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7화 (57/500)

57화

-승준과 하나의 집.

어버이날을 맞이해 승준과 하나가 엄마에게 카네이션을 주고 난 뒤에 집으로 돌아왔다.

“힝. 시혀기 오빠에게 못 줬는데.”

“오늘은 시혀기 오빠가 늦게 와서 못 줬지만, 내일 주면 되지.”

“응.”

승준이 자신의 목에 있는 카네이션을 들며 말했다.

“이거 내 껀데.”

“승준이 꺼 엄마 것보다 예쁘네?”

“응!”

승준 엄마는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아직 애들이 어려서 어버이날 카네이션은 그저 놀이 같은 거였다.

그래도 둘이서 ‘낳아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할 때는 어찌나 예뻤는지 모른다.

“아빠에게 줄 때도 ‘고맙습니다.’라고 해야 한다?”

“알았어!”

“응!”

둘은 아빠가 올 때를 기다렸다.

어느새 아빠인 오상환 교수가 집으로 들어왔다.

“아빠!”

“아빠!”

둘은 카네이션 하나를 들고 뛰었다.

“낳아주셔서 고마워!”

“나하주워서 고마워!”

오상환이 낳아 준 것도 아니고 주운 것도 아니었지만 대충 의미는 전해졌다.

오상환이 둘을 껴안으며 볼을 비볐다.

“둘 다 고마워!”

“아빠 카네이션!”

“목에 걸 거야! 빨리!”

오상환이 고개를 숙였다.

둘은 앙증맞은 두 손으로 아빠의 목에 카네이션을 걸어주었다.

“아빠 사랑해!”

“하나도 사랑해!”

오상환이 세상을 다 가진 표정을 지었다.

오늘 있었던 힘든 연구도 전부 날아간 것 같았다.

“승준이 목에도 카네이션이 있네?”

“응. 이건 내 꺼야. 내가 젤 멋져.”

“그래? 멋지네. 멋져. 엄마 꺼는 줬어?”

“응. 내가 만든 거 줬어. 아빠 꺼는 하나가 만든 거야.”

“오! 그래?! 하나가 아빠 꺼 만들어줬어?”

“응!”

오상환이 카네이션을 소중하게 어루만졌다.

“고마워.”

“응.”

“근데 하나도 카네이션 목에 달고 있네?”

“응. 시혀기 오빠 꺼야.”

“응? 시혀기 오빠에게 받았어?”

“아니. 하나가 시혀기 오빠 꺼 만들어써!”

“아…….”

오상환의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날아갔던 피로가 다시 어깨에 내려앉았다.

하나가 분명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아빠랑 결혼할 거라고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그런데 어디서 동갑 애기도 아니고 대학생을 좋아하다니.

차라리 아이돌을 좋아했으면 이렇게 질투라도 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 시혀기 오빠가 어디가 좋니?”

“시혀기 오빠는 다 잘해. 시하 말도 다 알아들어~”

“응. 그렇구나.”

“그리구. 그리구.”

“그래. 그래.”

하나가 뺨을 손에 대었다.

“잘생겨써! 하나 스타일이야~”

오상환이 코를 움찔거렸다.

승준 엄마가 오상환에게 자주 하는 말이었다.

-당신은 내 스타일이야.

두 모녀가 아주 똑 닮았다.

***

-어린이집.

시하는 오늘 펭귄 가방에 장난감 카니멀을 넣어왔다.

승준과 하나랑 같이 놀면 재밌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아아. 승준. 하나.”

“와. 시하야. 이거 머야?”

“와! 장난감!”

다른 애들도 시하의 장난감에 관심이 가는지 기웃거렸다.

“아아.”

시하는 펭귄, 기린, 사자를 들어서 작동시켰다.

태엽을 드르륵드르륵 감아서 동작하는 자동차였다.

자동차가 부웅 하고 움직이더니 멈췄다.

