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3화 (103/500)

103화

우리는 게임 대회장에 도착했다.

직원이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이렇게 부탁 들어줘서 고마워요. 딱 인터뷰 통역사가 부족했거든요.”

“통역사가 꽤 있지 않아요?”

“조건에 맞는 통역사가 없어서. 중계 통역사는 있지만요.”

중계 통역사까지 둘 정도로 이번 이벤트 매치가 특별한가 보다.

하긴 즐기려고 하는 게 뻔히 보이니까.

“뭐 덕분에 이런 e스포츠 직관도 해 보는 거죠.”

“하하. 그렇죠. 선수들과 인사 나누시겠어요?”

“네.”

나는 뒤를 돌아 시하랑 백동환을 바라보았다.

“나는 먼저 인사하고 들어갈 테니까 게임 잘 봐. 어차피 인터뷰 정도로 끝날 거니까 경기 중에는 내가 갈게.”

“형님. 저도 인사하러 같이 가면 안 됩니까?”

“응?”

뒤에 있던 직원이 그렇게 하라고 말해 줬다.

그런 배려가 고마워 감사하다고 말했다.

아직 준비 중이니 이런 만남도 가능할 것이다.

백동환이 좋아했고, 시하는 관심 없는지 ‘형아’ 하면서 내 손을 꼬옥 잡았다.

시하는 형아에게만 관심 가득하다.

옆에 있던 직원이 말했다.

“그럼 가실까요?”

“네.”

안내받은 선수 대기실로 들어갔다.

안에는 4명의 중국 선수가 있었다.

근접 딜러, 원거리 딜러, 탱커, 힐러.

각 포지션의 맡은 팀으로 이루어진 선수들.

즐겁게 이야기하다가 우리가 들어온 것을 보고 인사를 나누었다.

내 얼굴을 볼 때는 별 반응이 없었는데 손을 잡고 있던 시하를 보자 눈을 크게 떴다.

선수 대기실에 3살 아이가 온 적이 없나 보다.

그리고 시하보다 뒤에 있던 백동환을 보고 더 놀라워했다.

2m에 근육근육한 사람을 보면 어느 사람이라도 놀랄 것이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인터뷰를 통역할 사람으로 왔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네! 옆에 있는 아이는 아들인가요?」

대답은 내 입이 아니라 저기 놀란 얼굴을 한 웰에게서 돌아왔다.

「아들이야. 안녕하세요. 설마 여기서 또 보게 될 줄 몰랐네요.」

「네. 저도 몰랐어요. 프로게이머인 줄도 몰랐고.」

「그때는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했어요.」

「뭘요.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는걸요.」

몇몇이 우리의 대화에 관심이 보였다가 시하에게로 우르르 다가갔다.

아무래도 시하가 귀엽나 보다.

「아기야. 과자 줄게.」

“아?”

시하가 말을 못 알아들었지만, 과자 주는 건 귀신같이 알고 있었다.

“아냐.”

「응? 이거 안 좋아해?」

“아냐.”

도리도리.

자꾸 고개를 돌리는 모습에 중국 선수들이 당황했다.

나를 빤히 쳐다보길래 그저 웃어서 통역해 줬다.

어쩌다가 시하를 통역하게 됐을까?

「모르는 사람이 주는 건 안 받으려고 해서요. 하하.」

「아…. 똑똑하네요.」

「네. 제가 받으라고 하면 받을 거예요.」

나는 시하를 보고 이 형아들이 주는 과자는 받아도 된다고 했다.

그제야 시하가 과자를 받아서 야금야금 먹었다.

맛있는지 입가에 부스러기를 다 묻히고 먹었다.

내가 손수건으로 시하의 입을 닦았다.

「아무튼,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웰이 신기하다는 얼굴로 우리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부탁은 저희가 해야죠. 통역 잘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두 사람 너무 보기 좋네요.」

「그런가요?」

「네. 저도 나중에 아들 나오면 이랬으면 하네요. 하하.」

「보통 딸을 좋아하던데요?」

「아들 있으면 같이 게임도 하고 좋지 않아요?」

아들과도 게임을 할 생각을 하다니.

정말 프로게이머였다.

아니지. 게임이 일이 되었는데 아들하고도 또 게임을 하고 싶을까?

뭐 게임을 할 나이쯤 되면 은퇴하고 순수하게 즐길 것 같지만.

「아들이 아빠랑 안 놀아줄걸요.」

「이런.」

시하 덕분에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중 백동환이 거구를 움직였다.

커다란 그림자가 중국 선수들에게 다가왔다.

진지한 표정을 지어서 더욱 무서워진 얼굴.

