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2화 (82/500)

82화

일이 잘 해결된 건 좋은데 애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다.

시하는 이미 나를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렇게.

“형아. 히어로. 할배 히어로.”

할배 히어로는 좀 그렇지 않니?

히어로가 정년퇴직이 없다면 너무한 것 같다.

젊었을 때처럼 몸이 튼튼하지 않을 텐데.

이게 아니지.

시하가 저렇게 보니까 계속 헛생각이 든다.

“크흠. 시하야. 나쁜 개는 아니었어. 그냥 놀고 싶어 했던 것뿐이야.”

개는 언제든지 물 수 있고 그건 본능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주인이 어떻게 교육을 하느냐이다.

충분히 사랑을 주고, 물지 못하게 제대로 교육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물론 제때 와서 물었을지 안 물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목줄을 놓은 것부터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관리 부주의였다.

“형아. 할배 히어로.”

아무래도 전에 지어낸 이야기가 시하의 머리에 깊게 남았나 보다.

아니, 어쩌면 시하는 천재가 아닐까?

기억력이 엄청 좋은 거지.

정말 어쩌면 이른 시일 내에 나사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올지도 모른다.

앞으로 아이큐 검사 같은 건 받지 말아야 할지도.

시하가 내 바지를 잡아당겼다.

“시하. 형아. 지켜.”

“응. 다음에 시하도 형아 지켜줘. 오늘 종수도 지켜주고 장하네.”

“아아. 시하도! 늑대. 얍!”

시하가 두 손을 옆구리에 두었다.

눈에 힘을 주어 위협을 했다.

부리부리.

눈썹이 살짝 올라간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아무래도 눈에 힘을 줘서 늑대가 기절하는 이야기를 기억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무섭지는 않고 귀여움만 남았다.

“아아. 힘!”

“응. 눈에서 힘이 느껴지네. 으아아악. 너무 강해서 형아가 일어서 있지를 못하겠다.”

나는 그대로 쪼그려 앉았다.

시하가 놀라서 눈에 힘을 풀었다.

“형아. 개차나?”

“응. 괜찮아. 괜찮아.”

“아아.”

시하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시야가 가까워서 그럴까? 아니면 위치가 좋아서 그럴까?

그대로 내 품에 쏘옥 안겼다.

3살. 이시하.

형아 품에 가는 걸 놓치지 않는 아이였다.

그때 승준과 하나가 다가왔다.

“와! 시혀기 형아! 진짜 히어로다! 엄청 세! 나중에 공룡도 이기겠어!”

“시혀기 오빠. 머시써…….”

여기 팬 두 명 추가요.

아무래도 시하 말고 팬이 더 늘어난 기분이었다.

뒤에 있던 종수가 우물쭈물하며 다가오는 게 보였다.

“고맙습니다.”

“괜찮아. 많이 무서웠지?”

“시하가 있어서 괜찮았어요.”

“그래. 앞으로 시하랑 친하게 지내줘.”

“네.”

승준이 그런 종수를 보다가 어깨동무를 했다.

“다음에 나도 지켜줄게.”

“그래. 그러면 나도.”

아무래도 두 사람도 친해지게 되나 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다들 뭐 하고 있었어?”

“형아. 피구.”

“응? 시하 피구 했어?”

“아아.”

“이야. 벌써 피구를 배웠어? 시하 대단하네. 어때 공으로 좀 맞췄어?”

“아냐.”

“아, 역시. 시하는 너무 착해서 못 맞췄구나. 역시 착해.”

내 말에 승준이 반응했다.

“아닌데. 그냥 못 맞춘 건데.”

“원래 시하가 말을 잘 안 해서 그렇지. 속마음은 그게 아닐 거야.”

시하는 착해서 공으로 친구들을 못 맞추는 것뿐이다.

이런 조건만 아니었으면 엄청난 활약을 했을 게 분명했다.

승준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몰라! 시하야. 이제 안에 들어가서 놀자.”

