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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화 (64/500)

64화

-시혁이 멜츠에 잡혀 있는 그 시각.

-어린이집.

오늘은 선생님이 애들을 위해 준비한 것이 있다.

바로 청개구리 심보를 고치기 위해 준비한 교육.

어린이들이 하지 말라는 것을 꼭 하는 애들이 있다.

이게 애들이 말을 안 듣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호기심이 많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친 호기심은 자신에게 독이 되는 법.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서 재앙을 초래한 것처럼 때로는 열어보지 말아야 할 호기심이 있다.

오늘은 그것을 위해서 준비했다.

“자~ 여러분. 여기 엄청 위험한 상자가 있어요. 절대 열어보면 안 돼요!”

선생님이 고개를 저으며 상자를 가리켰다.

반짝반짝하게 꾸며진 상자.

금박을 발라놓아서 굉장히 호기심이 들게 만들고 있었다.

마치 열어보라는 듯이.

“여기에 놓아둘 테니까 절대 열어보면 안 돼요. 열면 큰일 나요! 끓인 물에 손대면 아야 하는 거 알고 있죠? 그렇게 된답니다!”

그렇게 말하며 선생님이 상자를 방 한가운데에 놓았다.

승준이 그걸 슬쩍 보았다.

하나가 그런 승준을 보더니 옷깃을 잡았다.

“오빠. 안 돼!”

“알거든? 나도 다 알아.”

“엄마가 오빠 감시하래써!”

“아무것도 안 한다고!”

집에서 어떤 일이 있을지 흔히 알 수 있는 대화였다.

승준은 아무것도 안 했는데 억울했다.

호기심이 왕성하기는 하지만 하지 말라는 걸 열에 두 번밖에 하지 않는 착한 아이였다.

“시하야. 너는 궁금하지 않아?”

“아냐.”

“궁금하지 않구나?”

“아아. 시하. 형아. 궁굼.”

“시하는 맨날 시혀기 형아가 머 하는지 궁금하지?”

“아아. 형아.”

“지금 일하고 있으니까 우리는 여기서 놀아야 해. 엄마도 아빠도 맨날 일해.”

“아아. 형아.”

시하는 형아가 공부할 때만 빼고 매일 자신과 놀아준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한다는 개념이 없었다.

“그럼 우리 이거 갖고 놀자.”

“아아.”

“하나도. 하나도. 놀래!”

그렇게 세 아이가 놀려고 할 때 종수가 상자에 다가갔다.

“이런 건 아무것도 없다고! 셋 다 바보구나?”

하나가 소리쳤다.

“안 돼!”

“아아! 아냐!”

“너 또 그러지 마!”

종수가 픽 웃더니 상자를 덜컥 열었다.

팡! 팡!

뭔가 상자에서 피융하고 종이들이 튀어 나갔다.

종수가 놀라서 엉덩방아를 찍었다.

그런 뒤에 흘러나오는 기괴한 소리.

정확히는 상자에 있는 녹음기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흐흐흐. 나는 거짓말이다! 이제 이 세상에 거짓말을 퍼뜨릴 거야!]

[나는 상처야! 사람을 상처 나게 할 거야!]

[나는 뜨거움이야. 몸을 뜨겁게 만들 거야!]

[나는 목 아픔이야. 목소리가 안 나오게 할 거야!]

[모두 탈출하자!]

그렇게 말이 끝난 뒤 이상한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원장과 선생님은 방에서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했다.

“왜 자꾸 거짓말을 하고 싶지? 시하는 뚱뚱해. 하나도 뚱뚱해.”

하나가 반박했다.

“하나 안 뚱뚱해! 히잉.”

시하는 그저 자신의 볼록 튀어나온 배를 바라볼 뿐이었다.

“토토?”

손으로 배를 퉁퉁 쳤다.

통! 통!

튕겨져 나오는 배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의 얼굴에 이건 아닌데 하는 표정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선생님이 말했다.

“크흠. 아야야야! 갑자기 상처가 생겼어!”

몸에 가짜 상처를 보여주며 선생님이 쓰러졌다.

애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선생님을 보았다.

승준이 원장에게 달려가 바지를 잡았다.

“원장 선생님! 선생님이!”

“…….”

원장이 입만 뻐끔뻐끔할 뿐이었다.

선생님이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

“아이고. 누가 상자를 열어서 나쁜 괴물이 다 도망갔어! 이 나쁜 괴물을 잡아야 해. 애들아. 여기 방에 숨어 있을 거야. 어서 잡아서 다시 상자 안으로 넣어줘!”

선생님이 그렇게 말하자 애들이 괴물을 찾기 시작했다.

승준, 하나, 시하 역시도 괴물을 찾았다.

“자. 생각해 보자. 괴물이 어디 있을까?”

“아아.”

“하나는 하나는 알아! 괴물은 저기 이써!”

셋이서 먼저 간 곳은 주전자가 놓인 식탁 밑이었다.

“엄마가 만지지 말래써.”

“맞아! 하나는 똑똑하네!”

