밀리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열심히 하자.’

하지만 조금 자신은 없었다.

왜냐면 옆에 사람은 한국에서 제일 잘나가는 프로게이머였으니까.

실력 차는 아득할 정도였다.

옆에서 벨이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 봐줍니다?”

“네. 그러세요.”

“좋아요. 여러분 오늘 빡겜 갑니다. 대화가 없더라도 이해해 주시길.”

채팅창을 슬쩍 보니 기대감이 가득했다.

그런데 나를 응원하는 말들도 다수 존재했다.

아무래도 동정표 얻는 느낌이 다분했지만, 그거라도 어떤가 싶었다.

탕!

“억!”

어디서 날아오는지 모를 총격에 HP가 뭉텅 깎여나갔다.

나는 재빨리 건물을 등지고 숨었다.

아까 맞은 부위를 생각하면 날아온 방향을 예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스나이퍼든지 공통된 움직임이 있다.

위치를 들켰으면 재빨리 이동해 다시 자리를 잡을 것.

나는 그 생각을 다시 한 발을 맞고 깨달았다.

탕.

그대로 캐릭터가 죽고 부활했다.

벌써 1킬을 획득한 벨이 여유롭게 노래를 틀었다.

[맞지 않는 총. 늘어나지 않는 킬.]

“억! 그 노래를 왜 틀어요.”

“무한 반복 중이에요.”

“크흠. 이거 진짜 안 되겠네.”

적절한 타이밍에 나온 노래라 다시 한번 채팅창은 ‘ㅋㅋㅋ’와 ‘lol’로 도배되었다.

그렇게 여유를 부리겠다면 나도 다 생각이 있다.

이제까지는 손이 안 풀렸을 뿐이다.

정말 손이 안 풀렸을 뿐.

오랜만에 하는 게임에 적응 기간이 필요했다.

‘분명 거기서 움직였을 거야.’

나는 살며시 맵을 떠올렸다.

내가 아는 정보에 따르면 벨 선수는 원거리 딜러.

자리 잡기 좋은 건물들을 분명히 알고 있을 거다.

하지만 이건 1대1 대결.

그냥 원거리전과는 달랐다.

‘중국의 웰 선수가 하던 플레이를 기억하고 있긴 해.’

막상 게임을 하니 많은 예측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상대방이 어디로 움직일지, 아니면 어떻게 행동할지, 좋아하는 플레이는 뭘지.

벨 선수가 좋아하는 건 예측.

몰이 사냥하듯이 몰아서 공격하는 걸 좋아했다.

하지만 중국의 웰 선수는 특유의 반응속도로 대응했다.

‘전략은 1킬만 따면 돼. 그렇다면.’

머리 쪽만 조심하면 한두 방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한 발만 맞추자.’

이 무한 대전에서 벨 선수를 이기려고 하면 안 된다.

목표는 후원금을 따내는 것.

거기에 적어도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럼…….’

나는 머리를 재빨리 굴리기 시작했다.

어딨는지 모르는 벨을 찾으려고 일부러 도로로 캐릭터를 드러냈다.

예상대로 공격하는 벨.

나는 그제야 벨이 있는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탕.

총소리가 났다. HP가 깎인다. 위치가 드러나고 다시 이동한다.

나는 총을 쏘지 않고 그대로 상대 캐릭터의 머리 방향이 어느 쪽으로 도는지 파악.

머리 방향과 반대쪽으로 움직였다.

‘고개를 돌리는 모습은 블러핑.’

벨은 일부러 보여줘 예측에 혼선을 주는 플레이를 한다는 걸 기억하고 있다.

실제로 확률은 반반이다.

하지만 여유롭게 나를 상대하는데 한 번 더 꼬아서 속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도 들었다.

그대로 건물을 올라가 몸을 돌았다.

‘찾았다.’

총을 들고 그대로 공격했다.

탕! 탕! 탕!

벨이 재빠른 반응속도로 회피했다.

하지만 공격을 한 방 맞았는지 HP가 깎인 게 보였다.

쏘고, 또 쏘고 그대로 돌진했다.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몸을 노리는 총격을 계속한다.

벨은 까딱까딱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공격을 빗나가게 하는 예술적인 플레이를 보였다.

그때였다.

‘음?’

집중을 너무 해서일까?

상대의 캐릭터가 간간이 총을 쏘며 피하는 모든 동작이 천천히 느려진다.

명확하게 보이는 상황.

마치 위에서 아래로 보이는 감각을 느끼며 그대로 총구를 정확하게 겨눴다.

