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5화 (85/500)

85화

-UX 회의실.

중국 웹소설 UX는 두 명의 대표를 두고 있다.

여러 투자도 받기도 했고.

그중 경영에 주도적인 입장인 사람이 바로 장웨이였다.

장웨이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회의실에 사람들은 장웨이의 말을 하나같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회의 안건은 이번 한국에서 만나는 미팅 때문이었다.

“이번에 한국에 있는 플랫폼 하나와 미팅을 가질 예정입니다. 그 전에 먼저 출판사와도 만날 예정이죠.”

“출판사 말입니까?”

여기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도 있기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찌 됐든 출판사 하나는 거쳐야 했다.

번역된 소설을 맡아줄 출판사가 그리 흔한 것도 아니고 지속적인 거래 관계를 유지해야 했으니까.

플랫폼 역시도 서로 미팅을 통해 좋은 계약을 끌어낼 작정이었다.

한 사람이 말했다.

“그런데 굳이 한국 플랫폼과 계약을 맺을 필요가 있습니까? 거긴 너무 작은 시장 아닙니까.”

“물론 그렇긴 하죠. 저희가 봐도 작은 시장이기는 하지만 무시할 정도는 아닙니다.”

장웨이가 피식 웃음을 보였다.

연재 형식으로 웹소설을 시작하는 플랫폼이 제대로 갖춰진 곳은 몇 없었다.

유럽이나 미국 쪽은 편수로 연재하는 것보다는 권수로 나오는 게 더 편한 시장.

그나마 연재라고 할 만한 것이 중국, 한국, 일본이었다.

장웨이가 말했다.

“이번 플랫폼 계약은 사실 돈을 벌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를테면 주춧돌이 될 테죠.”

이른바 쇼맨십.

UX가 세계 기업으로 커가고 있다.

앞으로 한쪽으로 쏠리는 편향된 회사가 아니라 세계를 노리는 기업이다.

이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물론 이 사업이 잘되면 더 좋겠지만 그건 꽤 시간이 흘러야 할 것이다.

“대표로서 여기에 안주할 수는 없습니다. 이미 기업은 상장했고 주가는 더 올라야죠. 미래의 가치를 올리는 게 중요합니다.”

장웨이가 그럴싸한 말을 던지고 손을 까닥했다.

뒤에 있던 비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패드의 자료를 보냈다.

“이번 출판사 계약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여기서 다 처리할까 생각했는데 마음이 바뀌었죠. 아머존에서 나온 무협 소설 번역의 일부입니다.”

다들 글을 읽어보았다.

영어에 능통한 직원들이 감탄했다.

요즘 번역이라는 게 프로그램을 쓰면 간단하다고 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번역기를 돌린 글에 편집자가 수정 작업만 거쳐주면 되니까.

하지만 소설은 다르다.

번역기가 뜻을 보내줄지언정 맛을 살릴 수 없다.

그래서 아직도 번역가가 필요한 것이다.

작가의 의도와 감성을 번역기가 대체할 수 없으니까.

윤문이 필요한 것도 이 이유였다.

“어떻습니까? 대단하죠?”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와! 정말 재밌습니다. 문체 역시도 아머존 책의 형식을 잘 따르고 있습니다. 번역되었다는 느낌이 안 드는데요?”

“원어민의 ‘말하는 듯이’라는 느낌을 잘 살리고 있네요.”

“번역가가 참 훌륭한 것 같습니다.”

장웨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KI 미디어와 계약을 하려고 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우연히 발견한 무협 소설 번역이었다.

이런 경우가 드물어서 반가운 마음에 봤는데 실력이 상당했다.

“보니까 KI 미디어가 번역일을 잘하고 해외 출판사와도 어느 정도 연계가 있더군요.”

“호오. 영업력이 상당하네요.”

“네. 거기 대표가 정말 일을 잘하나 봅니다.”

“하하! 우리 대표님 같은 분이 또 있나 봅니다.”

틈만 나면 이어지는 아부에 장웨이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 계약이 성사되면 작가들도 좋아하겠죠. 긍정적으로 바라볼 겁니다. 그리고 투자도 하고 싶네요.”

“해외 루트를 노리는 겁니까?”

“네. 그래요. 진짜 노리는 건 따로 있습니다. 시작은 한국에서 하죠.”

장웨이가 씨익 웃었다.

잘되면 좋고, 안 된다고 해도 손해는 없다.

여러 가지 노리고 들어가는 계약이지만 결국, 플랫폼에서 가지고 있는 작가의 작품으로 장사하는 거니까.

‘잘됐으면 좋겠네. 앞으로 계획 하나를 잘 실행시키려는 포석이니까.’

또 하나 장웨이가 노리고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여기 직원들은 모르고 있었다.

***

나는 시하랑 함께 고깃집에 왔다.

