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화 (70/500)

70화

시하가 말했다.

“아아. 리사! 개굴!”

반가운 마음에 손을 척 하고 들었다.

시하의 옅은 미소에 알리사와 서수현이 살며시 웃었다.

시하가 너무 귀여웠으니까.

“시하. 너무 귀여워.”

“그런데 시하야. 왜 알리사는 리사고 나는 개구리야?”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저번에 개구리 우산의 이미지가 시하의 머리에 콕 하고 박혔으니까.

“아아. 개굴.”

“오늘 눈 안 부었는데…. 오빠뿐만 아니라 이제 시하도 놀리는 거야?”

“아아.”

서수현의 착각이었다.

하지만 시하의 생각은 그녀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리사! 이거!”

시하가 자신의 옷을 자랑했다.

저번에 알리사가 골라준 옷이었다.

알리사가 시하의 머리를 헝클였다.

“내가 골라준 옷 기억하고 있었구나? 흐흥~”

기분 좋은 콧노래.

시하도 기분 좋아서 입으로 따라불렀다.

문도환이 그걸 보며 서수현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수현아. 오랜만이네.”

“아, 네. 잘 지냈었어요?”

“응. 나야 그렇지. 그런데 어쩐 일이야?”

“아, 그게. 여기 알리사라는 친구가 이번 모터쇼에 가자고 해서요. 그래서 따라왔어요.”

“그래?”

“네. 저는 그냥 기분 전환하러? 사실 차에는 관심이 별로 없지만요. 알리사가 이런 디자인 쪽에 관심이 있죠.”

“그렇구나. 잘됐다. 이렇게 된 거 같이 다닐래?”

“저야 좋은데…. 시혁 오빠는 어디 있어요?”

“응?”

문도환이 잠깐 고민하다가 위를 가리켰다.

서수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마 2층?”

“응. 2층에서 일하고 있지.”

“네? 진짜요? 무슨 일인데요?”

“동시통역. 아마 지금 한창 일하고 있을걸? 아니면 대기하고 있거나. 지금 시하랑 조금 놀고 있으면 올 거야.”

“아…. 역시 대단하다…….”

“뭐가?”

“그렇잖아요. 저는 제자리걸음인 거 같은데 오빠는 앞서나가는 느낌?”

문도환이 살며시 웃었다.

“앞서나간다라…. 그건 아니야.”

“아니에요?”

“그저 너랑 환경이 다를 뿐이야. 돈을 벌어야 하고, 앞으로 뭔가 할 수 있는 시간이 없고. 여유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은 거지.”

“으음.”

“너도 저 상황이었으면 닥치는 대로 무언가 두드려봤을지도 몰라.”

“그건 아니에요. 전 시혁 오빠처럼 무언가 결심했다고 바로 행동으로 옮기지 않아서.”

“확실히 행동력이 장난 아니기는 하지.”

서수현이 살며시 주먹을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꼭 보고 있으면 자극이 엄청 돼요. 그래서 저도 뒤처지지 않게 도전해 보려고요.”

“뭘?”

서수현이 어느 한 곳을 보았다.

영상을 찍으며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는 남자.

“취미요. 일단 시작은.”

“응?”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 그럼 갈까요? 굉장히 재미난 것도 많던데.”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가 돌아보는데 알리사와 시하는 사라지고 없었다.

이미 저 멀리서 탐방을 하러 떠난 것이다.

문도환과 서수현이 당황하며 황급히 쫓아갔다.

***

멜츠에서 이번에 내놓은 광고는 감성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임산부 연기를 하는 사람이 재빨리 차에 탄다.

하늘에는 비가 내리고, 그 남편은 급하게 차를 몬다.

거친 도로에 차가 흔들린다.

하지만 센서가 작동하며 미리 충격을 완화하고 승차감을 아주 좋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병원.

안전하게 도착한 임산부.

그 얼굴을 보여주며 영상이 끝났다.

말하고 싶은 바를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게 꽤 먹힌 것 같다.

“좋은 계약 감사합니다.”

이번이 네 번째인가?

첫날부터 계약이 순조롭게 되고 있었다.

부품업체에서도 멜츠의 부품에 관심이 많아서 몇 번의 미팅 약속을 잡았다.

‘흐음.’

생각했던 것보다 폭발적인 반응은 아니었다.

계약을 보면 디자인 쪽에 관심이 많고, 신형 차량도 관심이 많았으니까.

그래도 리암의 표정을 보는데 이번 행사에 꽤 만족한 것 같다.

하긴 이 모터쇼가 기사에 나가고 나서도 또 다른 계약의 시작이니까.

굳이 섣불리 결정하는 건 아니다 싶었다.

