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8화 (108/500)

108화

예쁜 시하의 옷이 완성되었다.

나와 같은 옷을 가진 시하가 전신 거울을 보며 자신의 몸을 열심히 보았다.

“형아.”

“응. 우리 똑같네?”

“아아.”

나는 시하랑 같이 전신 거울에 서서 서로를 보았다.

내가 옆으로 서자, 시하도 옆으로 자세를 잡았다.

나는 그게 재밌어서 손에 주머니를 넣거나 괜히 손목을 만져보는 포즈를 취했다.

두 사람이 데칼코마니처럼 전신 거울 앞을 누볐다.

그걸 본 알리사가 말했다.

“뭔가 자존심 상하네요. 괜히.”

“왜요?”

“제 옷 디자인도 아닌데 두 사람 다 만족하는 거 같아서요.”

아무래도 디자이너로서 복잡한 심경인 것 같았다.

뭐 이 옷이 특별한 것도 아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패션이었다.

다른 게 있다면 우리 두 사람이 서로 같은 옷을 입고 있다는 게 만족일 뿐.

“디자인 때문이 아니라서 서로 같은 옷을 입어서 그냥 좋은 거예요. 저는 시하 때문에 좋고, 시하는 저랑 같아서 좋고.”

“그래도요. 다음에는 제 옷에 시하가 기뻐했으면 좋겠네요. 그래도 두 사람은 보기 좋아요.”

알리사가 마치 사진사처럼 손으로 네모를 만들더니 우리 두 사람을 담았다.

“흐음. 구도도 좋네요? 나중에 같이 투 샷을 찍어도 괜찮을 거 같아요.”

“일단 시작하고 말하시죠.”

“잘될 거예요.”

“너무 대책 없이 긍정적인 거 아니에요?”

“젊을 때 다 경험해 보는 거죠.”

경험이 좋긴 하다.

정말로 성공할지도 모르고.

많이 불안한 감정이 있을 텐데 저 도전정신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저 한 발짝 내딛는 용기가 눈부시게 빛나 보였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잘할 것 같았다.

“제가 도와줄 일 있으면 도와줄게요.”

“정말요?”

“네. 계약서 쓰고.”

알리사가 샐쭉 입을 내밀었다.

“저 고급 인력입니다.”

“시하야~ 형아가 잘 안 도와주는데 시하는 도와줄 거지?”

알리사가 나 말고 시하를 노렸다.

시하가 내 얼굴과 알리사를 번갈아 보더니 자신의 배를 통통 쳤다.

“아아. 리사. 도아.”

“정말? 도와줄 거야?”

“아아.”

“고마워!”

알리사가 시하를 얼싸안았다.

둥실둥실 떠다니는 시하가 팔다리를 흔들었다.

“리사!”

“응. 재밌지?”

“동그라미. 시하. 져.”

“으응? 동그라미?”

나는 그 말에 피식 웃음을 보였다.

시하가 말하는 동그라미가 뭔지 알 것 같았다.

공짜로 돕는 건 아니었다.

시하도 고급 인력이라는 거겠지.

“동그라미가 뭐야?”

“시하가. 형아. 옷 사져.”

나는 감동한 얼굴로 시하를 보았다.

그런 의미였어?!

고급 인력이라는 말 취소하겠다.

시하는 최고급 인력이었다.

형아의 마음마저 사로잡는.

“아! 시혁. 그런데 수현이가 노래를 보냈다고 하는데 그건 어떻게 됐어요?”

“으응? 아…. 모릅니다. 전 몰라요.”

“안 받았어요?”

“아무튼, 전 몰라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모르는 일이다.

물론 방송에서 저 자작곡이 쓰일지도 모르겠지만.

***

-벨 선수와 스트리밍 방송 날.

시하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나는 벨 선수와 만났다.

따로 사무실이 있었는데 방송할 장비들이 갖추어져 있었다.

“안녕하세요.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내 인사에 벨 선수가 손사래를 쳤다.

“하하. 부탁은 제가 드려야죠. 오늘 방송 게스트이신데.”

“그런데 방송은 자주 하시나요?”

“아니요. 사실 팀으로 연습도 하고, 전략도 짜고, 분석도 해야 해서 일주일에 한 번밖에 못 해요.”

하긴 프로게이머인데 매일 방송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역시 구독자가 장난 아니었다.

심지어 꾸준히 올라가고 있어서 벌써 70만에 육박했다.

안 보는 사이에 어마어마하게 오른 것 같았다.

벨 선수가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며 의자를 툭툭 두드렸다.

“여기 옆에서 앉으시면 돼요.”

“오늘 게임도 하실 건가요?”

“당연하죠. 방송이 게임 위주라서. 평소와 좀 다른 거라면 토크가 좀 많을 거라는 점?”

“그래요? 재밌을 것 같네요.”

“정말 재밌을 겁니다.”

나는 벨 선수를 보며 살짝 머뭇거렸다.

지금 주머니에 있는 USB를 건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싶어서.

먼저 눈치를 채준 건 벨 선수였다.

