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2화 (62/500)

62화

하나의 영상이 올라왔다.

멜츠 회사의 사고에 관한 것을 누군가 찍고 올린 것이다.

차량이 앞으로 급발진을 하며 끝에서 걸어가고 있는 사람 쪽으로 돌진했다.

딜러 한 명이 차에 부딪히고 아이와 어른은 몸을 굴러 기적같이 피했다.

이 짧은 영상은 여기서 끝이 났지만, 사람들의 댓글은 폭발적이었다.

-헐?! 차에 부딪힌 분 어떻게 됐나요?

-그런데 진짜 미쳤네. 왜 저기서 차가 액셀을 저렇게 밟았냐?

-아줌마 아주 뻔뻔하네.

-근데 화질 때문인지 얼굴이 잘 안 보임.

한동안 딜러에 대한 걱정과 아줌마에 대한 댓글이 들끓더니 어른과 애기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옆에 아기ㅠㅠ 애기는 안 다쳤을까?

-다행히 아빠가 구한 거로 보임

-그런데 반응 속도 미쳤는데??

-저 순간 반응 속도 없었으면 사람 세 명 치었겠다.

-아기 몸으로 감싸 안고 구르는 거 엄청 빠름ㄷㄷ

[조회수 4만]

엄청나게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면 꽤 상당한 이슈였다.

이런 영상과 댓글을 보며 나는 폰을 집어넣었다.

‘다행히 신상은 밝혀지지는 않았네.’

얼굴이라도 제대로 찍혔으면 곤란할 뻔했다.

아니. 가만 보니 영상을 올린 사람이 사람 얼굴을 흐릿하게 만든 것이 틀림없었다.

이런 쪽으로 잘 아는 모양이었다.

“형아.”

“응? 아! 미안. 형아가 심심하게 했어?”

“아아.”

도리도리.

시하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강인대학병원 응급실.

아무래도 전에 왔던 응급실을 기억해낸 모양이었다.

그때만 생각하면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시하가 정말 큰일 나는 줄 알았으니까.

원래 애들이 이유 없이 열이 나고 하는 줄 몰랐으니…….

“다음에는 저기 가지 말자. 알았지?”

“아아.”

“그리고 오늘은 딜러 아저씨 병문안 가는 거야. 이렇게 음료수도 준비했으니 시하가 줘야 해?”

“아아. 시하가!”

시하가 자신의 가슴을 탕탕 쳤다.

시하가 주는 선물을 받으면 어떤 사람이라도 금방 나을 것이다.

“근데 바로는 못 올라가고 같이 갈 사람이 있어.”

“아아.”

“응. 그러니 잠시만 기다려 보자.”

“아아.”

시하랑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저 멀리서 외국인 한 명이 왔다.

높은 콧대에 우직한 인상.

별로 웃는 표정은 아니고 딱딱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나는 저 사람이 리암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호기심 많았던 뉘앙스와 다르게 말투는 딱딱해도 인상은 딱딱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 예상이 틀렸던 모양이었다.

역시 사람은 만나 봐야 한다.

「안녕하세요. 리암. 저는 시혁입니다. 여기는 시하고요.」

자기 이름을 귀신같이 알아들었는지 시하가 손을 흔들었다.

“아아! 리암! 하이!”

리암이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보기보다 신사 같은 기품이 있는 웃음이었다.

「반갑습니다. 시하도 안녕! 이렇게 둘을 보니 좋네요. 역시 시하는 귀엽고요.」

“아아. 하이!”

리암이 다시 시하를 사랑스럽게 보더니 안녕하세요, 라는 말을 독일어로 가르쳐준다.

“구-텐 탁-”

“아아?”

나는 시하에게 설명해 줬다.

“안녕하세요. 영어로 Hi가 구-텐 탁-이야.”

“아아. 구구!”

“구구는 새소리고. 자 따라 해봐. 구-텐 탁-”

“쿠데타?”

그 말에 리암이 빵 터졌다.

「쿠데타면 큰일이죠! 하하. 이럴 때 아이가 너무 재밌습니다. 엉뚱한 말을 할 때요.」

「하하. 그렇죠?」

「네. 오늘 만나기 잘했습니다. 장소가 조금 그렇지만요.」

「오늘 제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같이 병문안 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뭐.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회사와 관련 없는 사람도 아닌데요.」

「그렇게 생각해 줘서 감사하네요.」

오늘 리암에게 병문안을 부탁한 이유는 별거 아니었다.

멜츠에서 이 사건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었다.

물론 회사에서 알아서 하겠지만 이렇게라도 얼굴 한 번 보면 전화라도 해줄 수 있으니까.

그런 작은 속셈도 있었지만, 지금은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는 게 먼저였다.