그렇게 애들을 데리고 슝 하고 가버렸다.

시하가 나보고 오라는 듯이 뒤에서 손짓했다.

나는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그럼 나도 가볼까?

“시혀기 오빠.”

“응? 하나야. 넌 왜 여기 있어?”

“오빠랑 놀려고!”

“아. 그래? 그럼 먼저 들어가 있을래? 오빠는 원장 선생님이랑 할 말이 있거든. 금방 갈게.”

“알아써. 꼭 와!”

“응.”

그렇게 하나도 보내고 유다희 선생님도 어린이집으로 들어갔다.

밖에 남은 것은 이야기를 끝낸 원장 선생님과 나뿐이었다.

“얘기는 잘 끝냈어요?”

“네. 그럼요. 잘 끝냈죠. 전에도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쉽게 해결되었어요.”

“그래요?”

“네. 결국, 이건 싸움인데 싸움에서 중요한 건 강한 힘이거든요. 전 그 힘을 쓸 줄 알고요.”

역시 원장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닌가 보다.

“이 어린이집은 복지를 목적으로 하고 있어요. 교수, 교직원의 아이들이 있죠.”

“그렇죠.”

“그게 무슨 의미를 할까요? 도와줄 인맥 풀이 넓다는 소리죠.”

“오!”

“강인대학교에 법학과도 있고 실제 현직 검사랑 변호사도 넘쳐나죠. 그리고 교수님 역시도 그들의 스승이고.”

“그렇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대학교 소속 어린이집은 인맥이 막강하네.

잘못 걸리면 교수뿐만 아니라 그 출신 인간들의 적이 되어 버린다.

법으로 진행하면 이길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그래서 저 아줌마가 사색이 되어 버렸네?’

손해배상을 청구하면 얼마나 나올까?

돈 문제로 직결되면 굉장히 꼼짝도 못 할 거 같았다.

원장이 말했다.

“모든 불상사는 막을 수 없어요. 그 대신 얼씬도 못 하게 하는 방법이 있죠.”

“이렇게 하는 거군요?”

“네. 봐주면 한도 끝도 없어서. 이럴 때는 단호해야 해요.”

원장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솔직히 좀 무서웠다.

그리고 든든하기도 했다.

이런 사람이 어린이집 원장이라 다행이었다.

“히어로는 저보다 원장 선생님이신 거 같은데요?”

“애들 눈에는 적을 물리친 사람만 히어로니까요. 그 뒤처리 해 주는 사람의 노고는 눈에 띄지 않잖아요?”

“그건 그렇죠. 갑자기 너무 다큐로 받으시는데요?”

“그런가요?”

원장이 이제야 웃음을 보였다.

그러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여긴 어쩐 일로?”

“아! 그게…. 오늘 알림장에 산책하며 동물을 보러 간다고 했잖아요.”

“그랬죠.”

“크흠. 혹시나 해서요.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하고.”

“가끔 가는 행사인데요. 더 더워지기 전에 한번 들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그런데 너무 걱정이 많은 거 아니에요?”

“크흠.”

그래도 이렇게 와서 결과가 좋으니 괜찮지 않을까?

물론 조금 지켜보는 선에서 보고 돌아가려고 했다.

“제 덕분에 아무도 안 다쳤죠.”

“그건 감사하고 있어요.”

“하하. 그런데 산책 가는 곳이 거기죠? 산 조금 올라가면 있는 할아버지네.”

“네. 맞아요. 그때 강아지 맡긴 곳이요. 사실 오늘 애들이랑 그 강아지를 보러 가려 했는데…….”

“아…….”

하필 오늘 개에게 위협을 받았으니…….

일정이 취소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일단 물어보죠. 애들이 좋아할지도 모르니까요.”

“네. 사실 그 개가 출산해서 아이들이 봤으면 좋겠다 싶었거든요.”

“아, 출산을…. 네?”

차우차우 믹스견인 그 녀석.

