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6화 (96/500)

96화

-NM 게임회사.

현재 ‘좀비는 못 말려.’라는 게임의 인기에 힘입어 애니메이션 제작에 성공한 회사였다.

그것뿐만 아니라 앱 게임 개발도 많이 하고 있고 적절한 현질 유도로 돈을 벌고 있다.

이번에 한국에 애니메이션이 들어오면서 게임의 인기도 상승 중이었다.

“하암.”

회사 직원이 크게 하품을 했다.

오랜만에 야근해서 그런지 그의 몸이 너무 피곤했다.

지금 이벤트 담당자까지 맡아서 그림을 선별하는 작업 중이었다.

“오늘도 왔구만.”

의외로 그림 참가가 많았다.

애초에 상을 많이 준비했으니 당연한 일.

하지만 일하는 사람으로서는 귀찮은 일이다.

올라온 영상은 대충 보고 그림을 본다.

“오늘 뭐 재밌는 거 있나?”

나름 선별하는 과정에 재미도 있었다.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나와서 보는 맛이 쏠쏠했으니까.

그때 동기가 웃으면서 다가와 의자에 팔을 걸었다.

“영상은 안 보고 그림만 보네?”

“그 많은 영상을 어떻게 다 보겠어. 그럴 시간이 어딨다고. 그냥 다 확인용이야. 확인용. 혼자 그렸는지 말이야. 딱 뒤만 보면 되지.”

“하긴 그 조건이 억제제였지.”

“유독 잘 그린 그림만 검사하면 되는 거지.”

실제로 그 많은 영상을 다 보려면 종일 걸릴 것이다.

회사 시간이 남아도는 것도 아니고 개인 업무도 있다.

이런 것은 빨리 추리고 의논해서 선정하는 것이 좋다.

다행인 점이라면 여기서 나온 캐릭터들은 회의 때 적용될 수 있다.

이런 아이디어가 무수히 많이 나오는 것에 감사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밟는 말이네. 동심이 없어. 동심이.”

뒤에 있던 동기가 혀를 쯧쯧 찼다.

“너 일 안 해? 여유롭다?”

“나야 뭐. 요즘 한 건 했잖아. 이번 대회를 위해 통역사도 구했고. 일 다 했지.”

“아, 그래? 그거 좋겠네. 바쁘니까 빨리 가라.”

“그래. 수고해. 재미난 그림 있으면 같이 공유하고.”

“게임에서 봐라.”

동기가 떠나가 다시 모니터를 보기 시작했다.

그가 메일을 클릭해 첨부된 자료를 열었다.

“응?”

의문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 당근 캐릭터가 떡하니 있었으니까.

개성 있는 그림이 많이 도착했지만, 채소를 주제로 보낸 것은 처음이었다.

“귀엽네?”

일단 귀엽긴 했다.

흥미도 동했다. 지루한 인간 좀비 그림을 봐서 그런지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왔다.

동물은 있었어도 단연코 채소는 없었다.

특히 당근은.

“대상감은 아니긴 한데…. 설정이 궁금하네.”

일단 마음속으로 이 그림은 킵이었다.

둥글둥글한 귀여운 그림체가 마음에 들었으니까.

신선하다는 게 점수 포인트가 높았다.

그가 제목을 보았다.

“당근 좀비…….”

그림 그대로 ‘당근 좀비’였다.

제목은 넘어가고 설정을 바라보았다.

[설정]

[직업 : 스트리머]

[MCN 회사와 노예 계약을 해서 착취당하며 방송 중이다.

늘 기획된 대로 하며, 기행을 일삼는 방송을 한다.

그리고 회사에 잡혀서 근무 중.

시청자들이 감금당하고 있으면 당근을 흔들어 달라는 요청을 농담처럼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회사가 지켜보고 있어서 당근을 흔들 수 없다.

마음속으로 너무 당근을 흔들고 싶어서 당근 좀비 스트리머가 되었다.]

그가 눈을 끔뻑끔뻑 떴다.

다시 한번 손으로 비벼봐도 글은 달라지지 않았다.

“뭐야? 인간이었어?”

설정을 보면 인간이었는데 당근 좀비가 된 듯했다.

그가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부모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설정 하나는 신선 그 자체였다.

