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날.
시하는 베란다를 통해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다가 형아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형아~”
시하는 형아의 뺨을 쳤다.
찰싹찰싹.
“으으.”
시혁이 살며시 눈을 떴다.
“형아. 비.”
“응? 어…. 비가 내리네. 밖이 어두운 것을 보니.”
“아아. 형아. 비.”
“응.”
시혁이 너무 피곤해서 이불을 뒤집어썼다.
오늘 하루는 좀 더 자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시하는 그런 형아를 깨워야 했다.
자기가 원하는 일을 완수하기 위해.
“형아~”
이불에 꼼지락거리며 안으로 파고들었다.
늘 그렇듯이 자연스럽게 형아의 배 위에 올랐다.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면서 심장 소리가 들렸다.
그 뒤로 들려오는 시혁의 당황하는 소리.
“야. 야. 시하야. 뭐 하는 거야.”
“형아~”
“옷 안으로 파고들어 오면 어떡해.”
“아아. 시하. 요기!”
시혁의 목이 있는 부분까지 뿅 하고 나와 눈을 맞췄다.
시혁이 못 말리겠다는 웃음을 보이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잠옷 늘어나면 시하가 새로 사줄 거야?”
“아아. 형아~”
“시하 돈 많네. 형 옷도 사준다고 하고.”
시혁이 시하를 품에 안은 채로 일어났다.
시하는 품에서 배시시 웃었다.
“어엇. 카메라! 카메라!”
“아아. 형아.”
“아…. 또 놓쳤네. 너 형아가 팔 못 쓸 때 노리고 웃는 거지?”
“아?”
시하는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내려달라고 몸을 파닥거렸다.
형아를 깨웠으면 꼭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래. 그래. 내려줄게.”
“아아.”
내려온 시하는 도도도 달려가 서랍을 열었다.
시하의 옷은 항상 제일 밑에 있었다.
언제나 시하가 보고 고를 수 있게 하려는 시혁의 배려였다.
“형아. 이거.”
“응?”
시하는 짜잔 하고 펭귄 비옷을 꺼냈다.
오늘은 비옷을 사고 처음 비가 오는 날이었다.
이런 날에 비옷을 입어야 하는 걸 시하는 알고 있었다.
시혁이 당혹스러운 얼굴을 했다.
“어…. 비가 오면 비옷을 입는 게 맞지.”
“아아.”
“그런데 일부러 비옷을 입으려 비 올 때 나가는 건 아니야.”
“아아.”
“우선 나갈 일이 없으니 그 옷은 넣어두자.”
“아아.”
도리도리.
시하는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은 이걸 입고 나갈 거라고 주장을 했다.
“형아. 시하. 이거. 이버.”
“아니야. 그렇지 않아.”
“아냐.”
“으음. 좋아. 그럼 가위바위보를 이기면 형아가 밖으로 나갈게.”
“아?”
“가위바위보가 뭐냐면.”
시하는 시혁의 말을 듣고 이해했다.
“형아는 바위를 낼게. 알았지?”
시하를 상대로 심리전을 거는 시혁.
시하는 자신의 손을 보았다.
가위바위보에 이기려면 보자기를 내야 한다.
“시하. 보.”
“오! 맞아. 바위를 이기려면 보자기를 내야지. 시하 똑똑해!”
시혁이 가위를 낼 생각을 했다.
괜히 비 올 때 밖에 나가서 시하가 감기라도 걸리면 안 된다.
그걸 위해 밖에 나가는 걸 저지해야 했다.
“그럼 가위바위보를 하자.”
“아아.”
시하는 형아가 가위바위보를 외치는 걸 바라봤다.
보자기를 내려 했지만, 마음이 바뀌었다.
형아랑 같은 바위를 내고 싶었다.
‘형아랑 같은 거!’
시하는 언제나 형아랑 같은 걸 하고 싶었다.
“가위바위보!”
“보!”
“억! 졌어!”
형아는 가위. 시하는 바위.
승리는 시하가 가져갔다.
시혁이 혼이 빠진 얼굴로 자신의 가위를 바라보았다.
“설마 3살이 심리전을 할 줄 알다니…….”
착각이었다.
시하는 그저 형아랑 같은 것을 내고 싶을 뿐이었다.
시무룩.
시하는 형아와 같은 것을 내지 못해서 실망했다.
“시하야!”
“아아.”
“넌 천재야! 천재! 어쩔 수 없지. 형아가 졌으니까 펭귄 비옷을 입고 나가자.”
“아아!”
시하는 다시 기분 좋아졌다.
펭귄 비옷을 입고 형아랑 외출하는 게 너무나 기뻤으니까.
***
결국,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밖으로 나왔다.
나는 우산을 쓰고 시하는 비옷을 입었다.
손은 잡지 않았다.
괜히 손만 비를 맞을까 봐.
“형아!”
“그래. 재밌어?”
“아아.”
비 맞는 게 재밌는 걸까?
애들이 물을 좋아한다고 들었지만 이렇게 좋아할 줄이야.
그래도 비옷이 튼튼해서 다행이었다.
