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8화 (78/500)

78화

오랜만에 방긋 웃는 시하의 모습에 심장이 두근거린다.

너무 귀엽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시하에게 다가갔다.

“시하야. 여긴 어떻게 왔어?”

“형아! 이거!”

“응?”

시하가 펭귄 가방에서 필통을 꺼내더니 나에게 주었다.

그렇구나. 이걸 전해 주러 온 거구나.

어쩐지 강의 들을 때 필통이 어디 갔나 했다.

“형아. 공부!”

“형아 공부 못 할까 봐 이거 들고 온 거야?”

“아아.”

그때 뒤에서 눈치 없는 사람이 입을 열었다.

“근데 강의 끝났는데?”

나는 살며시 뒤를 돌아보며 ‘닥쳐.’라고 입 모양으로 말했다.

내 얼굴이 일그러졌는데 후배인 놈이 눈을 피했다.

그렇게 무서운 얼굴은 아니지 않나?

“나, 시혁 선배 화내는 모습 처음 봤어.”

“넌 눈치 좀 챙겨라.”

뭐라고 소곤대는 것 같은데 일단 웃는 얼굴로 시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마워. 형아가 이걸로 열심히 공부할게. 자 봐. 시하야.”

“아아.”

나는 책상에 있던 펜을 재빨리 서수현에게 던지고 필통에서 새 펜을 꺼냈다.

뒤에서 서수현이 ‘못됐어.’라는 말이 들렸지만, 사뿐히 무시했다.

노트를 꺼내서 열심히 무언가 끄적거렸다.

“와. 시하가 펜을 전해 줘서 공부가 아주 잘된다.”

“아아. 형아. 공부!”

“정말 정말 잘된다. 시하야. 고마워.”

“아아.”

“너무너무 잘돼서 공부가 금방 끝났네? 가자!”

시하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살며시 볼을 매만지며 시하의 손을 잡고 강의실을 나섰다.

그때 서수현이 나를 불렀다.

“아! 오빠! 팀플 누구랑 할 거예요?”

“그냥 아무나. 남는 사람 있으면 거기에 넣어줘.”

“그럼 오빠랑 내가 팀이다?”

“맘대로 해. 나 바빠.”

뒤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야! 수현아! 시혁 선배 혼자 독점하지 마. 아무나라고 하잖아.”

“맞아. 맨날 시혁 선배랑 같이해서 좋은 점수 받고. 이번에 나도 같이해 보자!”

“야, 그러지 말고 가위바위보 해!”

나 의외로 인기가 좋구나?

괜히 1, 2학년 때 과탑이 아니긴 하다.

학기 초 때 토론에서 보여준 모습에 점수를 더 얻었을지도?

아무렴 어때.

“시하야. 어린이집에 가자. 오늘 필통 잘 들고 와준 기념으로 형아랑 놀자.”

“아아.”

“그런데 여기 손쉽게 찾아왔네? 대단해.”

“아아. 리사.”

“응? 알리사가 도와줬어?”

“아아. 이거.”

시하가 주머니에서 꺼낸 종이를 보았다.

읽어보고 나는 이게 뭔가 싶었다.

하여간 웃긴 선생님이었다.

전에도 느꼈는데 은근히 심상치 않은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소유자였다.

“이게 뭐야.”

“형아. 가자!”

“응. 가자. 가. 그런데 시하야.”

“아?”

“아니야. 아무것도.”

저기서 티 나게 기둥 뒤에 숨어 있는 수상한 원장 선생님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자.

‘역시 혼자 보내지는 않았구나?’

나는 살며시 웃었다.

***

그렇게 팀플과 보고서를 끝낸 어느 날.

이모티콘 런칭 날이 성큼 다가왔다.

나와 시하는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이모티콘 런칭을 기다렸다.

“와! 시하야. 봐봐. 여기 시하가 그린 이모티콘이 있어.”

“아아!”

폰에 이모티콘 32종류가 나란히 있었다.

“형아가 이거 구매할게.”

“아아. 시하도!”

“응? 시하가 구매할래?”

“아아.”

나는 시하에게 이걸 누르면 된다는 걸 가르쳤다.

구매하고 난 뒤에 [나에게 보내기]로 이모티콘을 여러 번 써먹었다.

참 귀여운 페페 이모티콘이었다.

줄여서 페페티콘이라고 하자.

개인적으로 시하티콘이라고 하고 싶다.

“이제 이게 팔리면 돈이 들어오는 거야. 물론 이번 달에는 안 들어오겠지만.”

“아아.”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 그치?”

“형아. 이거.”

시하가 자신이 그린 이모티콘이 화면에 올라오는 게 신기한지 여러 개를 톡톡 눌렀다.

아무래도 시하의 관심은 이모티콘에 꽂혀 있나 보다.

“형아. 시하도. 이거.”

“으응? 폰이 갖고 싶다고?”

“아아.”

“하하. 어쩌지? 폰은 좀 곤란한데?”

“아?”

아무리 그래도 시하에게 벌써 폰을 줄 수 없었다.

