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8화 (88/500)

88화

한편 시하는 서수현의 손을 잡고 키즈카페에 들어섰다.

뒤에는 함께 온 애들도 있었는데 지호와 쯔한이었다.

아이들이 서로 놀고 싶어 해서 엄마들이 함께 데리고 온 것이었다.

그리고 다른 문화권의 아이들과 놀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아아.”

시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놀거리가 풍성한 곳이어서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다다다 달려서 트램펄린이 있는 곳으로 쏙 들어갔다.

지호 역시 눈여겨보고 있던 놀잇감이어서 따라갔다.

쯔한 역시 마찬가지.

셋이서 즐겁게 방방 뛰어놀기 시작했다.

그중 나이가 제일 많은 지호가 뭔가를 보여주겠다면서 멀리 자리를 잡았다.

“시하야. 쯔한. 잘 봐. 난 앞돌기 할 수 있어.”

휘리릭.

트램펄린을 좀 탄다 싶으면 하는 앞돌기를 펼쳤다.

시하는 그걸 보고 또 따라 했다.

데구르르.

점프해서 돌지 못하고 앞으로 굴렀다.

하지만 제대로 구르지 못해서 옆으로 구르기 시작했다.

쯔한도 그런 시하를 따라 하고 싶어서 함께했다.

지호도 그게 웃긴지 참여.

셋이서 함께 옆으로 쭈욱 구르는 모습이 연출되었다.

“아아!”

“하하하. 재밌다!”

“아하하.”

그렇게 구르다 끝에 있는 스펀지에 부딪혀서야 멈췄다.

콩.

뒤에 있는 쯔한이 시하의 등에 부딪혔다.

“아?”

「미안.」

“아? 아아.”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시하는 쯔한의 어깨를 토닥토닥해 주었다.

쯔한이 빨개진 얼굴로 시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마음도 얼마 가지 못했다.

지호가 두 사람 사이에 껴서 어깨동무했으니까.

지호는 같이 놀아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형이자 오빠니까.

“자. 우리 저기 미끄럼틀 타고 놀자!”

지호가 가리킨 곳을 시하와 쯔한이 쳐다보았다.

조명 탓인지 미끄럼틀이 반짝반짝 예뻐 보였다.

애들에게 제일 재밌어하는 미끄럼틀이다.

뭐에 홀린 듯이 트램펄린이 있는 곳에서 나왔다.

“아?”

그런데 시하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각에 당황했다.

땅이 잡아당기고 있는 느낌.

몸이 막 무거워진 느낌이었다.

지호가 웃으며 말했다.

“으악! 무거워졌다! 이걸 타면 몸이 무거워져. 으윽!”

지호가 느릿느릿하게 몸을 움직였다.

마치 중력이 2배인 듯이 말이다.

시하, 쯔한 역시도 그 모습을 따라 했다.

세 사람이 무거운 중력을 느끼며 느릿느릿하게 미끄럼틀로 향했다.

“도착했어.”

“아아!”

셋이서 쪼르르 미끄럼틀을 탔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서로가 즐겁게 놀았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세 어른이 바라보고 있었다.

서수현이 아메리카노를 미끄러지듯이 빨대로 빨아 당겼다.

지호 엄마가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

“시혁 씨랑 잘되고 있어요?”

“컥! 켁켁.”

갑작스러운 말에 서수현이 기침을 했다.

옆에 있던 티슈를 뽑아서 입을 닦았다.

“그, 그런 사이 아닌데요?”

“정말 아니에요? 내가 봤을 때는 수현 씨가 마음이 있어 보이는데?”

옆에 있던 쯔한 엄마가 눈을 반짝였다.

어설프지만 그녀는 한국어를 할 수 있었다.

잘하지는 못해서 그렇지.

서수현이 손을 저었다.

“그냥 사이좋은 오빠, 동생 사이인데요.”

“아하. 오빠, 동생 사이시구나? 그렇구나?”

“왜 그러세요. 정말.”

“아니. 반응이 너무 귀여워서요. 풋풋하기도 하고.”

서수현이 옆머리를 매만졌다.

지호 엄마는 의미심장한 미소만 지었다.

“그런데 신기하지 않아요?”

“뭐가요?”

“이렇게 처음 만난 애들끼리 잘 노는 거요.”

“그러네요.”

“말도 안 통할 텐데 저렇게 잘 놀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지호가 중국에 있을 때는 잘 말하지 못하긴 했는데 여기 와서 잘 말하네요.”

“아. 그래요? 중국에 사시는구나.”

“일 때문에 어쩔 수 없거든요. 그래도 요즘 간단한 말은 곧 잘해서 금방 어학은 늘지 싶어요.”

서수현은 지금 자신이 이렇게 모여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시혁이 바라보는 풍경은 언제나 이런 것일까?

새삼 자신과 다른 풍경을 바라보고 산다는 것을 깨닫는 참이었다.

그때였다.

“지금부터 키즈카페 이벤트를 진행합니다. 어린이 여러분 모두 여기로 모여 주세요!”

