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6화 (76/500)

76화

보통 이모티콘은 심사, 승인, 검토, 런칭의 과정을 거친다.

약 3개월의 기간이 걸리며, 그때까지 이모티콘 작가가 하는 것은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아니면 계약을 나누고 수정 보안의 작업을 거치던가.

하지만 언제나 예외적인 상황은 있다.

예를 들면 인기 이모티콘 작가라던가.

그런 경우는 런칭 날짜도 굉장히 빨리 잡히고 검토도 금방 끝나게 된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신인과 기성을 같은 선상에 놓을 수 없으니까.

“으아! 눈 빠질 거 같아!”

오늘도 이모티콘 심사를 보는 임시훈은 눈을 비벼댔다.

작가가 하는 거야 심사를 넣으면 된다지만 이걸 심사하는 직원들은 하루에 몇십 개라도 봐야 한다.

아침 회의 때 괜찮은 거 몇 개 추려서 안건에 올리고 반응이 좋으면 심사는 통과.

거기에 계약을 나누고 다시 검토 과정을 거친다.

요즘 비슷한 게 너무 많으므로 저작권에 꼼꼼히 신경 쓰고 있다.

‘특히 토끼가 너무 많단 말이지.’

온갖 토끼란 토끼는 다 나오는 건 착각일까?

그림이 괜찮아도 컨셉이 너무 비슷하면 또다시 미승인.

이제는 이런 거 보는 눈은 베테랑인 임시훈이었다.

“뭐 좀 괜찮은 거 없나?”

그러다 보니 뭔가 신박한 걸 찾는 느낌.

아니면 귀여운 거나.

그때 하나의 이모티콘이 임시훈의 눈에 밟혔다.

정확히는 임티가 아니라 이름에 말이다.

‘어? 시하페페?’

임시훈은 이 이름을 알고 있었다.

요새 픽시브에서 떠오르고 있는 작가.

가벼운 그림체인데 속에 뜻은 전혀 가볍지 않다.

오히려 묵직한 한 방을 감추고 있었다.

‘설마 같은 작가? 아니지. 같은 작가겠지.’

이모티콘처럼 단순화된 이 그림체는 틀림없이 동일 인물이었다.

‘재밌네.’

기대되었다.

펭귄.

흔하다면 흔하고, 흔하지 않다면 흔하지 않은 동물.

이미 강력한 이미지를 가진 펭귄 임티가 많은데 거기에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임시훈은 임티를 자세히 보았다.

“오호?”

임티의 제목은 [3살 페페]였다.

인사하는 것도 재밌었다.

보통 Hi의 ‘하’를 따와서 인사를 붙이는 게 많다.

임시훈이 이름이면 ‘임-하-’라던가.

아니면 평범하게 ‘안녕’이라는 글자를 넣던가.

그런데 이 임티는 조금 달랐다.

“안녕! 하세! 특이하네. 느낌 있어.”

시작부터 범상치 않은 인사법.

실제로 3살이 저렇게 말하나 싶지만 그래도 있을 법했다.

물론 시하가 저렇게 말하고 있는 것을 임시훈은 몰랐다.

“어디 보자. 음. 오! 괜찮네? 딱 말 잘 못 하는 3살이 말할 법한…….”

그림체도 귀엽고, 명확한 컨셉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승인해도 될 정도였다.

거기에 솔직히 사심도 들어갔다.

임시훈은 정말로 시하페페라는 작가를 좋아하니까.

‘이건 내일 안건으로 올려야겠네.’

모처럼 마음에 드는 임티가 와서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그 기분도 오래가지 않았다.

“다들 회의실로 모여!”

갑작스러운 소집에 다들 일을 멈추고 자리에 모였다.

“다다음주 화요일에 임티 런칭 날짜 잡힌 거 알고 있지?”

“네. 부장님.”

“이미 임티 6개 컨셉도 맞췄고 프로모션도 잡혔잖아.”

“그렇죠.”

보통 런칭은 그냥 되는 게 아니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모든 임티가 런칭이 정해져 있고, 프로모션 역시 정해져 있다.

한마디로 확고한 컨셉이 회의를 통해 잡혀 있는 것이다.

“문제가 생겼어.”

“어떤?”

“글쎄. 후우. 승인이 난 임티를 확인해 보니까 표절이더라고. 아니, 넌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부장이 짜증 난다는 듯이 인상을 썼다.

지적받은 직원이 몸을 움츠렸다.

임시훈은 이해했다.

이모티콘이 한두 개도 아니고 그걸 일일이 표절인지 확인할 수 없는 법이었다.

물론 확인은 한다.

이미지 파일 스캔으로 비슷한 것이 있는지 검사하는 프로그램을 돌리니까.

하지만 그래도 못 잡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하여간. 어쩔 수 없지. 내가 기억이 안 좋았어 봐. 아니, 이 임티가 인기 있어 봐. 나중에 그 작가가 뭐라고 하겠어?”

임시훈이 확인해 보니 인기 없는 작가의 임티였다.

비하가 아니라 실제 현실이 그렇다.

그런 인기 없는 작가가 소송을 진행하면 그것도 골치 아프다.

