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1화 (71/500)

71화

-차 안.

뒷좌석에서 다니엘이 창밖을 보며 피식 웃었다.

옆에 있던 비서가 다니엘에게 말했다.

“이번 계약으로 기분이 좋으신가 봅니다?”

“좋지. 너무 반가운 얼굴을 만났거든. 계약은 뭐 덤이지.”

“한두 푼 들어가는 계약이 아니지 않습니까.”

“뭐, 그렇지. 그래도 말이야. 재밌지 않나? 이 넓은 세상에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되어 있으니.”

“설마 아까 그 청년을 말하는 겁니까?”

다니엘은 피식 웃었다.

이시혁을 본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멜츠 전시의 한 테마가 한 사람에 의해 바뀌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정말 호기심에 들른 것이었다.

설마 여기서 이장혁의 아들을 만날 줄 몰랐다.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기억에 남는 사람은 몇 없어. 왜인 줄 알아?”

“특별하지 않아서요?”

“맞아. 정확히는 강렬한 인상을 준 사람이 많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번에 다시 본 거야.”

“강력한 인상을요?”

“아니. 다시 떠올리게 된 인상이지. 그 아버지에게 조금 빚이 있거든.”

“그래 봤자 통역사 아닙니까?”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지금은 싱가포르에서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실제로 싱가포르는 영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었다.

1987년에 학교의 제1 언어로 채택되었으며, 그 덕분에 국제도시의 경쟁력이 크게 높아졌다.

이중 언어를 쓰는 싱가포르는 제2의 격변이라고 할 정도로 신의 한 수가 되었다.

다니엘이 말했다.

“하지만 그는 조금 다르지. 아직 국민에게 언어가 제대로 잡기 전의 일이니까.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

“어떤 일이요?”

“공무원들과 엔지니어들이 싸움이 일어났거든.”

“자주 보는 사례네요.”

“그렇지. 그런데 엔지니어들이 프랑스인이라 문화의 차이로 인해 인식이 달라서 서로 감정이 안 좋았거든.”

“자존심 싸움으로 번졌군요?”

“그래. 그런데 통역사가 잘 중재해 줬단 말이지.”

비서가 눈을 크게 떴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보통 통역사들은 언어를 잘 전달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비서가 호기심이 생기는지 물어봤다.

“어떻게 했습니까? 서로의 문화 차이부터 설명하면서 그랬어요?”

“아니. 그 상황에서 그런 걸 가르쳐주지는 않겠지. 설명도 길 거고.”

“그러면 어떻게?”

“스토리텔링이 좋았어. 각 나라의 우상시하는 인물들을 이야기하며 거북이로 비유를 들더라고. 그에 도달하는 걸린 시간을 이야기하면서 말이야.”

“호오.”

“그 말에 기분이 풀려서 일이 잘 풀렸지. 그 기술자들은 사실 우리 기업에서 내준 거거든. 싱가포르 국책사업의 일환으로 말이야.”

다니엘이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는 아련한 눈동자를 했다.

“그 당시 나도 있었는데 말이야. 좋은 제안을 했는데 거절당했어.”

“그게 아쉬운 겁니까?”

“아쉽지. 정말 아쉽지. 너도 알잖아. 국제사회에서 해외 기업과 계약을 맺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그가 있으면 든든할 거 같았지.”

“그 당시 싱가포르도 많이 변화하는 시점이었으니까요.”

“그러니 인재가 많이 필요했지. 심지어 이런 식으로 조율해서 일 처리가 매끄럽게 흘러가게 하는 건 쉽지 않아. 그거 덕분에 돈독한 관계 형성이 되었지. 지금도 잘 쓰잖아.”

“그러면 부회장님이 좋은 제안을 했을 텐데 왜 거절한 겁니까?”

“글쎄. 그 이유는 듣지 못했어. 그 뒤로 연락이 끊겨서 알 수가 있었어야지.”

“흠.”

다니엘은 모터쇼에서 밖을 나서던 시혁을 떠올렸다.

“보니까 그 아들도 능력 있던데? 벌써 애까지 있고 말이야.”

“아, 그 아기 말입니까? 귀엽던데요.”

시하는 시혁의 동생이었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다.

“그런데 보니까 차가 없더라고. 이왕 이렇게 된 거 법인 리스로 차 한 대 뽑아줘. 이장혁에게 진 빚을 이렇게 조금 갚아야지.”

“알겠습니다.”

“계약도 하면 더 좋고. 너무 급하게 가지 말고.”