‘내성적이지는 않네. 그렇다고 속정이 없는 것도 아니고. 역시 독일인에 특징에 영업 마인드가 깔린 거 같은데?’

독일인이 굉장히 쌀쌀맞다고 생각되지만 사실 속정이 깊은 사람이 많았다.

일 처리가 굉장히 꼼꼼한 것도 독일의 특징이다.

전에 말했던 번역 출간이 1년 걸린다는 것도 이러한 특징의 연장이었다.

‘흐음.’

나는 리암과 이야기를 나누며 병실을 찾았다.

안에는 박중혁이 붕대를 감고 있었다.

골절이라는 모양이었지만 수술이 잘 끝나서 경과가 좋다고 한다.

정말 다행이었다.

“몸은 괜찮으세요?”

“아! 시혁 씨. 병문안 와줘서 감사해요. 저 뒤에 분은 리암 씨?”

“네. 맞아요.”

“그렇군요.”

박중혁이 쓴웃음을 지었다.

별로 좋아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래도 이렇게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누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대충 리암을 보니까 좀만 감성을 건들면 어느 정도 도움을 주지 않을까?

뭐 이건 내 생각이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

지금 내 위치로 사고 낸 여성을 더 벌 줄 수 없으니까.

“그러지 말고 이야기해 보세요. 좋은 사람입니다.”

“일단 병문안 와준 것만으로 감사하죠. 아기는 안 놀랐나요? 영상 보니까 진짜 위험했던데.”

“다른 사람 걱정할 때예요? 안 놀랐으니까 걱정 말아요. 시하가 보기보다 담이 엄청 세거든요.”

“그런가요? 하하. 아, 이것도 통역하고 있는 겁니까?”

“네. 이야기하려면 동시통역을 해야죠. 오늘 고마워해야 할 거예요. 제가 비싼 통역사거든요.”

“이런. 보험금으로 비용을 지급해야 하는 건가요? 자동차 보험도 함께 들며 차 사게 하려고 했더니 비용은 제가 지급하게 되었네요. 하하.”

농담할 정도로 상태가 양호한가 보다.

“여기 시하가 음료를 준비했는데 받으세요.”

“오! 그래요? 고마워. 시하야.”

“아아.”

시하가 살며시 음료를 내밀었다.

그걸 받은 박중혁이 옆에 있는 서랍에 음료를 넣었다.

나는 그걸 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드님은 어디 있어요?”

“지금 집에 있을 겁니다. 하하. 제 걱정을 아주 많이 하더라고요.”

“아…. 혼자 있는 거예요?”

“아니요. 혼자는 아니고 애 엄마랑 있지요.”

“그러시구나. 아빠 걱정 정말 많이 하겠다.”

“시도 때도 없이 전화가 와서 곤란할 정도죠. 하하.”

통역으로 듣고 있던 리암의 얼굴에 안타까움이 스쳤다.

「제가 도와줄 수 있는 거라면 언제든지 도와주겠다고 전해 주십시오. 그리고 멜츠에 연락을 한 번 더 해 보겠습니다.」

「그 말만으로 감사하다고 전해 달라고 하네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데요.」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누군가 병문안을 왔다.

한 아이가 살며시 눈치를 보며 들어왔다.

“아빠…….”

박중혁이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지호야. 어떻게 왔어?”

전에 놀이터에서 흙공을 약속하고 사라졌던 지호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

-강인대학병원 앞 산책로.

시하와 지호는 함께 산책로에서 놀았다.

리암과 헤어진 시혁이 벤치에서 흐뭇하게 보았다.

“아아. 지호 형.”

“응.”

시하가 손으로 동글동글한 모양을 만들었다.

“안 와?”

“응? 그게 무슨 말이야?”

“공!”

그때의 약속장소로 왜 안 왔냐고 알아들은 지호는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좀 그래서 못 갔어. 미안해.”

“아아. 놀자.”

“응.”

지호와 시하는 손을 잡고 산책로를 걸었다.

중간에 잔디가 있는 곳에 앉아서 곤충을 보았다.

사마귀가 손으로 다른 메뚜기를 때리고 있었다.

파바박!

당랑권을 펼치며 메뚜기를 제압해 그대로 입에 물었다.

“아아!”

시하는 신기하다는 듯이 그걸 계속 보았다.

“메뚜기가 불쌍해.”

“아?”

“먹히는 건 안 불쌍한데 맞는 건 불쌍해.”

“아아?”

무슨 말인지 몰라 시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른 데 가자.”

“아아.”

지호의 손에 이끌려 다른 곳으로 갔다.

주변에는 운동할 수 있는 기기들이 있었는데 지호가 그중 한 곳에 시하를 올렸다.

허리를 돌릴 수 있는 둥그런 발판이 있는 곳.

