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0화 (90/500)

90화

아이들 앞에 나타난 사람은 알리사였다.

좋은 영감이 떠올라서 옷을 만들다 보니 괜찮은 게 완성되었다.

유아용 옷이기에 입어볼 수 없어서 시하에게 입혀 보기로 했다.

애초에 치수를 시하에게 맞췄다.

이제 뜨거운 여름이라서 시원하게 반바지에 푸른색 물결이 그려진 반팔 남방.

거기에 여름 여행에 빠질 수 없는 블루투스 마이크를 들고 있었다.

“얘들아. 안녕!”

알리사가 한쪽으로 묶은 금발을 찰랑거리면서 블루투스 마이크를 흔들었다.

아이들의 눈이 블루투스 마이크에 꽂혔다.

두툼한 스피커가 달린 게 너무 신기해 보여서였다.

그걸 눈치챈 알리사가 살며시 팔을 옆으로 뻗었다.

아이들의 눈동자가 마이크를 따라서 옆으로 이동했다.

슬금슬금.

알리사는 그 반응이 재밌어서 반대쪽으로 마이크를 이동했다.

다시 움직이는 고개들.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애들의 고개가 좌우로 움직이고 있었다.

“뭐야? 이게 신기해?”

먼저 반응한 것은 하나였다.

“알리사 언니! 그 마이크 모야?”

하나는 자신의 분홍색 마이크를 바라봤다.

왠지 자기 것보다 저게 더 엄청나 보였다.

알리사가 애들을 한 번 더 놀리기로 했다.

“이건 진정한 가수로 만들어주는 마이크야. 사실 여기에 노래가 나와!”

아이들이 믿지 못하는 듯이 바라보았다.

‘어떻게 마이크에서 노래가 나와?’라는 표정이었다.

어떤 마술보다도 현대과학이 더 마술 같을 때가 있다.

알리사가 폰을 들고 노래를 틀었다.

이미 블루투스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마이크를 통해서 노래가 바로 나왔다.

쿵짝쿵쿵짝! 빠빠빠빠빠빠빰.

[얼쑤! 얼쑤!]

아이들이 뭐에 홀린 듯이 구수한 가락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리사가 마이크에 입을 대고 말했다.

“가수란 무엇이냐? 가수는 마이크에 노래를 나오게 하고!”

[좋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해외를 달리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퍼뜨리는 게 가수의 일이다.”

어디까지 알리사가 지어낸 개인적인 의견이었다.

사실 이건 노래가 아니라 모 영화의 BGM이었지만 아이들은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BGM이 끝나자 알리사가 말했다.

“어때?”

“우와!”

“대다내!”

별것도 아닌 아이들의 호들갑에 알리사의 어깨가 으쓱해졌다가 내려왔다.

갑자기 이게 뭐 하는 것인지 싶어서 주위의 눈치를 보았다.

“흠흠. 오늘은 시하에게 옷을 가져왔어. 이거 입어주면 마이크 갖고 놀게 해 줄게.”

“아아.”

시하는 알리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 신기한 마이크를 가지고 노래를 부르면 형아도 깜짝 놀랄 것이다.

시하는 형아를 깜짝 놀라게 하고 싶다.

알리사가 시하랑 같이 옷을 갈아입으러 방에 들어갔다.

마이크는 잠시 갖고 놀라고 하나에게 넘겨 주었다.

하나는 눈을 빛내며 마이크를 쥐었다.

“아아! 와! 목소리가 크게 나와! 하나도 이제 가수야!”

이제 본격적으로 가수 놀이를 할 수 있었다.

아이들도 한 번씩 마이크에 입을 대고 말해보았다.

그러는 동안 시하는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산뜻한 여름 패션이 참 잘 어울렸다.

알리사가 너무 귀여워 사진을 찰칵 찍었다.

“아?”

“이건 나중에 형아에게 보내줄게. 알았지?”

“아아.”

그거야 허락한다는 듯이 손을 척 들었다.

하나가 그런 시하를 보며 말했다.

“시하야. 이제 하자!”

“아아.”

다시 시작된 가수 놀이.

애들을 대동한 채 하나가 방으로 들어섰다.

“하나는 이제 무대에 노래할래.”

하나를 가운데 두고 애들이 앉았다.

이제 가수의 노래 파트.

하나가 노래를 불렀다.

시하는 그걸 보며 생각했다.

‘개굴’이가 노래를 잘했다. 나중에 노래 부르는 곳도 오라고 했다.

하나의 모습을 보니 서수현이 생각난 것이다.

“아아! 개굴! 카페.”

그 말을 듣고 있던 알리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시하야. 개굴 카페가 뭐야?”

“개굴. 카페. 노래. 형아.”

“응? 형아가 카페에 노래한다고?”

“아냐.”

“그럼?”

“개굴. 노래해.”

“개굴?”

“아아.”

알리사가 무슨 말인지 고민하다가 ‘개굴’이 사람을 지칭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개굴이 누군데?”

