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왼손은 어설프게 말아쥐고 오른손은 위아래로 흔든다.
마치 기타를 치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니. 진짜 기타를 치는 모습 맞는 거 같은데?’
열심히 손을 흔드는 걸 보니 얼추 느낌이 나는 것 같다.
“시하야. 기타 가지고 싶어?”
“아아! 기타!”
“으음. 설마 이런 거 갖고 싶은 건 아니지?”
“아?”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저런 건 시하 몸보다 클 텐데 갖고 놀 수도 없다.
그리고 기타 줄이 세서 손을 다칠 수도 있고.
‘그러고 보니 작은 기타도 팔긴 했지?’
나는 인터넷에 들어가 ‘아기 기타’를 검색했다.
역시 주르륵 나오긴 한다.
가격도 그렇게 비싸지 않았다.
1만 원~ 4만 원 사이.
이 정도면 충분히 출혈을 감수할 만하다.
“시하야. 이렇게 다양한데 뭐 살래? 여기 캐릭터가 그려진 기타도 있어.”
“아냐.”
“아, 이건 별로야?”
아무래도 서수현이 쓰던 통기타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저런 장난감인 캐릭터 기타가 훨씬 싼데.
아쉽다.
3살 이시하.
자신의 눈에 확고한 남자였다.
“알았어. 색상은 어떤 거?”
“아아.”
시하가 원목에 가까운 색을 선택했다.
그런데 뒤편은 살짝 붉은 와인색이 났다.
꽤 고급스러운 색상인 것 같다.
“알았어. 주문한다?”
“아아.”
“4만 원이야.”
“아아.”
“이거 사면 많이 칠 거야?”
“아아.”
많이는 치지 않을 것 같지만 뭐 어때.
이번 기회에 음악적 감각을 높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나는 기타를 구매했다.
근처에 있는지 배달은 금방 되는 것 같았다.
“시하야. 내일 기타 온대.”
시하가 기분이 좋은지 만세를 했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도도도 달려가 태블릿을 끌고 왔다.
저건 또 왜?
가만히 지켜보니 다리를 흔들며 그림을 그렸다.
“응?”
그런데 이번에 그리는 그림은 펭귄도 기타도 아니었다.
사람 그림이었다.
점점 형체가 생기더니 머리카락을 그리고 나서야 여성임을 알았다.
하나의 SD 캐릭터가 탄생했다.
모자도 있었는데 개구리같이 생겼다.
“시하야. 누구 그리는 거야?”
“개굴.”
“개굴?”
“아아. 이거. 이거야.”
“이거가 뭔데?”
시하가 펜으로 캐릭터 옆에 그림을 그렸다.
원을 그리고 그 옆에 글자도 아닌 지렁이를 마구마구 그렸다.
음. 모르겠다.
“이게 뭐야?”
“아아. 동글. 개굴.”
“응?”
무슨 말일까?
그렇게 고민하는데 시하가 몇 개 더 그려주었다.
나는 그제야 그것이 너튜브 채널과 닮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지금 그리는 캐릭터는……,
“설마 방송용 프로필 그림 그려주는 거야?”
“아?”
시하가 무슨 말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그런 걸 알아들을 리가 없지.
근데 목적은 아마 맞을 것이다.
영상과 댓글을 보면 딱 저런 동그란 원에 프로필 사진이 있으니까.
“개굴에게 주는 그림 선물이야?”
“아냐. 시하. 그림. 여기.”
시하가 동그라미를 툭툭 쳤다.
아무래도 자신의 그림을 프로필에 넣고 싶은 것 같다.
이건 선물이 아니었다.
‘뭐 이 그림을 받은 수현이 그렇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부럽다.
시하에게 이런 그림을 받다니.
난 기타도 사줬는데…….
***
-어린이집.
오늘은 시하의 뒤에 펭귄 가방 대신 기타 케이가 있었다.
