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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화 (106/500)

106화

호랑이는 이미 쓰러져 있는데 호랑이를 쓰러뜨리라니.

이건 또 무슨 말일까?

아니다. 이건 아까 어흥 울음소리 같은 경우였다.

가족 게임이고 쉽게 풀 수 있는 장치.

범인은 또 다른 호랑이인 게 틀림없겠지.

스토리를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애들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승준이 말했다.

“잠깐! 범인은 이 안에 있어!”

엄지와 검지를 펴서 총 모양을 만든 후 턱에 갖다 대며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눈은 우리에게 향해 있다.

승준은 대체 무슨 만화를 보고 따라 하는 걸까?

시하도 그 모습을 보며 승준을 따라 했다.

턱에 손을 대고 고민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범인은 하나야!”

“아니야. 하나 아니야.”

“그럼 범인은 시하야.”

“아?”

“그럼 범인은 시혀기 형아야!”

“응?”

아무래도 한 번씩 다 찔러보는 것 같았다.

다들 반응이 미미한지 승준이 ‘안 걸리네.’라며 아쉬워했다.

나는 웃으며 총을 쥐었다.

“일단 스토리 진행하자. 범인은 저 마을에 있을 거야.”

다시 화면으로 돌아와서 게임을 시작했다.

호랑이가 숨어든 마을을 탐색하다가 떨어져 있는 물건을 발견했다.

쑥과 마늘.

이걸 가지고 마을 사람에게 물어봤다.

[아니, 이건?!]

[이거에 대해서 뭔가 아시나요?]

[당연하죠. 이게 떨어져 있었다고요?]

[네.]

[이상하네요. 이건 요즘 보기 힘든 귀한 겁니다.]

[왜요?]

[왜냐면 지금 신령님께서 쑥과 마늘을 모두 동굴로 가져갔거든요.]

[동굴은 어디 있죠?]

[절 따라오세요.]

동굴 입구에 도착하자 마을 사람은 돌아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신령이 나타났다.

[여긴 오지 말고 돌아가시게!]

그렇게 호통을 친 신령의 뒤에 호랑이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곧바로 선택지가 나왔다.

[돌아간다] [돌아가지 않는다]

나는 슬쩍 애들을 보았다.

“왼쪽은 돌아간다고 오른쪽은 돌아가지 않는다야. 어느 걸 선택할래?”

너무 뻔한 답이라서 애들이 돌아가지 않는다를 선택했다.

‘그래도 재밌나 보네.’

애들이 범인을 찾았다며 꺄악거리고 있었다.

시하도 흥미진진한 눈으로 보고 있었고.

[돌아가지 않겠어!]

[뭐? 이놈이!]

[다 알았어! 당신 뒤에 꼬리를 숨기지 못하는군. 당신이 개떡을 훔쳐 간 호랑이지!]

[이런! 꼬리를 숨기는 걸 까먹다니. 하는 수 없군.]

신령이 호랑이로 변했다.

그때부터 아이들이 신나게 총을 쏘기 시작했다.

호랑이가 으아아악 하며 쓰러지고 개떡을 찾을 수 있었다.

개떡을 갖고 마을에 돌아가 사실을 알리자 마을 사람이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제가 생각하기에 아마 그 호랑이는 인간이 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쑥과 마늘이 그 증거죠.]

[그럼 왜 개떡을 가지러 간 건가요?]

[아마도 쑥과 마늘이 지겨워져 개떡을 별미로 먹으려고 했겠지요.]

[그래도 되나요?]

[언제나 예외 음식은 있는 법이지요.]

[그렇군요.]

[네. 이제 다음 섬으로 떠나시지요. 여러분의 도움을 찾는 사람이 많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이유도 참 개떡 같은 이유였다.

뭔가 엉성하지만 웃긴 스토리.

다음 섬으로 넘어가는 장면을 보며 나는 총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이제 같이 한번 해줬으니 알아서 잘할 거다.

