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0화 (60/500)

60화

푸른 멍을 보고 나는 말을 아꼈다.

물어볼까?

별거 아닌데 내가 괜한 생각을 하는 걸 수도 있으니까.

“저기 지호야.”

“네?”

“몸에 아픈 부분이 있어?”

지호가 자신의 몸을 감쌌다.

“없어요.”

“정말? 아까 본 거 같은데?”

“이거 넘어져서 생겼어요.”

“아, 그래? 그렇구나.”

정말 넘어져서 생긴 걸까?

너무 순식간에 본지라 확실하지 않았다.

정말 넘어져서 생긴 걸지도 모른다.

“그럼 이렇게 볼록하게 흙으로 덮어서 표시를 해 두었으니까 나중에 쉽게 발견할 수 있겠지?”

“네.”

“아아.”

나는 애들이랑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내일 여기 같이 파보자. 같은 시간인 3시에 만날까?”

“네.”

“아아.”

우리는 지호랑 약속했다.

손을 흔들며 지호랑 헤어지고 나서 집으로 갔다.

가는 길에 뭔가 고민이 들었다.

그때 좀 더 물어보는 게 맞았을까?

푸른 멍이 넘어져서 생길 수 있는지 잘 몰랐다.

시하가 넘어졌을 때는 무릎 정도에 멍이 생기기는 했는데…….

‘내일 물어보자.’

나는 시하의 손을 잡고 집으로 향했다.

“시하야. 오늘 재밌었지?”

“아아.”

“나중에 저 흙공이 완성되면 잘 보관해두자.”

“아아. 공!”

“그래. 그래. 공이야. 공. 흙공.”

“아아.”

다른 부모님이 보면 버리고 싶어 할지도 모르는 공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별거 아닌 것도 소중해지는 무렵이 어린 시절이다.

나는 그런 마음을 즐기게 하고 싶었다.

내가 부모님의 빈자리를 못 채워주는 만큼 더 채워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게 바로 시하와 함께하는 여러 추억과 마음일 것이다.

“시하야. 내일 완성되는 게 기대된다.”

“아아.”

나는 시하의 손을 꼬옥 잡았다.

그리고 시간은 유수와 같이 흘러 다음 날 3시가 되었다.

우리는 놀이터에서 지호를 기다렸지만, 지호는 오지 않았다.

어째서일까?

약속을 지키지 않을 애처럼 보이지 않았는데.

왜 지호는 오지 않는 것일까?

이럴 줄 알았으면 집이라도 물어보는 건데.

놀이터 근처에 산다고 해서 헤어졌는데 차라리 데려다줬으면 좋았을 뻔했다.

안일한 내 생각에 화가 나는 것 같았다.

너무 무신경했던 건 아닐까?

물론 그날 처음 본 아이였고 먼저 나서는 것은 오지랖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린 동생을 가진 형으로서 조금은 신경 써줬어야 하는 거 아닐까?

“형아.”

“응?”

“지호 형.”

“아…. 지호는 어디 아파서 못 오나 봐.”

시무룩.

지호가 마음에 들었던 시하가 고개를 숙였다.

나는 이걸 어쩌나 싶었다.

“우리 만들어진 거 파볼까?”

도리도리.

시하가 고개를 저었다.

“가치.”

“같이 파 보고 싶어?”

“아아.”

만날 일이 없는데 어떻게 같이 파볼 수 있을까?

나는 살짝 고민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그럼 다음에 지호를 만나면 여기 파보는 거야. 알았지?”

“아아.”

나는 시하의 손을 잡고 놀이터에서 조금 놀았다.

혹시 지호가 올지도 몰라서.

하지만 1시간이 지나도 그 아이는 올 생각이 없었다.

***

-멜츠 KR 지점.

멜츠를 판매하는 박중혁이 밖에서 담배를 뻐끔뻐끔 피웠다.

연기가 하늘 위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며 기분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옆에 있던 같은 딜러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이번에 본사에서 감사 온다며?”

“그것뿐이겠어? 모터쇼 참가도 있잖아.”

“감사가 목적이지. 모터쇼가 목적일까? 또 어떤 지랄을 들어야 하는 거야.”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마. 그래도 통역사가 설마 나쁘게 말하겠어?”

“너 영어는 알아듣잖아. 나도 마찬가지고.”

“그건 그렇지만. 안 들으려면 안 들을 수 있잖아.”

“그렇지.”

한국어와 다르게 자연스럽게 들리지 않는다.

특히 전문 용어와 섞여 나오면 그냥 한 귀로 흘릴 수 있다.

물론 욕설은 귀에 팍 꽂히겠지만.

“후우우.”

“그리고 이번에는 모터쇼가 목적일걸? 매출 증가를 노리겠지. 아마 이번 한국에 한 번 방점을 찍고 어느 정도 신경은 끄겠지.”

“별 해괴한 기사가 떠서. 정말. 점유율을 높일 생각이면 우리한테도 좀 떨어지는 게 있어야지.”