아이들이 마이크를 들고 있는 사회자에게 모였다.

그리고 그 와중에 한 사람이 도착했다.

이시혁이 온 것이다.

***

나는 오자마자 시하 옆에 앉았다.

“형아!”

“응. 시하야.”

“여기.”

팡팡.

옆자리를 치는 시하 때문에 다소곳하게 무릎을 꿇고 앉았다.

데리고 가려고 했는데 키즈카페 이벤트를 하는 모양이었다.

사회자가 이벤트에 관해서 설명했다.

이곳 어딘가에 다람쥐 스티커를 붙였는데 그걸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아이들을 보았다.

“시하야. 열심히 찾아야 해. 형아는 저기 있을 테니까.”

“형아도 가치.”

“형아는 같이할 수 없다는데?”

어른은 참가할 수 없는 게 규칙이었다.

하지만 뒤에서 보는 것 정도는 괜찮은 모양.

시하가 대놓고 실망하길래 나는 같이 있겠다고 했다.

“그럼 시하야. 가볼까?”

“아아.”

시하가 두 아이와 함께 스티커를 찾기 시작했다.

뭔가 날카로운 눈을 뜨고 찾는 모양인데 내 눈에는 귀엽게만 보였다.

지호가 말했다.

“시하야. 쯔한. 미끄럼틀 쪽에도 찾아보자.”

“아아.”

「응!」

아이들이 미끄럼틀 뒤에서 이리저리 스티커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슬쩍 주위를 봤는데 다른 아이들이 스티커를 몇 개 찾은 것 같다.

이거 아무래도 시하가 못 찾는 거 아니야?

도와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싶어 눈을 빨리 굴렸다.

그때 사회자가 살며시 시하를 지나면서 시하의 등에 스티커를 붙이고 도망갔다.

나는 그 모습에 피식 웃었다.

‘저런 식으로 하기도 하네.’

등에 스티커가 붙었는지 모르고 열심히 찾고 있는 시하.

너무나 귀여웠다.

언제 발견하나 싶어 계속 지켜봤는데 쯔한이 먼저 발견했다.

쯔한이 시하의 등을 가리켰다.

「시하! 스티커!」

“아?”

「등에 붙었어. 여기. 여기.」

시하가 뒤를 돌아봤지만, 스티커는 보이지 않았다.

등을 볼 수 없는 시하가 고민하더니 앞구르기를 했다.

‘언제 앞구르기를 할 줄 알게 된 거지?’

나는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찰칵 찍었다.

‘발상이 귀여워.’

구르면 등에 있는 스티커를 볼 수 있을 줄 알았나 보다.

쯔한이 보다 못해 시하의 등에 있는 스티커를 떼서 내밀었다.

시하가 고맙다는 듯이 받았다.

“형아!”

곧바로 나에게 달려와서 자랑했다.

“그래. 잘했어. 시하야. 쯔한에게 고맙다고 해야지.”

“쯔한. 고마어.”

「쯔한. 시하가 고맙대.」

쯔한이 부끄러운지 고개를 푹 하고 숙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시하에게 푹 빠졌네.

시하가 좀 인기 많을 타입이긴 하지.

‘응?’

어쩌면 이대로 인기가 불어나서 팬클럽이 생길지도 모른다.

고등학생이 되어서 반에 여학생들이 얼굴을 보러 오고 그럴지도.

혹시 연예 기획사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와서 연습생을 하라고 한다면 나는 어쩌지?

연습생 생활하려면 돈이 많이 필요하겠지.

지원도 많이 해 줘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열심히 일해야겠어.’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하가 스티커를 들고 자랑하기 바빴다.

나는 그 스티커를 시하의 손바닥에 턱 하고 붙여주었다.

“이제 스티커 들고 내자. 상품을 준대.”

“아아.”

세 아이를 데리고 스티커를 제출했다.

상품은 간단한 스케치북과 색연필.

이걸 받고 다시 스티커를 찾으려고 하니까 마지막 스티커였단다.

찾지 못한 애들에게도 소정의 선물을 주었다.

초콜릿과 요구르트.

나름 지호와 쯔한은 만족한 표정이었다.

‘이런 이벤트도 괜찮네.’

아이들이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재잘재잘 말하고 있었다.

일단 이야기도 안 통할 텐데 서로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웃겼다.

나야 다 알아듣고 있으니까.

‘저기는 수다 삼매경에 빠졌고.’

아이들을 데려온 여자 셋은 내가 돌볼 때부터 본격적으로 수다에 돌입하고 있었다.

‘이제 집에 갈까?’

애들은 집에 갈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기는 했다.

그래도 가자고 하면 아쉽겠지만 갈 것이다.

언제나 즐거움은 아쉬움을 남기는 법이니까.

“시…….”

내가 시하를 부르려고 할 때 어떤 아이가 쯔한을 가리키며 말했다.

“엄마! 저 애 이상한 말을 해!”

외국어를 처음 듣는 거면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좀 그랬다.