「리암.」

「네.」

「제가 낸 아이디어가 쓰이긴 했는데 효과가 있었을까요?」

「모르죠. 이제 첫날 아닙니까.」

「그렇긴 한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미묘하네요.」

「그렇습니까?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그래요?」

「네. 이번에 모터쇼에서 늘 똑같은 테마밖에 없었는데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었지 않습니까.」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새로운 시도가 성공해야 좋은 거지.

괜히 나섰나?

뭐 그런 생각도 들었다.

구체적인 성과가 보이지 않아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아니야. 내 회사도 아니고. 뭐.’

서로서로 잘되면 좋지만.

나에게 리스크는 없었다. 그래도 멜츠가 잘 되면 메리트가 있는 건 확실하니.

‘그게 좀 아쉬울 뿐이지.’

리암이 이런 나의 표정을 보며 웃었다.

「시혁. 당신이 생각한 것보다 이번 모터쇼는 굉장히 괜찮습니다. 아마 이틀? 이르면 내일? 그쯤이면 행사 측에서도 변화할지도 모르죠.」

「네? 그게 무슨?」

「저희 멜츠가 낸 아이디어를 연료 삼아 아마 더 즐길 수 있는 컨텐츠를 내놓을지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그런가요?」

나는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행사 부스가 원래 이렇게 휙휙 바뀔 수 있는 건가?

「모터쇼에 문제가 많습니다. 뒤처진 트렌드라는 소리도 듣고요. 방금 이야기를 들었는데 다른 곳에서는 VR 기기도 가져왔더군요.」

「이러다 게임까지 나오겠네요.」

「다음번에는 정말 나올지도 모릅니다. IoT 시대가 아닙니까.」

「그렇겠네요.」

이거 생각보다 굉장한 일이 아닐까?

이렇게 변하면 멜츠의 위치와 기사는 어떻게 쓰일까?

우위. 말 그대로 트렌드를 앞선 느낌.

나는 그제야 리암이 말한 게 뭔지 알아차렸다.

‘트렌드의 우위.’

남들보다 앞선다는 이미지는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과연 이래서 이득이라고 한 건가?’

새로운 시도. 새로운 도전.

도태되지 않기 위한 발버둥은 이러한 이미지를 철저히 구축하는 거다.

그런 이미지를 쌓아 올리다 보면 그 가치의 가격은 아무도 모르는 거다.

「멀리 보시네요?」

「멀리는 안 봅니다. 딱 한 발에서 두 발 앞.」

「딱 한 발에서 두 발 앞…….」

「그것만으로 충분하죠. 너무 멀리 가면 예쁜 쓰레기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많이 배우네요.」

「뭘요. 아! 누군가 왔군요.」

이야기하는 도중에 다른 바이어가 왔나 보다.

계약까지 할지 아니면 다음 미팅까지 잡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통역도 최선을 다해야겠다.

‘그런데 한국 사람은 아닌 거 같은데?’

한국 사람만 오는 건 아니었지만 꽤 나이가 있어 보이는 외국인이었다.

외모만 보자면 동남아 쪽?

말하는 영어를 들어보면 영국식에 가까웠다.

요즘 이런 식으로 나라를 유추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사투리가 섞였네?’

머리에 지식이 부웅 떠올랐다.

정보를 관장하는 지식과 조금 다른 감각적인 지식.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이 휘감은 후 나는 저 사람이 싱가포르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억양이 중국이나 말레이시아 쪽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었다.

「저 사람에게 통역을 맡기고 싶네요.」

갑자기 그 사람이 나를 가리켰다.

리암이 나를 불렀다.

나는 의문 어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나를 통역으로 부르는 이유가 뭘까?

물론 내가 영어를 못한다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굳이 나를 선택할 필요는 없었다.

실제로 영어로 동시통역이 가능한 사람이 널리고 널렸으니까.

‘아까부터 날 보는 눈빛이 좀…….’

뭔가 흥미가 가득한 표정이었다.

어디선가 만났나 싶었지만, 기억에 없었다.

일단 인사나 하자.

「안녕하세요. 통역사 이시혁이라고 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다니엘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계약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에 멜츠 차에 있는 센서 부분에 관련한 기술적 협약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렇게 순조롭게 진행이 되다가 다니엘이 나에 대한 궁금증을 드러냈다.

「통역사 일은 어떻게 하게 되었습니까?」

「그냥 소개로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까? 혹시 아버지가 통역사입니까? 아니면 어머니가?」

「아. 아버지가 통역사 일을 하시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그건 왜?」

「하하. 이렇게 젊은데도 잘하는 경우는 통역사 집안이더라고요.」

「아, 그런가요?」

딱히 그렇지도 않은 거 같은데?

