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진짜 장작을 구해 왔어?”
눈앞에 장작이 보이자 엄청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대체 저거는 어디서 구해온 거지?
알리사가 싱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거 겉만 장작으로 꾸몄고 안은 전등으로 되어 있어요. 진짜 같죠?”
“아…….”
정말 진짜 같아서 깜짝 놀랐다.
로망을 위해 이렇게까지 짐을 들고 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꾸며놔도 좋을 것 같아요.”
“아, 뭐 무드등으로 좋을 것 같네요.”
“아! 이거 팔 때 이름에 무드등이라고 적혀 있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애들은 신기한지 장작을 만지작거렸다.
서수현이 장작을 꺼내 놓고 자리를 잡았다.
우리도 서로 눈치를 보다가 둥그렇게 앉았다.
무드등을 켜자 환한 불빛이 주위를 밝혔다.
타닥. 타닥.
나뭇가지가 타는 소리도 살며시 들려왔다.
요즘 참 이런 걸 잘 만드는 것 같다.
이게 팔리니까 만드는 거겠지만.
어쩌면 이런 로망을 가진 사람들이 의외로 많을지도 모르겠다.
서수현이 가지고 온 통기타를 만졌다.
“그럼 제가 노래를 부를게요. 알리사도 잘 찍어줘.”
띵. 띵.
둥 탁. 둥둥 탁.
기타 몸체를 치며 서수현이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시작에 나도 시하도 기분 좋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우리는~ 둘러싸며 리듬을 타고~”
“즐거움을 마시며~”
노래 솜씨가 좋으니 마치 버스킹을 들으러 온 것 같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기웃기웃 관심을 보였다.
슬쩍 자리를 잡는 커플들도 있었다.
설마 이렇게 될 줄 몰랐는데.
‘듣기 좋기는 하지.’
무심코 잠시 듣고 싶은 목소리.
그만큼 깨끗하고 매력적인 보이스를 가지고 있었다.
사실 서수현 정도면 일반인 실력자 정도 되지 않을까?
“시하야. 노래 좋다. 그치?”
“아아. 개굴 노래!”
“그래. 개굴 노래네.”
시하에게는 여전히 서수현이 개구리인가 보다.
하긴 개구리도 울음소리가 잘 나오긴 하니까.
어쩌면 서수현에게 기타가 아니라 피리가 어울릴지도 모른다.
삘리리~ 개굴개굴 삘리리리.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근처에서 중국어가 들려왔다.
「와! 바다 보러 왔다가 생각지도 못한 이벤트인데?」
「그러게. 버스킹을 하는 건가?」
두 명이 슬쩍 내 뒤에 서서 노래를 감상하기 시작했다.
내가 살며시 돌아보자 한 사람과 눈을 마주쳤다.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나 역시 고개를 숙여주었다.
「이거 버스킹 아니에요. 그냥 친구들끼리 노는 거죠.」
갑자기 내가 중국어로 말하자 남자가 놀랐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오! 중국 사람입니까?」
「아니요. 한국 사람이요.」
「아…. 어조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중국 사람인 줄 알았네요.」
「그럴 수도 있죠.」
「그럼 친구들끼리 노는 거면 이렇게 노래 듣는 게 좀 실례겠네요.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저희도 이런 분위기를 즐기려고 왔는데요. 뭐. 들으셔도 돼요.」
이미 주변에 자리 잡고 배경음 삼아 들으며 이야기 나누는 커플들도 있는데 뭐.
나는 가져온 음료를 따서 시하에게 주었다.
그냥 듣기만 하면 심심하니까.
「저어…….」
갑자기 또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이야기 좀 나누실래요?」
「네? 아하하.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요?」
「사실 제가 답답해서 여행을 왔거든요. 바다도 보고.」
「한국 여행은 마음에 들었나요?」
「네.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재밌고요.」
나는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마음에 든 것치고는 뭔가 고민이 있는 사람 같았다.