그리고 동물로 변신해서 쫄래쫄래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아이들이 눈을 빛냈다.

“우와!”

“멋있어!”

“대박!”

시하는 펭귄을 가지고 놀고, 승준과 하나에게는 사자와 기린을 주었다.

승준이 사자를 들며 가슴을 쭈욱 폈다.

“나는 사자다! 크아앙!”

“하나는 기린이야. 기리이~~”

“시하는 페페. 페페!”

그때 한 아이, 종수가 질투가 나는지 코웃음을 쳤다.

“펭귄이 무슨 페페라고 울어. 그렇게 안 울거든? 그리고 기린이 기리이~~ 하고 안 울거든?”

“아아?”

시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펭귄몬스터에서 황제펭귄이 페엥! 하고 울었으니까.

“펭!”

“그렇게도 안 울거든. 너 동물원 안 가봤지?”

“아아?”

시하는 동물원을 가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동물원도 안 가봤대요~”

종수가 시하를 놀렸다.

옆에 있던 승준이 종수를 밀쳤다.

“시하 놀리지 마!”

“마자! 그리고 기린은 기리이~~ 하고 울어.”

종수가 열이 받는지 고개를 홱 하고 돌렸다.

“셋 다 동물원 안 가봤네. 기린은 음메~ 하고 울거든!”

승준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거든. 지이거언!! 하고 울거든!”

“아니거든!”

뭔가 기린이 어떻게 우는 건지의 대결이 되었다.

시하도 거기에 참전했다.

“펭! 페페. 펭!”

시하가 땅에 손을 짚었다.

황제펭귄 기어 투의 모습.

“펭엥-”

“황제펭귄이다!”

“어제 재밌었는데.”

다들 황제펭귄을 봤는지 딴소리가 시작되었다.

종수가 다시 시하를 보았다.

“너 엄마가 동물원도 안 데려가 주는구나?”

그때 하나가 뿔이 났는지 정강이를 걷어찼다.

“아악! 쬐그만 게!”

“시하에게 시혀기 오빠 이써! 엄청 잘생겨써!”

“이게!”

종수가 하나의 머리채를 잡으려고 하자 시하는 몸을 날렸다.

하나에게가 아니라 종수에게로.

둘이 서로 데굴데굴 굴렀다.

선생님도 다른 아이를 달래주고 있다가 그 모습을 봤는지 얼른 달려왔다.

“아니. 친구끼리 싸우면 안 되죠!”

하나가 소리쳤다.

“종수가 먼저 그래써!”

“종수야 정말이니?”

“아니야. 저 안 했거든요.”

승준이 씩씩대며 화냈다.

“니가 먼저 했잖아.”

“와! 모두 거짓말한다!”

선생님이 곤란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서 시하에게 물었다.

“시하야. 정말이니?”

“시하. 페페. 펭. 마자.”

“으응?”

시하는 다른 건 필요 없고 펭귄의 울음소리가 맞다고 주장했다.

***

어린이집에서 시하를 데리고 오면서 싸움이 났다고 들었다.

처음에는 어디 다친 데가 없나 시하의 얼굴을 확인했다.

알고 보니 말싸움이었다는 듯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시하의 얼굴에 상처라도 났으면 그날 당장 복싱이라도 가르쳐야 할 뻔했다.

“시하야.”

“아아.”

“혹시 동물원 가고 싶어?”

“아?”

“동물원은 말이야. 엄청나게 많은 동물이 있는 곳이야. 기린도 있고 사자도 있고.”

“아아.”

끄덕끄덕.

시하도 가고 싶은지 기대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저번 옷 사건도 그렇고 동물원도 그렇고 은근히 애들 사이에서 무시가 있나 보다.

애들이 뭘 알겠냐마는.

순수함이 때로는 어떤 악의보다도 아프게 다가올 때가 있다.

“그럼 형아랑 동물원에 놀러 갈까?”

