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내가 오늘 문도환에게 시하를 맡긴 것에 이유가 있었다.
오늘 번 돈으로 맛있는 한 끼를 대접하고 싶었다.
그리고 부탁도 있고.
“형. 얼굴이 왜 그래요?”
“뭐가? 너도 나 못생겼다고 하려고?”
“누가 그래요? 아까 그 여자들이 그래요?”
문도환이 시하를 힐끗 보았다.
설마 시하가 그랬을 리가.
뭔가 잘못 알았겠지.
“아니다. 나는 오늘 순수함이 가장 잔인할 수 있다는 걸 알았어.”
“무슨 소리예요? 그리고 형이 외모가 어디가 어때서?”
문도환이 감동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역시 너밖에 없어.”
“형은 역시 착하게 생겼죠. 누가 봐도 엄청 잘해줄 것같이 생겼잖아요.”
“네가 제일 나빠. 네가.”
“왜요? 좋은 말인데?”
“나는 왜 그렇게 안 들리지?”
“에이.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긍정적으로. 여기 비싼 스테이크 앞에서 그런 얼굴 할 거예요? 그치 시하야.”
나는 시하를 보며 스테이크를 입에 넣어 주었다.
오물오물.
입에 많이 들어간 것도 아닌데 볼이 튀어나와 있어서 너무 귀여웠다.
그런 우리를 보는 문도환이 스테이크를 잘근잘근 씹었다.
“맛은 있네. 그래. 인생 뭐 있어. 이렇게 맛난 거라도 먹어야지. 이게 낙이지. 낙이야.”
“그래요. 그렇게 열심히 먹고 나중에 모터쇼에서 시하랑도 같이 놀고.”
“그렇지. 그렇지. 그래야…. 뭐?!”
나는 시치미 뗀 얼굴로 문도환을 보았다.
“아. 맞다. 제가 이미 스테이크 다 계산했어요.”
“이거, 이거 너무한데? 설마 모터쇼에 시하 데리고 놀아 달라는 값 아니야?”
“에이. 설마요. 제가 그런 부탁을 하겠어요? 그냥 형 편한 시간 있나 물어보는 거지.”
“야. 밥 좀 편하게 먹자. 지금 고기가 되게 퍼석퍼석해진 거 알지?”
나는 스테이크를 입에 넣었다.
부드럽다. 비싼 만큼 입에 살살 녹는 것 같다.
“맛있는데요?”
“그래. 맛있네!”
“아아! 형아!”
“응. 그래. 시하야. 자, 아~”
“아~!”
나는 시하의 입에 스테이크를 넣어주고 다시 문도환을 보았다.
“형. 내가 부탁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나 진짜 안 돼. 굉장히 설득이 좋았지만 바빠. 진짜 바빠. 알지? 이번에 현장 실습이 그나마 기업체가 좀 있는 이유는 우리가 다 발로 뛰어 기업체 선정하고 협의해서야.”
“알죠. 알죠. 그런데 재밌는 사실이 있네?”
“응?”
“모터쇼에 멜츠라는 회사에 잘 말하면 또 모르잖아요? 아니지. 다른 국내 회사 역시도 어떻게 해 볼 만하지 않아요?”
“요요요. 입 봐라. 언제부터 그렇게 요망하게 입을 놀렸어? 어? 통역 일 몇 번 해 봤다고 입이 아주 그냥 뱀이야. 뱀.”
나는 뒤통수를 긁었다.
“그렇게 칭찬해 주시면 부끄럽죠.”
“칭찬 아니야. 갈수록 부탁이 뻔뻔해진다는 거지.”
“아니. 형. 생각해 봐요. 제가 그냥 부탁으로 끝나겠어요? 이번에 멜츠에서 주는 동시통역 비용이 얼마인지 알아요?”
“얼만데?”
“80만 원. 이 정도면 정말 많이 쳐주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시하 데리고 놀아주는데 그냥 입만 싹 닦을까?”
문도환의 귀가 솔깃 솔깃해진다.
내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스테이크를 써는 솜씨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문도환이 말했다.
“크흠. 뭐 그런 성의까지. 크허험. 나 그런 흰 봉투에 넘어가는 사람 아니다.”
“형. 저 아직 아무 말 안 했어요.”
“커허험. 우리 취업센터에서 일하면 말이야. 이 정도는 눈치껏 알아들어. 괜히 면접 지도해 주는데 스페셜리스트인 줄 알아? 왜 이래? 이래봬도 면접관으로도 들어가 본 사람이라 이거야.”
“알죠. 알죠. 형. 저번에도 야꾸르트 직원 면접 봤잖아요.”
“그치. 그랬지.”
“그 얘기 듣는데 소름 돋았어요.”
문도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다 넘어온 것 같은데?
