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1화 (51/500)

51화

-5월 5일. 어린이날.

시하는 집에서 오늘 입을 옷을 고민했다.

“아아. 형아.”

“펭귄 옷은 안 돼. 5월이라서 이제 더워요. 오늘은 반팔을 입고 나가자. 알았지?”

“아아. 페페. 반팔.”

“펭귄 반팔티는 없어요.”

시무룩.

펭귄 반팔티가 없다는 슬픈 소식에 우울해졌다.

시혁이 그런 시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중에 형아가 옷을 찾아볼게. 근데 옷도 이제 사야겠다. 그치?”

“아아!”

시하는 팔을 척 하고 들었다.

펭귄 반팔티를 얻을 수 있는 게 너무나 좋았다.

“혹시 추울 수도 있으니까 잠바도 챙기자.”

“아아.”

“내일 여름옷 많이 사야겠네. 오늘은 곰돌이 옷으로 참아.”

“아아.”

시하는 펭귄보다는 못하지만, 곰돌이도 좋아했다.

하지만 역시 최고는 펭귄이었다.

“그럼 준비도 끝났으니 출발할까?”

“아아.”

시혁이 시하와 함께 한강공원 선착장으로 향했다.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벤트가 참 많았다.

그림왕, 댄스왕, 노래왕, 키즈 타투 체험, 코스튬 체험, 낙서 체험, 여러 가지 크루즈 이벤트들.

그중 역시 관심이 가는 것은 그림왕(그림 대회)이었다.

1등이 무려 SN 호텔 패밀리 숙박권.

호텔 식사 가격이 무려 10만 원이나 하는 것을 볼 때 다들 탐낼 만한 대회였다.

시하가 1등 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즐거운 추억이 될 듯했다.

“시하야. 승준과 하나야.”

“아아.”

승준과 하나는 이미 놀 준비가 되어 있는지 주변을 방방 뛰고 있었다.

“승준! 하나!”

“시하야. 안녕~!”

“안녕~! 시하야.”

“아아.”

“오늘 사커하자.”

“아니야. 하나랑 배 탈 거야.”

다들 자기 하고 싶은 걸 주장하고 있었다.

시혁은 승준 엄마 곁에서 애들을 지켜보았다.

“일단 저는 시하랑 그림왕 대회에 참가하려고요.”

“어머. 그거 재밌겠네요.”

“그렇죠? 먼저 현장 접수를 해야 한대요. 그림 도구는 거기서 준다고 하더라고요. 저희 가 봐요.”

“그래요. 아 맞다. 유람선 티켓은 구매했어요?”

“당연히 했죠. 이거 없으면 참가 못 하잖아요.”

“은근히 상술인 거 같아요.”

“하하. 이런 대회가 그렇죠. 뭐.”

애들을 데리고 티켓을 보여준 뒤 접수를 마쳤다.

그림 도구를 받았고 제출은 6시까지 해 달라고 했다.

주제는 따로 없었고 그림을 그릴 구역은 존재했는데 대부분 풍경화를 그리는 중이었다.

그리고 주변에 요원들이 있는 것을 보니 어른이 도와주는 부정행위는 못 하게 되어 있었다.

“색연필은 또 오랜만이네. 시하야. 그림 그릴까?”

“아아.”

그때 승준이 시하의 손을 잡았다.

“시하야. 저기 가서 그리자.”

“아아.”

시하는 형아에게 손을 흔들었다.

시혁이 그런 시하를 보며 조심스럽게 뒤를 따랐다.

도착한 곳은 바다가 잘 보이는 벤치였다.

셋이서 거기에 앉으려고 하는데 한 아이가 가방을 휙 던졌다.

“내 차지!”

가방에는 ‘1학년 1반 권순태’라고 적혀 있었다.

순태가 벤치에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며 시하를 보았다.

옷을 한 번 본 뒤에 슬쩍 웃었다.

“야.”

“아?”

“옷 보니까 별로 부유하지는 않나 보네. 너희 아빠 한 이백충은 되겠다.”

“아?”

이백충.

요즘 초등학생이 부모의 소득을 가지고 수준을 나누고 있었다.

200만 원을 벌면 이백충.

300만 원을 벌면 삼백충.

500만 원 이상이면 금수저라는 계급으로 나눈다.

이건 모든 초등학생이 그런 게 아니라 그렇게 말하는 부모의 잘못이 컸다.

물론 시하는 이런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림도 못 그리는 아기야. 저리 가.”

“아?”

시하는 앞에 있는 순태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몰랐다.

정말 의미를 몰라서 내뱉는 의문이 아니라 그림을 못 그린다는 말에 의문을 내뱉은 것이다.

“엄마가 너 같은 아이랑 놀지 말래. 여기는 내 자리니까 딴 데 가.”

승준이 눈을 찌푸렸다.

“뭐라는 거야. 왜 우리가 너랑 놀아? 바보야?”