시하는 든든한 기타를 한 번 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걸어갔다.
기타 치는 영상에서 케이스를 들고 여행을 하는 모습을 본 것이다.
오늘 시하는 영상 속에 나온 여행자였다.
“시하야. 그럼 형아는 갈게. 나중에 보자.”
“형아. 바이바이.”
“그래.”
시하는 힘차게 손을 흔들고 어린이집에 당당히 입성했다.
등 뒤에 있는 기타 케이스를 매고 와서 그런지 애들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았다.
승준과 하나가 먼저 다가왔다.
“와! 시하야. 이거 뭐야?”
“기타!”
시하도 승준과 하나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한 번만 꺼내 보고 보관 중이었다.
시하가 기타 케이스를 열었다.
매끈하게 빠져나오는 기타가 시하의 손에 들렸다.
승준이 그걸 보며 감탄했다.
하나도 눈을 빛냈다.
서수현의 기타를 연상시켰으니까.
“아아. 기타!”
시하는 기타 케이스를 활짝 열고 바닥에 철퍼덕 앉았다.
그대로 기타를 띵가띵가 치기 시작했다.
띠링.
맑은소리가 울려 퍼졌다.
물론 코드를 잡을 줄 몰라서 여러 음이 섞여 나왔지만, 아이들에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멋.
기타의 멋에 흠뻑 빠져 있었다.
“하나. 노래.”
시하는 하나에게 노래를 요청했다.
자신은 기타를 칠 테니 하나는 노래를 부르라는 말이었다.
하나도 자신의 가방에서 분홍색 마이크를 꺼냈다.
요즘 가지고 다니는 필수품이었다.
“하나는 새로운 노래 부를래!”
“아아.”
승준도 거기에 끼고 싶어서 뭘 할지 고민을 하다가 어린이집에 있는 피아노 의자 위에 털썩 앉았다.
“그럼 나는 피아노를 칠게.”
즉석에서 만들어진 3인의 밴드 결성이었다.
선생님이 그런 아이들의 놀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렇게 자유롭게 놀 때는 가만히 지켜보는 맛이 있었다.
아이들의 성장, 발달에 좋은 영향을 끼치니까.
시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기타를 쳤다.
띠링.
승준이 피아노를 쳤다.
딩. 딩.
하나가 그걸 보며 마이크에 입을 갖다 댔다.
“해뼏은 쨍쨍! 대머리는 반짝!”
선생님이 ‘으응?’ 하며 가사의 이상함을 느꼈다.
아이들이 다들 그 개사를 아는지 다 함께 떼창을 했다.
어느 콘서트보다 뜨거운 열기였다.
“할아버지 대머리에! 참기름을 발라놓고! 지나가는 똥파리가 미끄러져 사망!”
“아하하하!”
선생님이 황당해하며 아이들을 보았다.
대체 어디서 이런 노래가 퍼진 거지?
언제? 어느 때에?
다들 알고 있는 노래였나?
선생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이 하하 호호 웃고 있었다.
“크흠. 애들아. 그 노래는 어디서 배웠니?”
승준이 가슴을 펴며 말했다.
“아빠가 엄마 몰래 가르쳐 줬어요! 아빠가 재밌는 노래 많이 알아요!”
선생님이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아이고 승준 아버님!
아무리 애들이랑 친해지고 싶어도 그렇지 이런 개사를 한 노래를 가르쳐주시면 어떡합니까.
하나가 이어서 말을 받았다.
“선생님! 선생님! 아빠가 노래 알려져써요!”
하나가 또 한 번 노래를 부르려고 하자 시하가 기타를 띵가띵가 쳤다.
승준 역시도 피아노를 쳤다.
“아버지는 술에 취해 도망가시고~”
‘고추 먹고 맴맴’이라는 동요가 울려 퍼졌다.
물론 개사를 해서.
“할모니는 몽둥이 들고 따라가셨네!”
