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식사가 끝난 뒤.
-흡연실.
KI 대표와 홍진수 과장이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현재 이시혁이 장웨이의 말 상대를 하는 중이다.
여기 잠시 있다가 돌아가서 본격적으로 계약 이야기를 슬슬 나눌 생각이었다.
원래라면 흡연실도 갈 마음이 없었다.
이시혁이 보낸 카톡이 아니었다면.
홍진수가 말했다.
“계약을 그대로 진행하시겠습니까?”
대표가 미간에 힘을 주었다.
심각한 고민을 할 때 나오는 그만의 버릇이었다.
깊게 빤 담배 연기가 폐 속을 한 번 휘젓다가 한숨으로 나왔다.
“글쎄?”
“별로 시간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게. 생각이 많아지네. 진수야. 너는 어쩌면 좋겠어?”
“오랜만에 이름 부르시네요. 이럴 때만.”
“솔직히 자신 없다.”
“뭐가요? 지키는 거요?”
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뭘 노리는지 보이긴 하네. 이번 아머존 계약 딴 애가 걔였지? 전 대리.”
“네.”
“부모님들은 다 해외에 일하시고 계셨고.”
“그렇죠.”
“솔직히 돈을 더 줄 수 없어. 아니, 줄 수는 있는데 저 UX만큼 줄 자신이 없다. 거기에 넘어가면 뭐로 다시 데리고 오냐?”
“오늘따라 대표님 너무 자신 없으신 거 아닙니까? 그때 저랑 약속했던 패기는 어디 갔어요?”
두 사람은 꿈이 있었다.
시장을 한국에만 두지 않는 거.
한국의 큰 파이가 있는 플랫폼에 너무 휘둘리지 않으려면 뒤가 필요했다.
그걸 위해 해외 플랫폼과도 긴밀하게 끈을 만들려고 영업을 하는 중이다.
전 대리가 들어온 것은 KI 미디어의 행운이었다.
작가와 출판사의 상생.
거기에 다른 출판사가 가지지 못하는 메리트까지.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출판사.
“우리는 아직 성장 중이야. 그치? 거기에는 인재가 필요하고.”
“저만 믿으십쇼! 제가 싹 해결하겠습니다!”
근본 없는 자신감에 대표가 피식 웃었다.
알고 있었다.
저런 자신감 하나로 송택수 선생님을 잘 꾀어서 신작을 쓰게 만들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충분히 능력 있는 홍진수였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인간관계를 잘 맺는다.
과연 이시혁이라는 인재를 홍진수가 잡지 않았다면 이런 정보가 들어왔을까?
물론 결재는 자신이 했지만, 홍진수가 사람 보는 눈이 정확한 건 매번 놀라울 따름이었다.
‘뭔가 얼빵한 면도 있고 가벼운 거 같은데 말이야…. 특이하단 말이야.’
타들어 가는 담배가 이제 결정의 시간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솔직히 끈 하나는 만들어두고 싶다. 희미해도 말이야.”
“그럼 그렇게 하시죠. 안 되면 말고요.”
“그래. 안 되면 말지. 이러면 되는데 이거 잡다가 두 마리 다 놓치는 게 겁이 나서 말이야.”
홍진수가 살며시 웃었다.
“전 대리는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따로 제가 함 만들어보죠. 그 끈이라는 거.”
“진심이야?”
“아직 시간 많습니다. 충분히. 제가 그냥 가만히 맡겨두기만 했을까요?”
KI 대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탁.
담배를 쓰레기통에 던졌다.
사라진 담배가 결정을 확고히 했다.
“저작권 문제나 잘 협상해 봐야겠네. 좋은 작품 있으면 가져오고. 서로 윈윈해야지.”
“그러면 되죠.”
두 사람이 서로를 보며 피식 웃었다.
예전에 같이 힘내서 일했던 그때가 생각나는 기분이었다.
***
무협 작가들은 따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다른 방으로 이동했다.
방에 남은 사람들은 계약 이야기가 오갔다.
현재 중국 시장과 한국 시장의 이야기.
트렌드는 어떻고 지금 접목하고 있는 이야기는 어떤 것인지의 이야기.
중국 무협에는 아직도 선협이 꾸준히 인기가 있어서 송택수 선생님의 작품이 중국 무협에 먹힐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저작권 문제로 넘어갔다.
‘확실히 상황이 달라.’
어떻게 보면 굉장한 갑질이었다.
저작권을 20년간 사이트에서 묶는다니.
20년이면 강산도 두 번 변할 시기다.
아니, 요즘 엄청 빠른 트렌드 변화를 보면 3년에 한 번 변하는 것 같다.
‘그런데 대표님이 생각보다 잘 말씀하시네.’
나는 동시통역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적 저작권 상황과 계약 이야기를 하며 저작권 보장을 강조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지금 봤을 때 UX가 변하는 기점을 2~3년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하긴 바로 시행시키지는 않겠지.