어느 틈에 엄마가 되어 있었다.

나보다 어른이 되었구나?

오늘 놀랄 일이 참 많은 것 같다.

***

-산으로 가는 언덕길.

아이들에게 물으니 단번에 가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다들 즐거운 마음으로 언덕으로 올랐다.

나도 시하의 뒤를 걸으며 함께 걷는데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일을 겪은 참인데 잊어버린 듯이 저렇게 신나게 올라가고 있었으니까.

어쩌면 우리 어른보다 아이들이 공포를 이겨내는 힘이 더 큰 걸지도 모른다.

‘아니면 호기심이 더 앞서는 게 아닐까?’

초록빛이 가득한 산과 햇빛.

조금 덥지만 서늘한 바람이 불어 시원하다.

여름에는 산으로 가자는 생각도 틀린 생각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집 안에 있는 에어컨이 좋다.

몸에 열이 많으니까.

하지만 시하는 밖이 마음에 드나 보다.

자연에 있는 색감은 그 어떤 물감으로도 표현하기 힘드니까.

이런 싱그럽고 따뜻한 색을 보여주는 게 시하에게 도움이 되겠지.

“애들아. 너무 뛰면 다친다?”

“네!”

대답만 잘하고 성큼성큼 걷는다.

다행히 뛰는 건 아니지만 빠른 걸음으로 총총 움직이고 있다.

강아지를 볼 수 있다는 게 그렇게 좋을까?

나는 괜히 웃음이 나왔다.

어느새 우리는 익숙한 풍경을 맞이했다.

주변에 밭과 닭 5마리가 있는 양계장.

그 위에 있는 집과 강아지가 있는 우리까지.

“시하야. 전에 멍멍이가 강아지 4마리를 낳았대.”

“아아!”

“멍멍이가 엄마가 된 거래.”

“엄마?”

“응. 엄마.”

“아아.”

시하는 빨리 보고 싶은지 방방 뛰었다.

어느새 우리는 강아지가 있는 곳에 왔다.

할아버지가 먼저 반겨서 인사를 한 다음에 새끼가 있는 곳으로 데려다주셨다.

“애들이 눈 떠서 이제 똘망똘망해. 그래도 아직 작지.”

“와! 정말 작네요?”

“하하. 차차, 저 녀석의 작은 몸에서 나오니 신기하지.”

“그러네요.”

차차는 우리가 할아버지께 건네준 강아지 이름인가 보다.

“시하야. 멍멍이 이름이 생겼어. 차차래. 차차.”

“차차?”

“응. 차차가 엄마가 됐다네?”

“아아. 차차!”

시하가 차차를 불렀다.

할아버지가 만든 개집이 보였다.

넓어서 안이 잘 보였는데 차차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멍멍!”

“차차!”

시하와 차차가 재회했다.

차차 역시 시하를 기억하는지 가까이 다가와 얼굴을 비볐다.

여느 개처럼 뛰어들지 않고 천천히 걷는 모습이 똑똑하다 싶었다.

주위에 있던 아이들도 차차가 너무 귀여워 만지기 시작했다.

“귀엽다!”

“진짜 귀엽다!”

“저기 봐. 강아지 애기야!”

나는 웃음이 났다.

자기들도 애기면서 애기가 귀엽다고 하고 있었으니까.

엄마를 뒤따라온 강아지들이 낑낑거리며 걸어 나왔다.

차차가 그런 새끼를 봤는지 가까이 다가와 혀로 핥았다.

애들이 너무 좋아했다.

하나같이 붙어 앉아서 개들을 관찰했다.

승준이 말했다.

“와! 우리 집에서 키우고 싶다!”

“하나도! 하나도! 키우고 싶어!”

“나도! 나도!”

할아버지가 허허 하고 웃더니 분양하고 싶으면 엄마에게 허락받으라고 했다.

나는 시하를 보았다.