탕!

그대로 벨 캐릭터의 머리를 맞추며 1킬을 따냈다.

“후우!”

갑자기 어지럼증이 와서 손으로 눈을 가렸다.

이 감각. 전에도 느낀 적 있다.

멜츠 차가 돌진해 시하와 나를 치려고 할 때 느꼈다.

그때는 시간이 멈춘 듯했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훨씬 떨어진 능력이었다.

동체 시력이 평소보다 조금 좋아진 느낌 정도.

‘그때의 감각이 몸에 남아있는 걸까?’

내 귓가에 벨의 목소리가 들렸다.

“와! 대박! 이번 플레이는 완전 당했어요. 이 정도면 실력이 실버는 아니네요. 근데 1킬 따내서 감동한 거예요?”

나는 눈에서 손을 떼고 웃었다.

“조금요. 실력이 너무 뛰어나셔서 1킬도 못 딸 줄 알았거든요.”

“이걸로 트롤은 아니신 거로. 충분히 실력 있습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그래요. 여러분도 방금 플레이 보고 그렇게 생각하죠?”

[Llew 님이 100,000원을!]

[이걸 1킬 따내ㅋㅋㅋ 힘순찐 에반데ㅋㅋ]

나는 그걸 보며 피식 웃었다.

“힘순찐이라뇨. 진짜 숨기고 있는 사람이 누군데…….”

“응?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저 아이디 보고 눈치 못 챘어요?”

“뭐가요?”

“저 아이디 거꾸로 하면 well이잖아요.”

“어? 아, 설마?”

“그런데 궁금한 게 있는데요. 중국에서 스트리밍 TV 볼 수 있나요? 저기요, 웰 선수?”

채팅창이 웅성거렸다.

정말 웰 선수인지 궁금한 상황.

그에 대한 답을 후원으로 해줬다.

[Llew 님이 1,000원을!]

[Bye Bye]

당황했는지 그대로 나가 버리는 중국의 웰 선수였다.

우회해서 들어온 것인지 아니면 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딱 걸렸다.

“와! 진짜 웰 선수였나 보네요. 이건 우리끼리만 알죠. 하하.”

채팅창은 그야말로 폭소하며 난리가 났다.

그때 또 하나의 후원이 들어왔다.

[2241111님이 1,000원을!]

[켠김에 플레가면 10만 원!]

나는 시간을 슬쩍 보았다.

어느새 1시간이 넘게 지나가 있었다.

아마 골드를 지나 플레에 가려면 종일 게임을 해야 할 것이다.

“그건 힘들겠네요. 절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요.”

-여친?

-여친이네

“여친보다 더 좋은 사람이요. 제게 동생이 있어서. 이제 3살인데 어린이집에서 절 기다릴 거예요.”

“와. 3살이면 엄청 귀엽겠네요.”

“뭐 그렇죠.”

시하를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왔다.

벨이 말했다.

“많이 좋아하나 보네요.”

“네. 오늘은 저랑 똑같은 옷을 입고 간다고 어찌나 성화던지. 그게 또 귀엽더라고요.”

“그런데 통역사님은 동생 이야기할 때 표정이 어떤지 모르시죠?”

“네? 이상한가요?”

“아니요. 엄청 아빠 미소를 짓고 계셔서. 표정이 완전히 풀렸다고 할까? 방송 처음 켤 때는 조금 뭐라고 할까? 긴장한 게 보였거든요.”

“그래요?”

난 엄청 자연스럽게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아무래도 이런 방송이 처음이다 보니 어색한 모습이 있었고, 뭔가 일을 하는 듯한 느낌? 프로페셔널한 모습이 있었거든요.”

“아…….”

“근데 동생 얘기하시니까 완전 얼굴이 풀려서 보기 좋아요.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갈 얼굴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이에요.”

채팅창에도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지 동의를 표했다.

표정 푸는데 시하만 한 게 없나 보다.

“하하. 제가 동생을 많이 좀 아껴서. 어쨌든 플레까지 게임하는 건 못할 거 같습니다.”

“그렇답니다. 그럼 빡겜할까요?”

“그러죠.”

[2241111님이 1,000원을!]

[동생이랑 어떻게 놀아줘요?]

이 사람은 또 뭔가 싶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대답을 안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뭔가 마음에 걸렸다.

그대로 아이디를 유심히 보았다.

“저기요. 2241111님. 혹시 웰 선수예요?”

“네? 갑자기 웰 선수가 왜 나와요?”