“아냐. 시하 포온~”

“안 돼요.”

“아냐. 형아~”

시하가 내 다리를 흔들흔들 흔들었다.

올려다보면서 두 손을 꼬옥 모았다.

저건 또 어디서 배운 애교지?

어디 보자. 요즘 스마트폰을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곳이…….

거기에 유심하고, 요금제 셀프 개통으로 하면…….

어? 아니지. 아니지.

‘하마터면 넘어갈 뻔했다.’

저 두 손 꼬옥 모으는 포즈가 너무 귀여웠다.

역시 방심할 수 없다.

그래도 저번에 본 슈퍼카에 비하면 폰 정도는 약과인 거 같기도 하고…….

아니지. 정신 차리자.

“안 그래도 태블릿을 봐서 그런데 눈에 나빠져요.”

시무룩.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아!

“그러면 이렇게 하자. 시하야. 태블릿에 형아가 이모티콘을 쓸 수 있게 해줄게.”

“아?”

무려 액정태블릿.

여기에 SNS를 깔 수 있다는 말씀.

요즘 안 되는 게 없는 시대였다.

내 아이디로 들어가게 할 수 있으면 해결이다.

시하는 정확히 폰이 갖고 싶은 게 아니라 페페티콘을 사용하고 싶은 거니까.

“그럼 되지? 자 봐. 뭐야. 이미 깔렸었네. 여길 형아 아이디로 들어가면. 짜잔! 시하도 톡을 사용할 수 있어요!”

“아아!”

“여기 봐봐. 여기를 클릭하면 돼 알았지?”

나는 이시혁이 있는 곳을 보여주며 시하를 만족시켜 주었다.

시하도 좋아하며 이모티콘을 톡톡 보냈다.

[나에게 보내기]는 잘 쓰는 기능이었는데 이렇게라도 시하가 만족하면 되었다.

“그래도 너무 오래 쓰면 안 돼. 알았지?”

“아아.”

“어? 시하야. 어린이집 갈 시간이야. 빨리 준비하자.”

요새 차가 있다고 조금 늦장 부리는 경우가 많았다.

빨리 시하를 챙겨서 어린이집에 데려다주었다.

‘그럼 이제 할 일을 해 볼까?’

놀랍게도 오늘은 강의 없는 날이다.

이제 기말 시험을 치면서 하나둘씩 종강이 되는 추세.

오늘 있을 강의는 없지만, 꼭 할 일이 있다.

‘이건 미리미리 대비해야지.’

이번 이모티콘이 런칭했지만 팔릴지는 미지수였다.

현재 이모티콘은 정말 넘치도록 많으니까.

‘혹시 안 팔리면 어떡해?’

그러니 영업을 발로 뛰어야지.

나는 먼저 오늘 한가해 보이는 문도환에게 갔다.

먼저 취업센터에 계시는 교직원들을 위해 커피를 돌렸다.

“형. 커피 마셔.”

“와. 어쩐 일이야? 네가 커피를 다 사고? 그것도 여기 있으신 분들 전부?”

“더우신데 고생하잖아. 그리고 내가 커피 돌린 적도 꽤 되잖아.”

“그건 네가 여기 근로했을 때고.”

“그건 그래.”

나는 아메리카노를 쪼옥 빨며 목을 적셨다.

크흠. 크흠.

“형. 처음 돈 벌 때 통장에 들어가잖아. 그거 보며 무슨 생각 했어?”

“글쎄? 알바해서 번 돈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느낌? 열심히 일했는데 이것밖에 안 받는구나 싶었지.”

“나도 그래. 처음 편의점 알바했을 때 뭐 교육 비용? 그런 거에 제외하고 최저시급보다 적게 줬을 때가 있었지.”

“야, 그거. 이제는 안 그러지.”

“그렇지. 군대 가기 전에 일이야. 안 그래도 적은데 거기에 더 적게 줘.”

“처음으로 사회의 쓴맛을 볼 때지.”

문도환도 당한 게 있는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문도환이 말했다.

“뭣도 모르고 근로계약서도 안 썼던 때가 있었는데.”

“돈 떼먹혔겠네?”

“하하. 그랬지. 그래도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어.”

“그거 전에도 이야기해 주지 않았어? 고3 때 이야기.”

“어. 그랬어? 근데 그거 이야기하러 온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이거 이야기하러 온 거지.

“그때 적은 돈으로 부들부들 떨게 되는 심정 이해해. 고3 때라고 해도 아직 어리니까. 그 어린 마음에 상처가 되었을 거야.”

“그래. 조금 아니, 많이 충격이었지.”

“세상이 더러움에 물들여 있구나. 그런 생각도 들고.”

“그 정도까지는 아닌데?”

“아니야. 지금은 지나간 일이라 형의 기억이 미화돼서 그래. 그렇잖아.”

“그… 렇지?”

“그러니까. 어릴 때는 세상이 좀 더 아름답다고 느끼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그것도 세 살이면 말이야.”

“세 살이 아픔을 알기에 이른 나이긴 하지.”

