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화 (99/500)

99화

꾸벅꾸벅.

실컷 놀았으면 당연히 잠도 온다.

하지만 이 여름에 그늘 밑에서 잠을 자면 찝찝함만 남는다.

그렇다면 대충 애들을 씻기는 게 맞는 것이다.

이럴 줄 알고 시하와 애들이 덜 피곤할 때 숙소로 돌아와 씻겼다.

“형아… 아함~”

나를 부르는지 하품을 하는지 모르겠다.

조그마한 입이 크게 벌려지는 모습을 보니 거기에 괜히 손가락을 넣고 싶어진다.

아무튼, 시하는 귀엽다.

이게 아니지.

“시하야. 피곤해?”

“아아.”

시하가 눈을 비비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시하를 안아서 침대에 눕혔다.

“자고 일어나면 저녁 먹으러 가자. 알았지?”

시하의 배를 천천히 토닥이며 재웠다.

새근새근 숨소리가 들릴 때쯤에 내 눈에도 노곤함이 몰려왔다.

아이들과 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체력 소모가 극심해서 나도 한숨 자야 할 것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대충 씻고 시하 옆에 누웠다.

시하의 배가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을 보다가 살며시 손을 잡고 잠이 들었다.

몇 시간 후.

6시가 되었다.

그래도 해는 늦게 져서 아직 하늘이 밝았다.

해가 점점 지는 바다의 풍경도 볼만했다.

“형아.”

시하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시하야. 여기 와서 바다 좀 봐.”

“아아.”

시하가 내 다리를 잡고 바다를 보았다.

뷰가 상당히 좋았다.

약간 어두운 빛을 띠는 바다는 살며시 반쯤 눈을 뜬 것 같은 풍경이었다.

“어때?”

“바다. 잠자.”

“아하하. 바다도 많이 놀아서 피곤한가 봐.”

“아아. 코오!”

“바다가 코오- 하려는가 보네.”

“아아.”

나는 시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바다가 검정 이불을 덮기 전에 저녁을 먹으러 나가야겠다.

“시하야. 오늘 뭐 먹을 줄 알아?”

“모야?”

“바다에서만 먹을 수 있는 걸 먹을 거야. 기대되지?”

“아아.”

시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간단히 세안하고 시하랑 밖으로 나왔다.

다른 사람과 연락은 해 두었다.

식사 시간이 떠들썩한 자리가 될 것 같았다.

“시하야. 바로 저기야.”

우리가 선택한 곳은 해산물을 파는 곳이었다.

회, 조개류, 새우, 구이 등을 팔았다.

이런 곳은 처음이라 시하가 좋아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애들 먹을 것도 있긴 하니까.’

최후의 수단으로 계란찜과 소시지를 시키면 될 것 같았다.

어린이용으로 소시지가 메뉴판에 있는 걸 봤으니까.

아무래도 해산물을 싫어하는 애들이 있으니 들여놓은 메뉴인 것 같았다.

‘소시지 싫어하는 애들은 없겠지.’

달걀과 소시지는 거의 만능 반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 오빠! 여기요!”

서수현이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다들 먼저 도착했는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승준이 시하를 발견해 손을 흔들었다.

“시하야~”

“아아~”

마치 오늘 처음 만난 것처럼 인사를 나누는 둘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만남이 시작되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서수현이 물수건을 건네며 말했다.

“오빠가 빨리 안 오길래 저희끼리 미리 시켰어요. 괜찮죠?”

“응. 괜찮아.”

어차피 여기서 먹는 메뉴는 정해져 있다.

특별히 많은 메뉴가 있지 않아서 선택이 편한 식당이었다.

“아! 혹시 계란찜 시켰어?”

“당연하죠. 애들이 좋아하잖아요. 근데 저희 먹을 것도 시켰어요. 계란찜 위에 치즈가 올려져 있어서 맛나 보이더라고요.”