중국 선수들이 백동환을 보고 살며시 눈을 피했다.

소위 말해서 쫀 거 같았다.

‘착한 사람이에요. 잡아먹지 않아요.’

나는 속으로 그렇게 외쳤지만 아마 입으로 외쳤어도 믿지 않았을 것 같다.

백동환이 스윽 눈으로 네 사람을 훑었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침을 꼴깍 삼키는 넷.

존재감만으로 주위를 압도하는 포스를 발휘하는 백동환이 말했다.

“사인 부탁드립니다! 형님! 통역 좀요!”

사인이라는 말을 알아들어서일까?

중국 선수들이 수군거렸다.

「장기계약 사인 아니지?」

「설마…. 이대로 잡혀가는 거 아닐까?」

「아니야. 원양 어선에 태워 보내는 걸지도?」

웰이 말했다.

「얼굴 가지고 농담 좀 하지 마.」

「아닌데. 몸 가지고 농담한 건데? 무슨 근육이…….」

어느 쪽을 통역해 줄까 고민하다가 나는 원만하게 말을 전달했다.

백동환은 그렇게 사인을 받을 수 있었고, 나는 백동환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왠지 모르게 위로받은 백동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토닥임을 본 시하도 백동환의 다리를 토닥거렸다.

“아아. 백동!”

“오! 시하야. 사인받아서 좋겠다고 하는 거야?”

“아냐.”

“그럼?”

“시하도.”

“응?”

“사인.”

“사인 갖고 싶다고?”

“아냐.”

“그럼?”

“시하도. 사인해.”

백동환이 준비한 사인지를 끌어안았다.

“여기다 시하 사인하면 안 돼.”

“아냐.”

“아니긴 뭐가 아니야. 형님. 어떻게 좀 해 주세요.”

나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가방에 A4 용지 있던데 거기다 사인시키면 되잖아. 혹시 알아? 나중에 시하 사인이 영광스러운 사인지가 될지.”

“그럴까요?”

백동환이 혹한지 시하에게 빈 종이를 내밀었다.

시하는 거기에 유성 매직으로 ‘ㅇㅅㅎ’라고 적었다.

설마 초성을 적을 줄 몰랐는데.

“형아!”

“응. 시하 이름 잘 적네.”

이시하도 되고 이시혁도 되는 사인.

시하에게는 최고의 사인일지도 모르겠다.

“이거 너무 초성인데요? 시하야. 여기다 좀 특별한 그림도 그려주면 안 돼?”

“아?”

“원래 사인은 좀 특별하게 해야지. 여기 선수 중에 별 모양 사인도 보이지?”

“아아.”

시하가 멋들어진 사인을 유심히 보았다.

그리고 다시 매직을 들어 추가로 슥슥 그려주었다.

전에 그렸던 당근 캐릭터 그림.

나는 그걸 보고 피식 웃었다.

「저기…….」

「네?」

선수들이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저기요?

당신들 손에 A4 용지는 어디서 났어요!

아니, 왜 시하의 사인을 받으려고 줄 섰는데?

아니, 직원분? 당신도 왜 줄 서 있나요?

알고 보니 장난꾸러기 프로게이머들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갑자기 시하의 사인을 받는 줄이 생겼다.

오늘 하루 재밌는 체험이 될 것 같았다.

***

건스 이벤트 매치가 시작되었다.

무대에서 연기가 뿜어 나오고 먼저 두 명의 진행자가 2층 좌석 쪽에서 카메라를 보고 마이크를 들었다.

“뜨거웠던 여름을 더욱 뜨겁게 할 한중 건스 이벤트 매치가 K대 체육관에서 시작됩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인사를 나눈 후 이번 경기에 관해 설명했다.

“이번에 레전드 매치입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팀 대결을 볼 수 없는 거겠네요.”

“그건 세계 대회인 건스컵에서 만나 보자고요.”

“네! 시청자 여러분들도 많이 기대하셨을 텐데 안타깝네요. 하지만! 여러분이 궁금해하시는 대결이 이번에 펼쳐집니다. 그쵸?”

“네! 맞습니다. 이번 대결은 각 포지션 1대1 대결입니다!”

누구나 관심 있는 주제였다.

딜러 중에 최강자는 누굴까?

탱커 중에 최강자는 누굴까?

“제일 궁금한 것이 힐러전인데요.”

“힐러끼리 서로 안 죽게 회복시키는 건가요?”

“약간 비슷합니다. 이번에 힐러 대전 베타버전이 나오니 그것도 지켜보는 재미가 있겠군요.”

대충 설명이 끝나고 각 팀이 등장했다.