그래서 명확히 계약서를 남겨서 거래하자는 거고.
‘상위 작가들에게만 기회가 돌아가겠네.’
런칭될 수 있는 작품이 몇 되지 않았다.
물론 번역할 돈도 돈이지만 이건 투자니까 적은 리스크를 만들고 싶겠지.
안 팔리면 말짱 꽝이 아닌가.
그리고 한 가지 더.
‘아무래도 딱 끈만 연결할 느낌이야.’
위험하면 언제든지 끊을 수 있게 말이다.
중국 측에서도 요구하는 건 번역 부분이었다.
긴 장편이기는 하지만 그걸 잘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번역가와 연결하기 원했다.
‘으아…….’
나는 솔직히 조금 질색했다.
너무 길 거 같아서 말이다.
내가 봤을 때 이건 짧은 소설을 위주로 들여와야 할 거 같다.
뭐 짧아도 중국 웹소 기준으로 짧다는 거지 한국으로 치면 굉장히 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조율을 하고 다들 목을 축였다.
옆에서 곧바로 수정하는 노트북 소리가 타닥타닥 들렸다.
장웨이가 말했다.
「대충 조율된 거 같은데 잠시 쉬죠. 흡연실이 어디죠?」
그 말을 대표에게 전해 주고 나는 흡연실로 안내했다.
아마 수정된 계약서는 바로 뽑아서 가져올 것이다.
이렇게 잠시 쉬는 동안 말이다.
「여기가 흡연실입니다.」
「한국은 이런 흡연실도 있군요.」
「중국은 안 그런가요?」
「식탁에 재떨이가 올라오죠.」
「아하.」
여기서도 조금 다른 문화에 신기했다.
우리나라도 80년대에는 재떨이가 올라왔었던가?
어디서 듣기는 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럼 전 이만.」
「잠시만요. 같이 여기서 이야기 좀 할 수 있겠습니까?」
「네?」
「혹시 담배 냄새 싫어하십니까? 따로 이야기했으면 싶은데…….」
나는 거절할까 싶었지만, KI 미디어의 분위기를 떠올리고 일단 들어보기로 했다.
물론 여기서 장웨이에 대한 호기심도 동했다.
「어떤 말을 할지 참 궁금하네요.」
「하하. 좋은 제안이죠. 통역하시는 걸 보니까 실력이 참 좋은 거 같습니다. 번역도 잘하시고요.」
「감사합니다.」
「작가님들 쪽으로 통역하셨어도 잘했을 것 같네요.」
「저도 그건 아쉽네요. 이야기해 보고 싶었는데.」
「또 기회가 있을 겁니다.」
장웨이가 눈을 빛내며 나를 보았다.
왜 이렇게 부담스럽게 보는 거지?
「전 능력 있는 사람은 그에 맞춰서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기회가 된다면 더 큰물에서 놀아야 하죠.」
「저도 동감하네요. 보이는 게 다르죠?」
「네. 확실히 시야 부분에서 다르죠.」
장웨이가 담배를 살며시 물었다.
불을 붙이고 가볍게 호흡을 뱉었다.
「UX에 들어오시면 연봉 1200 드리겠습니다.」
이건 무슨 말일까?
연봉 1200만 원?
장웨이가 제안은 끝나지 않았다는 듯이 계속 말했다.
「매년 떨어지는 보너스로 1억 2천 드리겠습니다. 통번역 일을 하시면요.」
총 1억 3천 200만 원.
굉장한 금액이었다.
솔직히 이런 제안을 받을 줄 몰랐다.
아니, 제안은 올 줄 알았지만 이런 연봉 조건일 줄은 몰랐다.
「엄청나네요.」
「중국 돈으로 드리겠습니다. 중국은 이렇게 세금을 줄이거든요. 연봉이 적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대신 덤을 많이 주니까요.」
「아, 그래서 연봉을 적게 주나 보네요.」
「생각 있으십니까? 있다면 중국에 집도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장웨이가 진하게 웃었다.
나는 살며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거절할게요.」
***
장웨이는 손에서 담뱃재가 바닥에 떨어졌다.
설마 여기서 거절을 받을 줄 몰랐다.
그런데 왤까?
앞에 있는 청년이 욕심이 난다.
저기에 돈을 베팅해 보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시혁이 살며시 웃으며 다른 말을 하기 시작했다.
「혹시 게임 좋아하세요?」
「좋아하죠.」
장웨이는 언제나 겜블러였다.
경영에 성장하는 것으로 자신의 만족감을 채웠다.
자신은 언제나 충분히 돈이 있는 집안이어서 UX가 얼마나 자신의 주머니를 채워 줄지 관심은 없었다.
그저 업적과 명예.
키웠다는 자부심과 경력.