‘그런데 부장님은 대단하시네. 역시 기억력이…….’

기억력이 정말 좋기로 소문난 부장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뒤끝도 장난 아니다.

쪼잔하기까지 하다.

기억력이 너무 좋아서 문제다.

‘이건 문제가 아니니까. 그렇다면 그 프로모션 빈자리를 채워야 할 텐데…….’

이미 런칭이 잡힌 이모티콘은 옮기지 못한다.

프로모션도 다르고.

또 앞당기면 소문이 나는 게 이 바닥이었다.

여러 썰이 돌겠지.

그런 건 여기서 원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아직 런칭이 안 잡히고 승인된 임티 중에서…. 비밀 관련 조항 계약도 맺어야 하니 계약서 쓰기 전인 작가…….’

시하페페 작가를 떠올린 임시훈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손을 들었다.

“부장님! 프로모션 컨셉과 맞는 임티가 있습니다! 작가도 픽시브에서 조금 유명합니다!”

“오? 그래?”

임시훈이 씨익 웃었다.

***

시하는 눈을 떴다.

집에 와서 잠시 잠들어서 그런지 캄캄한 밤이 보였다.

살며시 일어나 거실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형아가 책상에 앉아서 열심히 책을 보고 있었다.

‘형아.’

시하는 형아가 공부하는 걸 알았다.

조용히 다시 방에 들어가 형아의 가방을 열었다.

오늘은 시하 역시도 펜을 들고 공부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형아의 가방에 있는 필통을 꺼냈다.

‘형아 꺼.’

드르륵.

안에는 여러 가지 색깔 펜이 있었다.

먼저 펜을 와르르 꺼낸 다음에 쇼핑하듯이 둘러보았다.

마음에 드는 펜을 순서대로 다시 필통에 넣었다.

그리고 펭귄 가방에 필통을 넣고 마무리.

‘형아랑 같은 거.’

이제 가방 안에는 형아랑 똑같아졌다.

시하는 펭귄 가방과 형아 가방을 닫았다.

살며시 다시 거실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밝은 불빛이 방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형아의 그림자도 보였다.

“아?”

그걸 보며 시하는 손가락으로 그림자의 옆구리를 쿡 하고 찔렀다.

그림자가 움찔 움직이며 옆으로 휘었다.

시하는 그게 무척이나 신기했다.

“아아!”

“시하야. 깼어.”

“아?”

시하는 고개를 돌려 형아를 보았다.

옆으로 몸이 굽어 있었다.

“형아~”

“하하. 시하야~”

시하는 형아의 품에 폭 안겼다.

시혁이 웃으며 시하를 들었다.

“시하야. 너 잘 때 보니까 심사가 금방 끝나있더라. 승인이래. 승인.”

“아?”

“승인이 뭔지 모르겠다고? 이제 시하의 이모티콘이 나올 거라는 말씀. 계약서 쓰고 이야기 나누면 끝이야.”

“아아.”

“시하도 좋지?”

“아아.”

시하는 뭔지 잘 알지 못하지만 좋았다.

시혁이 시하를 들고 빙글빙글 돌았다.

“형아!”

“응. 재밌지? 나중에 시하 그림이 다른 사람이 쓰면 더 재밌을 거야.”

“아아. 형아. 그림!”

“응. 오늘도 그림 그린다고?”

“아아.”

시하는 형아 손에 내려와 태블릿을 켰다.

펜을 꼬옥 쥐자 분홍색 빛무리가 시하의 손을 감쌌다.

오늘도 함께 그림을 그린다.

***

계약 문제에 대해서 고민이 있다.

과연 시하의 이름으로 계약을 해야 할까?

아니면 내 이름을 계약해야 할까?

계약이라는 이름은 신뢰와 신뢰가 만들어져야 한다.

물론 시하의 그림에 있는 글과 컨셉 자체는 내가 꾸며낸 말이기는 하다.

공동 저자는 아니더라고 20%는 연관이 있지 않을까?

‘고민이네.’

관계자와 톡으로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할 말도 있다고 해서 직접 보자고 하는데 무척 곤란했다.

솔직히 그냥 택배로 계약서를 보내줄 줄 알았다.

카톡으로는 말하기 힘든 내용이 있다고 해서 일단 만나야 했다.

‘흠.’

이쯤 되면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뭐, 저기서 이상한 말은 안 하겠지만 이게 대면 계약해야 할 정도로 말이 오가야 하나 싶었다.

고민을 많이 하다가 시하를 데려가기로 했다.

어차피 알려질 게 뻔한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공동 저자라고 하는 게 좋겠지?’

일단 시하를 데리고 중국집에 도착했다.

같이 밥이라도 먹고 이야기하자는 것 같았다.

“저 예약되어 있을 건데요. 임시훈으로.”

“아, 네! 저 방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나는 안내해준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방 안에 있는 사람은 곰돌이 푸를 닮았다.

임시훈이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시하페페 작가님?”

“아. 네. 안녕하세요. 이시혁입니다. 여기는 이시하구요.”

“아아. 안녕! 하세!”

시하가 손을 척 하고 들었다.

그런 시하가 귀여운지 임시훈이 푸근한 웃음을 보였다.