“그건 그렇지.”

“아니, 아무리 갑을 관계라지만 수입사에서 과점하는 건 너무한 거 아니냐? 영업이익이 적자야. 이게 말이 돼? 매출은 흑자에다 상승세인데 말이야.”

“어쩌겠냐. 먹고 살아야지.”

“이럴 때일수록 딜러사가 일어나 으쌰으쌰해야지.”

박중혁이 담배를 끄고 쓰레기통에 넣었다.

“아 놔. 진짜. 일할 맛 안 나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야.”

“그래도 너는 상황이 낫지. 실적이 장난 아닌데.”

“그러면 뭐 해. 자기들끼리 다 처먹는데. 내가 다른 데로 이직하든가 해야지.”

옆에 있던 딜러가 관심을 보였다.

“어디로 가게? 좋은 데 있으면 나도 같이 데려가.”

“저리 가. 나 살기도 바빠.”

“야, 그러지 말고.”

박중혁이 피식 웃으며 팔꿈치로 툭툭 쳤다.

“저기 가 봐라. 손님 왔다.”

“어후. 명품백 메고 온 손님이네.”

딜러가 명품백을 메고 온 손님에게 가자 박중혁이 다시 담배 하나를 물었다.

“아, 두 개째는 못 피겠네.”

다시 담배를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에 어리바리하게 주위를 둘러보는 청년과 아이가 있었으니까.

‘부잣집 도련님인가?’

박중혁이 피식 웃으며 둘에게로 다가갔다.

***

멜츠 본사 관계자와 통화를 했다.

그의 이름은 리암.

이번 모터쇼를 지휘하고 감사를 진행하는 사람이었다.

통화해본 그의 이미지는 무척 정중하고 밝은 목소리의 소유자였다.

그렇지만 그 속에 송곳 같은 날카로움도 있어서 괜히 긴장되게 만들었다.

아무튼, 그와의 연락으로 만나기로 한 장소가 멜츠 KR이라는 곳이었다.

시하와 함께 가만히 기다리기 뭐해서 자동차를 구경하고 있다.

“시하야. 새 차라서 반짝반짝하다. 그치?”

“아아.”

“나중에 형아가 돈 벌어서 사줄게.”

“아아. 자동차!”

“이야. 이제 자동차라는 말도 할 줄 알고 시하 다 컸네!”

“콩나무?”

“응? 아! 그래. 집에 있는 콩나무처럼 엄청 컸어!”

집에 있는 콩나무는 쭈욱 자라서 내 키를 위협하고 있다.

정말 엄청난 성장력이 아닐 수 없다.

시하는 저렇게 빨리 자라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모 만화처럼 10년째 3살이었으면 좋을 것 같다.

‘아니지. 내가 무슨 생각을!’

생각해 보니 문제가 이만저만이 아닌 것 같다.

딱 2년간 3살이었으면 좋겠다.

그냥 지금의 시하가 너무 귀여웠다.

“아아. 형아. 시하. 차.”

“응. 시하 차네.”

“부룽.”

“부릉부릉도 알고. 시하 똑똑하네.”

“아아.”

요새 곧잘 말하는 시하였다.

이제 문장 연습이라도 미래 해 두는 게 좋을까?

조금씩 성장하는 시하의 모습을 보니 뿌듯함을 느낀다.

그때 누군가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뭐 좀 도와드릴까요?”

“아! 사실 제가 통역사로 왔거든요. 멜츠 본사에서 오는 리암이요.”

“오늘 온다고 연락은 받았습니다. 흐음. 통역사분이시군요.”

“네! 여기 있는 아이는 제 동생인 시하고요.”

“그런데 동생은 왜?”

“아, 그게 리암이 동생도 데리고 와도 된다고 했거든요. 굉장히 궁금해하시더라고요.”

“그래요? 원래 아시는 사이인가 보네요.”

“그건 아니고요.”

나는 앞에 있는 사람의 명찰을 힐끗 보았다.

박중혁.

보기에는 여기 딜러신 거 같았다.

“저도 멜츠 차 좋아해요. 기사에도 나왔잖아요. 여벌 목숨의 멜츠!”

“하하. 사랑받는 수입차이기는 하죠.”

“그러니까요. 돈만 있으면 사는 건데.”

박중혁이 눈을 반짝였다.

왜 저렇게 보는 거지?

“요즘 할부로 잘되어 있습니다. 제일 싼 거라도 멜츠를 사는 게 낫다고 보죠. 어떠십니까? 한번 구경이라도 해보실래요?”

“으음. 그건.”

“편하게 편하게 한번 시승이라도 해 보세요. 나중에 사러 올 때 또 시간을 쓰게 될 거잖아요. 아무래도 육아에 바쁘실 텐데 기다리는 동안 타 보면 얼마나 시간도 아끼고 좋습니까.”

입에 모터라도 다셨나?

은근히 권해 오는 합리적인 말에 넘어갈 거 같다.