오늘은 여기서 미팅을 하는 날이었다.

어딘가 고급스럽게 보이는 곳이었는데 방들이 따로 나뉘어 있었다.

아무래도 비싼 고깃집인가 보다.

“시하야. 오늘 맛난 고기 많이 먹어.”

“아아.”

“저녁 먹고 나면 형아가 조금 일이 있거든. 여기 수현이 누나랑 같이 잠깐만 놀고 있어. 알았지?”

“아아!”

옆에 있던 서수현이 시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시하야. 누나랑 신나게 놀자.”

“아아.”

시하가 손을 흔들며 다른 방으로 안내받았다.

오늘은 현장실습 온 학생들을 위해 밥 사주는 일도 같이하고 있었다.

이른바 한꺼번에 일 처리를 하는 거지.

김병수와 다른 사람도 그쪽으로 넘어갔다.

같이 온 중국 작가의 가족을 맞이하는 쪽으로.

‘잘 놀겠지?’

일단 서수현에게 맡겨놨으니…….

옆에 있던 홍진수가 내 어깨에 팔을 걸쳤다.

“시혁 씨. 오늘 잘 부탁해.”

“네. 걱정 마세요.”

“밥 먹을 때는 그렇게 말을 많이 안 할 거야. 그러니 편히 먹어. 아, 맞다. 여기 고깃집 정말 맛있어.”

“자주 왔나 봐요?”

“여기 사장님과 대표님이 친구 사이야. 회식할 때 꼭 이 집에 간다니까.”

“매상 올려주는 비즈니스적인 사이?”

“그렇게 볼 수 있지. 하지만 진짜 친한 사이야. 그만큼 고기를 좀 더 주기도 해.”

“그렇군요.”

“그리고 말이야. 회식은 웬만하면 잘 안 하기도 하거든. 요즘 젊은 애들은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하잖아.”

“그렇긴 하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회식은 어떻게 보면 인간관계의 연장선이니 쉬는 느낌은 아닐 것이다.

동기를 끼리 모여서 술 한잔하는 건 좀 다른 이야기고.

“하지만 할 때는 비싼 고깃집으로 가는 거지! 안 한 비용만큼 몰아서 쏜다고 할까?”

“그게 오늘이겠네요.”

“당연하지. 지금 직원들이 다 왔잖아. 방도 따로 잡고.”

“나쁘지 않은 거 같은데요?”

이렇게 한 번에 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어차피 비용은 회삿돈이니.

“그래서 다들 들뜨는 거지. 아. 방은 저기야.”

안으로 들어가자 몇몇 사람들이 보였다.

송택수 작가님도 참가했고, 다른 작가 2명도 있었다.

홍진수가 말했다.

“같이 식사하고 나중에 작가들은 다른 방으로 갈 거야. 그래서 통역사가 한 명 더 오기로 했어.”

“저는 작가 방에서 통역하고 싶은데요. 그게 더 재밌을 거 같아요.”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신경 쓰는 시대상이 있을 것이다.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들도 다를 거고.

홍진수가 빙긋 웃었다.

“에이. 내가 재밌게 해줄게. 계약도 분위기 좋게 팍!”

“하하. 홍 과장님이 있으면 재밌긴 하겠네요.”

“그치?”

우리는 시시덕거리면서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중국 측 사람들이 도착했다.

우리는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식사가 시작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나는 그것을 통역해 줬다.

‘미리 좀 먹고 오길 잘했네.’

맛있게 먹기는 무슨.

이럴 줄 알고 저녁을 대충 배에 넣고 왔다.

UX 대표 장웨이가 말했다.

나는 그걸 동시통역해 줬다.

「대표님이 상당히 젊으십니다.」

「하하. 장웨이 씨도 젊으신데요.」

「이거. 서로 얼굴에 금칠하는군요. 그런데 옆에 통역사분은 정말 젊은데요?」

「저희 출판사에서 자랑하는 통역사입니다. 같이 일하는 번역가기도 하죠.」

장웨이가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괜히 민망해졌다.

말을 전달하는데 뭔가 내 얼굴에 금칠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리고 언제 내가 출판사 전속 통역사가 된 거지?

하여간 KI 대표님도 참으로 뻔뻔하시다.

장웨이가 나를 보며 물었다.

「오! 혹시 뭘 번역하셨습니까?」

「아! 이번에 저기 계신 송택수 작가님의 무협 작품을 영어로 번역했습니다.」

「아! 이시혁!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머존에서 책을 봤거든요.」

「기억해 줘서 감사하네요.」

장웨이의 눈이 반짝 빛났다.

옆에서 듣고 있던 홍진수가 어깨를 으쓱 폈다.

왜 홍 과장이 자랑스러워하는 거지?

장웨이가 말했다.