“형아는 밥 좀 만들고 있을게. 셋 다 잘할 수 있지?”

셋이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게임을 지켜보았다.

아무래도 모험에 푹 빠진 것 같았다.

이 더운 여름에 시원한 집 안에서 모험을 떠날 수 있는 건 축복이다.

이 시대에 태어나길 잘한 걸지도 모르겠다.

나도 게임이란 게 있어서 통역비 80만 원을 얻었고.

사실 게임 인터뷰 통역해 주는데 80만 원은 굉장히 높은 가격이다.

급한 상황과 영상에 얼굴이 나오는 출연료를 포함한 비용이니 그 정도가 나온 것이다.

앞으로 너튜브로 창출되는 영상에서 80 정도는 메꿔질지 모르겠다.

영상 조회 수가 꽤 되던데…….

‘잘 건졌다는 느낌이었겠지.’

평범하게 해야 했는데…….

그 무대에서는 그게 평범한 게 아닐 줄은 몰랐다.

그냥 느낌을 잘 살리려고 하다 보니 다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물론 할 수 있는 만큼만.

나는 냉장고에서 돈가스를 꺼내 약불로 구우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땐 어쩔 수 없었어. 서로 손해만 안 봤으면 됐지. 뭐.’

다음에도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있다면 평범하게 할 생각이다.

하지만 다음에 이런 기회는 없을 듯했다.

그때였다.

폰에 전화가 울렸다.

나는 한 손으로 전화를 받으면서 돈가스를 뒤집었다.

“여보세요.”

「네. 안녕하세요. 저번에 인사드렸던 NM 회사 직원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혹시 통화 가능하신가요?」

“네. 되죠. 무슨 일이시죠?”

「하하. 뭐 특별한 건 아니고요. 한국에 벨 선수 있죠?」

“네. 압니다.”

건스하면 1위로 손꼽히며 제일 유명한 선수였다.

저 때 웰과 싸워서 아깝게 진 원거리 딜러.

「그 선수가 부탁을 좀 해서요.」

“어떤걸요?”

「혹시 괜찮으시면 같이 스트리밍 영상에 나와줬으면 한다던데요. 너튜브 영상도 올리고.」

“네? 하하. 제가 나오면 뭐 합니까. 사람들이 관심도 없을 텐데요.”

「아닌데요. 지금 관심 엄청 많아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퍼포먼스가 워낙 대단해서.」

“설마요.”

「진짜라니까요. 물론 모든 사람이 관심을 가진 건 아니지만요. 적어도 벨 선수가 자주 스트리밍하는 방송에서는 통역사님을 게스트로 데리고 오면 안 되냐고 문의도 들어온다고 하더라고요.」

“진짜요?”

대체 그게 뭐라고 이렇게 초대를 하는지 모르겠다.

이게 컨텐츠가 되나?

그쪽 세계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것뿐만 아니라 캐릭터도 되게 엉뚱하게 나오셨잖아요. 실버에다가 갑자기 임티 광고를 하려고 하지 않나.」

“크흠.”

이렇게 들으니 왠지 정상적인 캐릭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뽑아먹을 만한 캐릭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확답을 드리기는 어렵고 생각은 좀 해 보겠습니다.”

「네. 얼마나 걸리실까요?」

“한 3일 내로요. 그런데 이걸 벨 선수가 아닌 직원분이 연락합니까?”

「하하. 시혁 씨가 우리 게임사 소속인 줄 알아서 그래요.」

“아…….”

하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다.

그냥 땜빵으로 나간 거지만 말이다.

“일단 알겠습니다. 생각해 보고 연락드릴게요.”

「네. 아 참. 이 말도 전해 달랍니다. 그 영상에서 나오는 수익도 같이 분배해 드린다고요. 그럼 수고하세요.」

“네. 수고하세요.”

통화를 종료하고 마저 준비했다.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돈가스와 시원하게 끓여낸 계란국.

오늘 이거 하나면 애들이 정말 좋아할 것이다.