역시 딜러…….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어느새 할부로 구매하고 있는 나를 볼지도 모른다.

박중혁이 말했다.

“생각해 보세요. 지금 이 기다리는 시간이 좀 지루할 수도 있습니다. 저도 애 키우는 입장에서 안전한 차를 선호하거든요.”

“아, 네.”

“지금 유치원생인데 얼마나 예쁜지 모릅니다. 아빠 운전하는 조수석에 턱 하니 앉아서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하마터면 사고 날 뻔했죠. 아, 여기로 한번 오시죠.”

나는 싱크대의 물이 스르륵 아래로 빠지듯이 그의 말에 빨려 들어갔다.

저런 공감 가는 주제를 꺼내다니…….

박중혁이 어딘가로 우리를 끌고 가더니 탁자에 있는 사탕을 여러 개 꺼내서 시하의 손에 쥐여 주었다.

그러고는 제일 맛있는 포도 맛을 까서 시하의 입에 쏙 넣어주었다.

“자. 여기 사탕 까줄 테니까 먹고 있으렴.”

이렇게 관심을 사탕으로 돌린 뒤에 다시 나를 보았다.

“자. 이제 차를 한번 보러 가시죠. 제가 자녀 있는 부모님들이 많이 사시는 차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아마 시승도 해 보면 만족스러울 겁니다.”

여기서 명확하게 말하자.

“저는 일단 살 생각이 없어서요.”

“차는 어디 안 가죠. 신상을 살 것도 아니잖아요. 나중에 생각 있으시면 천천히 고르셔도 됩니다. 일단 타 보고 마음에 들면 나중에 살 때도 시간 절약이 되잖아요.”

“음.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박중혁이 사람 좋은 미소를 보였다.

왜 이렇게 속은 기분이지?

분명 사지는 않을 것 같은데?

일단 박중혁이 안내하는 대로 차에 갔다.

시하와 함께 시승해 보니 나쁘지 않았다.

그나저나 여기서 운전을 해도 되나?

“어떻습니까?”

“일단 운전해 봐야 알 것 같은데요?”

“잠시만요. 여기 차량용 안전 시트도 있습니다.”

순식간에 시하의 안전을 확보하는 시트까지 장착되었다.

뭐에 홀린 기분이었다.

시하도 편안함에 기분이 좋은지 사탕을 빨면서 여기저기 만져보았다.

“형아. 폭폭.”

“응. 푹신푹신하지?”

“아아. 푹신!”

“다행이네.”

박중혁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그렇죠? 나중에 여기서 사러 오시면 이 시트도 같이 챙겨 드리겠습니다. 보기보다 꽤 좋은 상품입니다.”

솔직히 이쯤 되면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 사람 여기서 최고의 딜러다.

확신하지 못하지만, 판매 실적이 1위일 것 같다.

“한번 저기 한 바퀴 돌아보시겠어요?”

말은 저렇게 하는데 이미 키를 꼽으신다.

굉장하네.

“아! 운전면허는 있으시죠?”

“네. 있어요.”

“그럼 다행이네요. 제가 조수석에 앉겠습니다.”

시하를 뒷좌석에 옮기고 박중혁이 내 옆에 앉았다.

뭐가 이렇게 자연스러워?

“그럼 여기서 한 바퀴만 돌고 옵시다.”

“진짜 그래도 돼요?”

“당연하죠.”

어느새 나는 멜츠 차를 몰고 있었다.

승차감도 좋고 소리도 별로 안 난다.

흔들리지 않은 편안함이 느껴진다.

좋은데?

이래서 다들 비싼 차, 비싼 차 하는가 보다.

“그런데 이 차는 얼마예요?”

“싸게 7천만 원 정도 하죠.”

“아…….”

싼 게 7천만 원이구나.

가격이 후덜덜하다.

손발이 떨리는 것 같다.

이거 사고 나면 물어줘야 하는 거 아니야?

운전하는데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요즘 할부로 싸게 할 수 있습니다. 너무 걱정 마시고 나중에 상담하시죠.”

“일단은 알겠어요.”

“중고차보다 새 차가 좋습니다. 제가 잘해드릴게요. 시하도 이렇게 좋아하지 않습니까.”

“그렇네요.”

“사실 저도 멜츠 욕을 많이 하는데 멜츠 차는 씁니다. 나쁜 건 사람이지 차는 문제없으니까요.”

“아하하.”

그렇게 한 바퀴 돌아오면서 우리는 차에서 내렸다.

아무래도 나중에 이 차 살 것 같다.

“그런데 밖에 놔둬도 되나요?”

“원래 자유 시승용으로 놔둔 거니까요.”

“아하.”

“잘 팔리는 것만 놔뒀습니다.”

“그렇구나. 제가 이런 데는 처음이라.”

그렇게 차를 지나쳐가고 있는 그때!

갑자기 한 차가 앞으로 급하게 가기 시작했다.

부웅!

차가 시하와 나를 향해 가까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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