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4화 (94/500)

94화

상자 안에 롤리팝 막대사탕, 편지 카드, 뽁뽁이가 보였다.

먼저 카드를 꺼내 보자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당신에게 사탕이 전해진 것은 드디어 때가 된 거겠죠.

이 사탕으로 아이가 낯선 사람을 따라가는지 확인해 보세요.

알림장에 적힌 대로 모레가 시하의 차례입니다.

과연 교육이 잘되었는지 확인을 해 봅시다.]

나는 피식 웃으며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그렇지.

이건 다 선생님이 꾸민 것이다.

알림장에 적힌 대로 낯선 사람을 따라가면 안 되는 교육을 하는데 그게 내일이었다.

뽁뽁이를 치우자 안에는 변장할 수 있는 옷과 가발이 보였다.

어쩐지 상자가 좀 크다고 생각했다.

“형아?”

“응?”

“모야?”

“아무것도 아니야. 형아가 주문한 건데 어린이집에 날아왔나 봐. 그럼 시하야. 형아는 갈게.”

“아아. 바이바이.”

시하와 헤어진 나는 곧바로 차에 올라탔다.

알림장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는 것을 까먹었었다.

요즘 너무 재밌고, 바쁜 하루를 보냈으니까.

‘음. 모레라…….’

일단 데려가는 시간에 선생님이 없는 것을 틈타 시하를 유혹해야 했다.

물론 선생님이 진짜로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일단 상자에 옷부터 볼까?’

상대를 속이기 위해 변장을 해야 했다.

선생님이 주신 옷가지와 가발, 안경, 수염.

이걸로 속을 것 같지는 않았다.

다른 애들은 얼굴을 가린 것으로 속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하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데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림체? 선? 색감? 창의력?

전부 아니다.

기본 중의 기본인 ‘관찰력’이다.

그 말은 시하의 관찰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소리겠지.

물론 전부 내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이왕이면 제대로 속이고 싶다.

‘일단 상담 좀 해야겠는데?’

변신의 전문가들에게 도움을 청해야겠다.

폰을 들어 알리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간 후에 곧바로 알리사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알리사. 나 시혁이에요.”

「네. 무슨 일이에요?」

“다름이 아니라 제가 변신을 하려고 하는데 가진 옷으로는 조금 부족해서요.”

「스타일을 확 바꾸시려고요?」

“아니요. 변장을 해야 해요. 시하에게 낯선 사람으로 다가가야 해서요. 이것도 교육이라서.”

「아하. 그러시구나. 혹시 원하시는 변장이 있어요?」

나는 생각해둔 게 있다.

들키지 않으려면 체형부터 바꿔야 한다.

일단 키는 어떻게 할 수 없으니 살이라도 붙여야지.

“일단 배가 나온 사람이 좋겠네요.”

「오케이. 알겠어요. 마침 제가 연극 동아리 소속이거든요. 거기서 변장할 배 정도는 가져올 수 있을 거고. 옷은 어떻게 할래요?」

“받은 프리사이즈 옷이 있긴 한데 한번 보실래요?”

「그래요. 이렇게 통화로 하지 말고 한번 봐요. 얼굴에도 손을 대야 하니까요.」

약속 장소를 잡은 나는 운전을 하며 알리사에게 향했다.

***

대학로 근처 옷가게에 도착한 나는 주변을 기웃거렸다.

그때 옷가게 문이 열리더니 알리사가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빨리 왔네요?”

“바로 앞인데요. 뭘.”

“그럼 들어갈까요?”

“네? 여기요?”

“네. 요즘 제가 일하는 곳이거든요.”

“옷가게에서 일해요?”

알리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일하는 중인데 이렇게 나를 도와줘도 되나 싶었으니까.

알리사가 말했다.

“여기 언니랑 엄청 친해서 괜찮아요. 그리고 이 시간에 사람들 잘 안 와요.”

“아…….”

“그리고 가게에서 파는 것보다 인터넷에서 파는 게 더 많으니까요.”

“그렇겠네요.”

요즘은 인터넷 시대이기는 하지.

마음에 드는 옷들이 인터넷에서 더 잘 팔리는 것이 사실이었다.

물론 입어보고 사는 사람도 많지만.

“그럼 옷 좀 볼까요?”

“네. 여기.”

나는 상자에 옷을 보여 주었다.

프리사이즈지만 옛날 힙합을 할 만큼 크기도 했다.

딱 달라붙는 옷은 일부러 피한 것 같다.

“이거면 뱃살을 두르고 입어도 되겠네요. 대충 그것만으로 애들은 속을 테고. 문제는 얼굴인데…….”

알리사가 내 얼굴을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일단 화장으로 변신하죠.”

“얼굴 살도 있어요?”

“얼굴 살은 없는데 대충 착시되게 할 수는 있죠. 일단 얼굴선을 잘 안 보이게 가발을 볼까지 붙이고. 음. 이 가발 말고 펌이 들어간 가발을 쓰죠. 그러면 얼굴이 좀 풍성해 보일 테니까.”