「막 밝지는 않네요.」
「고민을 안고 여행을 했거든요.」
그가 슬쩍 시하를 보았다.
「아이를 키우는 게 어렵지 않으세요?」
「어렵죠. 매일 고민해요. 이렇게 아이에게 보여주는 게 맞는 건지? 오늘은 무슨 생각을 할지. 어떤 걸 느끼고 있을지. 뭐 이런 거요.」
「그렇군요. 그럼 싫다는 생각 안 해 봤나요?」
왜 이런 걸 묻는 거지?
나는 별생각 없이 말해 주었다.
「전혀요. 저희는 둘이 사는데 행복해요. 매일 몸이 힘들기는 해도 즐겁죠.」
「아…. 그렇군요…….」
「그런데 이런 걸 묻는 걸 보니 애가 생기는 거예요?」
그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와. 축하해요.」
「하하. 감사합니다. 그런데 아직 아빠가 될 준비가 안 됐나 봐요. 막 모르니까 무섭고 그러네요.」
「아이의 엄마는 더 불안해할걸요. 겉으로 드러내지 말아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좋은 아빠가 될 거예요. 아까 보니까 아들을 챙기시는데 정말 따뜻해 보이더라고요.」
「아…. 네. 하하.」
시하는 아들이 아니었지만, 굳이 정정해 주고 싶지 않았다.
아까 둘이서 산다고 말하기도 했고.
괜한 사정을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서 좀 그렇기도 했다.
어차피 여기서 우연히 마주친 인연이니 그저 잠시 이야기하고 흘러가길 바랄 뿐이다.
「그런데 엄청 동안이시네요.」
「보이는 대로가 맞을 거예요. 18살이거든요.」
「네?」
설마 진짜 미성년자일 줄이야.
그런데 아이가 생겼구나. 음. 그렇구나.
고민이 많아질 만했다.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가 내 모습을 보더니 뭔가를 더 말했다.
「돈 걱정은 안 돼요. 제가 벌면 되니까.」
아무래도 내 표정에서 무언가 걸리는 걸 읽었나 보다.
그런 생각은 아니었지만.
「그러시구나.」
「처음 보는데 이렇게 말해도 될까 싶지만, 저 정말 잘 벌 거든요. 프로게이머라서.」
「와! 정말요?」
「네.」
프로게이머는 처음 보기는 하네.
설마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때 같이 온 남자가 말했다.
「웰. 이제 가자고.」
중국 이름은 아닌 걸 보니 프로게이머의 활동명인 것 같다.
웰이 말했다.
「아, 네. 그럼 이만 가볼게요. 노래 잘 들었다고 전해 주세요.」
「아, 네 그럴게요. 웰.」
「하하. 이름이 알려졌네요. 그럼 형 이름도 알려주세요.」
「저는 시혁이에요. 이시혁.」
「멋진 이름이네요. 그럼 이만.」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저 가짜 모닥불이 불러온 우연한 만남이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나기도 했다.
그리고 중국어 못했으면 이런 대화도 하지 못했겠지.
이런 만남도 서수현이 말하는 낭만에 포함되지 않을까?
“오빠! 제 노래를 배경 삼아 새로운 친구 만들지 말라고요!”
포함되지 않은가 보다.
하긴 친구들끼리의 추억 쌓기였으니까.
나는 살며시 웃으며 사과했다.
시하가 내 손을 잡았다.
“형아! 노래!”
“으응?”
서수현이 잘 걸렸다는 듯이 말했다.
“맞아요. 오빠. 벌칙으로 노래하세요.”
“알겠어.”
다들 기대하는 눈으로 보는데 너무 부담스럽다.
왠지 주변의 사람들의 시선도 느껴지고.
그래. 이왕 부르려면 영어로 불러야겠다.
한국어보다는 틀려도 못 알아듣는 영어지.
애들도 즐길 수 있는 곡으로 선택해야겠다.
“트윙클 트윙클 리를 스타~”
다들 내 선곡에 웃음을 터뜨렸지만, 애들은 달랐다.