물건을 잘 포장해서 구매자들에게 던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나는 이렇게 능력 있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자신에게 경영은 그저 오락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 과감하게 투자를 결정하고 밀고 나가는 추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게 잘 맞아서 지금껏 성장했다.
장웨이가 말했다.
「그게 중요합니까?」
「네. 중요하죠. 처음 대표님을 봤을 때 든 생각이 소설보다 게임을 좋아하실 분이란 걸 알았거든요.」
장웨이가 눈을 가늘게 떴다.
설마 통번역뿐만 아니라 사람도 잘 보는 건가?
왠지 뭔가 아는 듯한 뉘앙스가 심히 배팅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이 판이 게임이 된 느낌.
시혁이 말했다.
「마치 마술을 잘할 것 같다고 할까요? 눈속임으로 사람들을 농락하는 거죠. 하지만 여기에 치열한 계산이 깔려 있죠.」
「그래서요?」
「그래서 남들이 못 보는 판을 보는 거죠.」
「그걸 시혁 씨는 봤다고 하는 건가요?」
「저야 모르죠. 아, 혹시 한국 기업에도 투자나 영향을 발휘하고 있으세요?」
장웨이가 속으로 신음을 흘렸다.
‘정말 뭔가 알고 있나?’
저 질문이 들어온 순간 앞의 질문과 섞이기 시작했다.
게임, 마술, 한국 기업.
현재 중국에서 경영에 손을 뻗기로 되어 있는 기업이 있다.
바로 중국 게임 업체 ‘테이진’.
현재 한국에서 게임 개발을 외주로 받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가지는 않았다.
장웨이의 아버지가 자리를 마련할 때까지 경력을 쌓고 있으라고 했으니까.
‘후우. 알고 질문한 건 아니겠지?’
자신이 숨겨진 자식이라는 건 세간 사람도 모르는 일이었다.
근데 참 질문들이 묘했다.
마술이라고 하면 ‘테이진’이 자랑하는 게임중에 ‘위저드러그’가 있었으니까.
‘괜한 생각인가?’
장웨이는 시혁을 빤히 보았다.
이유를 물어봤는데 이런 질문들이 나올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일단 투자 개념이라면 어느 정도 발휘하고 있죠.」
「아하. 사모펀드요?」
「…….」
시혁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럼 투자한 데에 이모티콘 선물도 함께 주면 어떨까요?」
「예?」
「요즘 이 페페티콘이 유행한대요.」
시혁이 자신의 폰을 보여주며 귀여운 펭귄 이모티콘을 보여주었다.
「중국은 VPN으로 너튜브나 SNS를 접속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에 관심도 가지고 있다는 느낌으로 선물하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장웨이는 혼란스러웠다.
‘대체 노리는 게 뭐지?’ 싶었으니까.
사실 시혁은 순수하게 이모티콘을 자연스럽게 광고하고 싶었다.
팔면 좋고 아니면 말고, 라는 식.
원래 영업은 좀 뻔뻔함이 있어야 한다.
시혁이 얼굴에 철판을 깔고 페페티콘을 자랑했다.
「이게 요새 진짜 인기 있어요. 온 김에 이런 사소한 선물을 하면 재밌지 않을까요? 하하.」
「네. 일단 귀엽습니다…….」
「그렇죠? 이거 이거 남들에게 알려주지 않은데 이 작가가 나중에 엄청나게 될지도 몰라요.」
「그렇습니까?」
「네. 혹시 모르죠. 게임 일러 작업을 받게 될지 누가 알아요?」
「아시는 분입니까?」
「네. 아주 잘 알죠. 엄청나게 친하다고 할까?」
「정말 귀여운 그림을 그리시는 분이군요.」
장웨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또 게임 이야기를 나오는 것을 보니 뭔가 알고 있나 보다.
아니, 원래는 몰랐는데 자신의 모습에 눈치를 챘을지도 몰랐다.
솔직히 속을 모르겠다.
원하는 게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거 하나.
‘이 판 졌군.’
솔직히 조금 유쾌했다.
자신이 게임에 이렇게 말리는 사람이 아닌데.
뜬금없는 이모티콘에 허를 찔렸다.
여기 누가 있더라도 이모티콘 이야기에 허를 찔렸을 것이다.
‘아마 이 이모티콘 작가는 여자 친구겠군. 이런 귀여운 그림을 그렸으니까. 그림체가 여성스러운 선이 있긴 해. 부드럽고.’
시혁이 말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편하게 피우고 오세요.」
그렇게 이시혁은 수수께끼만 남기고 떠나갔다.
장웨이는 반도 못 태운 담배를 그대로 끄고 쓰레기통에 넣었다.
이번 판에 졌다는 선언이었다.
그리고 폰을 들고 시혁이 말한 것을 저장했다.
[페페티콘]
‘탐나는군.’
장웨이는 시혁에게 점수 좀 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