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2화 (102/500)

102화

나는 이휘를 끌고 자리에 앉혔다.

「그래서 무슨 일이에요?」

「그게…….」

사정은 이랬다.

인원 감축으로 사장이 이휘를 잘랐다.

하지만 나중에 보니 한국인 알바를 하나 더 구했다는 것이었다.

이미 일한 만큼 급여는 줬지만 이휘 입장으로서는 억울한 일이었다.

차별이었고 이러한 일을 겪을 줄 몰랐다고 호소했다.

「내가 진짜 억울해서…. 따지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어.」

「혹시 돈이 급한 건 아니죠?」

「급한 건 아닌데…. 솔직히 부모님에게 손 벌리고 싶지 않아서…….」

「저도 그 마음 이해해요.」

식비, 월세, 등록금.

부모님께 의지하는 사람도 많고, 대출을 받는 사람도 많다.

성인이 된 시점에서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 알바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대학생인데 조금이라도 꾸며야 하지 않겠나.

계절에 맞는 옷 몇 벌 사면 돈이 금방 없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몇십만 원이 한 번에 벌리는 돈도 아니고…….’

학기가 시작되면 방학만큼 벌지 못하는 것도 있다.

공부도 해야 하고, 친구들과 놀기도 해야 하고, 전공 책도 사야 한다.

돈 나갈 때가 많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하실 건대요?」

「다른 일 알아봐야지. 근데 이런 일 겪으니까 좀 무섭다. 또 일어날까 봐.」

「좋은 사람들이 더 많아요.」

「알지. 그런데 사람들이 날 고용할까? 한국인도 많은데 굳이 외국인을?」

나는 조금 안타까웠다.

이런 경험을 하게 만든 사장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물론 내 일은 아니었지만 나도 다른 나라에 가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 않은가.

그리고 같은 한국 사람으로 미안해지기도 했다.

「한국에 온 지 1년 넘었죠? 읽고 쓰는 건 잘하나요? 제가 그 이후로 어느 정도 진척이 있었는지 몰라서.」

“있지. 나 엄청 많이 늘었어. 책도 곧잘 읽어.”

이휘가 폰을 켜서 자기가 읽은 책들을 보여주었다.

정말 한국 책도 열심히 읽고 있었다.

하긴 여기서 공부하려면 스피킹도 중요하지만 독해 능력과 쓰기 능력이 더 중요할지도 몰랐다.

일단 학부생까지는 논문을 써도 한국어로 쓸 수 있으니까.

“그럼 제가 일자리 소개해 드려요?”

“응? 좋은 일 있어?”

“그럼요. 음. 조금 어렵지만 이휘라면 할 수 있을 거예요.”

나는 싱긋 웃었다.

마침 KI 미디어에서 중국어 번역을 찾고 있었으니까.

솔직히 나는 송택수 작가의 소설을 중국 번역까지 맡을 생각은 없었다.

맡을 수야 있겠지만 역으로 중국 소설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까지 맡게 될 가능성도 있었다.

그 편수 많은 소설은 나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뭔데?”

“무협 소설 번역이요.”

“와! 진짜! 나 진짜 많이 읽어!”

“알아요. 아까 글 읽는 거 보니까 무협 소설도 많던데요.”

이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근데 잘할 수 있을까?”

“일단 시험 삼아 해 보는 거죠. 마음에 안 들면 거기서 계약 파기할 거고요. 거기까지는 제 책임 아니에요.”

“그… 렇지. 아무튼, 고마워! 나 열심히 해볼게.”

“그거 하면 적어도 고정적인 수입은 나올 거예요. 나름 학업과 병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고.”

“와~ 나중에 신세 갚을게!”

“많이 갚으셔야 해요?”

“응. 걱정 마. 우리 아버지가. 압!”

이휘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길래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왜 갑자기 소리를?”

“아, 아니야. 아무튼, 중국 갈 일 있으면 무조건 나에게 연락해!”

“하하. 알았어요.”

뭐지?

혹시 집에서 재워 주기라도 하려나?

그러면 좋겠다. 숙박비도 굳고.

***

한편, NM 게임회사 직원은 귀를 쫑긋 세운 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사실 중국어가 오가서 정확히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몰랐다.

사인도 받았고, 헤어질 타이밍이 어긋나서 잠시 듣고 있는데 때마침 동기에게서 문자가 왔다.

-야! 야!야! 나 클났어!

-뭐가?

-아니ㅠㅠ 낼 중국 선수와 이벤트성 대결하는 거 알지?

-ㅇㅇ

-근데 통역사가 사고 나서 병원에 있어서 빵꾸 났음ㅠㅠ

-빨리 구해!

-나도 구하고 싶은데 조건에 맞는 사람이 없잖아

내일은 국내 e스포츠 대회의 시작을 알릴 대결이 펼쳐진다.

거기에 통역사가 필요한 건 당연한 것이다.

그냥 아무 통역사를 구한 것이 아니다.

그때그때 잘 캐치해서 순발력도 잘 발휘할 수 있는 통역사를 구해야 했다.

다른 나라도 그렇겠지만 아나운서처럼 말하는 사람이 없다.