“그래? 진짜 맛있겠네.”

듣기만 해도 군침이 돋았다.

어느새 요리가 도착하고 식사가 시작되었다.

치즈 퐁듀도 같이 나왔는데 여기에 조개류를 찍어 먹으면 되었다.

치즈가 있어서 애들이 좀 더 먹기 좋을 것 같았다.

“시하야. 여기 새우야.”

내가 새우를 까서 시하의 입에 넣어주자 오물오물 먹기 시작했다.

맛있는지 다리를 위아래로 마구 흔들었다.

“형아! 마시써!”

“응. 맛있지? 여기 조개구이도 맛있으니까 먹자.”

“아아.”

다행히 시하는 해산물을 싫어하지 않았다.

복스럽게 먹는 모습을 보니 내가 다 기분이 좋았다.

괜히 튀어나온 볼을 살며시 만졌다.

“아?”

시하가 왜 그러냐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아니야. 많이 먹어.”

“아아.”

그렇게 맛있는 식사가 시작됐다.

서수현이 전복을 치즈 퐁듀에 맛나게 찍어 먹고 말했다.

“오빠. 밤바다 하면 생각나는 거 없어요?”

“여수 밤바다?”

“아니요. 그거 말고요.”

밤바다가 밤바다지.

다만 불빛 없는 밤바다는 너무 칠흑 같아서 섬뜩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모르겠는데?”

“당연히 불꽃놀이죠.”

“아…….”

“불꽃놀이 세트를 사서 같이 놀아요. 시하도 좋아할걸요?”

“위험하지 않아?”

“에이. 오빠가 잘 지켜보면 되잖아요. 아니면 같이 손잡고 하거나.”

“그래. 하자.”

“아싸.”

불꽃놀이는 오랜만이다.

예전에 아버지와 함께 학교 운동장에서 한 게 생각이 난다.

그때 얼마나 그게 재밌던지.

그냥 예쁘게 불똥이 튈 뿐인데도 너무나 재밌었다.

아무도 없는 넓은 운동장을 아빠와 내가 불꽃놀이를 하기 위해 빌린 기분.

‘시하도 밤바다를 다 가진 기분을 느낄까?’

어떻게 되든 재밌을 것 같았다.

“오빠.”

서수현의 질문은 끝나지 않았다.

“응?”

“불꽃놀이 하면 불이 생각나잖아요.”

“어.”

“저희는 대학생이고요.”

“뜸 들이지 말고 말해.”

“알았어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대학생들의 로망이라고 해야 하나? 모닥불 앞에 둥글게 둘러싸서 통기타 들고 노래도 부르고.”

“대학생들이 아니라 네 로망 아니야?”

“맞아요.”

서수현이 눈을 반짝였다.

옆에서 한 움큼 쌈을 싸서 입에 넣던 알리사 말했다.

“웁웁!”

“알리사. 먹고 말해요.”

알리사가 겨우 입안에 있는 것을 꿀꺽 삼켰다.

“저도 밤바다에 통기타 들으며 친구들이랑 떠들고 싶어요.”

“혹시 뭐 수련회처럼 촛불의식 하고 싶은 건 아니죠?”

“촛불의식이 뭐예요? 한국은 그런 것도 해요?”

“뭐 학교 다닐 때 수련회라고 그런 걸 하기도 해요. 작은 촛불들이 모여서 환하게 비춘다거나. 아니면 친구들과 부모님을 떠올려 본다던가.”

“좋은 의식이네요.”

“그렇죠. 어쩌다 이 말이 나왔지?”

서수현이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말했다.

“오빠. 그게 바로 그때만 할 수 있는 추억이에요. 그런 의미로 대학생 때 할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보는 건 어때요? 모닥불도 피우고.”

“모닥불 엄청 피우고 싶나 보네. 모닥불을 어디서 구해와?”

“제가 가져왔어요. 기타도.”