“알파벳을 순서대로 숫자를 놓으면 22는 W, 4는 E, 11은 L이거든요.”

“어? 그러고 보니 다 합치면 well이네요? 와!”

[2241111님이 나가셨습니다.]

-엌ㅋㅋㅋㅋ

-진짜였어ㅋㅋㅋ

-어캐 알았누ㅋㅋㅋㅋ

-웰 선수 부계도 있네ㅋㅋㅋㅋ

그냥 동생에 관한 과도한 관심이 이상해서 아이디를 유심히 본 것뿐이다.

근데 시하가 아들이 아니라 동생인 걸 알았겠구나?

뭔가 정정할 기회를 놓쳤는데 나중에 연락 한번 해야겠다.

“그럼 진짜 빡겜하죠.”

남은 시간 동안 게임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방송을 종료했다.

***

한편 시하는 어린이집에서 오늘 형아랑 같은 옷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거. 형아랑 가타.”

원래 ‘같아’를 ‘같이’라고 썼지만 계속 형아가 반복해서 교정해준 덕분에 ‘가타’라고 말할 수 있었다.

“우와! 옷 멋있다.”

“시하야. 옷 머시써!”

“아아.”

시하가 자랑스럽게 배를 쭈욱 내밀었다.

형아랑 같은 옷이 칭찬을 받으니 기분이 매우 좋았다.

하나가 말했다.

“구런데 하나도 이 옷 입고 시퍼.”

“아?”

“시혀기 오빠랑 가튼 옷. 헤헤헤.”

하나가 두 손을 뺨에 대며 배시시 웃었다.

승준은 그런 하나를 보다가 시하를 보았다.

“나는 축구 유니폼 입고 싶은데!”

“아아.”

시하는 뭔지 모르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리사. 리사!”

“응?”

“리사. 옷. 짜잔!”

대충 알리사가 옷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자랑하고 있었다.

물론 알아듣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 종수가 와서 자기 옷도 자랑했다.

“내 옷은 메이커다! 비싼 거야!”

자기 과시가 뛰어난 종수를 보며 시하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아직 메이커라는 개념을 잘 모르는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옷이 예쁜 것과 잘 입는 눈은 가지고 있었다.

어린이집이라고 해도 첫 사회 경험이고 인간관계가 형성되는 집단이다.

시하의 패션에 관심을 가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얼마나 잘 입는가에 따라 관심과 인기가 생기는 법이다.

잘 차려입은 아이에게는 태가 난다.

종수 엄마 역시도 그런 생각으로 어린이집 가는 아이의 옷을 고를 때 늘 고민하는 부분이었다.

어디 가서 무시당하지 말라는 뜻.

물론 그런 마음을 종수가 알 리는 없었다.

“어때! 멋있지?”

“아아. 머시써.”

“그래? 너도 멋있어.”

“아아. 고마어~”

시하가 예의 바르게 종수를 받아주었다.

그때 종수의 무리 중 한 명인 재휘가 시하를 유심히 보았다.

“야!”

“아?”

“너 패션 좀 아네?”

시하는 무슨 말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앞에 있는 아이의 이름은 알고 있었다.

“재히?”

“어? 내 이름 아네? 시하 너는 요 애들만 알 줄 알았는데.”

“아라. 재히.”

이름을 불린 재휘가 입을 삐죽거렸다.

종수가 자랑하는 성격인 것처럼 재휘는 한 가지에 굉장한 자부심을 품고 있는 아이였다.

바로 패션!

돌잔치 때 실을 집었을 때부터 옷에 지독히 관심이 많았다.

입는 것도 좋아했고 그 모습을 보며 부러워하는 눈빛을 보는 것도 좋아했다.

그런데 시하가 꽤 입는 것을 보자 관심이 생긴 것이다.

“그 옷 어디서 샀어?”

“리사!”

“옷 가게 이름이 리사야?”

“아냐. 리사! 짜잔!”

“아니…. 그게 뭐냐고…….”

이렇게. 이렇게.

시하가 밴딩을 넣는 장면을 따라 했다.

박음질 소리도 함께.

“두두두두. 짜잔!”

“뭐야. 알려주기 싫은 거야?”

“아냐.”

“좋아. 공짜로 못 알려주겠다는 거지? 알겠어. 그럼 이건 어때? 나도 좋은 옷 있으면 알려줄게.”

시하는 왜 못 알아듣는지 몰라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걸 본 선생님이 속으로 생각했다.

‘시하야. 그 화법은 형아에게나 통하는 거야…. 좀 더 말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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