반짝반짝 작은 별~이라고 알아서 번역해서 열심히 부르고 있었다.
시하도 열심히 따라부르는 모습이 너무나 귀여웠다.
그렇게 우리는 이 바다에서 좋은 추억을 쌓았다.
***
바다의 일은 이제 추억으로 남기고 집에서 열심히 방학을 즐겼다.
오늘은 좀 더 덜 더워서 에어컨을 틀기는 좀 그랬다.
그래서 선풍기를 꺼냈다.
사실 전부 핑계다.
그냥 시하에게 선풍기로 노는 법을 알려주고 싶어서 꺼냈다.
“짜잔!”
“아?”
“이건 선풍기야. 여기 날개가 휙휙 돌아가서 바람을 불게 해.”
“선푸?”
“응. 선풍기. 자 이렇게 틀면!”
윙윙.
선풍기가 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나는 거기에 대고 아- 하고 말했다.
목소리가 이상하게 달라지는 것을 보고 시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형아!”
“시하도 해볼래? 목소리가 달라져. 자. 아-”
“아-”
우리 형제는 선풍기를 앞에 놔두고 목소리를 변환시켰다.
특별히 목과 호흡을 사용하지 않아도 변성이 되는 법이다.
보고 있나? 백동환?
이 정도면 두 가지 목소리로 성우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백동환이 실제로 봤으면 말도 안 된다고 했을 것이다.
아니면 자기도 같이 참가해서 녹음실 가자고 능글맞게 말했을지도?
“아-”
“아-”
한참을 그렇게 있자 입안이 말랐다.
나는 물을 꺼내 시하를 마시게 했다.
꿀꺽꿀꺽 잘도 마시는 걸 보며 나는 선풍기로 노는 법을 하나 더 알려주기로 했다.
“시하야. 선풍기로 배도 크게 할 수 있어.”
“아?”
나는 선풍기를 위로 올리고 티셔츠를 들어 올렸다.
바람이 들어가며 티셔츠가 빵빵하게 부풀었다.
“어때? 대단하지?”
“아아!”
시하가 신기한지 큰 소리를 쳤다.
역시 애들은 선풍기 하나로 재밌게 놀 수 있다.
“시하도 해 볼래?”
“아아.”
시하도 배를 대자 빵빵하게 상의가 부풀어 올랐다.
거기에 응용까지 한다.
“아-”
“우와. 두 가지 동시에 하네?”
“아아.”
“시하는 천재야.”
둘을 하나로 합치다니.
전화, 메시지, 인터넷을 합친 스마트폰처럼 발상이 남다른 시하였다.
이게 바로 응용력이지.
“재밌어?”
“아아!”
나는 시하가 열심히 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슬쩍 방으로 들어갔다.
사실 선풍기는 시하의 관심을 잠시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서였다.
재미난 놀이를 가르쳐주기도 하고 말이다.
‘방학인데 집에서 놀 거리가 필요해.’
여름이라서 밖에 오래 있고 싶지 않은 것도 한몫했다.
정확히는 바다에 가고 나서부터 밖에 나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시하랑 놀아주고 싶어서 좋은 게임을 하나 샀다.
그건 바로 젠가.
3개의 나무 블록을 가로, 세로로 쌓아서 하나씩 빼는 게임이다.
쓰러진 쪽이 지는 거고.
‘이 젠가는 좀 다르지.’
여기에 글자가 쓰여 있어서 그대로 해야 한다.
사실 이걸 사려고 한 건 아니고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거로 사다 보니 이걸 고르게 되었다.
“형아!”
아무래도 시하가 선풍기에 질렸나 보다.
어서 가야겠다.
“응. 왜?”
“모해?”
“오늘은 시하랑 이걸 가지고 놀려고!”
“아아.”
내가 젠가를 가지고 포장을 뜯자 띵동- 하고 벨 소리가 났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응? 동환아?”
“형님. 놀러 왔습니다.”
“휴가 피로를 풀어야 하는 거 아니야? 어제 집에 왔는데.”