“내 말이 그거야. 형. 지금 잘못하다가 한 아이가 아픔에 떨지도 몰라. 막 세상이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비관적으로 살지도 모르지.”

“어. 어릴 때 그런 경험이 있으면 그럴지도 모르지. 응?”

문도환이 가늘게 뜬 눈으로 나를 보았다.

갑자기 한숨을 내쉬다가 천장을 쳐다보았다.

뭔가 눈치챈 걸까?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살짝 눈을 돌리더니 이내 결심했다는 듯이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문도환이 말했다.

“시혁아.”

“응.”

“빨리 줘 봐.”

와. 이 형 눈치가 많이 늘었구나.

그래. 형이라면 그렇게 도와줄 줄 알았어.

“고마워.”

“뭘. 설마 요새 네가 유니세프 일까지 할 줄 몰랐네. 월 3만 원이면 되지? 형. 그 이상은 없다. 성과 올리려고 이렇게까지 하냐.”

“뭔 소리야?”

“응? 그거 아니야. 야! 설마? 보험이야. 아, 나 보험 많은데. 쯧. 너 생각해서 안 들어줄 수도 없고.”

“그건 또 뭔 소리야. 그런 거 아니야.”

“이것도 아니야? 그럼 뭔데?”

아무래도 이것까지는 눈치채기는 힘들긴 하지.

“시하가 그림 그리는 거 알지?”

“어. 알지.”

“이번에 이모티콘을 냈거든. 그게 런칭했어. 형. 사줄 거지? 아직 어린데 0이 적게 찍히면 시하가 실망할 거야. 이번에 통장도 만들었단 말이야.”

“에라이!”

문도환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흘렸다.

“야! 설마 이거 말하려고 약을 팔았어? 나 참. 내가 2200원도 안 쓰는 그런 남자인 줄 알아? 원한다면 내가 이거 10개도 사줄 수 있다.”

“역시. 형이야.”

“나 참. 그래서 뭔데? 좀 보자.”

“바로 이거.”

나는 페페티콘을 보여주었다.

문도환이 그걸 보더니 단번에 결제했다.

“정말 귀엽네.”

“응. 나랑 같이 그린 거야.”

“응? 너랑 같이 그린 거 아니…….”

“쉿!”

뒷말하기 전에 나는 문도환의 입을 막았다.

‘형. 설마 내가 형 설득하려고 이렇게 빌드업을 깔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취업센터이기는 하지만 여긴 다른 부서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오고, 학생들도 온다.

아침이긴 하지만 사람들을 꽤 된다는 소리다.

먼저 관심을 보인 것은 옆에 있던 직원이었다.

“뭔데? 나도 이모티콘 좀 보자.”

“네! 바로 이겁니다! 형! 여기 단톡방 있지? 올려서 보여줘.”

문도환이 톡으로 올려서 보여주자 여기저기서 귀엽다고 난리가 났다.

학생들도 관심이 있는지 기웃거리는 상황.

“형. 형. 커피 진짜 맛있다. 그치?”

“야, 너. 진짜.”

“이 정도면 대충 열 명 되겠네. 다들 사용할 거고 학생들도 단톡방에 임티 쓰면 광고도 될 거고.”

“헐?”

“형. 오늘도 열심히 일해. 나, 갈게.”

오늘 할 일을 끝낸 나는 만족하며 취업센터를 나섰다.

시하야. 형아는 너를 위해서 영업도 잘 뛴다.

시하 통장에 ‘0’이 꽤 보이겠지?

적어도 동그라미는 3개는 될 거다.

오늘따라 아메리카노가 참 시원하다.

***

영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톡으로 서수현에게 톡을 보내기 시작했다.

시하의 이모티콘으로.

-이시혁 : (안녕! 하세! 이모티콘)

-서수현 : ??? 뭐예요?

-이시혁 : (아아! 하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내미는 이모티콘)

-서수현 : 으잉? 임티 귀엽네요.

-이시혁 : 이번에 새로 산 임티야. 어때? 진짜 귀엽지?

-서수현 : 네! 그런데 뭔가 어디서 본 그림 같은데?

-이시혁 : ㅋㅋㅋㅋㅋ

-서수현 : 그런데 이거 보여주려고 톡 한 거예요?

-이시혁 : 응. 그러면 안 돼?

-서수현 : 아 뭐예요ㅋㅋㅋㅋ

나는 이모티콘을 적절하게 보여주며 톡을 보냈다.

-이시혁 : 팀플 고생 많았어. (고마어~ 이모티콘)

-서수현 : 오빠도 고생 많았어요. (고마어~ 이모티콘)

나는 흐뭇하게 웃었다.

역시 3학년 과대의 임티 부자다운 스피드였다.

벌써 페페티콘을 사다니.

넌 벌써 걸렸어!

-이시혁 : 벌써 샀어?ㅋㅋㅋㅋ

-서수현 : 네ㅋㅋㅋ 보다 보니 귀여워서ㅋ

대충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폰을 주머니에 쏙 넣었다.

오늘따라 알리사처럼 콧노래가 흥얼거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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