이 노래는 아이들이 모르는지 기대를 하며 듣고 있었다.
“한 대 맞고 헬렐레! 두 대 맞고 뻗었네!”
세상에 이런 자극적인 가사가 있다니.
선생님이 이걸 어쩌면 좋을지 고민했다.
그때 시하가 말했다.
“아아! 돈!”
“응?”
시하가 기타 케이스를 탁탁 두들기며 돈을 외쳤다.
너튜브 영상에서 본 버스킹에서 기타 케이스에 돈을 넣는 걸 본 것이다.
이 라이브 무대는 공짜가 아니었다.
“시하야. 돈이라니?”
“아아! 노래! 돈!”
“으응? 시하야. 노래 부르면 돈 받아야 하는 거야?”
“아아.”
끄덕끄덕.
선생님은 이건 시선을 돌릴 좋은 기호라고 여겼다.
그리고 돈에 대해서도 교육할 좋은 기회.
어린이집 선생님은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는 법이다.
“굉장하네! 벌써 돈 벌다니. 그럼 돈 받으면 어떻게 할 거야?”
시하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시하 꺼?”
“응. 그리고 또? 어떻게 해야지? 같이한 친구들도 있는데?”
“아아. 승준 꺼. 하나 꺼!”
“그렇지. 그래. 그렇게 나눠줘야지.”
“아아. 시하 꺼. 형아 꺼.”
“응?”
“시하 꺼. 형아 꺼.”
“시하 돈 형아 준다고?”
“아아.”
선생님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시하가 정말 착하고 귀여웠다.
하지만 돈에 대해서는 확실히 교육할 기회!
유다희 선생님은 한 발 더 나가기로 했다.
“시하야. 가족끼리는 돈 주는 거 아니… 아얏!”
짝!
원장의 손바닥이 유다희 선생님의 등을 때렸다.
“아파요오…….”
“그건 안 가르쳐줘도 돼.”
“그래도 이건 어릴 때부터 확실히…….”
원장이 째려보자 유다희 선생님이 수긍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넵! 알겠습니다!”
“넌 가끔 잘 나가다가 괜히 뒷말을 붙이더라.”
“전 아이들의 돈이 부모님의 카드값으로 빠져나가는 걸 막고 싶었습니다!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면 안 되잖아요!”
“일어나도 돼.”
“헐? 어떻게 그런 잔인한…. 아이들이 원장 선생님을 최강 보스로 보는 이유가 다 있었어.”
원장 선생님이 살며시 웃었다.
“유다희 선생님. 이름처럼 되고 싶나요?”
“아니요. 제가 더 잘할게요. 헤헤.”
그 와중에 시하는 착실히 돈을 받고 있었다.
종수가 시하를 위해 기타 케이스에 넣은 브루마블 돈이었다.
그것도 거금 50만 원으로 플렉스했다.
“노래 잘 들었어.”
“나도. 시하야 노래 잘 들었어.”
시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하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노래는 하나가 불렀는데?”
오늘도 평화로운 어린이집이었다.
***
-KI 미디어.
오늘도 나는 출근했다.
출근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아무튼, 그때 계약을 제대로 끝낸 이후로 KI 미디어에서 일을 시키지 않았다.
현장실습의 꿀 같은 휴식이라는 거겠지.
그래서 내가 하는 일은 번역 작업이었다.
결국, KI 미디어와 일하는 거겠지만.
“그런데 너는 계속 일하네?”
옆에 있는 서수현이 열심히 화면을 노려보고 있었다.
저러면 뭔가 해결이 되나?
“오빠. 현장실습 왔으면 당연히 배우는 게 하나라도 있어야죠.”
“선택권을 줬잖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
“혹시 알아요? 제가 출판사에 취직할지?”
“그건 모르는 거지.”
“이런 것도 다 경험이죠. 나중에 썰을 풀 때 아 현장실습 보람찼다. 뭐 이런 거 말할 수 있잖아요. 안 그래요?”