안에 옷이 젖을 일은 없을 테니까.
“그럼 형아가 재밌는 곳 데려다줄까?”
“아?”
“사실 이건 운에 많이 기대는 건데…. 일단 가자.”
“아아.”
나는 시하와 함께 놀이터로 갔다.
역시 이렇게 비 오는 날에는 아무도 없었다.
“시하야. 자 저기로 가보자.”
“아아.”
나는 놀이터 근처에 있는 풀숲으로 시하랑 들어갔다.
시하는 뭐가 좋은지 여기저기 물과 흙을 튀겼다.
장화를 신겨서 다행이다.
“어?! 여기 있네! 찾았다.”
“아아?”
“자. 여기 봐. 시하야. 이 애는 달팽이야.”
“달팽이?”
“응. 어때? 꽤 귀엽지?”
요즘 도심에서 찾아보기 힘든데 운이 좋았다.
시하가 쪼그리고 앉아서 달팽이를 보았다.
나뭇잎 위에서 비를 맞고 있는 모습을 보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형아. 우산.”
“응? 우산?”
“달팽이. 우산.”
“아! 달팽이에게 우산 씌워 줘야 한다고?”
“아아.”
시하가 너무 착한 거 같다.
달팽이보고 우산을 씌워 줘야 한다니.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까?
하지만 달팽이는 시하처럼 비를 맞으러 온 게 틀림없다.
“시하야. 달팽이는 우산이 필요 없어.”
“아?”
“저기 뒤에 달고 있는 거 보이지?”
“아아.”
“저게 바로 달팽이 비옷이야. 시하처럼 비옷을 입고 나온 거야.”
“아아!”
시하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무래도 잘 이해했나 보다.
“잘 봐. 이렇게 톡 하고 건드리면 쏙 들어간다?”
내가 달팽이를 툭툭 건들자 천천히 껍데기에 쏙 들어간다.
시하가 그걸 보더니 신기하다는 듯이 눈이 커졌다.
물론 나만 알아볼 수 있는 크기였지만.
“아아. 형아.”
“응. 신기하지?”
“아아.”
그렇게 우리는 한참 동안 달팽이 관찰을 했다.
설마 이렇게 오래 관찰하고 있을 줄은 몰랐지만.
아이들은 뭐든지 이렇게 처음이고 신기해하는 걸까?
괜히 사람들이 ‘안 본 눈 삽니다.’라고 농담을 하는 게 아닌 것 같다.
세상에 이렇게 신기한 일이 많은데 안 본 눈이 있다면 살 수 있겠지.
“형아. 개굴개굴.”
“응? 어디? 개구리가 어딨어?”
“아아. 저기.”
나는 시하가 가리킨 곳을 보았다.
정말 개구리가 있기는 했다.
실제 개구리가 아니라 개구리 우산을 쓰고 있는 사람.
얼굴은 안 보이는데 몸의 곡선을 보니 여성인 것 같았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희미한 노랫소리.
「차가운 빗물이 내 뺨을 거슬러.」
「사라진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언제나 내 맘은 무지개로 가득 찰 텐데.」
시하가 자리에서 일어나 개구리 우산이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어? 시하야. 같이 가.”
“아아.”
우산을 쓰고 있는 여성이 우리를 발견했는지 노래를 멈췄다.
괜히 민망한 곳에서 마주친 건 아닌지 싶었다.
“아. 죄송해요. 저희가 방해했죠?”
이렇게 말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뜻밖의 것이었다.
“오빠?”
“응? 어?”
눈앞에 있는 사람은 같은 학과 후배인 서수현이었다.
“오빠. 여긴 어쩐 일이에요?”
“나야. 뭐. 시하랑 놀고 있었지.”
“이 비 오는 데서요?”
“응.”
“고생이 많네요. 와! 시하야. 너 진짜 귀엽다. 어떡해! 오빠! 이런 건 사진 찍어야죠!”
“그렇지.”
시하가 반가운지 서수현에게 인사를 했다.
손을 들고 흔드는데 너무 귀여웠다.
서수현은 앞에서 폰을 들고 꺅꺅거리고 있었다.
“이건 고생이 아니라 선물 아니에요?”
“뭐. 그렇지. 이렇게 귀여운데. 그런데 여기서 노래 부르고 있어? 처량하게?”
“아…….”
자기가 생각하기에도 부끄러웠는지 개구리 우산으로 얼굴을 가린다.
“가끔 왜 센치해질 때가 있잖아요. 막 노래방이라는 답답한 곳 말고 밖에서 노래 부르고 싶을 때 말이에요.”
“없는데? 그런 사람은 별로 없을 거 같은데.”
“아 쫌. 진짜 못됐어. 아무튼, 산 위에서 야호라고 소리치고 싶은 거랑 같은 느낌이에요. 이렇게 비 오면 사람 없으니까 조용히 부르기도 좋고.”
“그래서 수현 동생은 빗물이 거슬러 마음에 무지개를 되찾으셨나?”
“아 뭐야! 다 들었어! 다 들었어!”