“아아. 하나!”

셋은 주전자 밑에 있는 ‘뜨거움 괴물’ 카드를 찾았다.

그걸 주워서 얼른 상자 안에 넣었다.

“뜨거움 찾았다!”

‘핫 뜨거뜨거. 핫 뜨거뜨거 핫!’ 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던 선생님이 멈췄다.

선생님의 나이를 알 수 있는 노래였지만 아이들은 어려서 눈치채지 못했다.

“와! 이제 선생님 안 뜨거워! 하지만 아직 거짓말하고 싶고 상처가 낫지 않았어!”

그 말에 아이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열심히 카드를 찾았다.

‘상처 괴물’ 카드는 [싸우지 마세요]라는 푯말에 끼워져 있었고, ‘목 아픔 괴물’ 카드는 피아노 페달 밑에 있었다.

하지만 ‘거짓말 괴물’ 카드는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승준이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쳤다.

“아. 어딨는 거야?!”

“하나도 이제 못 찾겠어.”

“시하도…….”

그렇게 애들이 지쳐갈 때 선생님이 나섰다.

“이대로 계속 거짓말할 거 같아. 시하는 맨날 방귀 뀐대요~ 하나도 승준도 방귀 뀐대요. 엉덩이 빨갛대요.”

시하는 선생님을 보았다.

선생님이 계속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아아!”

시하가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앉아 있는 선생님에게 다가갔다.

원장 선생님이 눈을 빛냈다.

시하가 드디어 눈치를 채줬구나!

마지막에 있는 ‘거짓말 괴물’ 카드는 선생님의 뒷주머니에 있었다.

그래서 선생님이 엉덩이를 계속 말한 것이다.

하지만 시하가 찾아본 것은 엉덩이가 아니라 선생님의 콧구멍이었다.

전에 형아가 거짓말하면 콧구멍이 벌렁거린다는 동화를 읽어줬기 때문이었다.

시하의 손가락이 선생님의 콧구멍을 찔렀다.

“아악! 거기 아니야! 시하야!”

“아냐!”

이시하.

한 번 추리한 건 끝까지 밀고 나가는 상남자였다.

“거짓말 괴물이 너무 아파. 여기 있어.”

선생님은 자신의 콧구멍을 지키기 위해 ‘거짓말 괴물’ 카드를 꺼내 시하에게 바쳤다.

모든 나쁜 것들을 상자에 넣은 후 다시 닫았다.

계속 반복해서 나던 노랫소리 역시 들리지 않게 되었다.

선생님과 원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모두 부모님 말씀 잘 들어야 해요. 위험한 거 하지 말라고 하면 꼭 잘 들어야 해요!”

“네!”

“종수야. 알았지?”

“네…….”

종수가 자신의 잘못을 아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굉장히 파란만장한 과정이었지만 마지막 마무리는 좋았다.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도 교육은 성공했다.

옆에 있던 원장이 의문 어린 눈으로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

멜츠에서 조금 시달리고 오는 길.

회의가 겨우 끝나 지친 몸을 이끌고 시하를 데리러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오늘은 조금 사치를 부려 택시를 탔다.

정말 차를 하나 사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있으면 차 없이 살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릴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지독했어. 생각보다 더 꼼꼼했고.’

번역 출간이 1년 걸린다는 독일의 힘을 볼 수 있었다.

물론 한국 사람도 있었지만 그들의 꼼꼼한 질문들과 계획에 몸이 오슬오슬 떨렸다.

뭔가 엄청 많은 이야기가 오간 것 같지만 결국 간단히 말하면 모터쇼에 관한 방향성의 이야기였다.

세부적인 논의와 그 수출입 모델에 관한 동시통역도 진행이 되었다.

한국 사람들의 의견도 필요했으니까.

본의 아니게 오늘 통역 일을 하게 되었다.

빵빵한 금액에 사인을 한 건 덤이었다.

덤치고는 상당히 컸지만.

‘이걸로 시하와 맛난 거 먹으러 가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시하야!”

나는 큰 소리로 시하를 불렀다.

오늘 일 때문에 평소와 다르게 늦어서 그런지 시하가 재빨리 달려왔다.

도도도.

짧은 다리를 열심히 놀리며.

“형아!”

나를 부르는 그 소리에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모든 아버지는 이 맛에 자식을 키우는 거 아닐까?

오늘 있었던 모든 피로가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시하야!”

나는 시하를 안고 한 바퀴 휙 하고 돌렸다.

“오늘 어린이집 재밌었어?”

“아아.”

“친구들과 잘 놀았고?”

“아아. 형아. 오늘. 파팍! 해써.”

“오! 엄청나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엄청난 걸 한 거겠지.

나는 마중 나온 선생님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오늘도 감사했습니다.”

“네. 오늘은 어떤 교육을 했는지 시하의 펭귄 가방에 잘 넣어 뒀으니까 읽어 보세요.”

“늘 감사합니다. 이런 거 보면 어린이집 선생님들 일이 많은 것 같아요. 애들 다 보내고 남은 일도 하시죠?”

