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종수가 세 아이에게 다가갔다.
세 아이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보다 자신의 장난감이 더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야! 이거 봐! 너희들은 이런 거 없지?”
반짝이는 자동차 장난감.
조종기로 움직여서 애들이 갖고 놀게 되어 있었다.
“이거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어. 시하 네가 가진 차보다 더 좋아.”
결국, 시하가 전에 가지고 온 장난감보다 낫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승준이 그걸 보더니 눈이 흔들렸다.
조종기로 자동차가 움직이는 것을 보니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도 저런 장난감을 가지고 싶었다.
손에 있는 ‘핑크’가 움직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하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 고개를 휙 하고 돌렸다.
“아아. 승준. 하나.”
“야! 이거 보라고. 넌 없지?”
“아아.”
“그럴 줄 알았어.”
“시하. 차. 더 커.”
“뭐? 거짓말하지 마.”
“아냐.”
“거짓말.”
“아냐.”
“그럼 보여줘.”
“아아.”
시하는 어린이집 현관에 자신의 신발을 챙겼다.
선생님이 그런 시하를 따라가 말렸다.
“시하야. 어디 가니.”
“시하 차. 보러.”
종수가 그런 시하를 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선생님. 시하가 이 차보다 큰 거 가지고 있대요. 거짓말이래요.”
시하가 고개를 저었다.
“아냐.”
승준과 하나가 시하 곁에 섰다.
“시하 거짓말 안 하거든!”
“마자. 시하 착해!”
다시 붙은 네 아이의 신경전.
선생님이 손뼉을 치며 네 아이를 진정시켰다.
“자자. 싸우지 말고요. 먼저 시하가 저 차보다 큰 게 있는지 선생님이 확인해 볼게요. 시하야. 저 차보다 큰 게 있어?”
“아아.”
“그럼 차는 어디 있어? 집에?”
“아냐.”
“그럼? 여기 근처에?”
“아아.”
끄덕끄덕.
그 모습을 본 선생님이 시하의 신발을 신겨주었다.
“그럼 오늘은 다들 밖에서 놀까? 자, 네 명 다 나오세요.”
네 아이는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섰다.
가장 앞장선 것은 시하였다.
어린이집 근처에 있는 주차장에 눈에 띄는 붉은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시하는 멜츠차를 가리켰다.
“아아. 시하 차.”
선생님이 놀란 눈으로 시하를 바라보았다.
“정말 시하 차니?”
“아아. 형아, 시하. 타.”
“그래?”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시혁이 차를 타고 왔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저 차인 것 같았다.
여기 차를 대는 곳은 늘 많이 봤는데 저렇게 빨간 외제차는 오늘 처음 보았다.
늘 주차하는 차가 정해져 있으니까.
“우와. 시하 차 좋네?”
“아아. 멜치. 차.”
“응? 멸치??”
“아아. 멜치. 차.”
똑똑한 시하는 차 브랜드도 알고 있었다.
멸치 같은 이름인 멜치가 아니라 멜츠였지만.
선생님이 귀신같이 알아들었다.
“아 멜츠? 그래. 차 브랜드가 멜츠이기는 하지.”
그때 종수가 인정할 수 없는지 소리쳤다.
“거짓말! 그거 거짓말이야! 그냥 제일 좋은 아무 차나 고른 거잖아.”
시하는 거짓말이라는 말에 고개를 저었다.
종수가 코웃음을 치며 정말이라면 차 문을 열게 해 보라고 했다.
시하는 살며시 고민했다.
종수가 거보라는 듯이 어깨를 쭈욱 폈다.
“아아.”
시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머니에서 차 키를 꺼냈다.
형아가 나중에 타고 싶으면 그걸로 타라고 전해준 가짜 차 키였다.
가짜라고 해도 진짜 열쇠와 리모컨이 달려 있었다.
열쇠는 요즘 쓰지 않는 방문 열쇠였고, 리모컨은 모터쇼에서 산 기념품이었다.
선생님이 진짠 줄 알고 당황했다.
“시하야. 그거 형아가 줬어?”
“아아.”
“아니. 애한테 차 키를 주면…….”
“아?”
“아, 아니야. 자세히 보니…. 응. 아닌 것 같네.”
시하는 고개를 돌려 차를 보았다.
그리고 버튼을 눌렀다.
삐빅. 달칵.
잠금장치가 풀렸다.
선생님이 ‘으응?’ 하며 차 문을 열었다.
“아아!”
시하가 조수석으로 쏙 들어갔다.
승준과 하나도 흥분해서 차 안으로 들어갔다.
승준이 말했다.
“와! 시하 차 진짜 좋다!”
“시하 차. 아빠 차보다 더 좋아!”
“아아!”
세 아이는 신나게 차 뒷좌석으로 가서 방방 뛰었다.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가진 멜츠 차에게 그 정도는 끄떡없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는 종수.