이건 안 좋아할 수 없는 메뉴였다.

“얘들아. 이제 게임 그만하고 밥 먹자.”

“아아.”

시하가 내 말에 먼저 반응하며 총을 바닥에 휙 내팽개쳤다.

역시 시하는 내 말을 잘 따른다.

승준은 아쉬운지 게임을 힐끗 바라보고 있었고, 하나는 이미 내 근처로 와 있었다.

‘하나야. 넌 언제 여기 왔어?’

나는 피식 웃으며 상을 차렸다.

짜짠!

나는 계란국 뚜껑을 열고 각자의 그릇에 듬뿍 퍼주었다.

“뜨거우니까 후후 많이 불어서 먹어야 해. 알았지?”

혹시 몰라서 각자 그릇에 얼음 두 개를 동동 띄워 주었다.

급하게 먹을지도 모르니까.

“자. 이제 먹을까?”

다들 신나게 숟가락을 퍼서 입에 넣었다.

먼저 돈까스를 포크로 푸욱 찍었다.

시하가 입에서 바사삭 소리를 내며 고기를 씹었다.

나도 한 입 먹었는데 케첩의 새콤달콤함과 바사삭한 식감이 훌륭했다.

고기가 씹히는데 적당히 두툼해서 입안을 가득 채웠다.

“마시써!”

“와! 시혀기 형아. 요리 잘한다!”

“시혀기 오빠. 나도 요리 가르처져.”

나는 피식 웃으며 아이들 볼이 빵빵하게 하며 먹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다음에 같이 만들어보자. 알았지?”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먹었다.

잘 먹는 모습을 보니 왠지 가슴이 뿌듯해지며 배가 부른 느낌이었다.

이래서 먹는 모습만 봐도 배부르다는 말이 나오나 싶다.

열심히 차린 음식을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다면 그 노동은 보상받는 느낌일 것이다.

“여기 계란국도 먹어봐.”

“아아.”

시하가 푹 떠서 자기 입에 넣었다.

맛있는지 한 번 더 떠서 나에게 권한다.

역시 시하는 맛있는 걸 나눠 먹을 줄 아는 아이였다.

나는 후루룩 받아먹고는 시하의 머리를 매만졌다.

“아아.”

시하가 기분 좋은지 다리를 동동 굴렸다.

아이들이 먹는 모습을 슬쩍 보다가 나는 폰을 꺼내서 벨의 스트리밍 TV에 들어갔다.

입안에 돈까스를 넣으며 구독자를 확인했다.

바사삭.

“워…….”

60만 구독자.

스트리밍 방송에서 나오기 힘든 엄청난 수치였다.

‘이날 방송한 수익을 나에게 분배해 준다고? 아니지. 방송한 걸 또 영상으로 올릴 거니…….’

바사삭.

별생각 없던 나의 마음도 튀김처럼 부서져 이리저리 흔들리기 시작했다.

***

다음 날.

마음이 이리저리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제 번역은 끝이 다가오고 다른 새로운 일감을 받아야 했다.

충분히 벌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일정한 돈이 들어오는 게 좋다.

쉬는 텀이 있으면 그만큼 수입은 제로.

프리랜서들에게 일이 안 들어오는 건 그것만큼 공포가 없다.

물론 능력 있는 사람은 꾸준히 들어온다.

‘흠. 돈을 빨리 모아야 집을 사는데 말이지.’

솔직한 마음으로 어서 집을 사고 싶었다.

나중에 시하가 잘 다닐 수 있게 초등학교와 중학교 근처가 있는 아파트가 목표였다.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좋았다.

멀다면 차로 데려다주면 되지만 만약 그럴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맡길 만한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근처에 있는 아파트에 살고 싶었다.

하지만 서울 집값은 왜 이렇게 비싼지…….

돈을 모으는 것도 쉽지 않았다.

지금이야 통번역 일을 할 수 있을 때 하니까 모으고 있다고 해도…….

