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7화 (77/500)

77화

식사가 시작되었다.

임시훈은 짬뽕 국물로 놀란 속을 달랬다.

얼큰한 매운맛이 속에서 올라오자 정신을 번쩍 차렸다.

살며시 시하를 보았다.

‘정말인가?’

솔직히 놀랐다.

저 자그마한 아이의 손에서 그림이 완성되었다는 게.

물론 계약을 하러 나가면 아이와 함께 그린 엄마가 있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명백히 상황이 다르다.

‘픽시브에 올려진 그림은…….’

이모티콘과 비슷한 선화일지도 모르지만, 색감은 전혀 달랐다.

단순한 그림.

하지만 그 속에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단순하지 않았다.

저렇게 입가에 짜장을 묻히고 오물오물 씹고 있는 아이가 그렸단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처음에 거짓말을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야. 저 아이는 천재인가?’

천재.

표현력과 창의력이 남다른 아이들.

영재 발굴에 힘쓰는 곳에서도 그들의 그림은 어찌 보면 기괴하고 특별했다.

‘그런데 시하는 그렇지 않아.’

특별했지만 기괴하지도 않고 마냥 어렵지만도 않다.

누구나 그리려면 그릴 수 있는 그림체였다.

쉽게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그림체.

마치 이모티콘처럼.

솔직히 그게 더 소름이 돋았다.

‘간단한 게 아니야.’

인기 작가들의 이모티콘을 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간단함이 있다.

하지만 창작이라는 이름이 그렇게 마냥 간단하지 않은 법이다.

‘저 형도 그래.’

오히려 무서운 것은 이시혁이었다.

감각적인 스토리텔링 부분.

저 아이가 픽시브에 올린 그림들의 글귀와 제목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전적으로 이시혁이 맡은 오롯한 부분.

그걸 보는 사람들에게 조약돌을 던져 상상의 물결을 일으켰다.

정확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선을 지켜서.

‘두 형제다 말도 안 되는데 시혁 씨는 대체 뭐 하는 사람일까?’

짬뽕을 먹으면서 호기심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너무 놀라서 무슨 맛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어느 정도 식사가 끝나자 임시훈이 입을 열었다.

“여기 맛있죠?”

“네. 시하도 아주 잘 먹네요. 시하야. 맛있었지?”

“아아! 마시써!”

임시훈이 살며시 웃었다.

저렇게 귀여운 아이가 그림을 그린 게 아직도 신기하다.

어디서 3살 아이가 그린 이모티콘이라고 말해도 허풍이 심하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시혁 씨. 혹시 무슨 일을 하시는지 물어봐도 됩니까?”

“아, 저 대학생이에요.”

“아하. 어쩐지 많이 젊어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그냥. 그 나이처럼 보이죠?”

“네. 대학생처럼 보입니다.”

임시훈은 솔직히 조금 실망했다.

뭔가 형도 천재적으로 특별한 일을 할 줄 알았으니까.

“어떤 과이십니까?”

“국어국문이요.”

“아, 역시.”

왠지 스토리텔링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 것 같았다.

원래부터 재능이 있었던 거겠지.

사실 국문과라고 해서 다들 스토리텔링이 뛰어난 건 아니었지만.

그냥 이시혁의 이미지랑 잘 맞는 것 같았다.

“그런데 참 특이하네요. 보통 이런 자리는 엄마와 딸이나 아들이 나오거든요.”

“아, 그게. 저희 둘이 살아서 그래요. 제가 시하 보호자거든요.”

“아…….”

임시훈이 괜한 걸 물어본 건 아닌가 싶어 시혁의 눈치를 보았다.

사과해도 이상할 거 같고,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도 이상할 거 같았다.

“그럼 돈은 어떻게?”

“아, 대충 일을 하면서 지내요. KI 출판사에 번역 일도 하고요.”

“아, 그러시군요. 제가 말하기는 뭐하지만 조심하시죠. 그쪽 업계는 양아치가 많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때 시하가 말했다.

“양아치?”

