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1화 (81/500)

81화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어렵다.

살다 보면 더 어렵게 느껴진다.

이유 없어 보이는 적의가 올 때도 있고, 나는 별생각 없는데 상대 쪽에서 싫어하는 경우도 있다.

김병수는 나에게 그냥 동기다.

사실 그 동기가 누구에게 관심 있고 들이대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

무슨 상관이겠어.

그런 사람일 뿐인데.

하지만 엮이는 순간부터 귀찮아진다.

‘뭐 조금 신경 쓰일 뿐이지.’

딱히 나 역시도 뭐라 반응하고 싶지 않다.

그저 스무스하게 잘 지내고 싶은 마음뿐이다.

피할 수 없는 상황일 때는 그저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다.

귀찮은 것에 마음을 쓰기에는 시간이 아까우니까.

그렇게 나는 커 왔고, 환경이 그렇게 만들어왔을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은 다르게 행동하고 성장해 왔을 것이다.

아무튼, 커 가며 인간관계에 대한 고집이 생긴다.

‘그럼 시하도 그럴까?’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때로는 배우면서 바꾸기도 하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시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되어서 그렇다.

어린이집에 있는 아이들은 7명.

그중에 종수라는 아이는 자신도 알고 있다.

승준과 시하와 자주 부딪치는 모양이었다.

“시하야.”

“아?”

“혹시 싫은 친구라도 있어?”

“아아.”

도리도리.

별로 싫어하지는 않는 걸까?

이건 조금 의외였다.

양치기 소년은 그렇게 미움받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그래? 그렇구나. 그럼 종수랑 친해?”

“아냐.”

“응. 안 친하구나?”

“아아.”

끄덕끄덕.

사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그냥 동화책을 펼쳤다.

전에 읽어 줬던 양치기 소년.

“그럼 형아가 재밌는 이야기를 해 줄게.”

“아아.”

시하가 내 무릎 위에 앉았다.

동화책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늑대를 팡팡 쳤다.

“형아. 이거!”

“응. 전에 읽어 줬었지?”

“아아.”

“양치기 소년이 거짓말을 많이 해서 사람들이 도와주지 않았잖아.”

“아아!”

“그런데 그다음 이야기가 있어. 양들을 모두 잃고 난 뒤의 이야기야.”

시하가 궁금하다는 듯이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빨리 다음 이야기를 해 주라는 듯한 눈빛이었다.

“양치기 소년은 다음부터 거짓말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엉엉 울고 있는 소년에게 할아버지가 다가왔습니다.”

“아아! 할배!”

“푸훗. 마자. 할배가 와서 양치기 소년을 일으키며 눈물을 닦아줬습니다.”

“왜?”

“할아버지는 양치기 소년이 정말로 반성한 걸 알았거든. 아. 반성이 뭐냐면 나쁜 짓을 다음에 안 하기로 하는 거야.”

“아아.”

시하가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할배. 형아?”

“형아가 할아버지 역이야?”

“아아.”

아무래도 시하의 머릿속에는 내가 할아버지인 모양이다.

그건 또 웃긴 상상이네.

“그 뒤로 양치기 소년이 마을 사람에게 모두 사과하고 다시 양을 키우기 시작했어.”

“아아.”

“하지만 아직 위기는 끝나지 않았어. 늑대가 다시 나타났거든. 그런데 늑대는 이제 양이 아니라 양치기 소년을 노린 거야.”

“!!!”

“그때 할아버지가 나타났어. 늑대와 싸웠지.”

“아냐! 형아. 지켜!”

시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나를 꼬옥 끌어안았다.

아니, 이렇게 안고 있으면 같이 잡아먹히겠다.

늑대와 싸우는 나를 상상했던 걸까?

시하가 정말 귀여웠다.

“걱정 마. 시하야. 할아버지는 사실 히어로였거든.”

“히어?”

“응. 엄청 강해서 굉장해. 양치기 소년을 끌어안고 눈에 팍 하고 힘을 줬어. 그러자 늑대가 할아버지의 무서움에 그대로 기절해 버리고 말았어. 깨갱 하며 말이야.”

“아아.”

“그렇게 늑대를 잡아서 양치기 소년과 마을은 다시 활기찬 아침을 보낼 수 있었어. 해피엔딩이야.”

거짓말하면 벌 받은 이야기도 좋지만 반성하고 변해서 잘사는 이야기도 좋지 않을까?

이상적이기는 해도 다시 마을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

현실에서는 그러기 힘들겠지만.

‘그래도 아직 어릴 때는 가능하지 않을까?’

서로 싸우면서 크기도 하고, 마음이 안 맞아 부딪치기도 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이좋게 놀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도 들려주고 싶었다.

언제나 정답이 하나는 아니니까.

“시하야.”

“아?”

“자유롭게 생각해. 알았지?”

“아아. 형아. 이거.”

역시 알아듣지도 못했나 보다.

저렇게 다른 동화책을 집어 드는 것을 보니까 말이다.

