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시하의 그림. 픽시브 업로드.
[제목 : Magic(마법)]
1. 우유가 가득 채워진 유리컵이 다른 컵에 따르는 그림
2. 놓인 두 컵의 우유의 양이 줄어들지 않는 그림
3. 유리컵이 또 다른 컵들을 따르는 그림.
4개의 컵이 우유로 가득 채워져 있다.
4. 어미 개와 네 마리의 강아지가 젖을 물고 있는 그림.
다섯 마리의 개가 다들 미소를 짓고 있다.
[좋아요] [하트] [퍼가기] […]
[siha.pepe.] [작품 목록]
#4cuttoon #magic #milk #happiness
[댓글]
-시하페페♡♡♡
-업로드하길 기다렸어요!
-오늘도 귀엽네요. 강아지 귀엽ㅎㅎ
사람들이 이번 그림도 아주 좋아했다.
귀여운 강아지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통하는 요소 중의 하나였으니까.
-그런데 마법이라니. 이건 또 무슨 의미를 뜻하는 만화일까?
-여기에도 뭔가 있나?
-우유가 줄지 않아서 마법이 아닐까?
-이번에도 환경에 관한 이야기랑 비슷한 뜻이 아닐까?
-난 알겠어! 이것도 간단한 비유야.
-맞아. 간단한데 이걸 모르다니. 저기 봐. 하나의 컵만이 다른 컵에 우유를 주잖아.
이번 그림은 꽤 간단했다.
마지막에 강아지 그림이 모든 것을 말하고 있었으니까.
-저 다이아몬드 무늬의 유리컵은 어미 개를 나타내는 것이고, 나머지 네 개의 컵은 강아지를 나타내는 것이지.
-젖은 언제나 생성되고 강아지는 그걸 영양분으로 쑥쑥 자라는 거지.
-그걸 줄어들지 않는 우유로 마법처럼 연출했지만 사실 어미의 젖을 말하는 거야!
-역시 시하페페!! 여전히 따뜻한 그림을 그려서 좋아!
-작가가 너무 착할 거 같아!
물론 이 네 개의 만화는 시하가 있었던 그림일기 같은 것이다.
시혁이 그저 4개의 그림 배치를 그럴듯하게 올린 것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걸 모르니 재밌게 해석을 했다.
물론 시혁의 스토리 의도가 다분히 들어가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쯧쯧. 그렇게 일차원적으로 생각하다니!
어김없이 등장하는 반대파가 나왔다.
-시하페페의 작품은 그냥 보이는 대로 해석하면 안 돼!
보이는 대로 해석하기 쉽게 배치한 게 시혁의 의도였다.
시혁은 생각을 적게 할 수 있도록 돕고,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다수의 사람을 즐겁게 만드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반대의 댓글은 시혁의 의도와 조금 벗어났다.
아주 조금만.
-그래도 이번에는 한 번만 꼬았네.
-뭔데? 같이 좀 알자.
-자. 저기 그림을 봐. 개수가 점점 늘어나는 컷을 왜 일부러 연출했겠어?
-왜?
-저건 젖을 나눠주는 게 아니야.
-그럼?
-바로 ‘낳는 거’라는 거지!
-!!!
-그래. 저런 어미가 새끼를 낳고 자신과 똑같은 하얀 강아지를 만드는 것부터가 진짜 의도야!
아니었다.
그런 의도는 전혀 없었다.
-자식을 낳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어미의 행복이지! 해시태그에 있는 happiness는 그런 의미야!
-헐?! 그런 의미였어? 어미의 행복이라고?
-그래! 얼마든지 자신의 것을 나누는 행복과 그걸 기뻐하는 자식들을 보는 행복!
-그럼 마법은 뭔데? 제목이 관통하는 주제 아니야?
-저건 제목이 마법이 아니라 마술이야!
어떤 의미에서 날카로운 분석이었다.
하지만 해석은 틀렸다.
댓글이 이어 말했다.
-마술은 마법같이 보이지만 사실 모든 장치와 기술이 준비되어 있어야 해.
-?? 무슨 말이야?
-마법처럼 특별한 사람만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이치에 맞는 마술처럼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걸 뜻해.
-으응?