“하하. 형님. 제가 그 정도 놀았다고 피로가 생길 것 같습니까?”
저 근육근육한 몸을 보니 스태미나가 엄청나 보이긴 한다.
하긴 애들이랑 놀고 나서 제일 멀쩡해 보였던 게 백동환이긴 했다.
“그래. 들어와. 빈손은 아니지?”
“그래서 주스 사 들고 왔습니다.”
“농담한 건데 진짜 들고 왔어? 뭘 이런 걸 사 왔어.”
“사실 집에 있던 거 들고 왔습니다.”
“가지고 돌아가.”
그렇게 어쩌다 보니 셋이서 젠가를 하게 되었다.
“와. 이거 진짜 오랜만에 하는데요. 보드게임.”
“젠가야.”
“아! 그런 이름이었죠.”
“아무튼, 시작하자.”
계획은 둘이서 하는 거였지만 셋이서 하면 더 재밌을 거다.
“시하야. 형아가 먼저 해 볼게.”
내가 나무 블록 하나를 꺼냈다.
“이렇게 여기 적힌 글을 읽으면 돼.”
[오른쪽 사람의 가장 큰 장점 말하기]
나는 오른쪽에 있던 백동환을 보았다.
“근육!”
“형님. 저 성우인데 근육이 큰 장점이라뇨…….”
“다른 성우들에게 물어봐도 근육이라고 말할 텐데?”
“…….”
백동환은 부정을 하지 못했다.
“그럼 이제 시하!”
시하가 맨 밑에 있는 블록 중에 제일 오른쪽에 있는 걸 툭 하고 건드렸다.
처음부터 강하게 나가는 전략.
이런 건 또 어디서 배웠는지 모르겠다.
스윽 하나를 빼더니 그대로 나에게 주었다.
“형아.”
“응. 형아가 읽어줄게.”
[왼쪽 사람의 큰 단점]
시하가 단점이라는 말을 모르니 쉽게 설명해줘야 했다.
“백똥의 제일 모자란 거? 아니면 이상한 거? 말해야 해.”
“아아. 백동. 그눅!”
“근육이라고?”
“아아.”
백동환이 시무룩해졌다.
근육이 장점이자 단점이 되어 버렸으니까.
옆에서 ‘이 쓸모없는 근육! 왜 이렇게 쓸데없이 큰 거야. 아니야. 난 그냥 통뼈라서 크게 보인다고…….’라고 중얼거렸다.
시하가 백동환을 토닥거렸다.
시하야. 네가 병 주고 약 주고 있어…….
“그럼 동환아. 네 차례.”
“네!”
자신 있게 백동환의 굵은 손이 젠가를 건드리려는 그 순간.
내 폰에 전화가 왔다.
확인해 보니 모르는 번호였다.
“잠시만. 전화 좀.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NM 게임사입니다. 이시혁 씨 맞습니까?」
“네. 맞아요.”
나는 무슨 전화인지 눈치를 채고 스피커 폰으로 전환했다.
시하와 백동환이 기다리던 이벤트 결과였기 때문이었다.
「축하드립니다. 이번에 좀비는 못 말려 이벤트에 입상하셨습니다. 우수상이십니다. 문화상품권을 발송해 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백동환이 대번에 실망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장려상인 좀비 인형은 날아갔다.
나는 혹시나 해서 물어보았다.
“좀비 인형으로 바꿔 주시면 안 될까요?”
「아…. 아마 굿즈가 몇 개 더 추가로 생산했을 겁니다.」
“오! 그럼 바꿀 수 있는 건가요?”
「그런데 그냥 문화상품권 받으시는 게 더 좋으실 텐데요?」
“아하하. 좀비 인형을 가지고 싶어 해서요.”
「알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그럼 이만 수고하세요.”
「잠시만요.」
“네?”
「사실 이벤트 당첨 사실을 알리려고 전화한 게 아닙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지?
“그럼 왜 전화를?”
「그건…….」
NM 게임사 직원의 말에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