이 정도 센스와 정성이면 상을 안 줄 수 없을 것 같았다.

“오케이. 이건 우수상 후보는 되겠는데?”

그 말을 들은 누군가가 의자 뒤편을 눌렀다.

또 동료가 누르는 줄 알았던 그가 역정을 냈다.

“또 뭐! 재밌는 그림 없어.”

“아니, 재밌는데?”

“헉! 전무님?”

“왜? 이거 재밌는 캐릭터네.”

전무가 당근 좀비 캐릭터를 보며 눈을 빛냈다.

대리 직급인 직원은 앞에서 식은땀을 흘릴 뿐이었다.

***

-집.

현장실습이 끝나서 마지막 보고서를 작성했다.

작업한 것들을 캡처와 사진에 담아서 안으로 넣었다.

다른 건 다 좋은데 귀찮은 점이 있다.

‘살짝 덥네. 온도를 좀 더 낮출까?’

나는 리모컨으로 에어컨 온도를 낮췄다.

에어컨이 서늘하게 몸을 식히고 노트북의 열기가 다시 더위를 생성시켰다.

집 안은 충분히 시원했다.

내가 괜히 더위를 조금 탈 뿐이다.

시하도 시원함을 즐기는지 몸에 담요를 목에 감아서 망토를 만들었다.

더할 나위 없는 사치의 행위.

“시하야. 이제 곧 끝나. 조금만 기다려. 놀아줄게.”

“아아. 시하. 히어로!”

“그래. 히어로네!”

시하가 담요 망토를 흔들며 손을 위로 뻗었다.

역시 굉장히 귀엽다.

이게 아니지.

나는 정신을 차리며 다시 노트북을 보며 빠르게 보고서를 정리하고 올렸다.

오타가 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이미 자료는 충분히 넘쳐났다.

‘하루만 늦게 방학하지…….’

어린이집이 방학을 맞이했다.

그래서 시하가 집에 있는 것이다.

물론 현장실습이 끝난 시점에서 어린이집이 방학하지 않더라도 시하랑 집에서 계속 놀아주려고 했다.

조금이라도 시하와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시하가 어린이집에 가고 싶다고 하면 가야겠지만.’

초, 중, 고의 학생이 누릴 수 없는 자유 등교였다.

시대를 앞서나가는 등교 시스템이기는 하지만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기에 누릴 수 있는 호사다.

“시하야. 이거 끝나면 어디 가고 싶은 데 있어?”

“아? 형아!”

“응! 가고 싶은 데 있구나?”

시하가 나를 가리켰다.

“형아!”

“형아한테 가고 싶다고?”

“아아. 형아! 형아! 노라!”

“형아랑 많이 놀고 싶어?”

“아아.”

장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시하는 그 어떤 장소든 나랑 놀고 싶어 하는 거다.

귀여워서 평생 놀아주고 싶다.

뭐 나중에 크면 형아랑 놀지 않겠지.

그건 좀 슬프다.

그때 폰에서 벨 소리가 흘러나왔다.

“응? 누구지?”

보니까 승준 엄마로부터 화상 전화가 걸려온 거였다.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서 일단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화면에 불쑥 얼굴이 나온 것은 승준이었다.

「어? 시혀기 형아다! 시혀기 형아!」

“응. 안녕~”

「시혀기 형아. 시하 있어요?」

“응. 있는데?”

「그럼. 시하. 아악!」

「하나도! 시혀기 오빠랑 말할 거야!」

하나가 불쑥 화면에 나왔다.

승준이의 얼굴을 밀어내면서 폰을 두고 다툼을 벌였다.

「내가 먼저 잡았잖아.」

「하나도 시혀기 오빠랑 말하고 시퍼!」

「오빠가 먼저야!」

「오빠는 나중에 해!」

아웅다웅하길래 내가 먼저 나서줬다.

“하나야. 일단 시하 먼저 통화받고 나랑 통화하자. 알았지?”

하나가 냉큼 대답했다.

「응!」

승준이 머리에 땀을 닦으며 오빠 하기 힘드네, 라고 중얼거렸다.

나는 그 말에 피식 웃음이 터졌다.

벌써 저러면 나중에는 꼼짝도 못 할 거 같았다.

“그럼 시하 바꿔줄게. 시하야! 승준이에게 전화 왔어.”