-자식을 보는 어미의 행복은 누구에게나 있지. 그래서 마법이 아니라 마술이야.
-오오오!
-역시! 넌 대단해!
그런 의미는 아니었다.
하지만 댓글은 [좋아요]로 불타올랐고 또다시 의견이 갈렸다.
***
나는 이번에 올린 그림의 댓글을 보았다.
‘이 사람들 대체 뭐 하는 사람들이지?’
여러 가지 해석들을 보며 피식피식 웃게 된다.
다른 작가의 그림들은 그런 게 안 보이는데 유독 시하의 그림만 해석을 내놓는다.
하긴 이 사이트에서 4컷 툰치고는 특이하긴 하다.
글귀도 가끔 적지만 그림 네 개만 달랑 올리니까.
제목과 해시태그로 설명을 보충하기도 하고.
‘뭐 나쁜 말은 안 적혀 있으니까.’
나는 폰을 주머니에 넣고 기지개를 켰다.
그때 내 어깨를 누군가 주물러 주었다.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홍진수가 씨익 웃고 있었다.
“시혁 씨. 많이 피곤하구나? 어깨가 뭉쳤네? 어때? 오늘은 그냥 집에 갈래?”
“아하하. 어떻게 그래요. 그래도 현장실습 왔는데 할 건 해야죠.”
“이번에 중국 미팅만 잘해 주면 돼. 물론 공짜로 부리는 건 아니고.”
“그렇겠죠.”
그날 중국어를 한 이후로 굉장히 사근사근해졌다.
정말 의도치 않은 상황이었지만.
“아. 맞다. 그런데 이번에 무협 번역 어떻게 됐어요? 잘 팔렸어요?”
이건 나에게 중요한 문제였다.
잘 팔려야 계속해서 소설을 번역하지.
팔리지도 않는 것을 번역하면 뭐하겠나.
번역비로 다 주면 출판사에도 남는 게 없을 것이다.
홍진수가 애매한 미소를 지었다.
“으음.”
“왜요? 잘 안 팔려요?”
“아니. 하하하! 당연히 잘 팔렸지. 한 번에 푸니까 꽤 돈이 돼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생각만큼 많이 팔리지 않는다고나 할까?”
“아, 그래요? 그건 좀 아쉽네요.”
“쩝. 뭐 어쩔 수 없지. 알잖아. 약간 해외랑 철학이 좀 다르다고 해야 하나? 익숙지 않은 것도 있고.”
“그건 그렇죠. 웹 연재 형식도 아니니까요.”
“그래도 영상은 꽤 먹어줘서. 음! 파이가 역시 상당해.”
“오!”
아쉽다는 것치고는 꽤 돈이 되었나 보다.
이거 완결까지 열심히 번역해야겠다.
생각보다 번역이 척척 되어서 어느새 반 이상을 해 뒀다.
‘잘되면 좋지.’
물론 나에게 떨어지는 돈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작품이 잘되면 확실한 경력이 된다.
요즘 작가의 이름보다 작품의 이름을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 번역가는?
번역가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번역을 맡기는 출판 업체 쪽에서 기억에 새겨진다는 거.
‘그럼 맡길 일이 많아지지.’
잘되면 몸값도 오른다.
자리만 잡으면 안정적인 수입원으로 번역이 좋기는 했다.
일감만 있다면 말이다.
“내일이었죠? 미팅이?”
“내일이지. 그러니 오늘 빨리 들어가 쉴래? 어차피 할 일도 많은 건 아니잖아.”
“어차피 집에 가도 시하 데리러 갈 때까지 일할 게 뻔한데요.”
“그럼 시하를 빨리 데리고 가서 놀아주면 되지. 아. 맞다. 내일 시하도 데리고 오는 건 어때?”
“내일 미팅 장소예요?”
“응. 어차피 따로 방을 잡을 거야. 무협 작가님들도 따로 방을 잡을 거고.”
“거기에 시하가 있으면 불편해하지 않겠어요?”
“전혀. 이번에 무협 작가님이 가는 김에 한국에 놀러 오겠다고 해서 딸도 데리고 오나 봐. 시하랑 나이도 비슷해. 4살이었나?”
“많은 거 같은데…….”