이상한 말이라니.

아이의 엄마가 말했다.

“그러게 이상한 말이네. 같이 놀지 말렴.”

“왜?”

“이상한 일이 벌어질 수 있잖아.”

“응.”

나는 황당해서 그쪽을 쳐다보았다.

뭔가 쯔한이 이상해졌으니까.

시하가 나를 불렀다.

“형아.”

올려다보는 눈에 의문이 담겨 있다.

시하도 저 말을 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시하에게 어떻게 말을 해줘야 할까?

저 말을 알아들었을까?

‘행동하자.’

시하가 알아듣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언제나 아버지의 등을 보고 커왔다.

시하는 내 등을 보고 크겠지.

그렇다면 내가 취해야 할 것은 하나였다.

보고 배울 수 있게 모범이 되는 것.

적어도 시하 앞에서는 모범이 되어야지.

그래야 형아지.

“저기 아이야.”

나는 아이를 불렀다.

아이가 돌아보았다.

“이상한 게 아니라 다른 거야. 다른 건 재미난 거고. 겨울왕국 알지? 두유 워너 빌더 스노우맨~”

“네! 알아요!”

“이건 영어야. 얘가 하는 건 중국어고.”

“중국어요?”

“응. 다른 나라 사람 말 많이 알면 재밌는 거 두 배, 세 배로 더 많이 알게 되는 거야. 친구도 더 많이 늘어나고.”

내가 그렇게 말하자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의 엄마는 나를 경계하며 애를 끌고 갔다.

“가자. 어서.”

나는 참으로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액션을 보여줬으니 더는 할 말이 없기도 했다.

시하와 애들을 돌아보았다.

“시하야. 달라도 쯔한이랑 재밌었지?”

“아아.”

나는 쯔한을 보았다.

「쯔한. 시하랑 친하게 지내줘서 고마워.」

「네!」

「있잖아. 저 사람들이 쯔한 중국어 쓰는 거 부러워서 손으로 가리킨 거야.」

「그래요?」

「언어는 마법이 있거든.」

「마법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틀림’은 ‘다름’과 같은 의미가 아니다.

다름을 받아들임에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오늘 내가 전하는 의미를 시하는 알아들었을까?

「보여줄까?」

「네!」

조금 민망해서 ‘크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하려니까 좀 그러네.

「내가 이 말을 하면 사람들이 다 쳐다봐.」

「정말요?」

「정말이지.」

나는 호흡을 고르고 큰 소리로 말했다.

「밥 먹었니?」

「네!」

사람들이 다들 쳐다보았다.

그도 그럴 게 ‘니취팔러마.’라는 말이 뭔가 욕같이 들리니까.

언어는 마법이다.

그 마법에 쯔한은 걸려들었다.

「우와! 신기해요! 다들 쳐다봐요!」

「하지만 함부로 쓰면 안 돼. 조금 위험해서.」

「왜요?」

「이렇게 다 쳐다보잖아. 그럼 좀 부끄러워.」

「히히! 그러네요.」

괜히 한 것 같다.

어린이식 설명을 하려다 되레 이상해졌다.

“형아.”

“응? 시하야. 이건 또 언제 그렸어?”

시하가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려놓았다.

선을 한 번에 그어서 그린 얼굴.

땡그란 눈에 긴 머리카락.

누구를 그린 건지 나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쯔한을 그린 것이다.

시하가 스케치북을 쯔한에게 보여주면서 내밀었다.

“쯔한!”

“시하야. 이거 쯔한에게 주는 거야?”

“아아.”

“스케치북 전부?”

“아아. 시하. 이써. 이거. 지베.”

“아. 있긴 하지.”

시하 전용 스케치북인 태블릿이 말이다.

나는 쯔한을 보며 말했다.

「쯔한아. 이거 시하가 선물이래. 널 그렸대.」

「와아!」

쯔한이 빙긋 웃으며 그림을 보았다.

마음에 드는지 스케치북을 품에 안으며 방방 뛰었다.

「고마워!」

“시하야. 고맙대.”

“아아! 쯔한. 개차나.”

시하가 손을 척 하고 들었다.

나는 두 사람의 대화를 동시통역해 주었다.

그래. 마법이 별거 있을까?

이렇게 두 사람이 대화를 통하게 하는 거. 그게 언어의 마법이지.

그리고 한 가지 더.

그림 역시 언어를 뛰어넘는 대화의 창구였다.

시하는 자기 나름대로 대화를 한 것이다.

옆에서 보고 있던 지호가 말했다.

“시하야. 나는?”

나는 자기만 빼놓고 그려서 서운해하는 지호를 볼 수 있었다.

시하가 스케치북과 지호를 번갈아 보더니 색연필을 건넸다.

“지호 형아. 이거!”

“응?”

시하가 지호에게 색연필을 선물했다.

그런데 시하야. 그거 아니야.

지호도 얼굴 그려 달라고 한 거야.

때로는 언어가 같다고 꼭 대화가 통하는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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