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5화 (65/500)

65화

나는 단 한 번도 시하의 말을 허투루 들은 적이 없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날 대화를 하다가 잘 모르겠으면 다시 한번 곱씹어 보는 사람이다.

그렇게 가치관이 조금씩 변화하고 다양하게 생각해 왔던 것 같다.

아마 지금도 아직 부족할지도 모르지만.

현재 앞에 있는 박중혁 일도 마찬가지다.

‘지호가 병원에서 만났던 사람.’

아무래도 애 혼자 놔두고 가는 것도 그래서 정문에 서 있는 경비원에게 봐 달라고 언질을 줬다.

나중에 병원에 다시 올 일이 있어서 물어봤는데 엄청난 말을 들었다.

‘데려다준 사람이 차 사고 낸 아줌마였지.’

여기서부터 나는 한 가지 가정을 해 봤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이 사고는 계획된 게 아니었을까 하는 그런 생각.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게 그녀가 나에게 했던 사과의 말과 못 봤다는 말이 맥락에 짜 맞춰지며 하나의 소설을 그리게 됐다.

‘여기서부터는 그냥 추리지.’

나는 박중혁을 보았다.

무언가 뻐끔거리며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지호의 몸에 난 멍 부위는 어디 넘어져서 생길 부위가 아니었어요. 넘어지면 무릎이 먼저 닿고 그다음 반사적으로 팔이 닿게 되어 있으니까요.”

손으로 배를 가리켰다.

“이런 배에 멍이 드는 경우는 때렸다는 가정이 훨씬 확률이 높죠.”

“그, 그건. 아, 아니야.”

“네. 의도한 게 아니실 수 있죠. 하지만 지호가 왔을 때 왜 그렇게 당황했어요? 데려다줄 어른이 없었던 거 아닌가요?”

“그건…….”

“그런데 병원까지 찾아와서 많이 당황한 거겠죠. 혹시 집까지 누가 데려다줬는지 아시나요?”

“시혁 씨가 데려다준 거 아닙니까?”

“지호가 그렇게 말하던가요?”

“네. 통화했죠.”

여기서부터는 정말 내 생각이다.

어쩌면 그녀는 사실 나보다 먼저 지호의 멍을 파악하고 있었을 거다.

범행 동기는 모르겠지만 아마 비슷한 아픔이 있어서 저질렀겠지.

아무래도 나이도 있고 노안도 있었을 것이다.

눈은 박중혁을 노리고 있어서 우리를 못 봤을 거고.

나는 그녀가 한 말을 생각했다.

-못 봤어요. 시야에 안 들어와서요. 정말이에요.

그래. 이 말.

그리고 시하가 한 말들.

-부웅~ 아아. 지호 형. 시하 아야. 만나. 지호 형이랑 노라. 지호. 수우.

[해석 : 차로 우리를 다치게 한 여성이 지호를 만난다.]

[해석 : 지호 형이랑 놀았다.]

[해석 : 지호와 수우?]

저 수우란 부분은 뭔지 모르겠지만 대충 예상이 가는 건 있다.

지금 박중혁의 반응을 보면 말이다.

“뭐 지호랑 잘 놀다가 데려다줬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그 멍은?”

“사실 일부러 그런 건 아닙니다. 다 이놈의 술 때문에…….”

“아. 술.”

나는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그런 거로 다 변명이 된다면 세상에 경찰과 법이 왜 있을까.

박중혁도 그런 내 마음을 느꼈는지 이것저것 말하기 시작했다.

“그날 애가 엄마를 계속 찾으며 우는데 뇌가 징징 울리더라고요.”

“그래서 그랬습니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요. 몸이 통제가 안 되었어요.”

나는 눈을 감았다.

저걸 변명이라고 들어주고 있는 나도 참.

“그럼 제가 경찰에 신고해도 할 말 없으시겠네요?”

“그냥 실수였어요.”

“그냥 실수…. 그 실수가 애들에게 평생의 상처가 됩니다. 지금 애가 크면 나중에 기억 못 할 거 같습니까?!”

나는 박중혁을 노려보았다.

어른들이 남긴 상처는 커서도 계속된다.

떠올리기만 해도 속이 매스꺼워지고 분노가 치밀게 된다.

몸 안에서 질척이는 어두운 감정이 눈을 감을 때마다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그게 바로 지워지지 않은 낙인이라는 거겠지.

“다 기억해요. 하나부터 열까지. 당신이 술에 취해 기억하지 못했던 말 한마디까지 전부!”

“엄청 빌었어요. 사과도 했고. 문제없어요.”

“아. 엄청 비셨다?”

나는 고개를 돌리다가 이렇게 물었다.

“애가 놀이터에 혼자 논 다음 날에 그랬습니까? 놀이터 못 나가게 할 정도로?”

“그때 멍을 보셨나 보네요.”