“뭐?”

모닥불을 가져왔다고?

나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모닥불 피우다가 잡혀가는 거 아니야?”

“장작 같은 거 들고 온 게 아니라 모형이에요. 건전지로 나오는 불이고요.”

“그걸 모닥불이라고 할 수 있나?”

“당연하죠. 요는 분위기라고요. 분위기.”

“음. 알았어. 뭐 하고 싶으면 해야지.”

“그런 의미로 제 노래 영상 찍어주실 거죠?”

“너 사실 영상 찍으려고 이렇게 말한 거지?”

“아닌데요?”

말하는 방식이 어디 누구와 닮았다.

혹시 나한테 배운 거 아니야?

“겸사겸사 원 플러스 원이죠.”

“1시간 동안은 안 찍을 거야.”

“어휴. 저도 그 정도는 못 불러요.”

“그리고 찍을 사람은 네 옆 사람이고.”

“네?”

알리사가 눈을 껌뻑껌뻑 떴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굳이 내가 찍을 필요는 없잖아? 난 시하 봐야지.”

“그… 렇죠.”

서수현은 이게 아닌데? 하는 표정이었다.

어딜 부려먹으려고.

시도는 좋았으나 그 정도에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는다.

서수현은 아직 멀었다.

나는 숟가락으로 계란찜을 푹 떠서 입안에 넣었다.

‘맛있다.’

***

우리는 밥을 다 먹고 불꽃놀이 세트를 샀다.

일회용으로 사기에는 상당히 돈이 아깝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즐거운 추억에 비해 싼 걸지도 모른다.

어떤 거에 중요한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게 다르니까.

나야 시하가 좋아한다면 만족이다.

“시하야. 여기 불을 붙이면 불꽃이 날아가.”

“아아.”

날아가는 20발짜리 폭죽을 시하의 손에 쥐여 주었다.

옆에 있는 승준과 하나도 같이 폭죽을 잡았다.

어른들은 혹시 모를 사고를 위에 손을 겹쳐 잡아주었다.

“그럼 한다?”

끄덕.

불이 붙고 심지가 타들어 갔다.

뒤이어 피이잉- 소리가 나며 그대로 불꽃이 하늘 위로 올라가 펑- 하고 터뜨려졌다.

작지만 예쁜 불꽃이 반짝였다가 사라졌다.

“형아!”

시하가 놀랐는지 내 얼굴을 빼꼼 올려다보았다.

그사이에 불꽃이 하늘을 한 번 더 날아갔다.

“예쁘지?”

“아아.”

옆에 있던 승준은 완전 흥분 상태였다.

“와! 시하야! 내 꺼는 더 멀리 날아간다!”

“아닌데? 하나랑 또가치 나라가눈데?”

“공격이다! 공격!”

이미 승준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나 보다.

하나도 ‘예뿌다!’ 하면서 잘 즐기고 있는 것 같다.

두 사람 뒤에서 손을 잡아주고 있는 엄마와 아빠의 모습이 너무나 단란하게 보인다.

원래라면 시하도 내 손이 아니라 엄마나 아빠의 손을 잡고 폭죽을 날리고 있었을 텐데.

그 기회는 너무나 빨리 시하에게 앗아간 것은 아닌지.

그게 너무 안타까웠다.

나는 적어도 아빠라도 있었으니까.

‘나는 너에게 부모님만큼 의지가 되는 걸까?’

멀리 날아가는 폭죽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멀리 하늘로 가지 말지.

불꽃처럼 타올랐다가 꺼져버리는 하늘의 빛이 너무나도 다른 의미로 나에게 다가왔다.

마냥 예뻐 보이지만은 않은 느낌.

“형아?”

“응?”

“이뻐!”

“응. 예쁘네.”

아니. 나에게는 충분히 예뻤다.

‘미안해. 같이 있는데도 이런 생각을 해서.’