“뭔가 하실 말씀이라도?”

“으음…. 사실 아는 후배에게 부탁받았거든요. 게임 하면 이런 BGM을 써달라고요.”

“오! 뭔가요? 그게?”

나는 USB를 살며시 흔들었다.

“실제로 자작곡으로 만든 거라는데 아직 들어보지는 않았어요. 노래를 정말 잘 부르는 친구거든요.”

“가수예요?”

“가수는 아니고요. 현재 너튜버로 활동하고 있어요. 구독자는 많지 않지만요.”

짝.

벨이 알았다는 듯이 손뼉을 쳤다.

“홍보네요?”

“뭐 그런 셈이죠.”

“이거이거 일단 검증부터 받아봐야겠는데요?”

“말 그대로 부탁만 받은 거라 안 쓰셔도 돼요.”

“아니에요. 스트리밍 방송할 때 같이 들어보죠. 실시간 반응이 있어야 영상이 살아남거든요.”

“아하. 그래서 저도 안 들어봤어요.”

“그럼 됐네요. 오늘 영상 재밌게 잘 나올 거 같네요.”

나는 벨 선수와 함께 자리에 앉아서 대략적인 진행을 들었다.

대충 알아들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2시 55분.

어느새 방송할 시간이 되었다.

5분 전에 방송을 미리 켜고 음악을 틀었다.

벨이 말했다.

“방송 좀 준비하겠습니다.”

사실 이미 방송은 다 준비되어 있어서 영상 송출만 누르면 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어느 정도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위한 것이었다.

애초에 3시에 방송한다고 미리 말하기도 했다.

“그럼 3시 되면 마이크 켜고 시작할게요.”

“네.”

3시.

벨이 마이크를 켜고 영상을 송출했다.

카메라 렌즈가 나와 벨을 비췄다.

두 사람의 얼굴이 나오자 채팅창이 빠르게 올라왔다.

-벨하!

-벨하!

-오오오! 옆에 사람 누구?!

-ㅋㅋㅋ통역사분 얼굴 얼으셨네ㅋㅋㅋ

-bell! wait you!!!

-lollll

한국어와 영어가 동시다발적으로 채팅창을 가득 채웠다.

간간이 다른 나라 언어가 있는 걸 봐서 여러 나라에서 벨 선수를 보는 걸 알 수 있었다.

대체로 영어와 한국어가 주를 이뤘다.

아무래도 다른 나라에서 공용어인 영어를 사용하는 것 같다.

벨이 말했다.

“네에. 스하! 오늘은 전에 말했던 대로 토크 위주 방송을 좀 해 보려고요. 옆에는 오늘 게스트로 나온 통역사예요. 전에 이벤트 매치에서 나왔던 그분 맞아요. 소개 좀 해 주실래요?”

나는 그 말을 듣고 곧바로 영어로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이시혁 통역사입니다. 한중 이벤트 매치 때 나왔던 사람 맞습니다. 오늘 토크도 있을 거고 게임도 하니 재밌게 봐주세요.」

내 유창한 영어 실력에 벨이 놀랐다는 듯이 나를 보았다.

채팅창에는 벨의 놀란 얼굴을 보고 마구 놀려댔다.

반은 내 영어 실력에 감탄했다.

하지만 내 소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기껏 방송하는데 이 정도로 끝내면 재미없으니까.

이왕이면 제대로 다른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방송은 옛날로 따지자면 광대놀음 아니겠나.

오늘은 제대로 광대가 되어보자.

아까 했던 인사를 그대로 독일어, 중국어로 바꿔 말해 주었다.

그랬더니 채팅창에 난리가 났다.

-?!

-와 ㅁㅊㄷ ㅁㅊㅇ

-3개 국어 ㄷㄷㄷ

-두 번째는 무슨 언어임?

-독일어

벨의 얼굴이 더 해괴해졌다.

생낙지를 처음 먹은 사람이 입안에 꿈틀거리는 걸 느꼈을 때 표정이라고 할까?

뭐라 잘 표현을 못 하겠다.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방송을 진행했다.

“어…. 하하. 대충 진행 상황은 짰는데 이건 예상 못 했네요. 방금 한 소개가 어느 나라 말이죠?”

“영어, 독일어, 중국어요. 정확히는 광동어지만요.”

“아하. 대단하네요. 통역사분들은 다들 이런가요?”

“음. 다들 그러지 않을 거예요. 아마 최대한 여러 언어를 배우려고 하실 거고요. 사실 다른 통역사를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

“와우.”

벨이 신기하다는 듯이 나를 보았다.

나는 벨 선수가 훨씬 신기한데 말이다.

“통역사는 많이 보셨지 않아요?”

“봤죠. 이렇게 제대로 얘기는 안 해봤지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보고 계신 외국 분들도 질문 있다면 오늘 특별히 제가 통역해 주겠습니다. 얼마든지요.」

내가 영어로 말하자 채팅창이 영어로 엄청나게 도배되었다.

이번 대사는 이미 벨과 상의 된 사항이었다.