“아! 작가님 아드님이신가요?”

“아니요. 제 동생입니다.”

“엄청 나이 차가 나네요. 이름이 시하라고요? 아하! 그래서 필명이 시하페페군요!”

“하하. 뭐 그렇죠.”

일단 자리에 앉아서 목을 축였다.

임시훈이 말했다.

“사실 오늘 작가님과 계약에 대해서 말하기도 하고 또 프로모션에 대해서 말을 하기도 해야 해서요.”

“네. 들었습니다.”

“일단 먹을 거 먼저 시키시죠. 사실 제가 회사에서 법인카드를 받아왔습니다.”

임시훈이 뭔가 멋있게 카드를 들었다.

법인카드.

굉장히 좋은 카드다.

이 카드를 들고 있는 사람이 새삼 멋있게 보인다는 그 카드.

감사히 한 끼를 먹어야겠다.

“그럼 저는 볶음밥이요. 시하는 짜장면 먹자.”

“아아.”

사실 짜장면과 볶음밥을 시킨 건 시하를 위해서였다.

두 개 다 먹으면 좋으니까.

다 못 먹으면 내가 다 먹으면 되고.

우리는 주문을 하고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갔다.

“먼저 비밀조항 계약서부터 작성해 주세요. 그래야 이야기 좀 할 수 있어서.”

“알겠습니다. 그런데 여기 계약서에 하나 추가해도 되나요?”

“네? 어떤 걸 추가하시려고요?”

“서로서로 비밀을 유지해야 할 게 있어서. 여기 이번 프로모션에 대한 내용은 비밀에 부치는 거고. 저에 대한 것에 비밀을 부쳤으면 하는데.”

“아~ 작가님이 드러내는 걸 별로 안 좋아하시는구나.”

“뭐, 시끄러워지는 걸 싫어해서. 그리고 저에 대해서 회사가 잘 알지 않았으면 하네요.”

“구체적으로 어떤 걸?”

“뭐 이 작가가 어떤 사람이다. 남자다. 여자다. 젊다. 늙었다. 이런 이야기 같은 거?”

“아하. 그거야. 당연하죠.”

“계약서로 추가해도 되죠?”

“네. 괜찮습니다.”

나는 두 계약서에 한 줄을 추가하고 사인을 했다.

이 정도면 어느 정도 안심을 해도 될까?

뭐 어디 가서 떠들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먼저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아, 네. 사실 이번 프로모션은 좀 이례적이라서 그렇습니다. 제가 빨리 작가님 임티를 검수했거든요.”

“그래요?”

“네. 사실 상황이 잘 맞았습니다. 이번 출시하는 임티 자리가 비게 생겼거든요. 그래서 런칭이 잡히지 않은 작가님 작품을 제가 밀었죠.”

“아하.”

임시훈이 눈을 빛내며 나를 바라보았다.

왠지 어깨가 으쓱 올라온 것 같다.

“사실 제가 능력이 좀 됩니다. 제가 까다롭게 심사 본 것마다 성적이 상당했거든요. 혹시 이 임티랑 이 임티 보신 적 있으십니까?”

슬쩍 보니 햄스터랑 정말 간단한 사람 그림 이모티콘.

요즘 인기 있고 유행하는 이모티콘이었다.

“네. 본 적 있어요.”

“제가 담당이었거든요. 한마디로 제 눈이 제법이라는 거죠.”

“아하. 역시 실적이 있으니까 파워가 된다는 소리네요?”

“그렇죠. 제가 작가님처럼 손은 별로라도 눈 하나는 좋거든요. 얼마나 좋냐면요. 저기 밖에 나무 보이시죠.”

“네. 보이네요.”

“저기 나뭇잎에 있는 송충이가 이슬을 먹으려고 입을 벌리는 것까지 다 보여요.”

나는 피식 웃었다.

이 사람. 허풍이 좀 심한 것 같다.

“설마요.”

“진짜라니까요. 아무튼, 제가 작가님을 정말 좋아해서 이렇게 추천을 했습니다.”

“네?”

“제가 픽시브를 자주 들어가거든요. 작가님 작품도 다 봤습니다.”

“아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쯤 되면 조금 미안해진다.

내가 그린 그림도 아닌데.

이제 밝힐 때가 됐나 보다.

“사실 시하페페는 한 사람이 아닙니다.”

“네?”

“두 사람입니다.”

“정말요?! 와! 진짜! 대박!”

임시훈이 놀라서 입을 가렸다.

“그럼 다른 한 분은 어디에?”

“여기 와 있잖아요.”

나는 시하를 가리켰다.

“시하.”

그리고 나를 가리켰다.

“페페.”

그때 짜장면과 볶음밥이 함께 들어왔다.

언제나 볶음밥 위에 짜장 소스는 함께다.

시하와 나처럼.

“둘이 합쳐서 시하페페입니다.”

“그러면 그림은 페페 작가님이?”

“아니요. 시하가 그리는데요?”

“네?!”

임시훈의 눈이 크게 떠졌다.

나도 임시훈만큼 눈이 좋은가 보다.

흰자위에 실핏줄 다 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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