“출장 명목. 합법적 일터 나가기. 어때요? 이 정도면 굉장히 메리트 있는 거 아닌가? 거기에 좋은 알바까지. 와. 이 정도면 못 먹어도 고지.”
“오케이. 알았어.”
나는 속으로 주먹을 쥐었다.
문도환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역시 형이라면 받아줄 줄 알았다.
“고마워요.”
“뭘. 서로 돕고 사는 거지. 너도 이제 나 도와주네?”
“그런가요?”
그렇게 우리는 식사를 계속했다.
이미 다 먹은 시하는 음료를 꿀꺽꿀꺽 마시고 있었다.
잠시 먹는 동안 시하에게 영상이나 틀어줘야겠다.
내가 펭귄몬스터를 틀어주고 있을 때 문도환이 입을 열었다.
“나도 너튜버나 할까 봐.”
“갑자기요?”
“갑자기는 아니고 어느 정도 생각한 건 있어. 애들 한두 명? 같이하면서.”
“오. 그래요?”
“오늘도 생각해 봤는데 자막 넣고 그러면 꽤 재밌을 거 같아. 예를 들어 말이야. 남자가 여친에게 듣기 싫어하는 말의 회피 방법. 이런 영상.”
“예상이 안 가는데요?”
그건 대체 어떤 영상일까?
일단 말만 들어보면 병맛 같은 컨셉인 거 같은데…….
문도환이 말했다.
“잘 봐. 여기 한 사람이 고민이 있다고 말하는 거야. 여자 친구 문제로.”
“보통 어떤 거요?”
“오빠. 나한테 잘못한 거 있지? 이런 거.”
“아! 그런 이야기 들어봤어요.”
“그럼 내가 물어보는 거야. 너라면 어떻게 대답할 거 같아? 시혁이 네가 대답해봐.”
“음.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뭘 잘못했는데?”
“이러이러한 걸 잘못한 거 같아.”
“또? 또? 그리고 또?”
나는 그 말에 질색했다.
잘못한 걸 또 말하라고?
그러자 문도환이 말했다.
“이러면 안 되는 거야.”
“그럼 형이라면 어떻게 말할 건데요?”
“딱 이런 대사 느낌으로 내가 말하는 거지.”
“아하.”
나는 대충 영상의 컨텐츠가 뭔지 그려졌다.
생각해 보면 꽤 재밌을 거 같다.
“짜식. 잘 봐. 이렇게 말하는 거야. 네가 물어봐.”
“오빠 나한테 잘못한 거 있지?”
“있지. 너를 사랑한 죄.”
“웩!”
“야, 왜!”
“아니. 이건 좀.”
이건 진짜 아니다.
그런데 뒤 테이블에 있는 사람도 그 말을 들었는지 해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괜히 내가 다 미안해지네.
“형. 이건 아닌 거 같아요.”
“괜찮아. 이게 다 컨셉이니까. 주변이 감탄하고 그걸 보고 있는 실제 일반인이 썩은 표정 짓는 게 포인트거든.”
“아…….”
그건 좀 재밌을지도?
실제로 뒤에 사람이 토할 거 같은 표정을 짓기도 했다.
“일단 도전한다는 거 자체가 의미가 있는 거니까요. 파이팅.”
“그거 가망 없다는 말 아니야?”
그때 시하도 한마디 했다.
“아아. 문도! 잘모이찌?”
아무래도 ‘오빠 나한테 잘못한 거 있지?’는 시하가 배워 버린 것 같다.
그 말에 우리 둘은 웃었다.
문도환이 말했다.
“시하 신경 못 써준 거 잘못했다.”
“또?”
설마 ‘또?’도 배웠을 줄이야.
“요즘 시하가 빨리 배운다는 걸 간과했네!”
그건 나도 간과한 거 같았다.
시하가 말했다.
“또?”
갑자기 엄습하는 무서움.
‘설마 이 말 계속하는 거 아니겠지?’
***
-모터쇼 당일.
모터쇼에는 차량이 많은 부스도 차지하지만, 꽤 많은 자동차 부품 업체들도 참여해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 열린다고 해도 해외 기자들도 상당히 있었다.
여기 오는 사람들은 다들 차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다.
디자인을 보러 오는 사람, 새로운 차량 런칭을 기다리는 사람, 모델을 보러오는 사람.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 기대되는 것은 역시 바이어들.
각자의 목적에 따라 모터쇼가 시작되었다.
“아아! 문도!”
시하는 문도와 함께 모터쇼에 왔다.
형아도 있었지만 일이 들어왔는지 금세 다른 데로 갔다.
“시하야. 왜? 형아 보고 싶어?”
“아아.”
시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절레절레 저었다.
‘형아 일을 방해하면 안 돼!’라고 생각했으니까.