“하나는 제가 바보인 거 같아.”

“아아. 바보.”

순태가 씩씩댔다.

“바보는 너희들이거든! 참나. 내가 애들 상대로 뭐 하나. 저리 가. 여긴 내 자리니까.”

시하는 순태를 빤히 보다가 뒤에 있는 펭귄 가방에서 티슈를 꺼냈다.

그리고 순태에게 건네줬다.

“뭐, 뭐야?”

“지지.”

“뭐? 어디 묻었나?”

“지지.”

시하는 순태에게 티슈를 던졌다.

팔랑팔랑.

그러고는 뒤를 돌아서 하나와 승준의 손을 잡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수다를 나누고 있던 시혁과 승준 엄마가 애들이 오는 것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응? 시하야. 왜 돌아왔어? 다른 데 가게?”

“어머. 너희들 저기에 가는 거 아니었어? 어? 누가 앉아 있네.”

시하는 형아의 바지를 잡았다.

“이배추? 머야?”

“응? 배추?”

옆에 있는 승준이 말했다.

“저 애가 시하에게 아빠가 이백충이랬어!”

“뭐?!”

시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시하는 그런 형아가 너무나 걱정되었다.

처음 보는 표정이었으니까.

“형아?”

“응? 아, 미안. 그건 나쁜 표현이니까 쓰면 안 돼요. 지지야. 지지.”

“아아. 지지!”

시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지라는 건 알고 있었다.

왜냐면 예전 카페에서 시혁을 괴롭혔던 어떤 아저씨랑 순태가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아아!”

“그래. 그런데 저 애도 그림왕에 참가 하나 보네?”

“아아.”

“우리 시하. 그림 엄청 잘 그려서 혼내 줄까?”

“아아.”

왜 혼내 줘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시하는 형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엄청난 그림을 그리는 거야.”

“아아.”

시하는 승준과 하나와 함께 자리를 잡고 그림을 그렸다.

잔디에 앉은 자리가 푹신하고 햇빛에 비친 한강이 빛나 보였다.

“시하야. 나는 저 배를 그릴 거야.”

“아아.”

“하나는 저기 강을 그릴래.”

“아아.”

시하는 뭘 그릴까 고민하다가 고개를 몸을 돌려 한강을 등졌다.

그러더니 그림을 슥슥 그렸다.

“엄마. 엄마.”

손끝에 맺히는 분홍색 빛무리가 환하게 시하를 포근하게 감쌌다.

색연필을 가지고 슥삭슥삭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배경은 없고 커다란 눈을 그렸다.

눈꺼풀 위에 있는 어른들과 아이들을 간략하게 그렸다.

가지각색의 사람들을 간략하게 그림으로 옮긴 것이다.

“손!”

분홍색 빛무리가 따뜻했다.

손에 감싸 쥐는 느낌이 들며 선과 선이 매끄럽게 그려졌다.

사각사각.

엄마와 함께 있는 이 시간이 시하에게는 큰 즐거움이었다.

“엄마. 엄마.”

마지막으로 눈동자에 파란색 색연필과 흰색 색연필로 한강과 유람선을 그리고 마무리를 지었다.

“아아!”

옆에서 승준이 눈을 크게 떴다.

“와. 엄청 큰 눈이다!”

“하나는 무서워.”

승준이가 특이한 걸 좋아했다면 하나는 그림을 보고 무서워했다.

시하는 그저 본대로 그린 것뿐이라 별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형아에게 칭찬받고 싶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아~”

“어? 다 그렸어?”

시혁이 심각한 표정을 풀며 시하를 반겼다.

“아아.”

“어디 한번 볼까?”

시혁이 시하의 그림을 보았다.

“우와. 진짜 잘 그렸네?!”

“아아.”

“이건 사진 찍을 감이다. 어서 찍자!”

“아아.”

시혁이 시하의 그림을 찍었다.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시하도 함께 찍었다.

“세 사람 다 그림 들고 서봐.”

“시혀기 형아. 나는 한강에 배가 공을 차고 있어.”

“하나는 강이 하늘로 올라가고 이써!”

갑자기 그림 설명회가 되었다.

하나같이 창의적인 그림이었다.

시혁이 살며시 웃으며 폰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찰칵. 찰칵. 찰칵.

“저희도 같이 찍어요.”

“그럴까요?”

시하는 모두와 함께 그림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손에 브이 자를 하는 것이 포인트였다.

***

그림을 운영 부스에 제출하고 우리는 유람선에 탑승했다.

유람선에는 재밌는 행사를 했는데 그건 바로 애니뮤직크루즈였다.

캐릭터 분장을 한 사람이 연기도 하고 동요도 부르는 프로그램이었다.

“으응?”

그런데 어디서 익숙한 남자가 보였다.

저 근육근육한 모습에서 백동환의 그림자를 느꼈다.

하필이면 펭귄몬스터에 나오는 근력몬이었다.

