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7화 (97/500)

97화

다음 날.

해수욕장 근처로 숙소를 예약했다.

바다의 뷰가 보이는 곳.

비싸고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멋과 분위기에 대한 값을 기꺼이 내는 사람이 많겠지만 나는 결제할 때 살짝 손이 떨렸다.

‘그래도 시하가 보면 좋아하겠지?’

조금 떨어진 곳에 싸게 방을 잡을 수 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아름다운 바다의 모습을 다양한 시각에서 보여주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보는 시야는 평면적이지 않고 입체적이다.

간혹 사물을 가까이서 봐도 그렇다.

사람들이 많은 바다가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아래로 내려볼 때가 더 아름다울 수 있다.

물론 시하가 이걸 통해 어떤 걸 느낄지 모른다.

아무것도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그저 시하가 생각하는 바다의 장면 중 하나가 다양한 각도로 기억되기 바랄 뿐.

무엇이든 정답은 없는 거니까.

“시하야. 그럼 준비물을 사러 갈까?”

“아아.”

나는 시하와 차를 타고 근처 마트로 향했다.

내일 바다에서 놀 때 필요한 용품을 사러 갈 생각이다.

바다면 역시 물총이니까.

“종류가 굉장히 많네?”

시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마트답게 여름 물품이 따로 배치되어 있었다.

물총도 마찬가지였다.

크기가 다양했다.

과장해서 무슨 대포만 한 것도 있었다.

저런 건 시하가 갖고 놀 수 없겠지.

물을 넣는다면 더더욱 들지도 못할 거 같다.

“시하야. 골라봐.”

“아?”

시하가 스윽 물건을 바라보다가 하나를 선택했다.

자신의 몸에 맞게 작은 걸 골랐다.

역시 물총이라고 하면 기동력이 뛰어난 총을 골라야지.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럼 이걸로 하고 수영복 고르러 갈까?”

“아아!”

그렇게 우리는 수영 기능이 없을 것 같은 반바지 수영복을 샀다.

아빠와 아들 세트로 되어 있는 상어 캐릭터 옷이었다.

지켜보고 있던 직원이 아들이랑 너무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헛바람을 넣어서 사게 되었다.

물론 시하는 아들이 아니지만,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일일이 정정해 주고 싶지는 않았다.

나중에는 아빠가 너무 젊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당연히 젊겠지…….

“그럼 갈까?”

끄덕.

나는 시하의 손을 잡고 쇼핑을 마쳤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전화가 왔다.

[서수현]

나는 통화 버튼을 톡 누르고 받았다.

“왜?”

「오빠. 몇 시쯤 모여요?」

이건 또 무슨 말이야?

「아침에 오빠 집 앞까지 가면 돼요? 아니면 해수욕장에서 만나요?」

“무슨 소리야?”

「어제 시하가 같이 바다 가자고 하던데요?」

“응?”

나는 집 근처에 차를 주차하고 시하를 보았다.

“시하야?”

“아?”

“혹시 수현이 누나 초대했어?”

“아아.”

시하가 살며시 웃었다.

정말 귀엽다.

아니지. 정신 차리자.

대체 언제 서수현하고 통화해서 초대한 거지?

일단 당황한 마음을 가라앉히자.

“응. 그래. 그랬지.”

「뭐야? 오빠 몰랐어요?」

“응. 아니야. 알고 있었어. 그래서 내일 온다고?”

「네. 저 준비 다 했는데 장소랑 시간을 안 가르쳐줘서…….」

그렇겠지.

시하가 장소랑 시간까지 알려줬을 리가 없다.

“에블바디 컴 투 해운대!”

「네?! 해운대까지 가는 거였어요?」

“어. 인천공항으로 와. 비행기 다 예약해 놨으니까.”

「와! 비행깃값 오빠가 쏘는 거예요?」

“당연하지.”

「와 진짜 대박!」

나는 소리 죽여 웃었다.

시하는 내가 왜 웃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뻥이야.”

「아! 진짜 못됐어! 맨날 그렇게 놀리기에요?」

“우리 집 앞으로 아침 먹고 9시까지 와. 같이 차 타고 가자.”

「알았어요.」

“어. 그래.”

통화를 끊고 나는 시하를 보았다.

이 귀여운 동생이 왜 서수현에게 전화했을까?

그 의중이 너무 궁금했다.

“시하야. 수현이 누나한테 왜 바다 같이 가자고 했어?”

서수현이 마음에 들었던 걸까?

하긴. ‘개굴’이라는 별명도 지어줄 정도니까.

“시하. 친구. 노라. 형아도. 친구. 노라.”

“으응?”

나는 의외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시하는 친구랑 놀 때 형아도 친구랑 놀라는 말 같았다.