‘다 알아듣는 게 이상한 거지.’

나는 웃으며 시하의 그림책을 잡았다.

***

-어린이집.

오늘은 승준이가 공을 들고 왔다.

물론 공을 들고 오는 것은 언제나 있는 일이었다.

오승준.

축구를 사랑하는 아이였다.

꿈이 축구선수일 정도로 축구를 사랑했다.

물론 축구공만 좋아하는 아이가 아니다.

어느 아이돌 팬이 본진과 부진을 두는 것처럼 승준 역시도 다른 공을 쓰는 스포츠를 좋아했다.

“시하야. 오늘 내가 배구공 들고 왔어!”

“아?”

시하는 배구공이 뭔지 몰라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승준의 손에서 통통 튀는 공을 아래위로 바라보았다.

“이걸로 피구를 하는 거야.”

“피구?”

“응. 피구가 뭐냐면 공을 던져서 맞추는 거야.”

시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본 선생님이 승준의 공을 뺏었다.

“여기서 피구 하면 안 돼요.”

“앗!”

“대신 밖에서 하는 건 돼요. 그럼 다 같이 나가서 피구를 해 볼까요?”

가끔 밖에서 노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어린이집 앞에는 축구를 할 수 있는 공간도 있으니까.

수는 7명이라도 있을 건 다 있는 곳이었다.

“자. 그럼 다들 나가서 놉시다!”

원장과 선생님이 앞장서서 애들을 데리고 나갔다.

작은 축구장.

가운데 선을 기준으로 공을 던지면 되니 편했다.

7명이지만 선생님도 포함해서 수를 맞췄다.

원장은 심판을 보았다.

승준이 말했다.

“나는 시하랑 할래!”

“하나도. 하나도!”

“아아!”

역시 언제나 뭉쳐 다니는 셋이 하나로 합쳐졌다.

종수 역시 언제나 노는 다른 애들과 팀을 이뤘다.

시하와 승준을 이길 생각이 가득해 보였다.

선생님은 이번 기회에 애들이 친해졌으면 했다.

언제까지 맨날 으르렁댈 수는 없으니까.

“그럼 선생님은 시하팀으로 갈게. 그럼 수가 딱 맞지?”

그렇게 4 대 4 피구가 시작되었다.

승준이 말했다.

“종수야. 오늘은 내가 이길 거야.”

“메롱! 맞춰 보시지!”

“간다!”

승준이 종수를 향해 공을 던졌다.

종수가 얄밉게 혀를 내밀며 공을 피했다.

떨어진 공을 주운 종수가 시하를 보았다.

공의 목표는 시하.

종수가 있는 힘껏 공을 던졌다.

휘익!

시하는 공이 날아오는 것을 보며 몸을 돌렸다.

뒤를 돌아 도망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결국 엉덩이에 공이 맞았다.

툭. 데구르르.

“아?”

시하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엉덩이를 보았다.

앞에는 공이 구르고 있었다.

종수가 그런 시하를 보며 웃었다.

“하하! 이겼다!”

시하는 아무렇지 않았지만, 승준이 분개했다.

“시하야! 원수를 갚아줄게!”

“아아!”

승준이 공을 잡았다.

목표는 종수.

하지만 승준은 피구에 대해서 잘 알았다.

시하에게 패스했다.

“시하야. 다시 나한테.”

시하는 승준에게 공을 건넸다.

시하를 피해 달리고 있던 종수가 재빨리 멈췄다.

하지만 이미 승준에게 가까이 온 상태.

승준이 공을 던지자 그대로 종수를 맞췄다.

“아!”

“하하! 복수다!”

“으으.”

종수가 분한지 승준을 째려보며 밖으로 나섰다.

그 뒤로부터는 팽팽한 접전이 이어지더니 결국, 시하팀의 승리로 돌아갔다.

스포츠라는 것이 격해지면 마음도 격해지는 법이다.

서로의 손을 잡고 고생했고, 멋졌다고 이야기할 만큼 애들의 정신은 성장하지 않았다.

특히 종수는 많이 씩씩거렸다.

자기 과시를 좋아하고, 언제나 이기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이 패배가 어린 종수에게는 너무나 썼다.

“아직 안 졌어! 한 번 더 해!”

“아니야. 졌어!”

“한 번 더 하면 이길 수 있어!”

시하는 그런 종수를 빤히 바라보다가 공을 주웠다.

그러더니 종수에게 공을 가져다주었다.

“공!”

“뭐야? 놀리는 거야?”

“종수. 공!”

“저리 가.”

종수가 공을 쳤다.

데구르르 굴러가는 공이 울타리에 부딪혔다.

“너는 적이야. 그러니까 승준한테 가.”

“적 아냐.”

시하는 고개를 저었다.

종수는 못된 애지만 그렇다고 전부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승준과 하나에게 잘하면 같이 놀아도 되는 친구.

시하의 기준에서 종수는 그런 존재였다.

종수가 말했다.

“나는 공으로 다시 널 맞출 거야.”