외국 사람들 질문도 잘 대답해 주고 싶은 것도 이유 중 하나다.

나는 채팅창을 보다가 말을 덧붙였다.

「아! 채팅은 너무 빨리 올라가니 후원 질문만 받을게요!」

또 한 번 채팅창이 난리가 났다.

대충 해석하자면 ‘벨에게 못된 것만 배운 통역사다!’, ‘통역비를 후원금으로 받네!’ 뭐 이런 글들이 올라왔다.

정말 정신없는 채팅창이다.

무슨 글들이 ‘ㅋㅋㅋ’가 대부분이었다.

원래 스트리밍 방송이 그런가 보다 싶었다.

나는 여러 질문을 받고 대답해 주었다.

후원이 쏟아지면서 질문이 많이 왔는데 이렇게 많이 쏟아질 줄 몰라서 알아서 커트해야 했다.

“그럼 슬슬 게임 시작해 볼까요?”

“그러죠. 아! 그런데 어떤 분께 노래를 받아왔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네. [슈] 너튜버분이 게임할 때 틀어 달라고 보내셨는데 일단 게임하기 전에 한번 들어보죠.”

나는 사각형의 USB를 카메라에 한 번 보여준 뒤 컴퓨터에 꽂았다.

음악 파일을 곧바로 재생시켰다.

먼저 들린 것은 어쿠스틱한 기타 소리였다.

둥. 둥. 두두둥. 둥. 둥.

[실버 갔어. 너무나 좋았어~]

맑은 목소리와 다르게 불길한 가사였다.

내가 이벤트 매치에서 했던 답변들을 보고 만들었다고 했을 때 살짝 눈치채긴 했다.

[그런데 말야~ 몇 달째 플레에 못 갔어~

승급전마다 트롤이 나였어. 맨날 승급 못 했어.

가고 싶어~ 플레에 가고 싶어~

버버버버버 버스도 타 봤어. 택시도 타 봤어.

승급전마다 팀매치는 최고였어.

내 에임이 도대체 어디로 이리저리 튀는지.

트리플 킬. 나도 하고 싶어~

맞지 않은 총.

늘어나지 않는 킬.

하지만 이게 뭐야.

난 시간 너무 버렸어.

도대체 뭐야.

날 이렇게 만든

내 실력은 뭐야.

트롤러? 오우거?

아님 어디서

판타지클래스 전공하셨나~

가고 싶어.

플레에 가고 싶어어~]

“…….”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이건 개구리라고 맨날 놀린 복수인가?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때로 사과하고 싶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아니, 이렇게 실버라고 놀린다고?

참고로 나는 트롤러가 아니다.

절대 아니다. 승급전을 방해하며 즐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정말 억울했다.

“푸하하하!”

옆에 있는 벨은 배를 잡고 웃었다.

“가사 진짜 최곤데요?! 푸흡! 끅끅.”

눈물을 흘리며 배를 부여잡다가 결국 의자 밑으로 쓰러졌다.

너무 웃겨서 몸을 못 가눌 정도였다.

채팅창도 난리가 났다.

한국어로는 웃겨 죽겠다며 ‘ㅋㅋㅋ’가 남발되고 있었다.

외국인은 가사를 못 알아들었는지 왜 웃는지 모르고 목소리가 좋다고 칭찬 중이었다.

‘이걸 통역해야 하나?’

아무래도 이걸 통역하기에는 좀 그랬다.

하지만 이런 방송이 추구하는 건 재미!

여기 오늘 통역을 하러 온 것도 맞기에 나는 가사를 그대로 통역해 주었다.

그제야 영어로도 웃음 표현인 ‘lol’가 남발했다.

“다 웃으셨으면 이제 일어나시죠?”

“큽. 아 잠시만요. 큽.”

벨은 너무 웃어서 배가 아픈지 손으로 살살 문지르며 일어났다.

얼굴도 땅기는지 볼을 쭈욱 잡아당겼다.

“그렇게 웃겨요?”

“네. 이거 대박인데요? 나중에 영상으로 편집해서 너튜브에 올리면 꽤 화제가 되겠는데요?”

“잘됐네요. 아주 흥행할 거 같아서.”

“아니. 진짜 그 좋은 목소리로 이런 노래를 만들어요. 푸흡.”

“제가 통역하며 대답한 거에 영감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아, 그때.”

벨도 기억나는지 나에게 맞장구를 쳐줬다.

“그럼 이제 게임 하죠. 게임. 뭔가 제가 트롤이 된 거 같은데 그 불명예를 씻어야죠.”

“푸흡. 네. 그러게요. 적어도 저 정도면 버스도 택시도 아닌 비행기쯤 되니까 안심하시고요.”

“아, 억울해! 저 진짜 게임 많이 안 해서 실버인 거거든요. 진짜 못해서 실버가 아니에요.”

하지만 채팅창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억울하네.’

그렇게 이 불명예를 벗어나기 위해 게임을 시작하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후원금이 터지며 예상치 못한 질문이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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