종수가 자신의 손에 있는 자동차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더 좋은 시하 차의 승리였다.
“나, 나도. 아빠에게 사달라고 할 거야!”
종수 아버지가 들었으면 기겁할 이야기였다.
그리고 기겁한 또 한 명의 선생님은 눈을 껌뻑이며 입을 가렸다.
“이, 이게 왜 열렸지?”
선생님이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한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른 차 뒤에 머리와 눈만 빼꼼 나와서 보고 있는 시혁을.
***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 보면 망가질 때도 있고 관심이 사라지기도 한다.
그런 시기는 누구나 한 번씩 온다.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좋다고 산 물건들을 어느새 안 쓰기 시작한다던가.
아끼던 물건을 떨어뜨려 망가뜨린다거나.
너무 오래 써서 더는 쓸 수 없다거나.
우리는 언제나 그런 한 일들을 겪는다.
그건 시하도 마찬가지다.
“시하야. 여기 망가진 장난감들이 모여져 있네?”
“아아.”
선생님 말씀으로는 이제 관심을 받지 못하는 장난감이라고 한다.
너무 오래된 것도 있고, 부서진 것도 있고.
그것을 한데 모아둔 장난감이라는 것이다.
시하는 그것에 관심이 가는지 이것저것 뒤져보는 중이었다.
“형아. 이거.”
“응? 이게 왜?”
“의사. 가자.”
“의사에게 데려다주자고?”
“아아.”
나는 시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거 왜 가지고 가고 싶은데?”
“이거 시하가 아야.”
“이거 시하가 부순 거야?”
“아아.”
곰 인형의 팔 한쪽이 부욱 찢어져 있었다.
그냥 힘으로 찢었을 리는 없으니 아마 낡아서 찢어진 거겠지.
그때 뒤에서 승준과 하나가 다가왔다.
“시혀기 형아! 놀자!”
“시혀기 오빠! 놀자. 놀자.”
나는 뒤에 쌍둥이를 바라보았다.
“나는 시하랑만 놀건대.”
“아, 왜~ 이런 장난감 말고 나랑 놀자. 그거 이제 못 써.”
“마자. 모 써.”
나는 시하를 보았다.
시하는 여전히 망가진 장난감을 조몰락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장난감은 그렇게 생각 안 할걸?”
나는 이 아이들에게 재밌는 상상력을 더하고 싶었다.
시하처럼 장난감에 관심을 주길 원했다.
그냥 시하가 그렇게 생각하기에 무작정 나온 생각이었다.
‘어디 한번.’
요즘 시하가 차에 관심이 생겨서 카니멀을 거들떠보지도 않던데…….
이번 놀이가 조금은 도움이 될까?
아마 도움이 될 거 같았다.
나는 시하가 가진 곰 인형을 잡아서 들었다.
얼굴을 가린 뒤 다른 목소리로 말했다.
변성.
조금 높은 목소리로.
“안녕. 얘들아. 나는 곰돌이야.”
세 아이가 놀라며 곰돌이를 바라보았다.
승준이 흥분해서 말했다.
“말했어!”
“신기하다!”
“아아!”
나는 아이들의 순수함에 살며시 웃었다.
물론 내 목소리가 변화된 것도 한몫했다.
“나는 마법을 받아서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어.”
“정말? 대단해!”
“하나랑 이야기하자!”
“시하도!”
나는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사실 나는 너희들하고 놀고 싶어. 자주는 아니더라도 너희들과 가끔이라도 놀고 싶어.”
버려진 장난감.
이제는 커버려서 함께할 수 없는 장난감.
언제나 그들의 결말은 비슷했다.
하지만 함께 있는 동안만이라도.
조금이라도 아이가 즐거워할 수 있다면.
그럼 이 장난감이 행복하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다치면 이렇게 관심이 멀어지고 말아. 우리 장난감을 소중히 해줘야 해. 알았지?”
“알았어! 소중히 할게!”
“하나는 가치 목욕도 할 거야!”
“시하도!”
나는 곰돌이의 찢어진 팔을 붙잡았다.
“만약에 다치면 장난감 의사 선생님에게 맡겨줘. 그리고 이제 관심이 멀어지면 다른 아이들에게 넘겨줘.”
“안 넘겨줘!”
“시러!”
“시하가 가치. 이써!”
애들 반응이 너무 재밌었다.
나도 이렇게 소중하게 장난감을 지키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그 장난감들이 다른 아이 손에 갔을 것이다.
어쩌면 그 아이가 커서 버렸을지도 몰랐다.
“고마워. 나는 너희들과 함께 있을 수 있던 기억만으로 행복해.”
나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내가 다 나으면 또 놀자.”
“그래! 놀자!”
“마니 노라주께!”
“아아!”
