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동물원 매표소 앞.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꽤 있었다.
아이들이 삼삼오오 떠들고 있었고 가족과 함께 있는 모습이 참으로 다정했다.
그런 아이 중에서도 우리 시하도 있었다.
하나와 승준도 있었다.
“승준! 하나!”
“시하야~ 오늘 기린 보자! 기린!”
“하나는 사슴. 사슴 볼래!”
어쩌다 이 애들과 같이 다니게 됐을까?
발단은 시하가 어린이집에서 동물원을 간다고 자랑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후 승준과 하나도 가고 싶다고 드러누워 버린 사태가 발생했고, 결과적으로 다 같이 가기로 했다.
시하도 은근히 같이 가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어쩔 수 없이 세 아이와 동물원에 가기로 했다.
이렇게 세 명이 붙어있는 것을 보니 쌍둥이가 아니라 삼둥이가 아닐까?
“원래 형제끼리 놀 텐데 괜히 저희 아이들이 끼어든 거 아닌지 모르겠네요.”
승준 엄마의 말에 나는 손사래를 쳤다.
“하하. 괜찮아요. 둘이 갔으면 시끌벅적하지 못해서 꽤 심심했을 거예요.”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아! 우리 차례네요.”
우리는 매표소 앞에서 표를 구매했다.
재밌는 점은 흥미로운 이벤트를 진행 중이라는 거다.
“와! 시하야. 동물원에 들어가면 이런 이벤트를 한대.”
“아?”
시하는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머리에 있는 곰돌이 모자도 갸웃거려서 더 귀여움이 배가되는 것 같다.
정말 귀엽다.
새끼 곰 보는 것보다 시하를 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정신 차리자.
“여기 여우의 빗이 어디 갔는지 찾는 사람에게는 나갈 때 경품도 준대.”
“아아.”
“자. 읽어볼게. 잘 들어봐.”
“아아.”
승준과 하나도 눈을 반짝이며 내 말에 집중했다.
매표소 직원이 건네준 종이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동물원에 여우가 있었습니다.
여우는 꼬리털을 정말 아꼈습니다.
제일 소중한 빗으로 꼬리를 빗는 걸 좋아했죠.
그런데 어느 날. 빗이 사라졌습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죠.
어딘가 떨어뜨린 게 틀림없다고 생각한 여우는 빗을 찾으러 나갔습니다.
처음 만난 동물은 닭이었는데.
닭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가 주워 간 거 아니야?”
도대체 누가 주워 간 걸까요?
여우의 빗을 주워간 동물을 찾아주세요.]
이런 건 어른들도 흥미를 느끼는 이벤트인 것 같다.
이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이 눈을 반짝였다.
승준과 하나가 말했다.
“시하야. 우리 여우의 빗을 찾아주자!”
“하나도 빗 좋아하는데!”
“아아!”
아주 의욕이 엄청나다.
나도 이 문제의 답이 궁금하기도 했다.
“여기 적혀 있기로는 여우의 집과 가까운 원숭이에게로 가자고 하네?”
“원숭이에게 가자!”
“하나는 원숭이가 의심스러어!”
“아아. 시하도!”
분위기만 보면 원숭이가 벌써 범인이었다.
우리는 동물원에 들어가며 원숭이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우끼끼!
원숭이가 팔딱팔딱 뛰면서 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철장에 다가오더니 사람들의 얼굴을 자세히 살피기도 했다.
어른이 떨어진 곳에서 바나나를 주자 휙 하고 가져가며 까먹었다.
그걸 본 승준이 외쳤다.
“저것 봐! 원숭이가 바나나 뺏었어!”
“원숭이가 빗을 가져간 거야!”
“아아!”
어디 보자.
원숭이 철장 앞에 있는 이벤트 표지판을 읽었다.
“원숭이는 손이 빠릅니다. 혹시 빗을 가져간 건 원숭이일까요?”