“아니요. 그 전의 멍을 봤는데요.”

방중혁이 나와 눈을 마주쳤다.

낭패한 기색이 역력했다.

욕지거리가 나오려는 것을 나는 꾹 참았다.

“변명은 경찰서에서 하시죠.”

“예?”

나는 병실 문을 열었다.

밖에는 내가 부른 경찰이 대기하고 있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경찰이 말이다.

***

사회복지사가 지호의 집을 방문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아이의 엄마는 현재 중국 주재원으로 나가 있는 상태였다고 한다.

엄마가 없는 상태는 아니어서 다행인 것 같다.

지호의 이야기를 듣고 급히 한국으로 귀국한다고 했다.

솔직히 애를 놔두고 중국에 몇 년간 일하러 간다는 선택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도 사정이 있을까 싶어서 그냥 이해하려 했다.

적어도 그녀는 아들을 사랑하기는 하는 것 같으니까.

‘그래도 경찰에게는 다 말 못 했네.’

사고 낸 50대 여성이 사실은 계획 범죄였다는 심증을 말이다.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할까 많이 고민했지만 하지 않기로 했다.

나중에 자기 때문에 그런 일을 벌였다는 걸 지호가 알게 되었을 때 받을 충격이 클 것 같아서.

이런 화제는 운전 미숙으로 끝나는 기사보다 화제가 더 세기 때문에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런 건 경찰이 밝혀낼 사실이지. 내 일은 아니야.’

그런 것치고는 꽤 깊숙이 연관되지 않았나 싶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놀이터 갈 준비를 했다.

“시하야. 가자.”

“아아.”

나는 시하의 손을 잡고 그때 그 모래가 있던 놀이터로 향했다.

이 작고 여린 몸을 그 사람은 어떻게 때릴 생각을 했을까?

이렇게 좀 더 힘을 꽉 주면 어린 손이 부서질 것같이 약한데.

이해하고 싶지도 않고 이해하지도 않을 것이다.

“오늘 지호 형이랑 만나기로 약속했지?”

“아아.”

“저번에 못다 했던 거 하러 가자.”

“아아. 흑공!”

“그래. 흙공. 거길 파 보는 거야.”

“아아. 지호 형. 가치.”

“그래. 지호랑 같이.”

어느새 우리는 놀이터에 도착해 있었다.

놀이터 구석에서 지호가 흙장난하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옆에는 페트병도 있었는데 아마도 우리랑 놀 때를 떠올려 이렇게 갖고 온 것은 아닐까 싶다.

나는 고마운 마음을 담아 지호를 불렀다.

“지호야!”

“지호 형!”

지호가 고개를 휙 하고 돌려 우리를 보았다.

손을 들어 흔드니 마주 흔들어준다.

조용했던 아이가 웃으면서 달려왔다.

마치 들떠 있는 모습이었다.

“지호야. 안녕.”

“아아. 안녕!”

“안녕하세요. 시하야. 안녕.”

나는 그런 지호를 데리고 흙공이 묻은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호야. 좋은 일 있어? 얼굴이 엄청 밝네?”

“이제 엄마가 온대요.”

“정말?”

“네. 엄마가 저랑 같이 산대요. 저 중국 간대요.”

“정말 잘됐다.”

지호에게도 정말 잘된 일이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노는 것도 끝이에요.”

“그래?”

“네.”

“그럼 마지막으로 흙공을 열심히 파야겠네?”

“네. 기대돼요!”

시하가 그런 지호를 보았다.

“아아. 지호 형.”

“응. 가자.”

둘이서 나무 밑으로 쫄래쫄래 가더니 묻은 곳에 조심스럽게 땅을 팠다.

살며시 드러나는 흙공.

뭔가 둥글지 않고 이상한 모양이 되어 있었다.

“공 아냐.”

“그러게.”

나는 웃으며 두 아이가 잡은 흙공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냥 꺼내면 이렇게 동그랗지 않아. 이렇게 살살살 아픈 곳을 어루만져주면 동그랗게 돼.”

실제로 여러 흙을 섞어서 몇 번이나 덮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흙공의 겉을 조심스럽게 떼어내자 동그란 모양이 나왔다.

“형아!”

“와! 동그랗다!”

“그치? 내가 말했잖아.”

둘 다 신기한지 동그란 흙공을 소중하게 잡았다.

나는 그런 두 아이가 너무 귀여워 사진을 찍었다.

찰칵.

찍힌 사진 속에는 지호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브이를 한 시하도 부드러운 웃음을 보였다.

“자. 내가 혹시 몰라 비닐봉지도 가져왔어. 여기 넣자.”

둘이서 흙공을 조심스럽게 넣었다.

“손 닦자. 손.”

둘 다 전처럼 열심히 여러 군데를 닦았다.

지호의 배에는 푸른 멍이 없었다.

아빠가 병원에 있는 동안 다 나은 모양이었다.