「중국어 실력도 상당한 같은데 혹시 중국 무협도 영어로 번역 가능합니까?」

나는 저 말이 KI 미디어에게 중요한 도움이 되는 말로 느껴졌다.

여기서 KI 미디어 인맥을 좀 드러내 주는 거지.

개인적으로 KI 미디어에 빚을 좀 졌다고 생각하고 있다.

초보인 자신에게 이렇게 지속적인 일거리를 준 것부터 시작해서 상당한 페이를 지급해 주고 있으니까.

만약 다른 출판사를 만났다면 지금쯤 이보다 적은 페이에 일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홍진수 과장에게 감사하지.’

이번 기회에 조금이라도 보답이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통역 일에 대한 돈을 주기도 했지만, 결과를 잘 끌어내면 더 좋으니까.

「가능합니다. 제가 이래 봬도 중국 무협을 좀 읽은 적이 있으니까요.」

「오! 그래요?」

「네. 최신 소설은 잘 모르겠지만요.」

나는 재빠르게 기억을 훑었다.

오늘 온 중국 작가님들 중에 읽었던 책이 있었을 것 같았다.

‘한 분 있네?’

2년 전 무협이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최신이지.

아마 지금도 연재하고 있을 것이다.

요즘 중국 웹소설은 팔리면 1000편은 그냥 기본으로 깔고 쓰니까.

「혼령귀환을 쓴 작가님이 계시네요. 영혼에 대한 통찰과 사연, 거기에 주인공에 대한 능력 부여까지.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저기서 다른 통역사를 데리고 이야기하고 있던 혼령귀환 작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보았다.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영혼을 자주 접하니 주인공이 죽음에 관해 꽤 냉소적이고 냉철한 판단을 하고 있더군요. 인간미가 없다고 할까요?」

실제로 이런 성격의 주인공이 인기가 있어서 뭐라 할 말은 없다.

트렌드라면 트렌드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인기 있는 성격을 형성하기 위해 작가님께서 개연성을 챙기면서 이런 설정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혼령귀환 작가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UX 직원들도 작품을 읽었는지 공감한다는 듯이 반응을 보였다.

나는 여기서 좀 묶어가기로 했다.

「혼이 아니라 이렇게 살아있는 채로 만난 건 정말 인연인 것 같습니다. 멀리서 온 새로운 벗으로 인해 이 자리가 정말 즐겁네요.」

나는 살며시 혼령귀환 글과 논어의 한 구절을 섞어서 말했다.

칭찬이 후한 중국.

논어 같은 고문(古文)을 중요시하기도 했다.

이 한마디는 어느 정도 통역사의 실력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나는 살며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새 다들 내 입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제 할 말 다 했는데?’

나는 살며시 고기를 집으며 말했다.

「음식이 식으면 혀는 즐겁지 않을 것 같은데 맛있게 고기를 먹죠. 아직 시간은 기니까요.」

드디어 입안에 들어간 고기가 정말 맛있게 녹았다.

유머러스하게 분위기를 풀며 고기까지 챙기는 이 여유.

다들 웃으며 식사하는 시간이 되었다.

***

한편 시하는 서수현과 맛있게 고기를 먹고 있었다.

김병수가 그 모습을 보며 옆으로 다가왔다.

“안녕. 시하야.”

“아?”

시하가 김병수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무리 봐도 기억나지 않는 얼굴이었다.

‘저런 얼굴도 있었나?’라고 생각했다.

김병수는 그런 시하와 살며시 친해지면서 서수현을 도와 점수를 조금 딸 생각이었다.

이야기도 하고 말이다.

“나는 김병수라고 해.”

“빙수?”

옆에 있던 서수현이 ‘풋.’ 하고 웃었다.

갑자기 빙수는 왜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시하의 말이 너무나 웃겼다.

김병수는 그 말이 이상하게 기분 나빴다.

“아니. 빙수 말고 병수야. 병수.”

“아아. 벙수.”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니지?”

“아?”

시하는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김병수가 말했다.

“흠흠. 내가 형 친구야.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이거 먹어.”

김병수가 시하의 그릇에 살며시 고기를 올려주었다.

시하는 생각을 정리했다.

옆에 개굴 누나가 빙수라는 이름에 웃었다.

시하의 말에 웃으면 기분이 좋다.

기분이 좋은 건 좋은 일이다.

그래서 앞의 사람 이름은 빙수다.

‘아아. 빙수. 형아. 친구.’

시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앞에 고기가 놓여 있다.

이야기도 하고 싶고 고기도 먹고 싶다.

마음이 급해졌다.

포크로 고기로 집으며 말했다.

“아아! 빙구!”

졸지에 빙구가 된 김병수로 인해 주변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옆에 있던 서수현이 숨 못 쉴 정도로 웃었다.

그때 중국 작가의 가족이 들어왔다.

“어? 시하야!”

어린 목소리가 방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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