“아?”

시하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개굴은 개굴인데 누구라고 하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개굴’이라서 ‘개굴’이라고 하는데 왜 ‘개굴’이라고 물으면 ‘개굴’이라서 ‘개굴’이라고…….

시하는 그런 생각의 혼돈을 겪다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개굴’을 흉내 내기로 했다.

“아아!”

시하는 손을 파닥파닥하면서 잘 보라는 싸인을 보냈다.

알리사가 그건 알아들었는지 빤히 쳐다보았다.

시하가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허리에 갖다 댔다.

“아아. 이 오바. 진자!”

“아! 이 오빠가 진짜! 수현이를 말하는 거구나.”

“아아.”

끄덕끄덕.

알리사도 고개를 끄덕였다.

“수현이가 카페에서 노래한다는 말이네? 나한테는 안 알려주고. 시하에게만 알려줬다 이거지?”

“아냐.”

“응? 아! 형아에게도 알려줬다고?”

“아아.”

알리사가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이런 재밌는 구경을 놓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다른 아이들도 시하의 말을 들었는지 서수현이 카페에서 노래 부르는 것을 보고 싶어 했다.

“하나도 가고 시퍼!”

그중 하나가 제일 눈을 반짝였다.

알리사가 살며시 웃으며 엄마, 아빠에게 허락을 맡으라고 했다.

한편,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유다희 선생님은 알리사를 보며 생각했다.

‘대체 시하 말을 어떻게 알아들은 거지?’

***

나는 멍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라이브 카페 근처.

그래. 사람들이 많은 건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됐을까?’

나는 슬쩍 손잡은 시하를 바라보았다.

시하는 고개를 들고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시하야. 어떻게 애들이 이렇게 왔을까?”

“아?”

자신은 전혀 모른다는 얼굴이었다.

과연. 자신도 모르게 애들을 끌어들이는 건가?

이 무슨 만화 같은 능력이지?

“몰라?”

“아아.”

“그래. 모르는구나. 이건 시하가 인기가 많아서 벌어진 일이 틀림…….”

그때 알리사가 내 어깨를 뒤에서 밀면서 말했다.

“여기서 이러지 말고 들어가요.”

“밀지 마세요. 들어가기 그렇다고요.”

“왜요?”

“아니. 이렇게 한 번에 우르르 몰려오는 건 조금 그렇지 않아요? 수현이에게 뭐라고 말해요.”

“그냥 놀러 왔다고 하면 돼요.”

“갑자기? 이렇게 어린이집 애들도 함께?”

알리사가 씨익 웃으며 폰을 흔들었다.

안에 내용을 보니 이미 서수현에게 연락했나 보다.

-서수현 : 앜ㅋㅋㅋ 왜 이렇게 많이 와ㅠㅠ

놀람과 울음이 섞인 감정을 엿볼 수 있었다.

내 잘못은 아니다. 아무튼, 내 잘못은 아니다.

“시하야. 가자.”

“아아.”

우리는 라이브 카페에 들어갔다.

카페에 무대가 있는 게 신기한지 애들이 눈을 반짝였다.

아이들 눈에는 이런 무대에 서는 사람도 대단해 보이겠지.

엄청 반짝반짝 빛나 보일지도 모른다.

“시하야. 뭐 먹고 싶어? 여기 생과일 쥬스도 파네.”

시하가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

“형아랑 가치.”

“형아랑 같은 거?”

“아아.”

“그래. 형아랑 같은 거 먹자.”

괜히 이런 대답에 감동한다.

역시 나랑 같은 거 먹고 싶었구나?

그러면 커피는 좀 그러니 바나나 우유나 마셔야 할 것 같다.

“그럼 형아는 바나나 우유 마실 거야. 시하도 좋지?”

“바나나!”

시하도 좋다고 팔을 벌렸다.

옆에 있던 하나가 자기도 바나나 우유를 먹겠다고 했고, 승준은 포도 주스를 선택했다.

진동벨을 받고 미리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무대 정면이 바로 보이는 자리.

거기에 카메라를 꺼내서 배터리를 확인한 후에 무대를 비췄다.

어떻게 찍으면 잘 찍힐지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 찍어야겠다.

그런 거래였으니까.

“형아.”

“응? 왜?”

“모야?”

“아, 이거? 카메라야. 전에 형아가 장난감으로 연극할 때 썼던 거 있지? 그런 거랑 같은 거.”

“왜?”

질문이 시작되었다.

나는 그런 시하를 시야에 담으며 말했다.

“이걸로 노래하는 모습을 찍을 거야.”

“직어?”

“응. 이게 시하가 앉아 있는 모습도 기억하는 일을 하고 있거든.”

“아아.”

“그래서 오늘은 수현이 누나를 기억할 생각이야.”

“왜?”

“기억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려고. 음. 시하 친구에게 자랑하려고 찍는 거야.”

“왜?”

“재밌어서. 시하도 노래 부르면 재밌지?”

