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5화 (95/500)

95화

시하의 손에 있는 것은 당근이었다.

진짜 당근은 아니고 조그마한 작은 당근 모양의 방범 버저였다.

저걸 누르면 소리가 나겠지.

“시하야. 이거 뭔지 알아?”

“삐-”

“맞아. 삐- 소리 나는 거야. 위험할 때 이거 써야 해. 알았지?”

“아아.”

선생님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거 버튼만 누르면 소리가 나거든요. 그런데 애들이 아직 어려서 장난만 치네요.”

“그런데 이건 그냥 주시는 거예요?”

“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까요. 물론 시하도 잘 안 쓰기는 했지만.”

“그러네요. 절 알아봐서 안 쓴 건지도 몰라요. 모르는 사람이 데려가려고 했으면 썼을걸요?”

“아…. 네…….”

나는 다시 시하를 보며 당근 방범 버저의 버튼을 가리켰다.

“모르는 사람이 데려가려고 하면 이거 꼭 써야 해. 알았지?”

“아아.”

끄덕끄덕.

고개는 정말 잘 끄덕인단 말이야.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한 번 더 부탁해야 봐야겠다.

정말 쓰나 안 쓰나.

뭐, 이걸 쓸 일은 없을 것이다.

언제나 시하 옆에 있을 거니까.

내가 없을 때는 아마 어린이집이나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때가 되겠지.

‘쓸 일은 없겠지?’

걱정하면 한도 끝도 없어지기 때문에 생각은 여기까지 하기로 했다.

나는 시하의 손을 잡고 선생님께 인사를 드렸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볼게요. 안녕히 계세요. 자, 시하도 인사해야지.”

“아아. 바이바이.”

언제부턴가 인사가 전부 바이바이가 되어 버렸다.

손을 흔들고 시하와 함께 차에 타고 집으로 향했다.

시하가 방범 버저를 쪼물딱거리며 갖고 놀았다.

아마 마음에 든 건지도 모르겠다.

겉보기에는 귀여운 당근이기도 하니까.

“시하야. 오늘 당근으로 맛있는 요리 해 먹을까?”

“아냐.”

“으응?”

“아냐.”

“당근 싫어?”

시하가 살며시 고개를 돌렸다.

당근 방범 버저는 좋아하면서 당근 먹는 건 싫다니.

이게 바로 보는 건 좋은데 먹는 건 싫다는 그건가?

하지만 시하가 편식해도 상관없다.

다 먹이는 방법이 존재하니까.

“그럼 오므라이스 먹을까? 형아가 이번에 엄청 연습했어. 오므라이스 좋지?”

“오무?”

“달걀로 만드는 황금색 음식이야.”

시하가 기분이 좋은지 다리를 흔들었다.

아무래도 달걀과 황금색이 마음에 든 거겠지.

아마 기대가 될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당근이 들어간 것은 모를 것이다.

아주 잘게 갈아서 볶은 다음에 달걀로 코팅하고 안 보이게 숨겨야지.

맛도 잘 안 느껴져서 모를 게 틀림없다.

“엄청 맛있는 거야. 그건 좋지?”

“아아.”

역시 아직 아이는 아이다.

형아의 이런 노력을 나중에라도 알아줬으면 좋겠다.

“나중에 당근도 잘 먹어야 해. 알았지?”

“아?”

모른 척.

시하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았다.

“당근을 잘 먹으면 눈이 좋아진대. 엄청 잘 보여서 달에 있는 토끼도 볼 수 있어.”

시하가 나를 쳐다보았다.

“토기?”

“응. 전에 형아가 동화책 읽어줬지? 달에서 떡 만드는 토끼를 볼 수 있으려면 눈이 좋아야 한대.”

“아아. 시하. 당근.”

“시하 당근 먹고 토끼 볼 거야?”

“아아.”

“그래? 그럼 나중에 당근 보여도 남기지 말고 먹어야 해.”

“아아.”

혹시나 당근을 알아보고 안 먹을 이유도 미리 방지했다.

이걸로 시하는 당근도 먹게 될 것이다.

어느새 우리는 집에 도착했다.

나는 부엌으로 가서 요리를 준비했다.

“형아. 그림.”

“응? 아! 그림 그리려고?”

“아아.”

어느새 내 그림은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살며시 봤는데 정말 귀여운 그림이었다.

시하의 그림체가 그래서인지 아기 버전 느낌인 것 같지만.

괜찮다고 생각했기에 프로필에 등록시켜 놓을 생각이었다.

‘아! 이 그림도 업로드시켜야겠네.’

요즘 올리지 않은 지 오래되기도 했다.

나는 열심히 달걀을 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 좀비 그림도 영상으로 찍어야 하는데…….’

백동환에게 약속을 했으니 슬슬 찍기는 해야겠다.