살짝 가슴이 찡하다.

내가 시하를 생각하는 것처럼 시하도 나를 생각해 주는구나.

‘감동이네.’

세상에 없을 동생이다.

이런 동생이 어디 있을까?

“시하야. 고마워.”

“아아.”

입가에 살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그때였다.

또다시 전화가 왔다.

[알리사]

“???”

알리사의 전화를 받고 그 뒤에도 연달아 전화를 받았다.

백동환, 문도환에게 말이다.

그렇구나. 시하는 형아를 많이 생각하는구나.

어쩌다 이렇게 대인원으로 놀게 되었지?

왜 이렇게 된 걸까?

그날 나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

그렇게 바닷가에 도착했다.

“시하야. 여기가 바로 바다야! 기억나?”

“아?”

시하는 기억나지 않는지 고개를 저었다.

솔직한 심정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못된 형일지도 몰랐다.

혹시나 엄마와 아빠의 추억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했다.

유모차를 끌고, 길가를 걸으며, 바다를 보았던 풍경을 기억하고 있지는 않은가 보다.

‘난 나쁜 형일까?’

어쩌면 엄마, 아빠의 추억 하나가 기억에 있지 않은 건데 다행이라고 생각하다니.

심경이 복잡해진다.

그런 나의 마음을 모르는지 시하는 내 다리를 잡고 바다에 손을 가리켰다.

“형아!”

“응. 그래. 가자.”

나는 시하의 손을 잡고 모래사장을 걸었다.

미리 파라솔이 있는 자리를 사두어서 거기에서 놀기로 했다.

수영복으로 갈아입을 필요도 없었다.

이미 입고 있어서 상의만 벗으면 되니까.

“그럼 시하야. 벗자!”

“아아!”

“만세!”

시하가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나는 윗옷을 쏙 뺐다.

시하가 신이 나는지 곧바로 바다에 가보려고 했다.

“잠깐만!”

시하의 바지를 잡았다.

쭈욱.

늘어나며 시하가 다시 내 손으로 빨려 들어왔다.

“아?”

“시하야. 바다에 들어가기 전에 중요한 게 있어. 바로 선크림을 바르는 거야.”

이 더운 여름에 선크림은 필수적이다.

나는 선크림을 쭈욱 짜서 시하의 몸에 골고루 발랐다.

말랑한 살이 느껴졌다.

역시 아이라 피부가 남다르긴 하다.

이걸 잘 유지하면 좋을 텐데.

옆에서 선크림을 바르고 있는 승준이 말했다.

“시하야! 빨리 바다 가자!”

“아아!”

“튜브도 타자!”

“투보?”

나는 시하에게 설명해 주었다.

“튜브는 저걸 말하는 거야.”

튜브를 대여하는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저씨가 허리 가방을 메고 돈을 받고 있었다.

“저걸 타면 바다에 둥둥 뜰 수 있어.”

시하가 신기하다는 듯이 튜브를 보았다.

아무래도 저 튜브를 타 보고 싶은 거겠지.

이것 역시 예상한 바였다.

그럴 줄 알고 현금도 미리 뽑아왔으니까.

‘튜브 안 사길 잘했지.’

은근히 튜브가 들고 다니기 귀찮은 용품이었다.

대여해 주는 곳이 없었다면 아마 어제 샀을 것이다.

“자! 끝났다. 이제 놀까?”

“아아. 승준!”

“나도 끝났어!”

“하나도!”

아이들이 바다를 향해 달려갔다.

설마 이렇게 물을 안 무서워할 줄 몰랐다.

물을 무서워하는 아이들도 많던데.

“형아!”

“그래. 잠시만! 형아도 선크림 좀 바르고! 다들 옷 갈아입고 와요.”

나는 같이 온 사람들에게 말했다.

같이 즐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마 알아서 즐기겠지?

문도환이 말했다.

“넌? 안 갈아입어?”

“전 시하랑 미리 입고 왔죠. 상의만 벗으면 돼요.”

“요즘 수영복이랑 반바지 차이를 모르겠네.”

“하하.”

나는 상의를 탈의했다.

그런데 옆에서 승준 엄마가 어머거리고 있고, 서수현과 알리사도 은근히 힐끗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뭐지? 벗는 모습이 좀 야한가?

그때 백동환이 말했다.

“형님.”

“응?”

“운동하셨습니까? 몸이 좋으시네요.”

“야. 네가 그러면 안 되지.”

진짜 몸 좋은 건 백동환이었다.

근육근육한 몸에 식스팩.

어깨도 장난 아니게 넓고 키도 커서인지 엄청나게 위압감을 조성했다.

“형님. 요즘 이런 커다란 근육은 여자에게 인기가 없잖아요. 형님처럼 적당히 잔 근육이 있어야죠. 심지어 식스팩도 있으신데.”