홍진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비싼 곳에 먹는데 시하도 같이 먹으면 좋잖아.”
“그냥 어린이집에 있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그런데 딸도 같이 온대요?”
“어. 식사만 같이한다고 하더라고. 엄마랑 같이 올 건데 좀 심심하지 않겠어?”
“그래서 시하를?”
“시하가 조용하고 아무나 다 친해질 수 있잖아.”
“네? 아닌데요.”
물론 애들과 잘 지내는 건 맞다.
요즘 활발해서 말도 얼마나 잘하는데 조용하다니.
전혀 그렇지 않다.
물론 다른 애들보다 조용할지 모르지만.
“그리고 병수 씨랑 수현 씨도 같이 갈 건데 좀 그래서.”
“아…….”
하긴. 두 사람은 할 일이 없으니까.
그리고 밥 먹는 게 어색하긴 할 거다.
그나마 시하가 있으면 좀 나을지도?
병수는 모르겠고, 서수현은 아마 좋아할 거다.
“그럼 시하는 수현이에게 맡기면 되겠네요. 일단 제가 한번 이야기해 볼게요.”
“오! 그래 주면 고맙고.”
이왕이면 빨리 말해 두는 게 낫지.
당장 내일이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수현에게로 갔다.
오늘도 책을 보는지 눈이 빠질 듯이 읽고 있었다.
“잘돼가?”
“어? 어어. 오빠. 저 이제 검토서도 잘 적어요. 혹시 여기에 적성 있는 거 아닐까요?”
“내가 봤을 때는 영 아닌데? 딴 일 알아봐.”
“아이 씨. 진짠데? 한번 읽어보실래요?”
“그건 나중에 하고. 휴게실에 잠시 들리자.”
“왜요? 저에게 미안한 일 있어서 맛있는 차라도 대접하려고요?”
“어. 널 너무 많이 놀리다가 개구리 별명 정착시킨 게 미안해서 말이야.”
“아이 씨. 오빠가 단톡방에 그런 이야기만 안 했어도. 저 서개굴이 되었잖아요. 시하에게도 ‘개굴’이라고 불리고.”
“그래? 미안하네. 가자. 자판기 커피 쏠게. 무려 천 원짜리.”
나와 서수현이 휴게실로 갔다.
그런데 뒤로 김병수도 따라 들어왔다.
김병수가 말했다.
“아, 나도 커피 마시려고.”
그렇게 말하면서 힐끗 우리를 보았다.
무슨 대화하는지 신경 쓰는 태도였다.
뭐 들어도 상관없지.
“내일 밥 맛난 거 먹으러 가잖아.”
“네. 중요한 미팅이니까요.”
“그렇지. 그래서 말인데 시하도 데려갈 거거든? 밥만 좀 같이 먹고 지켜봐 줄 수 있어?”
“네. 그럼요.”
“거기에 애들도 오거든? 그냥 노는 것 좀 지켜보면 돼. 아마 식사 끝나면 엄마랑 같이 나갈 거야.”
“아하.”
“나는 계속 통역일 할 거 같은데. 그렇게 오래 이야기는 안 할 거야. 대충 2시간?”
“엄청 오래 이야기하는데요?”
“그거야 최소로 잡은 거지. 그 시간까지만 시하 좀 봐줄 수 있을까?”
“문제없어요. 저 이런 거 엄청 잘하거든요.”
“저녁이라 너무 늦은 시간이니까 집으로는 내 차로 데려다줄게. 근처에 키즈카페 있거든. 거기에 잠시만 있어 줘.”
그때 김병수가 끼어들었다.
“나도 도와줄 수 있어.”
“응?”
“나도 애들 좋아해.”
“어. 그래.”
내가 그렇게 말하자 김병수가 머쓱한지 어색하게 웃었다.
살며시 나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아이 씨. 나 좀 도와줘. 나 진짜 수현이랑 잘해 보고 싶다니까.”
“그걸 내가 왜?”
“야. 동기끼리 한 번만 나 도와주라. 알았지?”
서수현이 무슨 말을 하나 싶어서 눈을 굴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김병수가 살짝 떨어져서 내 어깨를 두드리며 물러났다.
“아무튼, 나도 도와줄게.”