다니엘이 말했다.

「아버지 이름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통역을 잘하니 궁금해지네요.」

「이장혁이라고 합니다. 하하. 아마 들어보지 못했을 겁니다. 통역사 일을 안 한 지 굉장히 오래되었거든요. 한국에서는 통역사보다 번역가로 더 많이 알 겁니다.」

「아. 그렇습니까? 더 좋네요. 원래 다른 일 하다가 통역사로 전향하는 사람도 많거든요.」

「그래요?」

「네. 그렇죠. 하하.」

우리는 순조롭게 대화를 나누며 다음 미팅을 잡았다.

다니엘이 일어나면서 내 손을 잡았다.

「다음에 또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인연이 된다면요.」

「꼭 인연이 되면 좋겠네요. 그때는 너무 아쉬웠거든요.」

「네?」

「제가 전에 정말 탐나는 통역사를 놓친 적이 있어서요. 그 사람에게 꽤 좋은 제안을 했는데 거절당했거든요. 분명 거의 넘어오는 기색이 역력했는데 말이죠.」

「엄청난 분이셨나 봅니다.」

「굉장히 지식이 많고 분위기가 안 좋아지면 조율을 잘했죠.」

뭘까?

이 사람은 왜 이렇게 나에게 호의를 보이는 걸까?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네. 저도요.」

다니엘과 그렇게 헤어졌다.

떠나가는 다니엘을 힐끗 보던 리암이 슬쩍 나에게 가까이 오더니.

「시혁. 혹시 독일에 살 생각 없습니까?」

이 사람은 또 왜 이러는 걸까?

「없어요!」

이제 3시가 다 되어 가는데 시하를 보러 가야겠다.

***

“형아~”

시하가 내게 와 폭 안긴다.

이 온기와 냄새가 그리웠다.

따뜻한 보일러보다 더 좋고, 티라미수 향기보다 더 달콤한 냄새가 난다.

분유 냄새인가?

이제 시하는 분유를 안 먹는데.

아무렴 어때.

나는 시하의 볼에 뺨을 비볐다.

“너무 보고 싶었어. 시하야.”

“시하도!”

“이제 떨어져 있지 말자. 너무 힘들어.”

“아아.”

그런 나를 보며 문도환이 어이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보면 이산가족인 줄 알겠어. 한 10년 떨어져 있었어? 겨우 6시간 떨어진 거로 아는데.”

“형! 시하에게 6시간이면 여섯 밤이나 마찬가지야.”

“그럴 리가 있겠어?”

“있지. 완전 있지. 그런데 두 사람은 왜 같이 있는 거야?”

“우연히 만났어.”

서수현과 알리사가 손을 흔들었다.

음. 시하가 나 없는 동안 외롭지 않았을 거 같기는 했다.

“시하야. 구경은 다 했어?”

“아아. 차. 마니.”

“차 많이 봤어? 나중에 도움이 되겠어? 막 디자인에 대해서 아이디어 샘솟고. 창의력 높아지고. 그런 느낌 들어?”

“아? 형아~”

역시 그런 느낌은 없고 형아가 최고라는 거지?

그래도 시하에게 오늘 관람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재밌는 것도 조금 준비되어 있어서 심심하지는 않았을 거다.

“오늘 시하랑 놀아줘서 고마워. 그런 의미로 내가 저녁 쏜다.”

다들 두 팔을 벌려 좋아했다.

서수현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오빠. 저 너튜버 해 보려고요.”

“그래? 잘해 봐. 요즘 취미로 하는 사람도 많더라.”

“네.”

“그럼 본 직은 따로 할 거고?”

“그건 생각해 봐야죠. 도서관 사서 어때요? 저랑도 잘 어울릴 거 같은데.”

“글쎄…….”

나는 눈을 피했다.

“아, 왜요!”

“개구리가 있어서 애들이 많이 놀랄 것 같은데?”

“못됐어. 정말.”

그때 시하가 내 바지를 잡아당겼다.

“아아. 형아.”

“응. 시하야. 왜?”

“차!”

“응? 차?”

“시하도. 차~”

나는 시하가 가리킨 곳을 보았다.

빨간색에 매끄러운 스포츠카. 포르쉐.

표지판에 적혀 있는 가격 3억 4천.

시하가 많이 눈이 높아졌구나?

“어? 시하야. 저기 펭귄 차가 있어!”

“아?”

시하가 눈을 반짝였다.

나는 시하 옆구리를 잡고 빨리 다른 부스로 빠져나갔다.

뭐든지 사주고 싶은 나였지만 세상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

며칠 후.

시하와 나에게 새 차가 생겼다.

그것도 빨간색으로.

“???”

세상은 쉬웠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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