“그럼 이거 들고 이제 집 가는 거야.”

도리도리.

시하가 고개를 저었다.

“놀래~”

“더 놀고 싶어?”

“아아.”

“그래. 좀 더 놀자. 지호도 괜찮지?”

“네.”

나는 두 아이의 흙공을 맡고 벤치에 앉았다.

놀이터에서 미끄럼틀도 타고, 시소도 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생각했다.

판도라의 상자는 최악이었다.

그래도 희망이 있기에 앞으로 나아간다.

어쩌면 안에 있던 건 희망이 아니라 ‘위로’가 아니었을까?

지호는 알게 모르게 누군가의 위로를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함께 논 시하에게.

차 사고를 낸 50대 여성에게.

이 법을 준수하는 경찰에게.

사회복지사에게.

미안해하는 엄마에게.

앞으로 어떤 생활을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호의 앞길에 찬란한 빛이 가득하기를.

***

지호 형과 마지막으로 헤어지고 시하는 그림을 그렸다.

있었던 일을.

마치 그림일기를 적듯이 네 개의 그림을 그렸다.

그걸 시혁이 보고 고민하다가 픽시브에 올렸다.

-시하의 픽시브 업로드

[제목 : comfort(위로)]

1. 배에 푸른색 멍이 있는 아이 그림.

2. 몸에 푸른 멍이 사라지고, 땅에 앉아서 흙공을 만드는 아이 그림.

3. 흙공 표면에 울퉁불퉁한 푸른색 부스러기가 있는 그림.

4. 왼손은 위에 둥그런 갈색 흙공을 오른손으로 어루만지는 그림.

[좋아요] [하트] [퍼가기] […]

[siha.pepe.] [작품 목록]

#comfort #4cutcartoon #SDCharacter

업로드되자마자 댓글이 엄청나게 달렸다.

-드디어 4컷툰이 올라왔어!

-와! 이건 무슨 의미인지 논란이 없을 것 같아.

-아이의 상처가 흙공 안에 들어간 것 같은데? 푸르스름하잖아?

-아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럼?

-원래 이 작가가 SD 캐릭터를 그렸다고 하잖아.

-아 맞네!

사실 아이가 맞다.

아이를 보고 아이를 그렸으니까.

-그러니 이건 아이인지 어른인지 모르는 거지.

-그럼 그냥 사람이라고 보면 될까?

-맞아. 그렇게 보면 되지.

-그것보다 저렇게 손을 어루만져서 푸른색이 갈색으로 되었어!

-상처가 치유된 거야. 누군가에 의해!

-여전히 따뜻한 메시지를 전해 주는구나?

사람들이 이번 그림을 너무나 좋아했다.

-제목도 ‘위로’야.

-우리는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하지.

-맞아.

-이번 그림에 위로가 되네.

-시하페페!

-또 올라왔으면 좋겠다! 난 이 작가가 너무 좋아!

-여기에 이런 그림도 있긴 해야지.

-맞아! 그런데 나중에 다른 곳에 갈 거 같은 느낌이 들어!

-양지로 올라오는 건가?!

-그렇다고 여기는 음지가 아니잖아?

애초에 그런 일은 없다.

시하가 외주를 받는 일이 생긴다면 그건 크고 난 후일 것이다.

-어쨌든 난 이 작가를 응원해!

-나도 나도!

이렇게 평탄하게 맞는 해석이 되며 흘러가려 했으나.

어디서든지 좀 더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었다.

-쯧쯧. 다들 이렇게 1차원적으로 보니까 이 작가의 ‘숨은 의미’를 못 찾는 거야!

-뭐라고? 너는 뭘 발견했는데?

꼭 잘난 척하는 해석가의 등장이었다.

-저 공은 흙공이 아니다. 그건 알 수 있지. 의인화의 천재 시하페페의 또 다른 의미가 숨겨져 있어!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잘 봐. 저 푸른 멍은 환경오염이고 저 흙공은 지구야.

-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인간이 지구를 오염시켜서 저 흙공은 푸르게 변했어.

-지구는 원래 푸르잖아?

-그래. 작가는 거기서 암시를 놓은 거지. 오염돼도 원래 지구가 푸르다는 메시지를 넣은 거야!

-?!?! 아니야. 근거가 빈약해.

-지구라는 근거가 또 있어. 마지막에 넣은 저 그림. 저 그림은 이번 환경단체 심볼 중에 채택된 상징적 그림이야!

-!!! 진짜잖아! 비슷해!

우연이었다.

애초에 시하는 이번 환경단체 심볼이 뭔지도 몰랐다.

-결국은 인간 스스로가 지구를 정화해야 한다는 메시지지. 지구를 불쌍히 여겨 ‘위로’해야 한다는 거야.

-!!!

그런 의미가 아니었지만 어째서인지 이 해석 역시도 [하트]를 많이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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