중국이라면 둥베이 억양, 스촨 억양 등 다양한 억양이 존재하는데 그걸 못 알아들으면 난감해지는 것이다.

-그 통역사가 통합 통역사이긴 하지

-그러니까!

이번 사고 난 통역사는 정말 능력 있는 통역사였다.

게임도 잘 아는 건 둘째치고 능력 면에서 우수했다.

약간 통합 번역 코덱 같은 존재라고 할까?

어떤 억양이 와도 통역 가능한 존재.

재치도 넘치고 얼굴도 예쁘장하게 생긴 분이라 화면에 선수와 투 샷을 담기도 좋았다.

-열심히 잘 알아봐

-야! 야! 아는 통역사가 없냐? 남녀 가리지 않고 깔삼한 얼굴이면 되는데

-얼굴을 왜 따져. 얼굴을!

-그래도 방송하는데 화면에 잘 나오는 얼굴이 좋다고 하잖아! 위에서! 시키면 까야지!

-내가 그런 훈남 통역사 인맥 있었으면 너랑 같은 동기 아니었지

-하아?!

직원이 절레절레 저으며 폰을 끄려고 고개를 들었다.

‘음?’

눈앞에 열심히 중국어로 말하다가 한국어로 바꿔 이야기하는 두 사람이 있었다.

들어보니 소설이라는 번역도 깔삼하게 잘하는 능력자였다.

‘시하페페 작가님 뭐 다 잘하시네…. 소설이면 윤문도 잘하실 거고. 그런데 얼굴도 괜찮으시고. 다 가지셨네. 응? 가만.’

중국어 통역, 화면 비칠 때 훈훈한 얼굴.

여자면 좋겠지만 저 정도면 나쁘지 않지 않나?

이야기가 끝나 가려 하자 직원이 시혁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기…….”

“아! 죄송해요. 아는 분 일이라 제가 너무 소홀하게 대했죠.”

“아니요. 아니요. 그냥 빠져나갈 타이밍을 놓쳤을 뿐이에요. 그런데 시혁 씨.”

“네.”

“혹시 중국의 다양한 억양을 다 알아들으십니까?”

시혁이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직원이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혹시 내일 잠시 통역해 보실 생각 있으십니까?”

그와 동시에 동기에게 문자를 보냈다.

-야! 야! 훈남 통역사 지인 찾음

-?!?!?!

***

건 슬레이어즈.

줄여서 ‘건스’라고 불리는 온라인 게임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딜러, 힐러, 탱커가 4인 팀으로 존재하며, 두 팀이 싸우는 게임이다.

점령지를 부수는 대결일 수도 있고, 서로 킬 수를 높여서 이기는 대결도 있다.

현재 e스포츠로 활발하게 다뤄지는 게임이었다.

국내외 게임 대회도 많고, 팀으로 활동도 많다.

내가 여기에 통역사로 일하게 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사실 거절하려고 했는데 너무 간절해 보여서…….’

바꿔준 이벤트 매치 담당자의 간절한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간질거린다.

통역만 해 주면 80만 원.

시간 대비에도 괜찮은 수익이었다.

절대 돈에 낚인 건 아니다. 절대!

이 돈이면 시하 장난감도 사주고, 맛난 것도 사주고, 새 옷도 사준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절대 돈에 낚인 건 아니다.

그저 도와주자는 마음도 있고 경험해 보자는 마음도 있었다.

“시하야. 이 게임 알아?”

“아?”

“게임 잘 모르지? 아직 하기에는 어린가?”

“게임? 망겜!”

“어…. 그렇지. 망겜도 게임이지. 그렇긴 하지.”

“젠가!”

“어. 그렇지. 젠가도 게임이긴 하지.”

요즘 보통 아이들이 언제부터 게임에 입문하는 걸까?

나 때는 7살 때 친구 집에 놀면서 팩을 게임기에 꽂고 놀았다.

‘그때는 재밌었지.’

요즘은 더 빠를지도 몰랐다.

어린 아기가 벌써 패드를 손에 쥐고 너튜브를 보니까.

하면 안 좋은 걸 알면서도 우는 아이를 달래기에 이것보다 좋은 장비가 없는 것이다.

솔직히 육아의 고충을 생각하면 이해되기는 한다.

“내일 게임 대결하는 곳에 가는데 시하는 어떻게 할래? 따라갈래?”

“아아.”

시하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잠시 승준이 집에 있으면 안 될까?”

“아냐. 형아. 가치.”

“그래? 그럼 어쩔 수 없네.”

이럴 줄 알고 같이 가는 것으로 미리 말을 나눴다.

하지만 내가 돌볼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 사람을 한 명 더 데리고 가야 했다.

누구를 부를까?

백동환은 방송국에 출근해야 해서 안 될 거고…….

‘시간 괜찮은 사람이…….’

그때였다.

띵동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백동환이 손을 흔들었다.

“어쩐 일이야?”

“형님! 섭섭합니다. 꼭 무슨 일이 있어야 옵니까?”

“너 좀비 인형 받았는지 궁금해서 온 거 아니야?”

“아닌데요. 계약이 궁금해서 왔습니다.”