“아아!”

“그래. 그럼 동물원 가기 위해 예쁜 옷도 사고 한껏 꾸미고 가자.”

“아아. 페페.”

“아니. 펭귄 옷은 이제 더워서 못 입어.”

시무룩.

나는 그런 시하가 귀여워서 볼을 매만졌다.

말랑말랑한 볼을 만지고 있으면 오늘의 피로도 말끔히 사라지는 것 같다.

“그럼 내일부터 옷을 사러 가는 거야. 어차피 여름옷도 사야 했으니.”

“아아.”

시하가 좋아하는 옷을 고르면 될 것 같다.

그런데 조금 곤란한 게 있었다.

패션에 대해 그렇게 잘 알지 못한다는 거.

기왕 사는 거 어느 정도 멋진 옷을 골라주고 싶었다.

‘음. 알리사에게 같이 가달라고 부탁할까?’

그런 생각을 할 때 내 등을 누군가 두드렸다.

“시혁! 시하!”

“응? 알리사. 여긴 어쩐 일이에요?”

“당연히 학교 끝나고 집 가는 길이죠.”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으니 마주칠 일이 많을 텐데.

“잘됐네요. 혹시 시하 옷 좀 골라줄 수 있어요? 제가 잘 못 골라서.”

“그럼 지금 바로 가요.”

“지금요?”

“왜요? 바빠요?”

“아니. 바쁜 건 아닌데요.”

“대신 저녁은 시혁이 쏘기로. 시하야. 내가 예쁜 옷 골라줄게.”

시하가 알리사의 손을 잡았다.

“아아. 리사!”

“응. 내가 패디과 알리사야.”

그럼 패디과 알리사의 도움을 잘 받아보자.

“선입금할게요. 밥은 뭐로 사드릴까요?”

“근처 시장에서 사주세요. 컵밥도 있던데 거기 갈까요?”

“컵밥 좋죠. 그런데 그걸로 되겠어요?”

“시장 음식도 사주셔야죠.”

“좋아요. 시하야. 시장 가볼까?”

“아아.”

우리는 곧바로 시장으로 향했다.

오늘은 시하가 처음으로 컵밥을 먹는 날이 될 것 같았다.

“시하야. 뭐 먹을래?”

“…….”

시하가 턱을 잡으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메뉴판에는 다양한 컵밥이 있었다.

오리훈제, 떡갈비, 제육덮밥, 불고기 등등.

“형아가 추천해 줄게. 매운 건 제외하고 떡갈비 컵밥 어때?”

“형아랑 가치.”

“형아랑 같은 거? 그럼 형아도 떡갈비 먹을게. 알리사는요?”

“저는 오리 훈제에 치즈 추가요! 계란도!”

“알겠어요. 욕심 많으시네.”

“흐흥~”

금방 컵밥이 나와 우리는 자리에 앉아 먹었다.

“시하야. 아~”

“아~”

시하와 나는 컵밥 한 개를 나눠 먹었다.

알리사가 그 모습을 보고 물었다.

“왜 한 개만 시켰어요?”

“이렇게 나눠 먹고 시장 음식들 하나씩 먹어야죠.”

“?”

“왜요?”

“이것도 먹고 저것도 다 먹으면 되죠.”

“그걸 어떻게 다 먹어요?”

“다 먹는데요? 후식은 아이스크림으로요!”

저 얇은 허리에 그 음식이 다 들어간다고?

말도 안 되는 식성인 거 같다.

“예전에 삼겹살 3kg을 먹었는데 3kg 찐 거 있죠?”

“?”

“소화 다 되니까 바로 빠졌어요.”

“어…. 다른 여자친구들에게는 그런 말 하지 마요.”

“왜요?”

“한국인 되는 법이에요.”

“아. 진짜요?”

“자연스럽게 한국인이 되실 수 있어요.”