“후배님들에게 그런 썰을 풀 거야?”
“당연하죠. 저 3학년 과대예요. 나중에 또 개강 파티 하면 술 마시며 썰을 풀어야죠.”
“굳이 안 가도 되잖아. 개강 파티.”
서수현이 뭘 모른다는 듯이 씨익 웃었다.
“이렇게 사람을 많이 만나봐야죠. 그래야 거르지.”
“응? 걸러?”
“술 마시면 딱 각이 나오는 애들 있잖아요.”
“아하. 뭐 그럴지도?”
그거 한 장면 갖고 판단하기 조금 그렇지만 뭔가 쎄-한 애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 너 메일 좀 알려줘 봐. 보내줄 게 있어.”
“메일요?”
“응.”
“메일은 왜요?”
“시하가 SD 캐릭터를 그렸는데 네 너튜브 채널 프로필에 넣고 싶다더라.”
“헐? 정말요? 당연히 넣어야죠! 프로필에 똭! 넣을게요.”
이렇게 좋아할 줄 몰랐네.
부럽다.
나는 메일 주소를 받고 곧바로 그림을 보내 주었다.
이렇게 보내 주려고 시하의 그림 파일을 내 노트북에 저장해 뒀다.
서수현이 메일에 들어가 확인을 하더니 눈이 동그래졌다.
“와! 진짜 귀여워.”
“개구리 모자도 귀엽지?”
“네. 귀엽네요. 뭔가 쪼큼 그렇긴 하지만.”
개구리를 보자 복잡한 심경을 표현하고 있다.
서수현이 곧바로 프로필 사진을 바꿨다.
“오빠. 이거 선물로 받았다고 써도 돼요?”
“써. 써. 3살 아기가 그렸다는 말은 하지 말고. 아! 맞다!”
“왜요? 또 뭐요? 또 줄 거 있어요?”
“아니. 글 쓸 때 이름 좀 밝혀줘.”
“이름요? 시하로?”
나는 고개를 저었다.
“작가 시하페페로.”
“네! 알겠어요.”
시하야. 보고 있니?
형아가 너 임티 작가로 광고해 주고 있어.
너튜버 영상에 시하의 얼굴을 페페티콘으로 해둔 것도 바로 내 치밀한 작전이었다.
물론 구독자가 얼마 안 되긴 했지만.
그래도 시하와 내가 나온 비하인드 영상은 조회수가 좀 되었다.
“채널 좀 성장해서 도움 좀 돼라.”
“열심히 할게요. 아니지. 이거 그냥 취미로 하는 거라니까요.”
“그래도 사람들 많이 보면 좋잖아?”
“그건 그렇죠. 와! 오빠. 저 백만 너튜버되면 어떡하죠? 영상 수익이 엄청 들어오고.”
나는 그저 웃었다.
“시원해?”
“네?”
“김칫국 한 사발 시원하게 들이킨 거 같아서.”
“이 오빠가 진짜! 두고 봐요. 나중에 엄청 잘나가서 땅을 치고 후회할지도 모르니까.”
“너야말로 잘해.”
“왜요? 오빠도 잘나가서?”
나는 가슴을 쭈욱 펴고 말했다.
“아니. 미래의 월드 스타가 우리 시하거든. 이번에 시하 기타 샀다.”
서수현이 황당하다는 듯이 나를 보았다.
“기타 하나 산 거 가지고 그 정도면 나중에 피아노 사주면 아주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탄생하겠어요.”
“…시하라면 가능성이…….”
“오빠. 시원해요? 김칫국 백 사발은 들이킨 거 같아서요.”
나는 피식 웃었다.
“우물 안 개구리가 뭘 알겠어.”
“이 오빠가 진짜!”
네가 뭘 알겠니.
시하가 얼마나 재능 있는 아인데. 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