그렇게 말한 종수가 굴러간 공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공을 잡고 시하를 보았다.

“각오해.”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며 눈을 이글거렸다.

그때였다.

울타리를 넘어서 개가 뛰어들어 왔다.

목줄이 달린 개였는데 아이들보다 컸다.

개가 짖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눈에 종수가 보여서 막 짖어대기 시작했다.

“월! 월!”

종수가 겁을 먹었는지 뒷걸음을 쳤다.

시하는 그런 종수를 보며 형아가 이야기해준 양치기 소년을 떠올렸다.

앞에 있는 것은 개가 아니라 늑대로 보였다.

‘종수!’

종수의 얼굴이 많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시하는 재빨리 달려서 종수 앞으로 막아섰다.

“아아!”

종수가 팔을 벌린 시하를 바라보았다.

“뭐, 뭐야. 도망쳐야지.”

때마침 선생님도 시하와 종수를 보았다.

순식간에 개와 대치되는 모습을 보고 선생님이 재빨리 뛰었다.

원장은 남은 애들을 한곳에 모아 뒤로 숨겼다.

선생님이 소리쳤다.

“얘들아! 가만히 있어!”

하지만 종수와 시하의 귀에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닿지 않았다.

조그마한 공포가 몸을 지배했으니까.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종수였다.

시하의 손을 잡고 그대로 냅다 뒤로 뛰었다.

“도망가!”

그 모습을 본 개가 둘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개는 사실 두 아이와 놀고 싶을 뿐이었다.

물론 그 사실을 모르는 애들과 선생님이 보기에는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어느새 선생님이 시하와 종수에게 가까이 다가와 뒤로 숨겼다.

“저리 가!”

선생님이 돌을 가지고 개에게 던졌다.

하지만 개는 휙 하고 피하더니 그대로 가까이 다가갔다.

선생님 역시도 사실 무서웠다.

갑자기 나타난 대형견은 어른도 무섭게 할 요소로 충분했다.

월! 월!

개가 짖으며 선생님에게 달려들었다.

시하는 그런 선생님의 뒤에 숨어서 형아를 불렀다.

“형아! 형아!”

“시하야!”

시하의 부름에 반응을 한 것일까?

시하는 고개를 휙 하고 들었다.

형아가 보이는 것보다 빠르게 가방이 개에게 부딪치는 것이 보였다.

퍽!

개가 깨갱 하며 뒤로 물러섰다.

시혁이 재빨리 시하와 종수에게 다가왔다.

“시하야. 괜찮아?”

“아아. 형아.”

“응. 이제 형아가 왔으니까 괜찮아.”

시혁이 개를 바라보았다.

떨어져 있는 가방을 줍고 그대로 개를 째려보았다.

숨 막히는 대치가 이어진 뒤.

“밀키!”

목줄을 놓친 주인이 달려왔다.

그것으로 상황은 종료되었다.

***

나는 진짜 오늘 식겁했다.

시하를 보러 오니까 갑자기 대형견과 대치하고 있었으니까.

그것만 보고 눈이 뒤집혀서 가방을 날렸다.

다행히 아무도 안 다치고 무사했다.

나는 개 주인을 노려보았다.

“아니, 개 목줄을 놓치면 어떡합니까!”

“죄송합니다.”

“이렇게 큰 개가 애들을 물면 어떻게 하실 거냐고요.”

“우리 밀키는 착해서 물지 않아요!”

“그걸 어떻게 압니까?”

“정말이에요. 교육도 잘 시켜서 절대로 물지 않아요. 그치 밀키야?”

나는 메마른 웃음을 보였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지.

개 주인이 말했다.

“설마 문다고 해도 그건 공격적인 물기가 아니라 애교로 장난스럽게 무는 거예요. 우리 밀키가 얼마나 순한데요.”

“어쨌든 문다는 거 아닙니까? 애들 피부가 약해서 살살 물어도 다치는 거 모르세요?”

“죄송하다고 했잖아요. 그리고 아무도 다치지 않은 거 보면 모르세요? 우리 밀키 순해요!”

나는 뭐라고 더 쏘아붙이려다가 어깨에 누군가 손을 올렸다.

원장 선생님이었다.

“여긴 이제 저에게 맡기세요.”

“네.”

나는 순순히 물러났다.

사실 놀랐을 시하 곁에 있어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원장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변명은 재판장에서 하시고요. 여기 대학교인 거 아시죠? 심지어 어린이집이고요.”

이 부분은 원장 선생님이 똑 부러지게 하실 것 같았다.

나는 시하를 보았다.

“시하야. 괜찮아?”

“아아.”

시하가 종수의 손을 꼬옥 잡았다.

종수가 그런 시하를 보며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무서웠어! 엉엉.”

종수가 시하의 품으로 들어갔다.

시하가 그런 종수의 등을 토닥였다.

“갠차나. 갠차나.”

나는 그런 시하를 보면서 살며시 웃었다.

앞으로 두 사람은 잘 지낼 것 같았다.

위기를 극복한 동지애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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