“저 한국말 잘한다고 들어요. 음…. 그런데 한국 사람 다 됐다고 들은 적은 없네요.”

“그럼 제가 하나 가르쳐 줄까요?”

“어떤 거요?”

“내일 몇 시에 만나기로 했어? 이렇게 물어보면 ‘몰라. 1시?’ 이렇게 말하면 돼요. 몰라는 앞에 말하고 대충 예측하는 시간을 뒤에 말하는 거예요.”

“??”

알리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모르면 모르는 거지. 왜 뒤에 말해요?”

“그렇게 하면 한국 사람 다 됐네. 들을 거예요.”

“이상하네요.”

이상하지만 원래 그렇다.

이렇게 가르쳐 주는 게 너무 웃기다.

“그럼 옷에 관련된 건 없어요?”

“아! 있어요. 옷은 키를 생각해야 하잖아요.”

“네.”

“한국 사람에게 169와 179cm는 없어요. 170, 180이라고 해야 하죠.”

“네? 왜요?”

“그게 한국 문화예요.”

한국에는 소수점 올림이 아니라 한 자릿수 올림이라는 좋은 문화를 가르치고 시하를 보았다.

“시하야. 그치?”

“아아. 형아. 밥.”

“응. 너에게는 밥이 중요하구나? 미안해.”

나는 시하 입에 떡갈비를 잘라 넣어주었다.

오물오물.

볼에 밥풀을 묻히고 먹는 모습이 참 귀엽다.

살며시 밥풀을 떼어서 입에 쏙 넣었다.

“형아. 내 밥.”

“볼에 붙인 거?”

“아아.”

“시하 껀 형아 껀데?”

“아냐. 형아 시아 꺼.”

나는 그게 또 귀여워서 시하의 볼을 찔렀다.

우리는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컵밥을 다 먹고 옷을 고르러 들어갔다.

“여기로 쭈욱 가면 예쁜 아동복이 있어요.”

알리사의 말대로 정말 예쁜 아동복 판매장이 있었다.

“이런 곳이 있었네요?”

“제가 여러 곳을 찾아봤죠. 제 옷 디자인도 여기에 팔면 어떨까 싶어서요.”

“아동 패션에 관심이 진짜 많네요?”

“네!”

나중에 알리사가 한국에 가게 하나 차리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가게에 들어가자 정말 많은 옷이 있었다.

“우선 동물원 갈 패션으로 부탁드릴게요.”

“좋아요. 이건 어때요?”

허리에 주름이 들어간 밴딩 청반바지.

살짝 오버핏인 반소매 티.

알리사가 자신의 윗옷을 바지에 넣었다.

“이렇게 앞에 넣고 다니면 간단하게 스타일링 돼서 좋아요. 시하에게 어울릴 거 같기도 하고.”

“와아.”

“아니면 이건 어때요? 버튼 면 반바지. 활동하기 편할걸요?”

“면 좋네요.”

“그리고 이런 곰돌이 밀짚모자 쓰면 귀여울 거 같지 않아요?”

“귀엽겠네요.”

해를 피할 모자도 쓰면 좋을 거 같았다.

우리는 시하에게 옷을 입히고 여러 벌을 구매했다.

“형아! 이거!”

“응? 시하야. 마음에 드는 거 있어?”

“아아.”

시하가 어떤 옷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건 옷이 아니었다.

비옷.

펭귄 모양을 한 비옷이 걸려 있었다.

“역시 시하에게는 펭귄이 최고네.”

“아아!”

“알았어. 저것도 사자.”

나는 시하가 원하는 펭귄 비옷을 사줬다.

저거라면 비 올 때 입을 수 있겠지.

‘설마 노렸나?’

어떻게든 펭귄을 입을 거라는 노림수가 아니었을까?

‘에이. 괜한 생각이겠지.’

우리는 그렇게 옷 사는 걸 마쳤다.

그리고 어느새 동물원이 가는 날이 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