뭔가 의외로 본격적이다.

일단 시험 삼아 경험하자고 하니 나를 끌고 와서 화장해 준다.

뭔가 테이프 같은 것으로 이마 쪽을 위로 올려서 눈을 크게 하고, 가발을 씌우고, 화장했다.

“와! 완전 다른 사람인데요?”

피부 톤은 까무잡잡하게 변했고 얼굴 역시 굉장히 알아보기 힘들었다.

알 없는 안경과 수염을 장착하니 원래 얼굴은 없었다.

요즘 화장이 마술이라고 하더니…….

이건 사기였다.

예뻐지는 마술은 아니었지만.

이거라면 시하뿐만 아니라 선생님도 못 알아볼 게 틀림없다.

이제 한 가지 조건만 갖추면 되는데 그건 집에 가서 물어봐야겠다.

“고마워요. 알리사. 모레도 이렇게 부탁할게요.”

“흐흥. 설마 이렇게 말로만 때울 거예요? 한국 사람은 동방예의지국 아닌가요?”

“그건 또 어디서 들었어요? 좋아요. 오늘 점심 제가 살게요. 어때요?”

“그럼 맛있는 거 사 주세요. 푸흡. 그런데 이제 얼굴 지워요. 뭔가 진짜 웃기네요.”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변장을 지웠다.

화장 솜이라는 것도 처음 써봤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알리사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물었다.

“아! 저번에 한국인 되는 법 알려줬잖아요. 그거 진짜 그렇더라고요?”

나는 피식 웃었다.

“제가 말했잖아요.”

“그럼 혹시 또 없어요? 자연스럽게 한국인 다 됐네, 하는 거요.”

“물론 있죠. 많아요.”

나는 한 번 머리를 굴려보았다.

‘한국인 다 됐네.’라고 듣는 건 참 쉬웠다.

지금 한국 사람이 하는 걸 그대로 따라 하면 되는 거니까.

하지만 아직 알리사는 모르는 게 많은가 보다.

확실히 한국말은 잘하긴 하는데…….

“일단 하나는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을 세, 네 번 눌러줘야 해요.”

“네? 그냥 한 번만 누르면 되지 않아요?”

“몰라. 이상하게 세, 네 번 누르고 있더라고요.”

정말 왜 그럴까?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그러는 것을 봤다.

한 번만 누르면 되는데 연타를 하고 있다.

혹시 어릴 때 오락실 게임기 연타의 버릇이 남아 있는 걸까?

아니면 한국식 빨리빨리가 몸에 밴 걸까?

“그리고 또 있어요?”

“버스가 서기 전에 스윽 일어나서 미리 앞에 서는 거요.”

“서고 나서 일어나면 되잖아요?”

“그러면 좀 늦어서…….”

“하긴 다들 그러더라고요. 이건 공감! 그러면 딴 건 뭐 없어요?”

“알리사도 아는 것뿐일걸요?”

“의외로 저 잘 몰라요.”

나는 고민하다가 손에 있는 화장 솜을 바라보았다.

“아! 친구가 식당에서 휴지 한 장 뽑아 달라고 하면 두, 세 장 뽑아줘요.”

“???”

“그게 한국인의 정이죠.”

나는 아무 말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도 알리사에게 한국에 대해서 알려 주었다.

***

-낯선 사람이 나타나는 날.

모든 준비를 마친 나는 폰으로 모습을 점검했다.

확실히 가린 모습 오케이.

“아아.”

어제까지 백동환에게 배운 목소리 변조 오케이.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요즘 애들이 눈치 빠르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제대로 수행해야 했다.

이번에 꼬시려는 멘트도 준비했고, 막대사탕 역시도 준비했다.

정해진 대사와 스토리로 자연스럽게 시하에게 접근해서 데리고 나올 것이다.

‘시하는 똑똑하니까 이런 거에 걸리지 않을 거야. 응. 걸리지 않겠지?’

갑자기 슬슬 불안해진다.

나는 조심히 어린이집의 문을 열었다.

철컥.

현재 애들은 다 떠나고 시하만 나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

다들 번갈아 가면서 한 번씩 겪어야 할 중요한 교육이었다.

슬금슬금 안으로 들어가자 시하가 혼자서 동화책을 보고 있었다.

글자도 못 읽으면서 열심히 한 자, 한 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집중하고 있다.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굵고 긁는 목소리로 말했다.

약간 허스키한 소리.

“시하야.”

시하가 고개를 휙 하고 돌려 나를 보았다.

“아?”

나는 사탕을 흔들며 준비된 대사를 말했다.

“나는 오늘 형아 대신 시하를 집에 데려가려고 온 거야. 형아 친구야.”

“아아.”

시하가 일어나서 나를 바라보았다.

경계 없이 덥석 바지를 잡았다.

“자. 여기 막대사탕도 먹으면서 가자.”

“아아.”

내가 손에 막대사탕을 쥐여 주자 시하가 혀를 살짝 댔다.

맛있는지 앙 물고 입에 넣었다.