승준이 배를 쭈욱 내밀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내가 배를 콕 하고 한 번 누르자 승준이 몸을 숙이며 간지러워했다.
“아직 다 안 읽었어. 원숭이는 춤을 추며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갈기가 아름다운 사자! 갈기가 아름다운 사자!”
사자라는 말에 시하가 등에 있는 펭귄 가방을 내리더니 사자 카니멀을 꺼냈다.
“아하하. 시하야. 그 사자 말고. 우리 다음 동물을 만나러 갈까?”
“아아!”
애들이 동물들을 만나서 신기해하기도 했지만 이런 추리 이벤트 역시도 좋아하는 것 같다.
이렇게 찾아가면서 주변에 있는 다른 동물들을 자연스럽게 구경했다.
동물 특유의 쿱쿱한 냄새도 나지만 그걸 포함해서 아련한 향수를 떠올리게 했다.
‘아버지와 같이 온 적도 있었지. 그때 길을 잃어버렸는데.’
엉엉 울고 싶은 걸 꾸욱 참고 아빠를 찾았었다.
인파에 섞여 어딘지 모를 곳으로 구불구불한 길을 움직였다.
하지만 알고 보니 서로 가까운 곳에 있어서 서로를 못 알아보았다.
그때 내가 울었으면 아버지가 금방 찾았을지도 모른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이다.
“형아. 사자.”
나는 시하의 말에 상념을 털었다.
“그래. 사자네?”
“코오~”
“사자가 많이 피곤했나 보다. 저기서 자고 있어.”
“아아.”
승준이 내 바지를 잡아당겼다.
“시혀기 형아. 사자가 범인이야?”
“범인이라니. 아직 훔친 건지 아닌지 모르니까 범인은 아니야.”
“아니야. 범인일 거야.”
“그래? 그럼 우리 한번 보자. 시하야. 너도 궁금하지?”
“아아.”
“하나도. 하나도 궁금해!”
나는 표지판을 읽었다.
“사자님. 사자님. 사자님이 제 빗을 가져갔나요?”
“사자가 말했습니다.”
“왕은 자기 손으로 줍지 않아.”
“여우는 이번에도 빗을 찾지 못했습니다.”
“왕이 말했습니다. 털이 예쁜 호랑이가 수상해.”
여우는 호랑이에게 가야 하는 운명인가 보다.
“그럼 우리 호랑이에게로 갈까?”
“아아.”
시하와 하나의 손을 꼬옥 잡으며 다음 동물에게로 갔다.
신기하게도 호랑이는 깨어 있었다.
어슬렁어슬렁 걸으며 우리를 지켜보았다.
어흥!
울음소리를 크게 내며 입을 쩌억 벌렸다.
시하가 내 다리에 바짝 붙었다.
하나도 마찬가지.
“하나 호랑이 시러!”
“시하. 무셔.”
승준이 그 둘을 보며 손가락질을 했다.
“하하! 하나도 안 무서운데! 내가 이겨!”
응. 승준아.
저기 멀리 떨어지는 곳에서 말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단다.
저러니 괜히 놀려주고 싶다.
“승준아. 그럼 여기로 와.”
“아니야.”
“승준이는 호랑이 이기니까 여기 시하랑 하나 지켜줘야지.”
“아니야.”
“아닌데? 맞는데?”
“나는 싸울 때 거리를 벌리는 거야.”
과연. 여기서 거리의 중요성을 말하다니.
꽤 논리적이었다.
“하지만 호랑이는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부터 공격할 거야.”
“어어?!”
승준이 그건 생각 못 했는지 머뭇거리다가 내게 가까이 다가갔다.
“내가 사커 공만 있으면 저 호랑이 한 방이야!”
“큭큭. 그래.”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있어서 축구공을 찰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호랑이에게 빗은 없나 봐. 호탕한 상남자 호랑이는 빗을 쓰지 않는대.”
“아아?”
“목이 긴 기린이 봤을지도 모른대.”
“아아! 기린!”