“근력! 근력!”

시하가 근력몬을 가리켰다.

“아아. 형아. 그뉴.”

“응. 근력몬이네.”

“앞집!”

“으응?!”

아무래도 시하도 눈치챘나 보다.

하긴 근력몬의 근육이 실제 근육이니 눈치챌 수밖에.

특히 저 거구를 가진 사람이 세상에 그리 많지 않았다.

여기서 알바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백동환도 우리를 발견했는지 손을 흔들어 줬다.

“아아! 백똥!”

“풉.”

백동환이 백똥이 된 순간이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백동환이 웃으며 노래를 불렀다.

“펭. 펭. 펭. 오우!”

애들도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펭. 펭. 펭. 오우! 턴 어택!”

은근히 중독성이 있는 애니 노래에 몸이 들썩였다.

애가 있는 어른들도 잘 아는지 따라 부르기도 했고.

“펭. 펭. 펭. 오우! 턴 어택! 피스. 피스. 피스톨~”

시하도 눈을 빛내며 따라 불렀다.

그때 펭귄몬스터를 본 이후로 1편부터 조금씩 보기 시작해서 노래를 잘 알고 있었다.

“시하야. 신나지?”

“아아!”

들썩들썩.

시하의 의미 모를 엉덩이춤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시하는 정말 귀엽다.

‘다음에는 형이 무시 안 받게 해줄게.’

오늘 있었던 일을 들었을 때는 굉장히 화가 났다.

그런 일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설마 우리 시하가 당할 줄은 몰랐으니까.

애들 정서상 대체 어떤 교육을 하길래 계급을 나누는 걸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시하에게 오늘이 이상한 기억으로 남지 않았으면 했다.

‘형아가 더 잘할게. 알았지?’

시하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아?”

“시하야. 좀 더 출까?”

“아아.”

나는 시하와 함께 춤을 췄다.

그리고 그림왕의 수상작을 발표할 시간이 다가왔다.

***

-심사위원석.

오늘 그림왕을 뽑을 사람들이 심사를 보았다.

먼저 1차 작업.

그냥 봤을 때 잘 그린 그림과 못 그린 그림으로 나눈다.

어린이들의 그림 중에 잘 그린 그림은 몇 없었다.

그중 기발한 그림은 잘 그림 그림으로 빼놓는 작업을 거쳤다.

휙휙 넘어가는 게 아주 편하다.

“만약에 중, 고딩들도 어린이 참가자로 쳤으면 심사가 이렇게 하루 만에 안 됐을 거야.”

“그건 그렇지.”

앞에 그림을 넘기는 두 남자가 낄낄거렸다.

1차 작업이 끝나고 2차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진짜 상을 받을 그림을 뽑아야 했다.

대상(1명), 금상(2명), 은상(2명), 동상(5명).

총 10명의 아이가 상을 받을 것이다.

“어디 보자. 이제 10개를 뽑아 보자고. 응? 와. 이거 뭐야? 기발한데?”

심사위원 한 명이 시하가 그린 그림을 들었다.

“다들 이것 봐.”

“오! 사실 나도 그 그림이 마음에 들어서 뽑았어.”

“진짜 대단하네. 이름이 이시하? 와. 아이디어가 기가 막혀.”

“그렇지?”

손으로 눈꺼풀을 가리켰다.

“여기 눈꺼풀을 맡은 사람들 좀 봐. 이건 행사에 온 사람들이라고. 아이와 어른.”

“더 재밌는 건 저 눈 뒤에 사람들이 있다는 걸 표현한다는 거지.”

“난 그 생각이랑 조금 달라. 저 많은 사람이 바라보는 광경을 그렸다고 생각해. 두 개의 눈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의 눈을 그린 의도가 뭐겠어? 다들 같은 한강과 크루즈를 보고 있다는 거지.”

시하는 두 눈보다 외눈이 그리기 편해서 한 개로 그린 것뿐이다.

전혀 그럴 의도는 없었다.

“안 그래도 흰 바탕인데 하얀색으로 그려서 유람선이 희미해졌어. 이건 결국 사람들에게 희미해질 추억이라는 걸 의미하겠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어린애가 그런 의미까지 생각할 거 같아?”

“그럼 지금 이 창의적인 그림에 어떤 의도로 그린 거라고 생각해? 정말 아무 의도 없이 그린 거라고? 그거야말로 이 애를 정말 애로 무시하는 거야. 미술 실력에는 애, 어른 할 거 없다고.”

그때 지켜보고 있던 한 명이 손을 들었다.

“근데 수상한다는 걸 전제로 말하는 거 같은데 어떤 상을 줄 거야?”

“그건…….”

“흠. 역시. 이 상 정도가.”

“아니지. 이 상이지.”

서로의 의견이 엇갈려 조율이 필요했다.

한참을 의견을 나누다가.

“그럼 이걸로 정하지.”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1