“아아! 승준!”

“자, 여기.”

나는 시하에게 폰을 넘겼다.

화면에 승준의 얼굴이 나오는 게 신기한지 눈이 커졌다.

“시하야. 카메라에 얼굴을 보이면 승준이에게도 보일 거야.”

“아아.”

내가 손으로 카메라를 가리키자 시하가 얼굴을 바짝 대었다.

스피커 너머로 승준이 웃음을 보였다.

「아하하! 시하야. 눈 너무 커! 무서워!」

“아아!”

「얼굴을 멀리해.」

“아아.”

시하가 두 손으로 폰을 떨어뜨렸다.

그래도 카메라가 가까이 있는지 시하의 얼굴이 큼지막하게 나왔다.

「더! 더! 더! 더 멀리!」

시하는 그 말을 듣고 나에게 폰을 넘겼다.

도도도 달려가 멀찍이 떨어졌다.

“승준!”

「이번에는 너무 먼데?」

“아?”

시하가 다시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자 그제야 화면에 안정적으로 얼굴이 나왔다.

하는 짓이 너무 귀여워서 지켜보았는데 상당히 재밌는 장면이 나왔다.

「이제 됐어!」

“아아.”

「시하야. 시하야.」

“승준!”

「할 말이 있어서 전화했어. 우리 같이 놀자!」

시하도 좋은지 고개를 끄덕였다.

놀자고 하는 전화였구나.

왠지 신기했다.

시하에게 전화가 오는 친구가 생긴 게 말이다.

아직 방학한 지 하루도 안 됐는데 이렇게 전화를 오는 걸 보면 정말 친해지긴 한 것 같았다.

벌써 같이 놀고 싶어서 전화하다니.

얼마나 노는 게 좋은 나이일까?

「그럼 같이 가자.」

“가치?”

음. 그래. 같이 만나서 놀아야지.

「바다에!」

“바다?”

그래. 놀려면 바다에 만나야지.

응? 이상한데? 바다?

나는 갑자기 튀어나온 바다 소식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갑자기 바다가 왜 나오지?

「여름은 바다야. 바다에서 같이 놀자!」

여름은 바다이기는 하다.

그런데 바다에 가자고 하면 바로 갈 수 있는 곳도 아니고…….

나는 어이없어서 폰을 쳐다보았다.

「앗! 시혀기 형아!」

“갑자기 바다는 왜?”

「엄마가 바다 간다고 했어! 시하도 같이 갈 거야.」

승준이 마음대로 시하를 멤버에 포함시켰다.

나는 괜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엄마, 아빠랑 가는 거 아니야?”

「응!」

“그런데 나랑 시하도 같이 가도 돼?”

「그럼 시하 못 가?」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라…….”

오붓한 가족 여행에 나랑 시하가 갈 수는 없었다.

민폐 같기도 하고.

때로는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이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니까.

그때 옆에서 승준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혁 씨! 저희 걱정 말고 시하랑 같이 바다 가요.」

“네? 정말 그래도 돼요?”

「네! 애들도 같이 노는 걸 좋아할 거예요. 애들을 실컷 놀게 하려고 가는 건데요. 뭐.」

“그래도 가족 행사인데 저희가 끼는 건 조금…….”

「뭐, 어때요. 시하도 친구들이랑 바다에서 노는 거 좋아할 텐데요.」

“그건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시하야. 너는 가고 싶어?”

시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가고 싶나 보다.

어쩌면 그냥 승준이와 노는 게 좋은 걸지도.

그런데 시하는 바다가 뭔지 알고 있나?

시하가 정말 아기였을 때 한 번 간 적이 있다.

바닷가 주변을 걸은 거지만.

“알겠어. 그럼 가자!”

“아아!”

시하가 만세를 했다.

나는 폰을 보고 말했다.

“그럼 같이 가요. 언제 가실 건가요?”

「사실 모레 출발할 생각이에요. 호텔도 잡아놨는데 시혁 씨도 시하랑 같은 숙소를 잡아둬야 할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시하가 내 바지를 잡아당겼다.

“형아.”

“응?”

“시하도.”

“통화하고 싶다고?”

“아아.”

나는 폰을 세워서 잘 보이게 놔뒀다.