정말 부끄럽기는 한지 우산으로 계속 얼굴을 가리고 있다.
시하는 계속 개구리 우산만 보고 있었다.
“개굴개굴.”
“그렇게 얼굴 가리지 말고 시하 개구리 우산 한번 쓰게 해줘.”
“아! 시하 개구리 우산에 관심 있어요?”
서수현이 시하에게 개구리 우산의 손잡이를 넘겨줬다.
오두막 정자에 지붕이 있어서 서수현이 비 맞을 일은 없었다.
“시하야. 개구리야. 그치?”
“아아.”
시하가 개구리 우산이 마음에 드는지 고개를 올려서 계속 쳐다보았다.
서 있는 것도 좀 그래서 시하를 정자에 앉혀서 개구리 우산을 보게 했다.
나는 서수현을 보았다.
“그런데 처음 듣는 노래던데?”
“제가 지은 거예요.”
“그래? 잘 지었네.”
“그쵸?”
“어. 느낌 있어. 그런데 원래 이런 거에 관심 있었어?”
“뭐 다들 한 번씩 가수에 꿈꾸잖아요.”
“그냥 꿈꾼 거치고는…….”
“오빠. 여기까지만 해요.”
“알았어. 말하기 싫다는 거지?”
“그런 거 아닌데 좀 부끄러워서요. 괜히 미련 있는 거 같고 그렇잖아요.”
나는 서수현을 힐끗 보았다.
그러고 보니 처음 이리저리 많이 활동하면서 직업 선택을 방황했다.
그건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인 것 같다.
하고 싶은 것을 찾는다. 내가 뭘 해야 할지 모른다.
누구나 고민하고 고민해야 하는 과제.
어쩌면 대학교의 어떤 과제보다 어려운 걸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쉽듯이 서수현에게는 어려운 걸지도.
“오빠는요?”
“응?”
“오빠는 뭐 하고 싶은 걸 포기한 적 있어요?”
“없어. 애초에 하고 싶었던 게 없었으니까.”
“지금은요?”
“호기심이 가는 게 있긴 한데 모르겠어.”
“그래요? 그게 뭔데요?”
서수현이 흥미가 가는지 눈을 반짝이며 나를 보았다.
“통역사.”
“와! 통역사. 멋있죠. 오빠한테 어울려요.”
나는 피식 웃었다.
“꽤 재밌기는 해.”
“만약에 포기해야 할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포기할 건데?”
“네?”
“재밌고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잖아.”
“그건 그렇죠.”
“보통 취미로 많이 즐기기도 하고.”
“그건 대답을 돌리는 거 같은데?”
“들켰네.”
나는 피식 웃었다.
“내가 포기해야 할 일이 생긴다는 것은 시하를 우선으로 했다는 소리지.”
“아…….”
“그게 불행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야. 아쉽긴 해도 나는 만족하겠지. 그거뿐이야. 시하가 기쁘면 나도 기뻐. 이게 부모의 마음인지 형의 마음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시하를 보았다.
이제 우산에 흥미가 떨어졌는지 시하가 나를 말똥말똥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자. 이제 시하가 우산에 관심 없대. 너 눈두덩이랑 닮아서 그러나 봐.”
서수현이 깜짝 놀라 폰으로 자신의 퉁퉁 부은 눈을 바라보았다.
“아이 씨. 못됐어! 진짜!”
재빨리 우산을 들고 얼굴을 가렸다.
나는 웃으며 시하를 아래로 내렸다.
서수현이 말했다.
“오늘 고마워요.”
“아무것도 한 거 없는데?”
“그래도 언제나 고마워요. 뭔가 맨날 물어보고 상담받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그러면 나중에 밥 한번 사든가. 서개굴.”
“서개굴? 이 오빠가 진짜! 어제 잠을 설쳐서 그렇거든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갈 건데. 넌 어쩔래?”
“저도 갈 거예요.”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놀이터를 나왔다.
그렇게 길가는 걷는데 버스가 빠르게 달려온다.
옆에는 물웅덩이가 보였다.
나는 괜히 위기감이 느껴져서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촤아악!
역시 물보라가 크게 튀며 우리를 덮쳤다.
나는 시하 옆에 재빨리 쭈그려 앉아서 보호할 수 있었다.
‘아…. 시하 비옷 입었지…….’
그래도 저 물보라 맞았으면 안에 옷이 젖었을지도 몰랐다.
“시하야. 괜찮아?”
“아아. 형아. 물!”
시하가 물웅덩이에 철퍽철퍽 발을 담갔다.
이런. 감싸주는 건 쓸모없게 됐을지도.
축축한 내 바지를 보며 일어섰다.
“응? 너도 바지 다 젖었네?”
“선배가 옆에 있었으면 안 젖었을 텐데…….”
“동지애가 느껴지네.”
“이런 동지애 안 느끼고 싶었거든요!”
그때 시하가 내 옷을 잡아당겼다.
“형아!”
“응?”
“가타!”
“어?”
어느새 시하의 바지가 젖어 있었다.
동지애는 시하가 느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