“뭐래. 빨리 가서 갈아입고 와.”

“저도 다 갈아입었습니다. 상의만 벗으면 되죠. 하하.”

“아, 그래?”

옆에 있던 문도환이 내 어깨에 손을 턱 하고 올렸다.

“배신자.”

“네?”

“나쁜 놈아. 내가 얼마나 잘해 줬는데.”

“갑자기 왜 그래요?”

“그렇잖아. 너무 다 가진 거 아니야?”

“아, 형도 왜 그러세요.”

“너 중학교 때 그 썰 사실이었구나?”

“아, 형.”

백동환이 ‘그 사건’에 대해 관심을 보였지만 나는 얼버무리고 문도환의 등을 밀었다.

하필이면 어린 나이에 치기 어린 행동을 미주알고주알 말하려고 할 줄이야.

아무튼, 이제 준비도 끝났으니 시하랑 놀아야겠다.

“시하야. 튜브 빌려왔어.”

“아아.”

나는 어린이용 튜브 세 개를 가지고 애들에게 갔다.

시하랑 애들이 바다에 못 들어가고 나를 보고 있었다.

“바다에 들어가 봤어?”

“아냐.”

“아, 안 들어가 봤어? 왜?”

“아냐.”

기세 좋게 가길래 이미 발을 담가본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다.

승준과 하나 역시도 쉽게 못 들어가고 있었다.

“손잡자!”

승준이 하나와 시하의 손을 잡았다.

하나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시혀기 오빠도!”

“응.”

튜브를 내려놓고 처음 바다에 입성했다.

시원한 물이 발목을 담그고 그대로 빠져나갔다.

모래 알갱이가 발을 간질이는지 애들이 간지럽다고 웃었다.

“와! 간지러워!”

“시혀기 오빠. 간지러!”

“응.”

그때 시하가 말했다.

“형아. 시하도. 손!”

“응?”

지금 하나 옆에 손을 잡고 있어서 시하랑 손을 잡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살짝 돌아서 시하의 손을 잡아줬다.

그렇게 완성된 둥그런 원.

서로 마주 보며 갑자기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둥글게 둥글게.”

갑자기?!

“빙글빙글 돌아가며 춤을 춥시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바다에 왔는데 대체 언제 들어가는 걸까?

한참을 돌고 나서야 제대로 바다에 몸을 담갔다.

뭐 나는 몸을 담글 수 없었지만.

“시하야. 신기하지?”

“아아.”

“바다가 이렇게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가는 걸 좋아해.”

“아아.”

“그럼 이 튜브를 타면 그걸 더 즐길 수 있어. 다들 타 볼래?”

나는 차례대로 튜브에 엉덩이를 넣어 주었다.

튜브에 매달린 줄을 질질 끌고 바다로 들어갔다.

“후우.”

이제부터 체력전이다.

셋을 튜브에 태우고 돌아다니기.

어린이 체력이 바다에서 쉰다는 걸 고려할 때 엄청난 하루가 될 것이다.

‘하지만 신에게는 네 척의 배가…. 아니, 네 명의 친구들이 있지.’

돌아가면서 놀아준다면 피곤하지는 않을 것이다.

승준이 외쳤다.

“시혀기 형아! 출발해!”

“시혀기 오빠. 달려!”

“아아. 형아!”

“???”

뭔가 다들 하는 말이 이상하지만, 의미는 확실히 전달되었다.

나는 바다에서 튜브를 운행했다.

꿀렁꿀렁.

바다의 느낌이 물씬 느껴졌다.

애들이 신나서 하하호호 웃었다.

뭔 이야기를 재잘재잘하는지 즐거워 보였다.

나도 시하가 좋아하니 즐거웠다.

‘그런데 오늘 자주 웃네?’

안타까운 것은 저 장면을 찍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아쉽다…….’

요즘 들어 생각하는데 일부러 시하가 카메라가 손에 없을 때만 웃는 건 아니겠지?

“형아!”

“응. 멀리 갈까?”

“아냐.”

“그럼?”

“저기!”

나는 시하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아무래도 옆으로 이동하고 싶은가 보다.

나도 깊이 들어가는 건 좀 그렇다.

애들이 셋이다 보니.

“그래. 가자! 간다!”

“아아!”

손으로 물을 서로에게 튀기며 한참을 논다.

그때 시하가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손으로 가리켰다.

“형아! 개물!”

“응? 괴물?”

“아아. 저기!”

다들 시하가 가리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무서운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승준이 말했다.

“괴물이다! 도망치자!”

“시혀기 오빠! 빨리!”

“어…. 응…….”

나는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그도 그럴 게 지금 쫓아오고 있는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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