“그것도 준비해 두겠습니다.”

“좋아. 좋아.”

다니엘은 알고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은 다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능력 면에서는 아버지에 뒤떨어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눈앞에 빨간색 멜츠 차가 번쩍거린다.

이걸 사려면 7천은 넘게 줘야 했다.

옆에 있는 시하는 반짝이는 눈으로 차 문을 만지고 있다.

벌써 지문을 찍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이게 아니지.

「어? 어? 이게 뭐죠?」

차를 가지고 온 사람이 살며시 내 손에 차 키를 쥐여 주었다.

「다니엘 부회장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니까 이걸 왜 저에게?」

「법인 리스 차량이라 편하게 타시면 됩니다. 돈도 아끼고 좋지 않습니까.」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이걸 왜 저에게 주냐고요.」

「덕분에 계약 잘되었다고 드리는 선물이랍니다. 편하게 타시죠.」

「전혀 안 편한데요.」

그때 사하가 차에 지문을 다섯 번 찍고 나서 나를 보았다.

“형아. 시하 차!”

“응. 시하야. 아직 시하 차 아니야. 알았지?”

시무룩.

“아냐?”

“응. 아냐. 그러니까 잠시만.”

나는 다시 다니엘의 비서를 보았다.

이런 차를 받을 만큼 나는 간이 크지 않았다.

뭐 별다른 계약을 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무언가 꿍꿍이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나한테 뭐가 있어?’

생각해 보면 굳이 나라는 사람에게 수작을 부릴 만한 가치가 있을까?

그것도 부회장님이신데.

그런 나를 보며 비서가 살며시 웃는다.

「정말 호의로 보내는 겁니다. 굳이 말하자면 시혁이 저희랑 나중에 계약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네요.」

「그러니까 이건 뇌물이다? 이런 거예요?」

「네. 그렇죠. 그리고 보시다시피 비싼 거로 사지는 않았습니다.」

뭐 저런 재벌에게 비싼 차가 아니겠지.

그런데 안에 대충 보니까 풀옵션으로 되어 있는 거 같은데…….

“아아. 형아!”

나는 시하를 보았다.

아무것도 걸리는 게 없으며 받아도 되지 않을까?

앞으로 시하를 데리고 여러 곳에 놀러 다니기도 편하고 말이다.

「계약은 생각해 보고요. 제가 아직 대학생이라서요.」

「좋은 쪽으로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런데 통역사로 고용하는 거면 좋은 인재들도 많이 들어올 텐데…….」

「아! 통역뿐만 아니라 해외계약팀에 넣고 싶어 하십니다.」

「예?」

「영업부라고 봐도 됩니다.」

맨파워 강하다는 그 영업?

아니, 나는 그냥 평범한 대학생인데 이런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오나?

이게 다 영어와 독일어를 잘하는 덕분인가?

갑자기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이런 제안은 생전 처음이었으니까.

괜히 인정받은 거 같아서 가슴이 뿌듯해지기도 한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네요.」

「하하. 실적이 있는데 좋게 봐줘야죠.」

「네?」

「아닙니다. 그럼 이만.」

고개를 숙이더니 비서는 차를 몰고 떠났다.

나는 손에 있는 차 키를 바라보았다.

‘설마 이렇게 차를 가질 줄이야.’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저 멜츠의 리암을 통해서 나중에 좀 싸게 싸게 해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었는데…….

“형아.”

“응? 아! 이럴 때가 아니지. 시하야. 어린이집 가야지.”

“아아.”

아침부터 이런 일이 발생해서 당황했지만, 지금은 일단 학교에 가는 게 중요했다.

시하에게 펭귄 가방을 메게 하고 차 문을 열었다.

이미 조수석에는 아기용 의자까지 구비되어있었다.

참 센스가 넘쳤다.

시하를 앉혀 안전벨트를 맨 후에 운전석에 탔다.

“아아! 형아! 시하 차!”

“좋아?”

“아아.”

정말 좋은지 시하는 완전히 흥분해 있었다.

“운전은 오랜만이네. 그렇지?”

“아아.”

“그럼 출발.”

“아아!”

나는 붉은색 차를 몰고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

시하는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형아의 손을 잡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주변에서 힐끔힐끔 형아를 본다.

왤까?

시하는 몰랐지만, 빨간색 차가 좀 튀었다.

그리고 심지어 멜츠 차량.

스포츠카는 아니었지만, 현재 대학생이나 대학원생에서 외제 차를 끌고 가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었다.