역시 시하는 우리가 키울 수 없는 걸 알고 있는지 그냥 가만히 강아지를 보기만 했다.

‘곤란하네.’

솔직히 키우게 해주고 싶지만 그럴 여력이 되지 않았다.

가끔 이렇게 만나러 오는 건 되지만.

그런 나의 마음을 알았을까?

할아버지가 내 어깨를 톡톡 쳤다.

“이런 내가 생각이 짧았구만.”

“아니에요.”

“흠흠. 다들 키우지 못해도 얼마든지 여기 오면 보여줄 수 있다.”

시하가 그 말에 반응했다.

“아아! 차차!”

“하하. 시하도 차차 봐서 좋지?”

“아아.”

시하가 차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차차도 시하가 좋은지 눈을 살며시 감았다.

“아아. 차차.”

“멍멍.”

눈빛으로 무슨 대화를 그렇게 나누는 걸까?

하여간 너무 귀여웠다.

시하가 일어서더니 짧은 다리로 집 앞을 걸었다.

차차가 그런 시하의 뒤를 따랐다.

어미가 그런 모습을 보이자 새끼들도 시하의 뒤를 따라갔다.

5마리가 시하의 뒤를 졸졸 따라오는 모습.

“아아!”

시하도 신이 나는지 기분이 좋아졌다.

애들도 강아지들 뒤를 따라 움직였다.

갑자기 시작된 기차놀이.

뚜벅뚜벅. 빨빨빨. 뚜벅뚜벅.

“좋지?”

할아버지가 내 옆에 앉았다.

“네. 좋네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애들은 생명력이 넘쳐. 활기차지.”

“그렇죠?”

“하하. 젊은 사람 앞에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아니에요. 저도 좋다고 생각해요.”

할아버지가 미소를 머금었다.

앞에 서 있는 원장 선생님을 턱으로 가리켰다.

“가끔 이렇게 원장이 애들을 데리고 오는 이유를 아나?”

“네?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요? 밭이라던가.”

“하하. 그런 것도 있지. 뭔가 시골 느낌 나니까. 그런데 그게 아니야. 괜히 나 생각해서 애들 데리고 오는 거거든.”

“으음.”

“혹시 외로울까 봐.”

“외로우세요?”

“조금은 그렇지. 그런데 네 덕분에 외롭지 않아. 요즘 차차가 인생의 동반자거든.”

“다행이네요.”

“애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져. 막 미래가 밝아지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런가?

사실 나는 그 정도까지는 모르겠다.

다만 시하가 앞의 미래가 밝았으면 좋겠다.

즐거워하는 저 마음이 언제나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할아버지가 말했다.

“생명이란 건 참 신기하지.”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저 차차 몸에서 아이들이 태어나다니.”

“하하. 가족이 생긴다는 건 좋은 거지.”

“시하는 어떻게 느낄까요?”

“기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나는 시하가 태어났을 때를 생각했다.

쪼글쪼글 저 조그마한 아이가 어느새 스스로 걸을 정도가 되었다.

그때의 간질거리던 마음을 시하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때 시하가 나에게 다가왔다.

“형아!”

“응?”

“시하도 우유!”

“으응?”

시하가 가리킨 것을 보았다.

어느새 차차가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우유를 먹이고 있다고 말한 것 같았다.

엄마에게 우유가 나온다고.

‘우유라니.’

시하가 나를 가리켰다.

“형아. 우유.”

“하하. 시하야. 형아는 우유 안 나와.”

“왜?”

“어? 엄마만 우유가 나온다고 할까?”

시하야.

형아가 나오면 큰일 나.

옆에 있던 할아버지가 배를 잡고 웃고 있었다.

너무 웃으시는 거 아니에요?

할아버지가 말했다.

“하하. 시하야. 그럼 할아버지가 우유 나오는 거 보여줄까?”

“아아.”

끄덕끄덕.

나는 황당해하며 할아버지를 보았다.

할아버지한테 우유가 나온다고?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