“아아.”

“재밌는 건 함께 하면 더 재밌거든. 승준이랑 하나랑 같이 노는 거 재밌지?”

“아아.”

“이 기억을 가지고 함께 놀기 위해서야.”

“아아.”

만족스러운 대답을 얻었는지 시하의 질문은 이어지지 않았다.

다 이해한 걸까?

최대한 쉬운 단어로 말하기는 했는데…….

나는 아직도 시하가 정말로 다 알고 고개를 끄덕이는지 잘 모르겠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좋고.

알면 아는 대로 좋지만.

“형아. 시하도.”

시하가 내 쪽으로 손을 뻗었다.

“시하도 영상 찍고 싶어?”

“아아. 시하도.”

“그래. 조심해서 만져야 해. 알았지?”

“아아.”

나는 시하의 손에 카메라를 쥐여 주었다.

혹시 떨어뜨릴까 싶어서 쭈그려 앉아서 카메라 밑을 손으로 받쳤다.

“잘 보여?”

“아아.”

“진짜?”

“아아.”

콕.

시하가 카메라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화면은 안 보고 렌즈만 본다.

자그마한 창에 보이는 게 신기한가 보다.

“형아. 개굴.”

“응? 아!”

어느새 서수현이 무대 위로 등장하고 있었다.

풋풋한 대학생 느낌이 물씬 났다.

손에는 기타를 들고 의자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나는 정신이 번쩍 들어서 시하가 들고 있는 카메라를 들었다.

하마터면 깜빡할 뻔했네.

탁자 위에 설치한 삼각대에 그대로 꽂았다.

“아아.”

시하가 아쉬운 소리를 내었다.

나는 조용히 검지를 시하 입에 갖다 댔다.

“이제 노래하니까 조용히 듣자. 알았지?”

“아아.”

시하가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좀 세게 막았는지 볼살이 툭 하고 튀어나왔다.

‘저런 건 또 어디서 배워 온 거야. 귀여워.’

카메라 위치를 조정하면서 말랑말랑한 볼살에 눈이 갔다.

어느새 알리사가 음료를 들고 왔다.

“이제 시작하네요?”

“그러네요.”

서수현이 인사를 하고 노래가 시작되었다.

하나가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진짜 가수 가태!”

아무래도 서수현은 하나의 마음에서 순위가 오른 것 같다.

‘잘 부르긴 잘 부르네.’

편안한 목소리로 시작하는 첫 번째 곡.

안에 있던 사람들도 부드럽게 시작하는 느낌에 발을 까딱거렸다.

이미 여기는 서수현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는 것 같다.

시하도 이런 무대가 신기한지 바나나 우유를 쥐고 가만히 바라보았다.

가사는 알아듣고 있는 건지.

‘저기에 시선을 뺏기니 괜히 나도 이런 무대에서 노래해 줘야 하나 싶네.’

괜히 심술궂은 생각이 나서 시하의 귀에 살며시 말했다.

“시하야. 바나나 우유 따뜻해진다?”

“아?”

시하가 바나나 우유와 노래를 번갈아 보았다.

어떡하지? 뭘 우선해야 해?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과연 승자는 누굴까?

“바나나.”

시하가 빨대에 입을 가져가 쭈욱 마셨다.

달콤한 맛이 입에 퍼지는지 눈이 살짝 커졌다.

집중해서 마시고 고개를 들었다.

3살 이시하.

하나에만 집중할 수 있는 동생이었다.

하여간 귀엽다.

“노래.”

“응. 노래 들어. 큭큭.”

나는 맑은 기타 소리를 들으며 시하를 바라보았다.

서수현. 넌 아직 ‘개굴’이고 바나나 우유에게 안 되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니 어느새 노래가 끝났다.

순식간에 3번의 곡을 연달아 부른 서수현이 입을 뗐다.

“오늘 저를 응원해 주는 친구들이 많이 왔네요. 특히 어린 친구들이요. 다들 보이시죠?”

“네!”

“아무래도 이런 라이브는 연령에 맞게 해야 하는데 너무 다양해서 선곡이 참 어렵네요.”

“하하하.”

그때 시하가 손을 들었다.

“시하도 노래!”

그 말이 시작이었을까?

“하나도! 하나도!”

“나도 부탁하면 불러줄 수 있는데!”

승준 엄마가 당황하며 애들을 말렸다.

종수도 그 모습을 보고 손을 들었다.

“나 노래로 상도 받았는데!”

서수현과 카페 사람들이 애들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 한 남성이 ‘부르게 해줘라!’라고 말하자 물타기가 시작되었다.

서수현이 웃으며 말했다.

“사장 언니에게 좀 물어볼게요. 애들 한 곡만 시켜줘도 돼요?”

저 멀리서 사장 언니가 손을 동그랗게 말았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때 시하가 내 바지를 잡았다.

“형아. 가치!”

“으응?”

시하야. 형아는 같이 안 하면 안 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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