나는 시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느새 불꽃이 떨어졌는지 더는 나오지 않았다.

손을 놓아주자, 시하가 정말 없는지 이리저리 흔들었다.

“시하야. 다른 거 해 볼래?”

“아아.”

“이건 엄청 신기한 거야. 잘 봐.”

전형적인 스파클라 폭죽이었다.

손으로 잡고만 있으면 심지가 타들어 가면서 불꽃이 나오는 것.

나는 다른 것보다 이게 더 재밌었다.

티틱. 티틱.

“짜잔. 예쁘지?”

“아아.”

“손을 멀리해야 해. 그래야 안 다쳐.”

“아아.”

나는 시하의 손에 폭죽을 쥐여주었다.

시하는 한쪽 팔을 쭉 벌린 체 불꽃을 보았다.

누가 보면 마치 벌서고 있는 모습 같았다.

“아하하.”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나온다.

옆을 보니 승준이 불꽃을 마구마구 흔들고 있었다.

“시하야. 이거 봐라! 검이 솩솩 그려져.”

이미 승준의 폭죽은 불꽃검이 되었나 보다.

이렇게 갖고 노는 것도 아이들의 성향이 잘 나오는 것 같았다.

“시혀기 오빠! 봐봐!”

하나는 조그맣게 하트를 그리고 있었다.

“와 하트네.”

“응!”

알아준 게 기쁜 걸까?

하나는 참 해맑은 아이인 것 같다.

“형아! 시하도!”

“으응?”

시하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하트를 크게 그렸다.

휙휙. 휙휙.

“시하야. 그렇게 빨리 휘두르면 위험해.”

“아냐. 형아. 시하도.”

“으응?”

시하가 열심히 하트를 그렸다.

음. 자기도 칭찬해 달라는 의미일까?

“우와! 정말 대단해! 하트가 엄청 커!”

그때부터 하나와 시하의 하트 경쟁이 시작되었다.

자기들이 더 크게 그린다면서.

거기에 승준이 재밌어 보이는지 참가를 했다.

모래사장을 달리며 하트를 크게 그리려고 뛰었다.

“나는 더 크게 만들 거야!”

결론을 말하자면 승준은 하트를 반밖에 못 만들었다.

불꽃이 꺼져 버렸으니까.

“아! 꺼졌어!”

“하트가 반쪽이 되어 버렸네.”

“쳇!”

다들 그 반응에 피식 웃었다.

진짜 애들이랑 같이 있으면 어떻게 행동이 될지 모를 일이었다.

그때 문도환이 말했다.

“자. 완성됐다!”

“뭘요?”

“하트 분수 폭죽!”

문도환이 설치한 곳에서 하나씩 점화했다.

모래사장 바닥에서 불꽃이 올라왔다.

차례대로 올라오며 하트를 그렸다.

아이들이 그 모습을 보며 감탄을 뱉었다.

“우와!”

“대다내! 큰 하트야!”

“아아! 하투!”

문도환이 코를 스윽 비비며 말했다.

“엄청 큰 하트지? 내가 이겼지?”

그 말에 내가 말했다.

“형한테 하트 받아도 안 기쁜데요?”

“야!”

다들 그 말에 킥킥 웃음을 터뜨렸다.

폭죽 사길 정말 잘한 것 같다.

“오빠! 가져왔어요!”

그때 잠깐 폭죽놀이를 하고 사라진 서수현이 통기타를 들고 등장했다.

따라갔던 알리사가 커다란 상자를 들고 있었다.

저 상자는 뭐지?

“짐이 많네?”

“당연하죠. 그리고 오면서 엄청난 걸 발견했어요!”

다들 서수현이 가지고 온 게 궁금한지 모였다.

서수현이 눈짓하자 알리사가 상자를 열었다.

“짜잔!”

거칠거칠하고 생생한 질감이 보였다.

“어? 이거 진짜야?”

대체 어떻게 구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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