“시하야. 양아치는 나쁜 사람을 말하는 거야. 흠흠. 기억 안 해도 돼. 알았지?”

“왜?”

“별로 좋은 말은 아니야.”

“왜?”

“이상한 사람만 쓰는 거야.”

시하가 임시훈을 쳐다보았다.

졸지에 임시훈은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시혁도 수습하려고 하는지 고민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이상한 사람은 아니고 착한 어린이는 안 쓰는 말이에요.”

시혁이 잘 수습했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시하가 임시훈을 가리켰다.

“아냐.”

“푸흡.”

졸지에 임시훈은 착한 어린이가 아니게 되었다.

어른이니 어린이가 아니기는 하지만.

임시훈은 왠지 뭔가 당하는 느낌이었다.

괜히 헛기침이 나왔다.

“커흠. 제가 어린이는 아니긴 하죠.”

“하하. 죄송해요. 요즘 설명하는 게 꽤 힘들어서.”

“이해합니다. 아무튼, 번역 일을 맡으면 걸러야 할 출판사를 잘 보세요.”

“네. 감사합니다. 다른 일도 하고 그래서 벌이는 괜찮아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오! 다른 일이요?”

“네. 통역 일을 하거든요. 하비니스 기업이랑도 해봤고, 멜츠 기업이랑도 일해 봤어요.”

“예?”

“네?”

실망했다는 것 취소다.

형 역시도 범상치 않았다.

무슨 대학생이 그런 기업들과 통역사 일을 하나.

‘내가 23살 때 뭐 했지?’

생각해 봤자 괜히 우울해지는 이야기였다.

‘어쨌든 천재 형제잖아.’

임시훈은 오늘 한 가지는 알았다.

특이한 형제들을 봤다고.

그 와중에 시하는 중국집에서 준 수정과를 호로록 마시고 있을 뿐이었다.

“우엑!”

그리고 맛이 없는가 보다.

***

시혁이 오후 수업이 있어서 시하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었다.

잠깐만 듣고 온다는 형아의 말을 들으며 시하는 어린이집에 입성했다.

선생님이 그런 시하의 손을 잡았다.

“시하야. 오늘은 안 오는 줄 알았어.”

“아아. 아냐. 승준, 하나. 만나.”

“그래? 승준이와 하나는 저기에 있는데?”

시하는 방으로 쏙 들어갔다.

승준과 하나가 함께 숫자 공부를 하고 있었다.

커다란 스케치북에 동물들이 숫자 모양을 취하고 있었는데 색칠도 함께할 수 있었다.

열심히 ‘1’ 모양의 뱀을 색칠하고 있던 승준이 고개를 들었다.

“아! 시하다! 시하야! 안녕!”

“아아. 안녕!”

“시하다! 시하야~ 하나도 안녕!”

“아아. 안녕!”

둘은 시하에게 와서 손을 잡고 같이 숫자 공부를 하자고 했다.

똑똑한 승준이 시하에게 가르쳐줬다.

“이건 일이야! 하나라는 뜻이야.”

“아아.”

그때 하나가 외쳤다.

“하나는 요기 있눈대?”

“바보야. 그 하나가 아니야.”

“하나 바보 아니야.”

“일 할 때 하나라고. 여기 뱀.”

“하나는 뱀 아니야.”

시하는 뱀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승준과 하나가 이제 그 주제에 관심 없는지 책을 넘겼다.

한 번에 넘겨서 그런지 다음 나온 숫자는 3이었다.

“아아! 서이!”

승준과 하나도 기억했는지 함께 말했다.

“마자! 이거 서이~야. 셋이라고도 하고 삼이라고도 해!”

“마자. 마자. 할모니가 말해져써!”

“아아! 할매!”

계속해서 사투리를 배우는 시하였다.

선생님이 그 모습을 보고 있다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아이들의 대화는 역시 어디로 튈지 몰랐으니까.

승준이 말했다.

“같이 공부하자!”

“마자. 가치하자!”

쌍둥이의 말에 시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무언가 생각이 났다.

형아가 공부할 때마다 꺼내는 필통.