‘대충 2년 안에 수입 꾸준히 나와서 모으고 대출받으면 얼추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니 일을 가릴 처지가 아닌지도 모른다.

벌 수 있을 때 버는 게 좋다.

물론 시하를 외롭지 않게 하는 선에서 말이다.

그런 의미로 스트리밍 방송에 한 번쯤 나가는 것도 좋을지도 모른다.

내 흑역사가 잊히는 기한은 늘어나겠지만.

“시하야. 오늘 잘 놀아.”

“아아.”

나는 시하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서수현을 만났다.

카페에 들어온 서수현이 손을 흔들었다.

“오빠. 먼저 커피 사준다는 말을 다 하고 웬일이에요? 요즘 유명해서 바쁘지 않아요?”

“유명하긴. 내가 무슨.”

“왜요. 알아보는 사람 있을 것 같은데.”

“아니거든. 안 알아보거든?”

“그런가? 분명 있을 것 같은데.”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

“그런데 뭐 물어보려고 불렀어요?”

“크흠.”

서수현에게 조언을 구하는 게 어색하긴 하다.

하지만 스트리밍은 아니더라도 영상을 찍는 서수현이라서 한 번 물어본다.

“그 스트리밍 방송에 게스트로 나와줄 수 있냐는 제안을 받았거든.”

“오!”

“조언 좀 받으려고.”

“그냥 오빠 평소대로 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저번에 e스포츠 방송에 나온 거 보니까 순발력이 좋으시던데요.”

“그래?”

“네. 저는 영상을 찍고 편집과정만 거치면 되니까요. 제 경험은 별 도움 안 될 건데요?”

그래도 카메라 영상을 찍는다는 점에서 도움이 될 정보가 있을지도 모른다.

서수현이 미리 내가 시켜둔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오빠는 벌써 하기로 마음먹은 거 아니에요? 그래 보이는데.”

“맞아. 그런데 옷 같은 것도 신경 써야 해?”

“당연하죠. 여기 미리 시킨 치즈케이크 좀 봐요. 예쁘죠? 보기도 좋은 떡이 먹기도 좋은 거 몰라요?”

“그렇지. 맞아. 내가 이상한 질문을 했네.”

“그런데 누구 방송 나가는 거예요?”

“건스 벨 선수.”

“푸흡.”

“아. 더러워. 개구리라서 물대포 쓰는 건 아니지?”

“뭐래. 아, 이 오빠가 진짜. e스포츠 좀 나갔다고 틈만 나면 킬각 잡네요.”

“원래 잡았거든?”

서수현이 입을 티슈로 닦으면서 말했다.

“오빠. 벨 선수 나가는 거로 고민한 거예요? 무조건 나가야죠. 얼마 준대요.”

“그냥 그 영상에서 나는 수익을 분배해 준다던데?”

“헐? 완전 대박. 그 잠깐 나오고 그 수익을 준다고요? 그날따라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후원 금액만 하루 100만 원도 찍으셨던 분인데?”

“그 정도야?”

“그거보다 더 버는 사람도 있어요.”

생각보다 엄청나게 버시는구나.

물론 벨 선수는 스트리머로 버는 돈보다 선수로 버는 연봉이 더 높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엄청난 금액이었다.

그때 서수현이 살며시 배에 두 손을 올렸다.

“갑자기 왜 이래? 배 아파?”

“저기 오라버니.”

“오라버니는 또 뭐야?”

“지금까지 저에게 무례했던 언동은 모두 용서하겠습니다. 대신 청이 하나 있습니다.”

나는 피식 웃으며 거만하게 의자에 기댔다.

조언을 들으러 왔는데 부탁을 들어주는 역할이 되었다.

모름지기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법이다.

떡을 훔친 호랑이가 다른 호랑이에게 당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뭔데?”

서수현이 뭐라 말을 했고, 내 얼굴이 참혹하게 구겨졌다.

“안 돼!”

“아, 오라버니. 한 번만요!”

“누가 니 오라비야. 저리 가.”

내게 동생은 시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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