‘아니. 경계해야지!’

걱정한 대로 시하는 아무런 경계 없이 바로 낯선 사람을 따랐다.

설마 흔들어준 사탕에 넘어간 거 아니지?

너무 쉽잖아…….

3살 이시하.

뇌물에 약한 남자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떨리는 입술을 진정시키며 연기를 계속했다.

“그럼 집으로 갈까?”

“아아!”

끄덕끄덕.

나는 허탈해하며 시하의 손을 잡았다.

분명 좀비 만화에서도 도망치는 걸 봤을 텐데…….

‘선생님이 따로 가르쳐줬다고 했는데. 역시 실전은 다른가?’

실제로 사탕 줄게 따라가자는 사람은 없다.

아니,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수법으로 요즘 애들에게 통하지 않는다.

아니, 통할지도?

아무튼!

그래서 준비한 대사가 부모와 친한 친구라서 사탕 먹으면서 같이 집에 가자는 거다.

응용이라서 너무 어려운 건지 너무 쉽게 걸려들었다.

‘시하는 순진해서 이런 거에 바로 넘어간 거야. 그렇지.’

다른 애들은 안 걸렸지만, 시하는 걸려 버렸다.

이번 기회에 확실히 교육하자.

“그럼 가방 챙기고 가볼까?”

“아아.”

가방을 멘 시하의 손을 잡고 어린이집을 나섰다.

나는 속으로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선생님이 튀어나왔다.

마치 우연히 마주친 것처럼.

“아니! 누구세요?”

만약 시하가 따라가게 된다면 선생님이 막아서는 시나리오였다.

“아하하. 저는 시혁이 친구입니다. 시혁이 대신 시하를 집까지 데려다주라고 해서요.”

“저는 그런 연락 못 받았는데요?”

“시혁이 그 친구가 깜빡했나 봅니다. 연락해보시면 바로 알 겁니다. 그럼.”

“저기요! 잠깐 기다리세요! 일단 제가 연락해볼 테니 시하 손 좀 놓으시죠.”

이제 여기서 중요하다.

살며시 눈치를 보며 시하를 데리고 가며 열연을 펼쳐야 한다.

방법은 이렇다.

1. 선생님이 납치를 막으며 시하를 구한다.

2. 다시는 모르는 사람이 형아 친구라고 해도 따라가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3. 다시는 낯선 사람을 따라가지 않게 된다.

이걸 위해서 모든 것을 준비한 선생님과 학부모였다.

나도 그렇고.

내가 시하를 들고튀려고 몸을 굽히려는 그 순간.

시하가 돌발행동을 했다.

“아냐! 선생님. 아냐!”

갑작스러운 시하의 말에 엉거주춤한 나.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선생님.

결국, 선생님이 시하에게 먼저 물었다.

“시하야. 일단 시하가 모르는 사람이니까 선생님에게 오자. 알았지?”

“아냐.”

“으응? 선생님이 모르는 사람 따라가면 안 된다고 했잖아.”

“아냐. 몰라. 아냐.”

“응?”

이쯤 되면 나도 이상함을 느꼈다.

이런 얼굴을 시하가 알고 있는 걸까?

시하가 나의 눈을 손으로 가리켰다.

“눈. 반짝! 휘휘~”

“무슨 말이니?”

“형아야! 형아 눈!”

“어어?”

“형아! 형아! 시하도. 노라!”

해석하자면 형아랑 시하는 놀고 있다는 게 되겠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대체 어떻게 내가 형아인 걸 알았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목소리도 달랐고, 외모도 달랐고, 배도 튀어나왔다.

어딜 봐도 형아라고 생각할 요소가 없었다.

안경과 수염으로 얼굴을 더 모르게 했는데…….

‘뭔가 헛수고가 된 느낌인데?’

나는 헛기침을 했다.

“시하야. 나는 형아가 아니야. 형아 친구야.”

“아냐. 형아!”

“아니…….”

“아냐. 형아!”

3살 이시하.

소신 있는 남자였다.

지금까지 말을 들어보니 형아랑 노는 거로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잘 따랐던 거지.

어떡하지? 망했는데?

선생님의 표정도 망했다는 얼굴이었다.

이건 계획에 없었겠지.

‘잠깐만…….’

그래.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이라면 흐름을 멈추지 않고 임무를 완수할 수 있다.

결국, 낯선 사람을 따라가지 않게 하면 된다는 메커니즘을 만드는 거 아닌가.

나는 가발을 휙 하고 벗었다.

수염과 안경을 벗고 시하에게 정체를 공개했다.

“형아!”

“응. 맞아. 형아야.”

나는 시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시하야. 형아라서 따라 나온 거지?”

“아아!”

“그래. 잘했어. 앞으로 형아만 따라가면 돼. 알았지?”

“아아.”

“형아 말만 잘 듣고. 알았지?”

시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면 앞으로 낯선 사람에게 따라가지 않을 것이다.

오늘 미션은 성공이다.

“형아.”

“응?”

시하가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무언가 꺼내 나에게 보여주었다.

“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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