기린이라는 말에 다들 눈을 반짝였다.
드디어 그 문제의 기린이었다.
울음소리로 싸웠던 그 기린이었다.
과연 기린은 ‘기리’, ‘지거어어언’, ‘음메’ 중에 뭐가 맞는 걸까?
솔직히 기린의 울음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대충 인터넷을 찾아보니 울지 않는다고 되어 있었다.
“가자.”
다들 기대되는 얼굴로 기린을 보러 갔다.
저 멀리서도 긴 목이 보인다.
저 목을 채찍처럼 쓰면 정말 아프겠지?
“자. 기린이야.”
“아아. 기린!”
“자! 울어라! 지거어어언!”
“아니야. 기리이이이하고 울어!”
다들 기린에게 고래고래 소리쳤지만, 기린은 아무런 반응을 안 했다.
그냥 입만 쫩쫩 다실 뿐이었다.
가끔 혀만 날름거렸다.
승준이 바닥에 앉아서 울음소리 들을 때까지 있겠다고 한다.
승준 엄마가 얼른 승준을 일으키려고 하지만 고집이 쇠고집이었다.
나는 고민하다가 승준과 하나, 시하에게 말했다.
“오늘 기린이 목이 쉬어서 울음소리를 못 낸대.”
“시혀기 형아. 진짜야?”
“응. 어제 기린 전용 노래방에서 엄청 불러서 목이 안 좋대.”
“치!”
“이게 두 시간만 부르려고 했는데 아저씨가 추가 시간을 20분, 30분을 줘서 그거 다 부르느라 목이 쉬었대.”
옆에 있던 승준 엄마가 그게 통하겠냐는 얼굴을 했다.
“아! 나도 그거 알아! 엄마랑 아빠랑 노래방 가면 시간을 더 줘.”
“그치?”
통했네?
나도 이게 먹힐 줄은 몰랐다.
“시혀기 오빠 똑.똑.해!”
하나가 나를 반짝이는 눈으로 보았다.
지어낸 이야기에 양심이 찔린다.
“형아. 노래방?”
“아. 시하는 모르지? 나중에 형아랑 코인 노래방에 가보자.”
“아아.”
“그런데 시혀기 형아. 기린은 여우 빗을 찾았대?”
“아. 맞다. 어디 보자.”
빗은 못 봤지만, 여우가 있던 자리에 지나간 동물을 알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
그 동물은 악어, 코끼리, 토끼라고 한다.
“그럼 여기서 쭈욱 가면 악어가 먼저 나온대.”
우리는 자리를 옮겨서 악어를 보러 갔다.
웃긴 게 실제 악어가 아니라 악어 모형이 만질 수 있게 되었다.
입을 쩌억 벌리고 있는 모습이 무서웠다.
나는 장난기가 발동해 그 입에 몸을 집어넣어 엎드린 자세를 유지했다.
몸이 추욱 쳐져서 기절한 척을 했다.
힐끗 눈을 떠 시하를 보자.
“형아! 아아! 형아!”
시하가 아주 당황하며 내 몸을 흔들었다.
들썩들썩.
“형아…….”
“시하야. 도망쳐. 형아는 악어에게 물렸어.”
“아아.”
도리도리.
시하가 격렬하게 저었다.
주변을 막 둘러보다가 악어 동상 가까이에 갔다.
“때치!”
그대로 악어 눈을 찰싹 때렸다.
실제 악어였으면 눈콕 당했을 것이다.
그래도 약점을 잘 찾아 공격했구나!
역시 시하는 천재가 틀림없다.
“때치! 때치!”
팍. 팍.
악어의 눈을 열심히 때렸다.
그때 하나가 악어 위에 올라타 찰싹찰싹 때렸다.
포즈만 봤을 때 완벽한 마운트 자세였다.
“시혀기 오빠. 나져.”
“시하야. 나도 도와줄게.”
악어 동상은 불쌍하게 두 눈과 허리를 공격당했다.