사회자가 무대에 나와서 소개를 해 주었다.

다들 환영의 응원을 열렬히 보내서 체육관이 후끈 달아올랐다.

먼저 한국팀과의 대화가 끝난 후에 중국팀과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시혁도 시기를 체크하며 같이 올라왔다.

사회자가 말했다.

“드디어 웰 선수와 인사하네요. 오늘 딜러 전에서 이길 자신 있습니까?”

웰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3 대 0으로 제가 이깁니다.」

“하하. 자신감이 대단하시네요.”

웰이 2층에 마련되어 있는 사람 쪽을 가리켰다.

「저기 객석에 아이도 있는데 아무래도 오늘 제 플레이를 보고 또 한 명의 프로게이머를 꿈꾸는 일이 발생할지도 모르겠네요.」

카메라가 시하를 비췄다.

시하가 막대사탕을 쪽쪽 먹으며 고개를 휙 하고 돌렸다.

관객석에 있는 사람들이 그런 귀여운 시하의 모습에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옆에 있던 백동환이 거대한 손으로 시하의 얼굴을 가렸다.

카메라가 옆에 있는 백동환을 찍었다.

사람들이 화면에 나온 거구의 남자를 보고 운동선수도 직관하러 왔다고 생각했다.

“거기 리포터가 갔는데 아이에게 잠깐 인터뷰해 주시죠.”

리포터가 백동환에게 양해를 구했다.

백동환이 시혁을 쳐다보자, 시혁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리포터가 시하에게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누구 보러 왔어요?”

시하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형아!”

“아, 옆에 있는 사람이 형아예요?”

“아냐.”

“아! 그럼 저어기~ 선수 중에 형아가 있네요. 맞죠?”

“아아.”

“그럼 어떤 형아 보러 왔어요.”

“저기. 형아!”

시하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물론 시혁을 가리킨 거였다.

하지만 리포터는 웰 선수를 가리킨 건 줄 알고 흐뭇하게 웃었다.

“네! 아무래도 저기 계신 웰 선수를 보러 온 것 같네요. 중국 선수도 애들이 알다니. 역시 건스는 굉장한 인기를 얻고 있는 것 같네요!”

시혁은 저걸 저런 식으로 포장하나 싶었지만, 진실은 아무도 몰랐다.

다시 무대에 있는 사회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웰과의 인터뷰를 짧게 끝냈다.

긴 인터뷰는 경기가 끝난 뒤에도 또 할 것이다.

본격적으로 경기가 시작되었다.

힐러, 탱커, 근접 딜러까지 서로 막상막하의 싸움이 벌어졌다.

그리고 대망의 원거리 딜러 1대1 매치가 성사되었다.

사람들이 제일 기다리던 시간.

마지막에 경기를 배치한 이유가 있었다.

“네. 드디어 이번 이벤트 매치의 하이라이트! 원딜 중에 누가 가장 강하냐!”

서로 같은 원딜 캐릭터를 고르고 오로지 총으로만 싸우는 배틀.

[중국의 웰 vs 한국의 벨]

그 대결이 시작되었다.

빠른 공방이 이루어지는 경기가 3번의 대결로 이루어질 때 시혁은 시하랑 놀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동환이 말했다.

“이제 가시게요?”

“응. 마지막 소감이랑 인터뷰 준비해야지.”

시혁이 시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시하야. 형 간다?”

“아아.”

시하는 지금 총을 쏘는 캐릭터에 빠져 있었다.

화려한 이펙트와 총격전이 시하가 보기에도 멋있어 보였다.

“형. 진짜 간다?”

“형아. 바이바이.”

“으응. 갔다 올게…….”

괜히 섭섭해진 시혁이 터덜터덜 아래로 내려왔다.

곧 경기가 끝나고, 딜러의 승리는 2 대 1로 웰이 승리했다.

정말 한 발 차이로 이겨서 한국 선수 쪽도 아깝다는 분위기였다.

‘나는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해야 하나?’

시혁은 고민에 빠졌다.

안면 있는 웰이 이겨서 좋긴 하지만 자국 선수가 지니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복잡한 심경을 감추고 무대에 올랐다.

인터뷰의 시간이었다.

사회자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3 대 0으로 못 이기셨는데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시혁이 그 말을 전하자 웰이 웃으며 말했다.

시혁은 마이크를 계속 웰에게 대 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자 관람객 속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어쩌려고 저러는 거지?”

“저걸 다?”

사회자도 의문 어린 눈으로 시혁을 보았다.

웰도 사회자랑 마찬가지인 눈이었다.

시혁만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위의 분위기를 살폈다.

‘왜들 그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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