아마 내 그림이 끝나면 좀비를 그리겠지.

문제가 있다면 아이와 함께 준비해야 하는 거다.

거기에 신청 요건은 이것이다.

[아이의 그림에 손을 대지 말 것.]

그렇다면 부모의 역할은 무엇일까?

바로 어떤 좀비를 그릴지 설정을 아이와 함께 정하는 것이다.

아이가 하기 힘든 디테일한 부분을 돕는다.

‘하지만 그건 평범하게 도전했을 때 이야기지.’

나는 조금 다르다.

시하의 창의력을 제한하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좀비를 그리더라도 자유롭게 그리게 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것은 시하가 어떤 그림을 그리더라도 거기에 맞춘 ‘설정’을 적는 것.

업로드한 거랑 다를 바 없다.

나는 잘할 수 있다.

수많은 번역 자료들이 머리에 있고, 통역 지식이 들어 있다.

이걸 합치면 어떤 설정도 그럴싸하게 가져다 붙일 수 있다.

‘일단 목표는 대상이 아니니까.’

대상인 500만 원이 탐나긴 하지만 그건 다른 아이들이 가져갈 것이다.

엄청나게 잘하는 애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니까.

애초에 시하는 3살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을 이기기 힘들기도 했다.

‘뭐 평가는 그쪽에서 하는 거지만.’

뭔가 간단하고 낙서처럼 보이는 그림이 당선될 수도 있다.

기괴한 그림이 당선될 수도 있고.

‘그런 점에서 시하의 좀비는 너무 귀엽겠지.’

안 봐도 둥글둥글하고 귀여운 그림을 그릴 게 분명했다.

“시하야. 밥 다 됐어!”

“아아. 시하도!”

응? 시하도 다 됐다는 걸까?

시하가 태블릿을 손에 쥐고 나에게 달려왔다.

“형아!”

“응. 어디 한번 볼까? 와! 잘 그렸네. 형아랑 똑같아!”

“아아.”

실제 나는 이렇게 귀엽게 생기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런 그림을 받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얼른 저장한 파일을 내 폰으로 날렸다.

곧바로 프로필 사진으로 저장하고 서수현에게 톡을 날려 자랑을 했다.

-이시혁 : (그림) 시하에게서 받은 그림이야.

-서수현 : 오올~ 굉장히 귀엽네요.

-이시혁 : 그치?

-서수현 : 오빠 안 닮음요ㅋㅋ

-이시혁 : 응. 네 그림도 너 안 닮음ㅋㅋㅋ

-서수현 : 너무하네. 진짜.

-서수현 : ??

-서수현 : 뭐야? 이거 말하려고 톡 한 거예요? 저기요? 여보세요?

-서수현 : 이 오빠가 진짜! 이거 말하고 씹는다 이거죠?

나는 폰을 집어넣고 시하에게 오므라이스를 보여 주었다.

황금색으로 잘 말린 오므라이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빨간 케첩을 들고 시하에게 말했다.

“시하야. 잘 봐. 형아가 펭귄 그려줄게.”

열심히 케첩을 짜서 그렸는데 나온 것은 펭귄이 아니라 돼지가 되어 있었다.

왜 돼지가 된 걸까?

시하가 그걸 보더니 말했다.

“형아. 형아.”

“응?”

“페페. 아냐.”

“응. 이건 우주 어디에 사는 동물이라서 모습이 달라.”

“아아.”

시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숟가락을 들었다.

“뜨거우니까 조심해서 먹어.”

“아아.”

시하가 야무지게 오물오물 먹었다.

황금색 오므라이스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시하야. 그거 아니?

거기 당근이 들었어.

시하는 당근이 든 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한 숟갈을 들었다.

***

-시하의 좀비 그림 촬영.

이 영상을 올리기 위해 그림을 그릴 때마다 찍어야 했다.

좀비를 그리라고 강요를 하고 싶지 않았다.

일도 아니고 자유롭게 그리는 취미니까.

강요하다가 흥미가 팍 식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시하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조건이었느니 백동환도 불만은 없을 거다.

정 안 되면 제출 날짜까지 그냥 아무 그림이나 던지면 되는 거고.

원래 설명만 잘하면 반은 먹고 들어가는 법이다.

물론 그림만 잘 그려도 반은 먹고 가겠지만.

“시하야. 오늘은 뭐 그릴 거야?”

“점비.”

“오! 좀비 그리려고?”

“아아. 백동!”

아무래도 시하는 백동환과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역시 시하는 착하다.

약속도 이렇게 잘 지키는 아이다.

“그럼 어떤 점비 그릴 거야?”

크흠. 나도 모르게 좀비를 점비라고 발음하네.

시하가 두 손을 머리에 얹고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창작의 고통이라는 거지.

그런데 머리에 두 손은 왜 올리니?