나는 살며시 몸을 스르륵 뺐다.
“와! 살았다! 고마워. 얘들아!”
“아아. 형아!”
“시혀기 오빠!”
“시혀기 형아!”
다들 내 품에 달려오길래 그대로 안아주었다.
하나같이 착한 아이들이다.
“그럼 다음 동물들을 볼까?”
우리는 동물원을 걸으며 코끼리, 곰, 돼지, 알파카 등등을 보았다.
마지막으로 토끼 농장으로 갔다.
역시 빗을 주운 동물을 토끼인 걸까?
나가는 곳과 맞닿아 있는 이곳에 직원이 있었다.
승준이 말했다.
“역시 토끼가 범인이야!”
“토끼가 범인!”
“아아!”
드디어 이 긴 여정의 끝에 도달했다.
직원이 말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토끼의 먹이를 주면 토끼가 정보를 이야기해줄 거예요.”
우리는 토끼에게 간식을 주었다.
시하도 신기한지 토끼의 먹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아. 형아.”
“응. 토끼가 정말 잘 먹는다. 그치?”
“아아.”
아삭아삭 소리를 내는 토끼를 보고 있는데 직원이 말했다.
“토끼는 여우를 보며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빗이 어디 있는지 알아. 네가 동굴로 들어갔을 때 보였거든.”
그렇게 말하고 빗을 가지고 간 동물이 누구인지 아냐고 우리에게 물어봤다.
시하는 전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승준은 범인으로 토끼를 지적했다.
하나는 사실 기린이라고 주장했다.
직원이 살며시 승준 엄마와 나를 보았다.
“어머. 저는 모르겠네요. 범인이 원숭이 아니었을까요?”
아무래도 아닌가 보다.
직원이 나를 빤히 보았다.
‘으음.’
조금 생각을 해보자.
여기 문제에서 처음부터 빗을 누가 ‘주워’ 갔을까요, 라고 한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여기에 함정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꼬리를 소중히 하던 여우가 정말 빗을 어딘가에 떨어뜨린 걸까?
훔쳐 갔다면 훔쳐 갔다고 명확하게 명시했겠지.
하지만 여우가 어딘가로 떨어뜨린 것도 말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혹시 사실 그 누구도 주워간 게 아니라면?
“설마 여우입니까?”
“오!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보통 여우라고 하면 좋은 이미지로 나오지는 않으니까요?”
“그런 이유는 아니지만, 정답은 여우가 맞습니다! 정답을 맞혔으니 상품을 드릴게요. 여기 여우 인형입니다.”
나는 여우 인형을 받았다.
“그런데 빗은 어디에 있던 거죠?”
“여우 꼬리의 뒤편에 빗이 꽂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우의 눈에는 잘 안 보였던 거죠.”
직원이 웃으면서 하나의 종이를 주었다.
거기에 적혀 있는 것을 읽었다.
“여러분의 소중한 보물은 다른 곳이 아니라 자신 가까이에 있습니다.”
동물원의 이벤트는 굉장히 교훈적인 이벤트였다.
중간중간에 포기하지 않게 흥미를 계속 유발해 끈기를 가지게 했다.
마지막에는 다른 곳에 눈 돌리지 말고 자신의 소중한 것은 가까이 있다고 말했다.
“시하야. 오늘 즐거웠지?”
“아아.”
시하에게도 소중한 것이 가까이에 있을까?
그 소중한 것을 남들에게 찾지는 않을까?
어쩌면 나는 그런 시하를 보면서 길을 제시해 줘야 하는 역할을 맡았는지도 모른다.
“형아에게 소중한 것은 시하야.”
“시하도~”
나는 살며시 웃었다.
어쩌면 남들 눈과 말에 너무 신경 써서 시하를 소홀히 대할지도 몰랐다.
이 이벤트는 오히려 나에게 주는 경고 같았다.
‘조심해야지.’
이 동물원에 오길 정말 잘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