“계약은 잘됐어. 새로운 퍼즐 게임인가? 거기에 출시한대.”

“그래요?”

“어. 그럼 잘 가.”

내가 문을 닫으려고 할 때 백동환이 슬쩍 발을 들이밀었다.

“어어? 이거 주거 침입죄야?”

“형님! 그거 말고 더 있지 않습니까!”

“뭐야? 어디서 들었어?”

설마 내 주위에 스파이를 심어 놓은 거 아니지?

아니면 날 그냥 떠보는 건가?

“후후. 거기에 제 친구들이 있었거든요.”

“이야. 너 이제 스파이도 심었어?”

“무슨 섭섭한 말씀입니까. 그냥 친구들이 카페에서 사건 났다길래 주워들었습니다. 근데 듣다 보니까 아는 얘기들이 나오길래요. 형님인가 싶었죠.”

“아…….”

“애들이 다는 안 듣고 이번에 건스 이벤트 매치라는 단어를 들었거든요. 형님이 통역한다면서요? 통역이면 웰 프로게이머도 통역해 주시겠네요.”

“응? 방금 뭐라고?”

“웰이요. 웰. 모르세요? 중국에서 탑티어 프로게이머잖아요. 건스에서요.”

“어…. 내가 아는 사람인가? 아니면 동명이인?”

백동환이 눈을 껌뻑였다.

“설마 형님 아는 사람이에요?”

“잠깐만. 확인 좀.”

내가 중국 프로게이머까지 어떻게 알겠는가.

한국 프로게이머도 잘 모르는데.

게임은 알아도 프로게이머는 잘 모른다.

대충 이름을 아는 정도?

나는 폰으로 웰의 얼굴을 확인했다.

“와! 맞네.”

“뭐가요?”

“아. 저번에 바닷가에서 우연히 이야기 나눈 중국인 있잖아. 그 사람이 웰이라고 했거든.”

“형님이랑 옆에서 이야기했던 사람이 웰이었어요?!”

“너도 몰랐어?”

“누가 한국에 웰이 있다고 생각했겠어요. 자세히 안 보기도 했고…….”

나는 볼을 긁적였다.

그냥 여행 온 거라더니 일이 있어서 온 건가 보다.

아니지. 일도 하는 겸 여행한 건가?

하긴 임신한 여자 친구 놔두고 복잡한 심경 때문에 혼자 해외여행 하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다.

‘일이었구나?’

그러면서 생각을 정리할 시간도 가진 거겠지.

뭐 그 부분은 좋게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말 나눠봐서 통역하는데 어색하지는 않겠다.”

“그러게요.”

“그럼 너 이제 가. 발 치우고.”

나는 현관에 서 있는 백동환의 발을 툭툭 건드렸다.

백동환이 발끈하면서 문손잡이를 당겼다.

“어쭈?”

“와! 이 형님 그렇게 안 봤는데 매정하시네. 그런데 힘은 왜 이렇게 세요?”

“네가 그 말 하면 안 되지 않아?”

“크흠. 형님 저도 한 번만 데려가 주세요. 시하도 돌보고 잘할게요.”

알아서 일을 자처하네.

나야 좋다.

하지만 여기서 한 번 튕겨주는 게 사람 마음이지.

“너 내일 일 간다고 하지 않았어?”

“그거 사실 뻥이었어요. 오늘까지 연차라서. 누가 바닷가에 1박 2일밖에 안 있을 줄 알았나요?”

“그럼 집에서 하루 더 쉬어.”

“아, 형님. 저 진짜 대회 직관 한번 해 봅시다.”

“응. 수고.”

“원하는 게 뭡니까?”

“저번에 보니까 너희 집에 넌텐도 윌 있더라. 티비에 연결해서 게임 하는 그거. 그거 빌려줘.”

백동환이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형님. 겨우 그거 빌려 달라고 이리 실랑이를 벌인 겁니까?”

“응.”

나는 당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냥 장난을 좀 쳤을 뿐인데 백동환이 알아서 바치겠다고 하고 있다.

“아, 그리고 성우 선배님들에게 시하페페 이모티콘 홍보 좀 해주고. 알았지?”

“…….”

“문 닫힌다.”

“알겠습니다. 제가 열심히 자랑하겠습니다!”

“오케이. 내일 시하랑 같이 게임 직관 가자. 들어와.”

“감사합니다. 형님 집 들어오기 진짜 힘들어지네요.”

백동환이 손으로 이마에 땀을 훔쳤다.

그걸 현관에서 시하가 보고 있었다.

“백동!”

“응. 시하야. 안녕.”

시하가 빤히 보더니 손가락으로 화장실을 가리켰다.

“샤어 해~”

“어…. 고마워. 나 그렇게 냄새나?”

“냄시~”

시하가 손으로 코를 쥐었다.

그런데 시하야. 냄시라는 사투리는 또 어디서 배웠니?

아무튼, 시하도 백동환 놀리기에 재미 들었나 보다.

‘이런 거 형아한테 배우면 안 되는데…….’

백동환이 충격받은 표정으로 샤워하러 간다는 걸 말리며 우리는 즐겁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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