나는 슬며시 서수현을 보았다.
표정이 안 좋아지는 걸 넘어 썩어 있었다.
“으음. 미안하지만 괜찮아. 시하가 낯을 많이 가려서 조금 그러네. 다음에 시하랑 친해지면 부탁할게.”
서수현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아무래도 싫어하는데 같이 권유하기는 좀 뭐했다.
김병수가 나를 힐끗 보았다.
표정을 보니 어느 정도 예상한 모양이었다.
살짝 고개를 숙이더니 김병수가 중얼거렸다.
“역시 너도…….”
“뭐?”
“하아. 아니다.”
김병수가 커피를 들고 휴게실을 나갔다.
서수현이 히죽 웃으며 내 옆구리를 쳤다.
“오빠. 잘했어.”
“그래? 그럼 이걸로 계산 끝?”
“아니, 아니죠.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죠.”
“그래?”
“네. 시하 돌보는 데 보상이 필요합니다.”
“뭔데? 말해봐.”
“나 너튜브 찍는 것 좀 도와줘요.”
“그건 그냥 마이크, 카메라 세팅하고 찍으면 되는 거 아니야?”
“그건 그런데 이번에 좋은 기회가 왔거든요.”
“어떤 거?”
선수현이 폰으로 어떤 카페 사진을 보여주었다.
따스한 조명에 마이크가 설치되어 있었다.
무대를 연상시키는 높지 않은 단상도 보였다.
서수현이 말했다.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 부르려고요.”
“오! 좋네.”
“그거 영상으로 좀 찍어줘요. 나중에 서비스로 시하랑 같이 부르게 해 줘도 좋고.”
“사실 시하랑 같이 부르고 싶은 게 목적 아니야?”
“아, 들켰어요?”
“시하랑 같이 부르는 건 시하에게 제안해 보고 영상은 내가 찍어줄게.”
“아싸. 땡큐.”
그런 거라면 쉬운 부탁이었다.
그런데 카메라 고정시키고 찍으면 되지 않나?
그래서 물어봤는데.
“오빠. 아는 사람 없으면 떨려서 못할지도 모르잖아요. 시하는 마음 안정제예요.”
“뭐, 그런 거라면. 아. 맞다. 너 채널 이름 바꾸는 게 어때?”
“이름이 왜요? 귀엽지 않아요?”
“[슈 채널]보다는 [슈개굴 채널]이 더 잘 어울릴지도. 영상에 마이크 빼면 눈이 제일 잘 나오잖아.”
“아 놔. 이 오빠가 정말!”
나는 서수현과 함께 킥킥거렸다.
***
-휴게실 뒤편.
킥킥대고 있는 서수현과 이시혁을 보며 김병수가 부들대고 있었다.
‘하아. 부럽다. 역시 시혁이가 수현이 좋아하나?’
이시혁이 서수현에게 친절한 이유는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저렇게 잘 도와주고 부탁할 리가 없다.
남녀 사이에 친구가 어디 있을까.
그리고 결정적인 증거가 또 있었다.
‘내가 그렇게 부탁했는데 안 들어줘?’
이건 서수현과 잘될까 봐 이시혁이 견제하는 게 틀림없다.
동생 핑계를 대었지만 이미 동생인 시하와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비록 좋은 첫 대면은 아니더라도.
‘내가 봤을 때 낯을 가리지는 않는 것 같던데!’
틀림없다.
이건 이시혁의 견제구라고 김병수는 확신했다.
‘좀 오래 있으면 없는 정도 생기지. 밥정이 얼마나 무서운데.’
선배들에게 조언을 들었다.
밥정에서 시작하는 정은 마치 가랑비에 옷에 젖어 들듯이 살며시 무거워질 거라고.
그 말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어느 정도 이점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소리였다.
‘그런데 기회가 없어!’
김병수는 기회만 있다면 서수현이 자신에게 호감을 느끼는 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서수현.
예쁜 사람은 철벽도 철저히 치고 있다.
‘아니야. 아직 기회가 있어. 내일 식사는 같이하잖아? 그때 내 매력을 보여주는 거야!’
김병수는 조그마한 기회를 잘 노리기 위해 고민을 거듭하며 휴게실 뒤편을 떠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