“그럼 내가 돌릴게.”

“아아.”

지호가 열심히 발판을 돌리자 시하가 빙글빙글 돌았다.

계속 돌아가자 어지러움을 느꼈다.

“그만~”

“응. 어때? 재밌었어?”

“아아. 시하도.”

“응. 그래.”

지호가 둥그런 곳에 앉았다.

시하가 둥근 판을 돌리려고 했지만 쉽지 않아 낑낑댔다.

“무거워?”

“무거.”

“그렇구나. 무거워.”

“무거.”

하지만 시하는 포기하지 않았다.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힘을 주며 둥그런 판과 함께 돌았다.

뒤뚱뒤뚱.

내밀고 있는 엉덩이와 함께 반원을 그렸다.

“아아!”

시하는 해냈다는 듯이 두 손을 높이 들었다.

지호가 시하의 머리를 톡톡 두들겼다.

“잘했어.”

“아아.”

그때 시혁이 시하와 지호에게 다가갔다.

“둘 다 열심히 노네. 형아도 끼워줄래?”

“아아.”

“네.”

“그 전에 지호야.”

“네.”

“전에는 왜 안 왔던 거야?”

“말 안 할래요.”

“음. 그래? 그러면 여기는 어떻게 왔어? 아빠에게도 말 안 해 주고. 엄마는?”

지호가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돌렸다.

“여기 아줌마가 데려다줬는데.”

“아줌마?”

“아빠 보고 싶다고 하니 데려다줬어.”

“그, 그래? 아줌마는 어디 있는데?”

“몰라. 나중에 데리러 온다고 했어. 으음 4시에?”

“4시? 어디서?”

“병원 앞에 있으면 데리러 온다고 했어.”

시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구나. 그럼 다음에 놀이터 꼭 와. 다 같이 파서 안에 흙공이 완성됐는지 보자.”

“응.”

시하가 지호 가까이에 오더니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아아.”

지호가 살짝 부끄러워하더니 손가락을 걸었다.

지켜질지 모르겠지만 다시 한번 약속을 한 것이다.

***

지호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시하의 손을 꼬옥 잡았다.

‘설마 그렇게 거절할 줄이야.’

먼저 다가온 것은 지호였지만 일정한 벽이 있는 것 같았다.

기다려준다고 해도 고개를 저으며 가라고만 했다.

혹시 애가 배려를 해준 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행동이나 말투를 볼 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정말 그저.

일정 거리를 가까이 오게 하지 않으려는 모습이었다.

시하와는 잘 노는데 나에게만 거리를 벌리는 모습이었다.

‘알 수 없네.’

정말 알 수 없다.

고개를 털고 다른 생각으로 넘어갔다.

‘리암과 미팅을 해야 하긴 하는데…….’

내일 시하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따로 시간을 잡아 만날 생각이었다.

이번 통역 일을 잘해 내고 싶다.

얼마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왕이면 모터쇼에까지 통역으로 참여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이런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

‘그러려면 어느 정도 능력을 보여줘야 하는데…….’

과연 이 능력에도 자동차에 관한 지식이 있을까?

오늘 아버지의 노트북에 들어가서 폴더를 봐야겠다.

‘음. 없으면 어떡하지?’

있다면 머릿속에 팟 하고 떠오를 텐데 이상하게 나의 뇌는 얌전했다.

‘어쩔 수 없지. 집에 가서 차에 대한 자료를 다 찾아봐야겠다.’

어쩌면 전문적인 언어 때문에 독일어로 되어있는 논문을 찾아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형아.”

“응?”

“저기~”

“저기 뭐가?”

저쪽에서 걸어오는 한 사람이 보였다.

50대로 보이는 여성.

한 손에는 명품가방을 꽉 쥐고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사고 낸 아줌마…….’

설마 강인대학병원에 가는 중일까?

나는 눈을 찌푸리며 여자를 째려보았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뻔히 알 거 같았지만 저 사람 때문에 시하가 다칠 뻔한 것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안녕하세요.”

아줌마가 먼저 우리를 알아봤는지 인사를 건넸다.

“…….”

나는 대답하지 않고 시하와 함께 그냥 지나쳐갔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뒤를 돌아보자 아줌마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못 봤어요. 시야에 안 들어와서요. 정말이에요.”

“됐습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때 시하가 아줌마를 보며 뒤늦게 반응했다.

손을 착, 하고 들며 말했다.

“쿠데타!”

오늘 배운 독일어.

구-텐 탁-(안녕하세요).

그런데 묘하게 쿠데타가 맞는 것 같다.

이걸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

시하의 말에 괜히 피식 웃음이 나올 것 같다.

“애가 저희에게는 정말 쿠데타 같은 일이라고 하네요. 안녕히 가세요.”

그렇게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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