나는 살며시 장난감을 상자에 넣었다.
많지도 않은 양.
이 장난감은 다시 어린이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까?
“그럼 시하야. 오늘은 시하 차 타고 의사 선생님에게 갈까?”
“아아.”
시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이 장난감들을 고치지 않아도 되지만 이왕 시작한 거 끝을 보고 싶다.
그리고 멜츠에서 돈도 입금해 줬다.
꽤 큰돈이었다.
“그럼 가자.”
어차피 이제 어린이집에서 나가야 할 시간이기도 했다.
그때 승준과 하나가 내 바지를 붙잡았다.
“나도!”
“하나도!”
나는 곤란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렇다고 해서 애들을 내 마음대로 데려갈 수도 없는 부분이었다.
때마침 승준 엄마가 왔다.
“어머. 이게 무슨 일이에요?”
나는 냉큼 승준 엄마에게 바통을 넘겼다.
승준 엄마가 사정을 듣더니 재밌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럼 저도 같이 갈까요?”
“아니. 대체 왜요? 그냥 맡기고 오는 건데요?”
“그러니까요. 저도 어디에서 수리를 맡기는지 알고 싶어서요.”
“음. 알겠습니다. 그럼 같이 가요.”
그렇게 같이 가는 거로 정해졌다.
각자 집안에 차를 타고 가려고 했지만, 애들이 같이 있고 싶었는지 내 차를 타게 되었다.
뒷자리에 쪼르르 세 명이 앉아 있었다.
“그럼 출발합니다!”
“시혀기 형아. 출발!”
“출발!”
“아아!”
그렇게 우리는 장난감 수리점으로 출발했다.
몇 없는 수제 장난감 수리점.
여기를 알게 된 것은 꽤 오래전이었다.
어렸을 적 아버지와 함께 들른 곳인데 아직도 장사를 계속하고 있었다.
‘엄청난 분이긴 하지…….’
어렸을 때는 몰랐지만 부서진 프라모델을 감쪽같이 수리하는 장인이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부서진 장난감을 그냥 들여와서 고치고 되파는 작업도 하시는 분이셨다.
‘내가 봤을 때는 돈으로 일하시는 분은 아닌 거 같고.’
장난감을 고치러 오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프라모델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어린이 장난감을 고치러 오는 것보다 새로 사는 게 많은 것도 사실이었다.
‘돈 많으실 거야.’
예전에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아저씨는 약간 소일거리 하는 재미를 붙인 것 같았다.
“도착했다!”
어느새 장난감 수리점에 도착한 우리는 차에서 내렸다.
나는 트렁크에 상자를 꺼낸 뒤에 수리점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이 감탄을 흘렸다.
여러 장난감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로봇, 차, 인형 등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었다.
밑에 가격도 있었는데 옛날 거는 꽤 비쌌다.
이런 것을 찾는 사람도 꽤 될 것이다.
“응? 아이고. 손님이 직접 찾아오는 건 오랜만이네요.”
“안녕하세요.”
“그래요. 안녕하세요. 응? 이거 이거 낯이 아주 익은데?”
“하하. 어릴 때 여기 왔어요.”
그는 손가락을 딱 튕겼다.
“아! 누군지 알았다. 장혁이 아들내미구만!”
“아버지 이름도 아셨어요?”
“알지. 몇 번 술도 같이했는데.”
“그래요? 왜 전 몰랐을까요?”
“너를 술자리에 데려올 수 없잖아.”
“그건 그러네요. 얘들아. 인사해. 이분이 장난감 의사 선생님이야.”
“응? 장난감 의사 선생님? 하하! 꽤 재밌는 말을 하는구만!”
애들이 조르르 달려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여!”
“아아! 안녕. 하세!”
나는 시하에게 한마디 했다.
“시하야. ‘요’를 붙여야지.”
“yo!”
시하는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저건 또 어디서 봤을까?
물론 내 눈에 귀엽게만 보였다.
이게 아니지.
“이번에 장난감을 맡기려고요.”
“어이쿠. 많이도 가져왔네. 보자. 응? 이야. 이건 꽤 오래된 건데. 팔면 비싸겠어.”
“정말요?”
“그래. 이걸 다 맡긴다고? 요즘 이렇게 많이 맡기는 사람이 없긴 한데. 시간이 좀 걸리겠어.”
“부탁드릴게요. 비용은 얼마나 하나요?”
개수를 세 보던 아저씨가 씨익 웃었다.
“비용은 됐고, 일 하나만 해 주면 공짜로 해 줄 수 있어.”
“뭔데요?”
“장난감으로 영상 하나만 찍어줘. 요즘 마케팅은 이런 식으로 하거든.”
“에이. 시하 나오는 거면 안 해요.”
“뭔 소리야.”
“네?”
“나오는 건 너야.”
“예?”
되물을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