안에서 내려오는 사람이 더더욱 젊어 보여서 궁금증을 가지기에는 충분했다.

“아? 형아.”

“응? 왜?”

“아냐.”

시하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아니. 왜? 그냥 형아 부르고 싶었어?”

“아아.”

“하여간 형아 이렇게 좋아해서 어떡하지?”

“아냐.”

“헐? 형아 안 좋아해?”

“아냐. 조아.”

“지금 좋아라고 한 거지? 크으.”

시하는 형아의 손을 꼬옥 잡았다.

저기 힐끔 보는 사람들에게 형아를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지만 형아에게 관심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형아. 지켜!”

“하하. 고마워. 형아도 시하 지켜줄게.”

“아아.”

어느새 시하는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형아를 떠나보내고 선생님과 함께 반으로 들어왔다.

승준과 하나가 시하를 발견했는지 조르르 달려왔다.

“시하야~”

“시하야~”

쌍둥이에게 시하는 손을 흔들었다.

“승준. 하나.”

“시하야. 이것 봐. 오늘 내가 장난감을 들고 왔어.”

승준이 들고 온 장난감은 요즘 유행하는 전대물 주인공 중 하나인 ‘블랙’이었다.

하나 역시도 시하에게 장난감을 보여주었다.

“하나도. 하나도. 이거!”

하나의 장난감은 ‘핑크’였다.

승준이 또 하나를 꺼내더니 시하에게 주었다.

전대물 주인공 중 하나인 ‘레드’.

시하는 파란색도 아주 좋아하지만, 빨간색도 좋아했다.

오늘 타고 온 시하 차도 빨간색이었으니까.

“아아!”

“시하야. 이건 레드라고 해! 우리 같이 지구를 지키자.”

“아아.”

시하는 레드가 마음에 들었다.

지구를 지키는 게 무엇인지 모르지만.

“악당을 물리치자!”

“하나도 악당 물리쳐!”

“아아! 무리쳐!”

셋은 악당을 찾아 헤맸다.

승준의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선생님.

언제나 놀고 싶은데 낮잠 시간을 만들어 흐름을 끊기게 하는 악당이었다.

“악당이 저기 있다!”

“선생님이 악당이야?”

“아?”

승준이 나름 논리적으로 말했다.

“낮잠 안 자고 싶은데 낮잠 자게 해!”

“마자. 하나도 더 놀고 시플 때가 이써!”

“아?”

시하는 거기에 동의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낮잠 자는 걸 좋아했으니까.

따뜻한 이불에 형아 배에 올라타 자면 꿀잠이었다.

“아무튼, 가자!”

“가자!”

“아아. 가!”

시하는 친구들과 함께하고 싶기에 참여를 했다.

셋이서 장난감을 들고 선생님을 공격했다.

콕. 콕. 콕.

선생님의 발이 공격당했다.

“아, 너희들 뭐야. 간지러워!”

승준이 그런 선생님에게 말했다.

“선생님 이제 발 못 움직여.”

“못 움지겨!”

“아아.”

선생님이 곤란하다는 듯이 말했다.

“선생님 일해야 하는데 못 움직이면 어떡하지? 누가 발 좀 치료해 주세요.”

“선생님은 악당이야. 그래서 치료 못 해.”

“그래?”

“응.”

선생님이 고민하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으윽. 당했다!”

요즘 나오지도 않을 대사였지만 애들은 좋아했다.

막 이겼다며 좋아할 무렵에 선생님이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저기 얘들아. 그거 알아? 악당이 쓰러지면 그게 끝이 아니란다.”

시하는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승준과 하나는 알아차렸다.

“앗! 안돼!”

“안 돼!”

선생님이 살며시 웃으며 과장되게 몸을 일으켰다.

발꿈치를 들며 처음보다 커졌다는 걸 강조했다.

“나는 집보다 커졌다!”

전대물에서 꼭 나오는 거대화였다.

승준이 곤란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 로봇 안 준비했는데…….”

선생님이 이겼다는 듯이 어깨를 쭈욱 폈다.

하지만 어린이들은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타파하는 법.

승준이 말했다.

“이제 그만 해야겠다.”

선생님이 당황했다.

“어어? 그러면 안 되지.”

승준이 하나와 시하의 손을 끌었다.

“다른 악당 찾자!”

훌륭한 방법이었다.

이길 상대만 찾는 저 엄청난 수법.

예상치 못한 전환이었다.

선생님은 멍하니 가버리는 세 아이를 보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종수가 빤히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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