승준과 시하는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서로 한참을 떠들고 있었다.

‘준비해야지.’

바다에 가는 거면 짐을 좀 싸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음?’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승준 뒤에서 하나가 볼을 부풀리고 있었다.

‘아! 하나!’

나는 살며시 시하를 안아서 승준 뒤에 있는 하나를 바라보았다.

시하가 의문 어린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하나야. 우리 같이 이야기할래?”

폰은 하나지만 그래도 다 같이 이야기하는 게 좋겠지.

뒤에 있던 하나가 활짝 웃었다.

다행이다.

그렇게 화난 건 아니라서.

***

선선한 에어컨 바람.

배를 따뜻하게 하는 담요.

낮잠을 잘 좋은 조건이 다 갖춰져 있다.

오랜만에 낮에 눈을 감고 있는 시혁의 곁에서 시하는 눈을 떴다.

“아?”

벌떡.

기지개를 켜고 몸을 일으켰다.

오늘은 시하에게 기분 좋은 날이었다.

승준과 하나와 함께 바다를 간다.

친구들과 함께 논다.

거기에 중요한 형아도 함께 논다.

시하에게서 최고의 약속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시하는 의문이 들었다.

형아 친구는 왜 안 오지?

시하 친구는 오는데…….

“아아.”

시하는 형아의 친구도 부르기로 했다.

바닥에 있는 형아의 폰을 들었다.

화면을 켜고 SNS에 눌렀다.

프로필 사진이 뜨면서 시하가 한 사람을 클릭했다.

반짝.

분홍색 빛무리가 시하의 손을 감싸며 통화를 클릭하도록 유도했다.

“아아.”

시하는 빛무리가 가르쳐준 대로 통화를 눌렀다.

[서수현]

「응? 여보세요?」

“아아. 개굴!”

「응? 시하니?」

“개굴. 바다!”

「으으응? 개구리는 바다에 안 사는데?」

“아냐. 시하랑. 형아랑.”

그제야 알아들은 서수현이 말했다.

「바다에 가자고?」

“아아. 두 밤. 바다. 형아랑. 시하랑.”

「아! 두 밤 자고 바다 가?」

“아아. 개굴도!”

개굴인 서수현을 부른 것을 완수한 시하는 대답을 듣기 전에 통화를 종료했다.

다음은.

[알리사]

알리사에게도 똑같은 내용을 전달했다.

「오케이~ 시하랑 놀러 갈게~ 흐흥~」

알리사는 당연히 시혁의 허락으로 초대하는 줄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시혁은 모르는 일이었다.

또 한 번 임무를 완수한 시하는 또 다른 사람을 불렀다.

[백동환]

“아아. 바다.”

「???」

“두 밤.”

「아! 형님이랑 시하랑 같이 가면 좋지! 그런데 나는 좀 바쁜데?」

“아? 아냐. 백똥! 가치!”

「으음. 잠시만 스케줄 조정 좀 해야 할 거 같은데…. 일단 알겠어! 노력해 볼게!」

“아아.”

백동환은 순수하게 시하의 말을 성심성의껏 통화해 주고 싶었다.

시하는 그런 호의를 받아 백동환도 초대에 성공했다.

그리고 승준이 했던 방법이 아주 잘 통하는 걸 깨달았다.

“아아!”

다음을 또 도전하는 시하.

[문도환]

「여보세요.」

지친 목소리의 문도환이 전화를 받았다.

“아아! 문도! 바다. 가치!”

「응? 시하니?」

“아아. 형아랑. 가치. 두 밤. 바다!”

「아, 바다 가나 보네. 음. 일이 많은…….」

그때 시하의 손을 분홍색 빛무리가 간질였다.

“엄마. 가치.”

「…….」

문도환은 어린이집 체육대회 때 떠들썩하게 같이 있어 달라는 시혁의 부탁을 기억해냈다.

「알았어. 떠들썩하면 다른 데 정신 팔리지 않겠지…. 나도 갈게!」

“아아! 문도! 고마어~”

「응. 그래. 시하야.」

통화를 완수하고 시하는 가슴을 쭈욱 폈다.

몸을 돌려 시혁에게 다가가 그대로 담요로 쏙 들어갔다.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

시혁은 시하가 어떤 일을 했는지 모르고 꿀잠을 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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