아무튼, 귀엽다.

‘역시 뭔가 도움이 되는 걸 말해 줘야 하나?’

시하가 열심히 고민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 자유로운 것도 선택의 어려움이 된다는 걸 깨달았다.

“시하야. 가장 최근에 봤던 거를 그림으로 그리면 어떨까?”

“아? 점비?”

“응? 최근에 좀비를 본 적이 있어? 만화를 보긴 했지. 만화에 나온 사람을 따라 그리는 건 안 돼.”

“아아. 점비!”

시하가 눈에 손을 대더니 그대로 주르륵 아래로 내렸다.

뭔가 표현을 하고 싶은 거 같다.

“끄아~”

바닥을 내려다보며 괴상한 울음을 뱉었다.

내 눈에는 귀엽게만 보였지만.

“음. 뭘 말하는 걸까?”

“형아.”

시하가 방으로 달려가 가방을 메더니 어기적어기적 걷기 시작한다.

눈을 비비며 인상을 찡그렸다.

“끄아~”

나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시하가 표현을 잘한다.

그런데 시하야. 그 사람 대학원생이지 좀비가 아니야.

“시하야. 좀비가 아니라 사람이야. 대학원생이라고…….”

“아? 대하어생?”

대학원생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굉장히 설명하기 어렵긴 하네.

솔거노비와 외거노비를 설명하면 되나?

괜히 엉뚱한 생각을 하며 머리를 한참 굴렸다.

“아, 그래! 시하가 어린이집에서 공부하지?”

“아아.”

“거기서 더 공부하기 위해 유치원에 가.”

“유치?”

“응. 그다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고 형아가 가는 대학교에 다녀.”

“왜?”

“공부를 더 많이 하려고.”

“아아.”

“거기에 공부를 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 많이 하려고 대학원에 가는 사람이 대학원생이야.”

이 정도면 설명이 되었을까?

이 이상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왜?”

“그건…. 공부를 사랑해서야.”

“아아.”

뭔가 거짓말을 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래. 거짓말은 아니지.

더 공부하고 싶어서 다니는 것도 맞지.

“형아.”

“응? 이제 좀비 그리려고? 어떤 좀비? 대학원생?”

“아냐.”

시하가 펜을 쥐었다.

슥슥 둥글둥글한 얼굴을 그렸다.

완전한 원은 아니고 살짝 타원이었다.

귀는 그리지 않고 귀가 있는 곳에 헤드셋이 있었다.

헤드셋 위에는 어떤 둥그런 잎사귀 두 개가 있었다.

타원 밑부분은 세 개의 직선을 그어서 뭔가 주름(?) 같은 느낌을 연출했다.

살짝 튀어나온 손과 발.

‘정말 간단히 그리네.’

정말 단순화한 그림이었다.

인간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일종의 마스코트 캐릭터로 보였다.

좀비라고 우기기에는 뭔가 간단한 캐릭터 그림.

‘그런데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네.’

그렇게 그림을 유심히 보는데 시하가 색을 칠하기 시작했다.

주황색으로 슥슥 칠했다.

나는 색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당근이네?’

당근이 초록색 이파리 헤드셋을 끼고 몸을 흔들고 있는 그림이었다.

설마 이런 그림을 그릴 줄 몰라서 나는 멍하니 보았다.

애초에 인간도 아닐 줄이야.

“형아.”

“응. 시하야. 이거 무슨 좀비야?”

“아아. 당근 점비.”

“아! 당근 좀비구나.”

그래. 세상에 인간 좀비만 있는 건 아니지.

아주 파격적이다.

동물도 아니고 식물인 당근 좀비라니.

역시 창의력이 장난 아니다.

‘아무래도 대학원생을 보고 떠올렸나 보네.’

대학원생을 본 날에 당근 방범 버저와의 만남이 기억에 남아 있는 것 같다.

기억할 만큼 귀엽긴 했지만.

“형아!”

“응. 엄청 대단한 좀비다. 그치?”

“아아.”

어느새 당근 좀비가 완성되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영상으로 모두 찍었다.

‘그런데 이걸 뭐라고 설정을 짜 맞춰야 하지? 아니, 애초에 이걸 가지고 장려상을 받을 수 있을까?’

나는 고민을 거듭하다가 주먹을 꽉 쥐었다.

형아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

이걸 인간으로 만들어야겠다.

모든 지식을 다 떠올려서 괜찮은 설정을 만들어야지.

머릿속이 빨리 돌아가며 온갖 정보가 범람했다.

시하가 나를 보며 말했다.

“형아. 눈! 반짝!”

시하가 손을 쥐었다 폈다 했다.

“시하야.”

“아?”

“형아가 좋은 좀비로 만들어줄게.”

“아아.”

나는 노트북에 손을 올려 영상을 첨부하고 설정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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