“솔직히 말해도 되는데. 형아라면 저기 2층에 있을걸?”
“아?”
시하는 문도가 가리킨 곳을 보았다.
멜츠 부스가 있는 곳에서 고개를 위로 돌리면 2층이 보이는 창이 있었다.
차량 계약을 하는 자리가 따로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저기 가볼까?”
“아냐.”
시하는 오늘 형아가 여기서 재밌게 놀고 있으라고 했다.
3시쯤이면 통역이 끝나 같이 놀 수 있다고 했다.
“그래? 보러 가도 괜찮을 텐데. 그럼 자동차나 실컷 볼까?”
“아아.”
문도환이 시하의 손을 잡고 먼저 멜츠의 부스를 들렸다.
멜츠에서 준비한 것은 신형 차량뿐만 아니라 여기 오는 가족들도 놀러 올 수 있는 이벤트도 있었다.
이제 막 오픈을 한 모양인지 그 이벤트에 줄 서는 사람이 없었다.
“아아. 문도!”
시하 역시도 멜츠의 이벤트에 관심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게 유아 전동차가 있었으니까.
“저거 타고 싶어?”
“아아!”
“그래. 저거 타러 가자.”
줄이 없어서 곧바로 탈 수 있었다.
문도환은 자동차 조종기를 쥐었다.
탑승은 애들이 하고, 운전은 어른이 한다.
그리고 실제 모델을 작게 만들었기 때문에 쓸데없이 고퀄리티였다.
시하도 승차감이 좋은지 의자를 꾹꾹 눌렀다.
안내하는 사람이 말했다.
“여기 부스에서 만든 루트를 가지고 한 바퀴 도시면 됩니다. 멜츠에서 센서 기능을 강조하기 위한 이벤트거든요.”
“아, 그래요?”
“네. 멜츠에서 준비한 주제 중의 하나는 가족이라서요.”
“그렇군요.”
문도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로같이 만들어진 도로를 향해 자동차를 움직였다.
부웅.
천천히 움직이는 자동차.
앞에 가로막히는 벽이 있었는데 은근히 조종하기 힘들었다.
시하는 그걸 아는지 심각한 표정으로 핸들을 돌렸다.
“붕붕!”
부드럽게 커브를 돌았다.
또다시 마주치는 벽.
시하는 다시 핸들을 돌렸다.
하지만 자동차는 한발 늦게 움직여서 벽에 부딪히려고 했다.
삐빅.
센서가 작동하며 자동차가 알아서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와 동시에 의자와 안전벨트가 움직였다.
자동으로 조절되는 각도와 단단히 고정하는 기능.
멜츠가 자랑하는 안정성이었다.
“아아!”
시하는 그런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하고 깜짝 놀랐다.
찰칵. 찰칵.
외국 기자들의 카메라가 터졌다.
이벤트가 어떤지 궁금해서 지켜보다가 좋은 사진을 건진 것이다.
문도환이 그걸 보며 눈을 찌푸렸다.
갑자기 사진을 함부로 찍는 것 같아서.
한마디 하려고 할 때 외국 기자들이 와서 말했다.
「죄송하지만 사진 좀 쓸 수 있을까요? 얼굴은 안 나오게 찍었습니다. 확인해 보시죠.」
「아! 얼굴만 안 나오면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문도환이 사진을 일일이 확인했다.
그때 시하가 문도환을 불렀다.
“아아. 문도! 차!”
“아차. 시하야. 좀 있으면 차 움직일 거야.”
“아아.”
문도환이 다시 차를 움직였다.
시하는 차량이 움직이자 핸들을 잡았다.
운전이 시작된 것이다.
“아아. 집!”
시하는 이 자동차가 마음에 들었다.
형아를 뒤에 태우고 자신이 집으로 데려다주는 상상을 했다.
어린이집으로도 가고, 편의점도 가고, 멍멍이에게도 가고, 동물원에도 가고.
이 차와 함께라면 어디든지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차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도착지가 있는 법이다.
끼익.
자동차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고 나서 문도환을 보았다.
“시하야. 이제 끝났대.”
“또?”
“아니. 뭘 또 야.”
시하가 손가락 하나를 들었다.
“또오?”
“크흠. 귀엽네. 하지만 안 돼. 뒤에 애들이 기다리네.”
“또오?”
“커흐흠. 그렇게 귀엽게 바라봐도 안 된다니까. 자. 이제 내리자.”
시무룩.
시하는 내리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문도환의 손에 내려야 했다.
멀어지는 빨간색 매끈한 차량을 보며 시하는 고개를 돌렸다.
3살 이시하.
벌써부터 자동차 디자인을 볼 줄 아는 남자였다.
“시하?”
귓가에 들려오는 높은 목소리에 시하는 고개를 돌렸다.
반가운 마음에 살며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