펭귄 가방에 넣어둔 것이 생각난 시하가 가방을 열었다.

“아아. 형아 꺼!”

시하가 필통을 꺼냈다.

그걸 본 승준과 하나가 시하에게 다가갔다.

“시하야. 그거 시혀기 형아 꺼야?”

“어? 시혀기 오빠 꺼? 하나도 볼래!”

특히 하나의 눈이 더욱 반짝였다.

시하는 필통을 열어서 형아의 펜들을 보여주었다.

와르르.

쏟아진 펜들이 가득했다.

형아가 이렇게 많은 펜을 가진 것이 뿌듯한 시하가 자랑을 했다.

“형아. 마니! 부자!”

시하는 배를 쭈욱 내밀었다.

형아는 부자니까 이렇게 많이 들고 다닌다.

승준과 하나가 자랑스러워하는 시하를 뒤로 하고 펜을 살폈다.

“와! 진짜 많다!”

“하나는 한 개 갖고 시퍼!”

시하는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냐! 형아 꺼.”

그 말에 하나가 실망했다.

시하는 아랑곳하지 않고 필통에 펜을 다시 넣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그 모습을 보다가 고민에 빠졌다.

지금 시혁이 강의를 듣고 있을 텐데 뭐로 필기를 할까?

친구들에게 펜을 빌렸겠지.

하지만 어린이집 선생님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프로 어린이집 선생님이라면 언제 어느 때든 기회가 왔을 때 교육하는 법.

“어머! 시하야. 형아 필통 갖고 온 거야?”

“아아. 형아 꺼.”

“그럼. 형아 공부는 어떻게 하지?”

“아?”

시하는 자신이 가진 필통을 바라보았다.

형아는 필통 없이 펜을 들고 공부를 했다.

그럼 필통에 없는 펜을 들고 공부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없으면 형아는 공부를 못 해.”

“!!!”

“그럼 지금이라도 필통 갖다 줘야 하지 않을까?”

“아아!!”

끄덕끄덕.

시하는 펭귄 가방 안에 필통을 넣었다.

선생님이 시하에게 가방을 매줬다.

“그럼 시하야. 형아가 있는 곳에 잘 갈 수 있지? 형아는 여기 국문과 건물에서 수업을 듣고 있을 거야. 모르면 여기 과 사무실로 들어가면 돼.”

“아아.”

“선생님이 여기 종이에 써줄 테니까 형아 만나러 가야 해.”

선생님이 종이에 시하에게 필요한 글을 써줬다.

이거면 누구에게 물어도 갈 수 있을 것이다.

“자, 그럼 신발도 신었겠다. 출발!”

“아아!”

“형아에게 필통 갖다 주고 와야 한다! 혼자 할 수 있지?”

“아아!”

시하는 혼자서 어린이집을 나섰다.

물론 이건 시하의 착각이고 원장님이 시하의 뒤를 따라나섰다.

유다희 선생님은 어린이집에 남아 애들을 돌봤다.

“형아. 형아.”

시하는 펭귄 가방을 꼬옥 잡고 형아를 찾으러 떠났다.

기억력이 좋은 시하는 국문과 건물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다.

전에 형아랑 와 본 걸 기억해냈다.

“형아! 형아!”

형아 노래를 부르면서 짧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였다.

펭귄 가방이 들썩들썩 흔들렸다.

대학생들이 그런 시하를 보며 호기심 가득한 얼굴을 했다.

가방을 두 손에 꼬옥 쥐고 가는 귀여운 아이.

그런 모습을 그냥 두고 보지 못하는 대학생도 존재했다.

“어? 저기 애기야. 부모님은 어디 계시니? 왜 혼자 있어?”

“아아. 형아!”

“응? 하하. 내가 형아이긴 하지. 얘들아 봤어? 나보고 형아래.”

“아냐!”

옆에 있는 친구들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야. 아니라잖아. 양심이 있어야지. 너는 삼촌뻘이야.”

“크흑! 펙트라 반박할 수 없다.”

“애가 형을 찾고 있나 본대?”