“네. 매일 서류를 작성해서 보내야 하니 정말 힘들죠.”

“뭔가 학교 선생님 같네요. 수업 끝나고 남은 잡무 처리하는…….”

“학교 선생님이 더 힘들지도?”

“그래도 공무원이니 더 좋을지도?”

“케바케죠. 뭐.”

“그렇네요.”

그런 평범한 이야기를 하며 나는 시하를 챙겨 집으로 향했다.

꼭 잡은 시하의 손이 따뜻하다.

차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지만 이렇게 손을 잡고 돌아가는 것도 좋은 것 같다.

“형아.”

“응. 오늘 시하 엄청났다고 적혀 있는데?”

“아아.”

대충 오늘 한 교육을 훑어봤는데 굉장히 훌륭한 것 같다.

다른 어린이집에도 이렇게 다양하게 게임식으로 교육을 진행하나?

아이디어만 보면 머리가 터질 것 같다.

“형아.”

“응?”

“시하. 거지말 차자. 상자. 너어.”

“응. 거짓말 괴물 찾아서 상자에 넣었다고?”

“아아.”

여기 알림장 안 읽었으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을 뻔했다.

나는 시하를 보며 맞잡은 손을 흔들었다.

“그럼 이제 시하는 형아에게 거짓말 안 하겠네?”

“아아.”

실제로 시하가 거짓말을 한 적은 없었다.

생각해 보니 우리 시하 엄청 착한 거 아니야?!

세상에서 둘도 없는 생물일지도?

“형아에게 숨기는 것도 없지?”

“아?”

시하가 살며시 눈을 피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설마 숨기는 거 있는 거야?

벌써 숨기는 것도 있고 사춘기가 온 것이 아닐까?

요즘 애들 성장이 빠르다잖아.

그럴지도 모른다.

“형아. 시하. 지호 형. 비밀.”

“응?”

“지호 형. 비밀.”

시하가 손가락으로 쉿 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 지호랑 비밀 이야기 나눴어?”

“아아.”

“뭔데?”

“아?”

“형아에게만은 이야기해도 돼.”

“아아.”

시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기 시작했다.

“부웅~ 아아. 지호 형. 시하 아야. 만나. 지호 형이랑 노라. 지호. 수우.”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일까?

차라리 모스부호를 해석하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르겠다.

“붕붕!”

“그래. 그렇구나?”

“아아.”

“그런 비밀이 있었어.”

“아아.”

나는 시하의 손을 흔들었다.

“자. 집에 도착했다.”

“아아.”

“이제 씻어야지.”

“아?”

신발을 벗기자 쪼르르 도망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대로 시하를 잡으러 갔다.

씻기 싫어하는 건 아니고 이렇게 나랑 놀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잡았다!”

“아아!”

시하가 팔을 번쩍 들었다.

나는 그대로 들고 화장실로 직행했다.

오늘 하루 시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경험을 했다.

다시 이런 일이 있을 때 시하는 과연 판도라의 상자를 열까?

만약 연다면 이번 놀이처럼 실수를 수습하려고 할까?

남겨진 희망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말이다.

***

-며칠 뒤.

꽤 힘 있는 로펌이 자동차 사고를 처리하기로 했다.

아마 그 50대 아줌마는 처벌을 받을 것이다.

합의를 해 주지 않아 형사처벌로 넘어갈 것 같았다.

나는 이런 소식을 듣고 다시 한번 박중혁을 만났다.

저번에 판도라의 상자를 생각했는데 나는 지금 그걸 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겠다.

“아저씨. 오랜만이네요.”

“병문안을 두 번 오신 건 시혁 씨가 처음입니다.”

“합의를 안 해 주기로 했다면서요?”

“하하. 시혁 씨도 위험할 뻔한 일인데. 너무 괘씸하더라고요.”

“그렇구나.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하. 뭐 벌금 낼 돈은 있겠지만요.”

“그렇네요. 역시 이런 잘못된 일이라도 법적인 처벌을 받아야겠죠?”

“맞습니다. 잘못하면 벌을 받아야죠.”

나는 가지고 온 과일을 놓았다.

“보고 있는 자식이 있으니까 올바름을 보여야 할 것 같아요.”

“아무래도 아들이 봤으니까요. 나중에 기사 한 줄이라도 나면 그걸 또 보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하하.”

“그렇죠. 그런 거죠.”

나는 박중혁을 보았다.

“그러니 아저씨도 처벌받아요.”

“네?”

“지호. 제가 우연히 몸을 봤어요. 왜 그러셨어요?”

“그게 무슨?”

박중혁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타박상이 있던데요. 넘어져서 생긴 상처가 아니라.”

“애가 맞았다는 소리입니까? 아니…. 설마, 애 엄마가?!”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된 거구나…….’

나는 아주 조용히, 뜨겁게 무언가 올라오는 감정을 삼키고 박중혁을 보았다.

“제가 알고 있기로 지호 엄마 안 계시던데…….”

박중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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