“그러게. 혼자면 너무 위험하지 않아? 삼촌이 도와줄까?”

시하는 고개를 저었다.

“시하. 혼자!”

그러고는 주머니에 있는 종이를 쫘악 펼쳤다.

[국문과 건물. 3학년 이시혁 형아를 찾습니다.]

시하는 이것만 있으면 형아를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다시 종이를 구깃구깃 접어서 상의 앞주머니에 쏙 넣었다.

대학생들이 그런 시하를 보며 너무 귀여워했다.

“아기야. 저기가 국문과 건물이야. 사실 국문과 말고도 다른 학과도 있지만.”

“아아! 고마어.”

“큭큭. 진짜 귀엽다.”

대학생들과 헤어진 시하가 국문과 건물로 향했다.

대학생들이 따라갈까 생각했지만, 뒤에 있는 원장 선생님이 있어서 따라가지는 않았다.

참고로 원장 선생님은 알아볼 수 없게 이미 모자, 선글라스, 마스크로 변장 중이었다.

시하는 뒤에서 따라오는 원장 선생님을 눈치채지 못했다.

어느새 국문과 건물에 도착한 시하는 계단을 발견했다.

“아?”

올라가기에는 너무 높아 보였다.

슬며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는 게 보였다.

짧은 다리를 열심히 놀리며 엘리베이터에 탔다.

“아아!”

갑자기 들어온 아이를 보고 다른 대학생들이 놀랐다.

마침 거기에 알리사가 있었다.

“응? 시하야.”

“아? 아! 리사!”

“응. 시하야. 여긴 어쩐 일이야?”

“아아. 형아! 펜!”

“응?”

시하가 어린이집 선생님이 써준 글자를 보여주었다.

“아하! 형아에게 펜을 주러 가는 거야?”

“아아. 형아. 공부!”

“응. 공부하려면 펜이 필요하지.”

교양 수업을 들으러 온 알리사가 시하를 위해서 3층을 눌러줬다.

“형아는 3층에 있을 거야. 아 맞다. 내가 같이 가줄까?”

“아냐. 시하. 혼자!”

“알았어. 시하 혼자 할 수 있다는 거지?”

“아아.”

실제로 엘리베이터도 도움을 받은 시하였지만 누구도 거기에 태클을 걸지 않았다.

그저 따뜻한 눈으로 지켜볼 뿐이었다.

형아의 공부를 위해 펜을 가지러 온 아이.

너무나 귀여웠다.

띵!

어느새 엘리베이터는 3층에 도착했다.

시하는 재빨리 내려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알리사가 살며시 시혁이 강의하는 장소를 가리켰다.

“아마. 형아는 저 방에 있을걸?”

“아? 아아.”

시하는 강의실로 다가갔다.

안에는 교수가 수업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수업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교수가 음흉한 목소리로 말했다.

“잘 들어라. 벌써 강의의 막바지가 다가왔다. 이제 기말이 머지않았다는 거지. 그걸 위해 준비했다. 이번에는 기말 시험 대신 팀플 과제로 대체한다.”

“으아아아!”

“각자 보고서로 제출하도록. 철저하게 감점제로 해서 상대 평가를 할 생각이다.”

“으아아아!”

밖에 있는 시하가 듣기에는 교수가 굉장히 괴롭히는 것으로 들렸다.

“그럼 오늘 강의는 여기까지. 머리 빠지게 생각해 봐라.”

문을 연 교수가 깜짝 놀라서 시하를 보았다.

“응? 여기 왜 아기가?”

시하는 이 사람이 대학생 삼촌들을 괴롭히던 목소리와 같다는 걸 알았다.

괴롭히면 나쁜 아이다.

그리고 나쁜 아이는…….

시하가 큰 소리로 말했다.

“양아치!”

“어어?”

교수는 상당히 당황했고, 그걸 본 대학생들은 폭소했다.

그리고 시혁은 그런 시하를 보고 얼굴을 감싸 쥐었다.

아이고야.

시하는 형아를 발견했다.

“형아!”

시하가 해맑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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